에디터. 박종우 사진. 김동규, 박영채 자료. 구가도시건축 건축사사무소
익숙하지만 낯선 집
‘한옥’이란 2021년을 살아가는 한국인들에게 어떤 의미일까? 한옥에 살고 있다는 것은 어떤 것을 상징할까? 대부분의 한국인은 한옥이 가진 가치를 이렇게 정의할 것이다. 한국 고유의 전통이 담긴 건축 양식으로, 존중하고 보존해야 하는 것. 다시 말해 ‘문화유산’이다. 오늘날 한옥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전통을 상징한다. 한옥에 사는 사람은 불편함을 무릅쓰고 오랜 전통을 고수하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격변의 세월을 겪은 한국에서 한옥은 이제 전통으로서 과거에 머물러 있는 존재가 된 것이다. 서양식 가옥, 양옥은 현대인에게 편리한 것이 되었고 한옥은 누군가에게는 불편한 전통이 되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한옥을 바라보는 관점이 점차 달라지고 있다. 한옥을 현대인의 기준에 맞추어 적극적으로 해석하는 건축가, 공간 디자이너, 공간 기획자들이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 종로구 안국동의 카페 어니언onion 등 개보수 작업을 통해 오래된
한옥을 상업 공간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도시재생을 위해 버려진 한옥을 지역 공동체를 위한 공용 공간으로 개조하기도 한다. 한옥적인 요소들을 이용해 한옥의 정서를 느낄 수 있는 양옥을 설계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전통 그대로의 한옥을 자신만의 관점으로 재해석하는 것이다.
공간은 변화한다, 한옥 또한 그렇다
‘낙락헌’은 한옥을 재해석하는 방법을 제시하는 집이다. 지하는 양옥, 지상 1층은 한옥으로 구성된 이 집은 외관과 내부 공간 모두 양옥과 한옥이 뚜렷하게 분리되어 있다. 이는 현대 한옥을 설계하는 사람과 거주하는 사람 모두 더는 한옥의 불편함을 참지 않고, 솔직하게 자신만의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드러낸 것이다. 건축주와 건축가 모두 한옥의 건축 양식과 규범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바를 공간에 구현하고자 했다. 그 결과 낙락헌은 언론과 대중의 주목을 받으며 완공 후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현대 한옥의 대표 사례로 꼽히고 있다.
구가도시건축 건축사사무소(이하 구가도시건축)의 조정구 소장은 인터뷰 도중 전통 건축과 현대 건축의 경계는 언젠가 무너질 것이며, 둘 사이를 자유롭게 오가는 일이 머지않아 자연스러워질 것이라 말했다. 적극적인 재해석으로 한옥이 점차 고루함을 탈피하고 고풍스러움과 ‘힙’함의 상징으로 거듭나는 요즘, 낙락헌이야말로 한옥이 전통 건축과 현대 건축 사이 경계를 무너뜨리며
어떻게 변화하는지 보여줄 수 있는, 한옥이 아닌 진짜 ‘한국인의 집’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답사하는 건축가, 연구하는 건축가
2000년 문을 연 이래 현대 건축과 전통 건축의 경계를 넘나들며 실험적인 시도를 이어온 구가도시건축. 조정구 소장은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건축주의 삶에 적합하면서도 자신만의 개성을 담은 집을 짓기 위해 고민을 거듭해 왔다. 또한, 서울의 골목과 동네 속에 펼쳐지는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답사하고 기록하는 ‘수요 답사’ 역시 20년 가까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조정구 소장은 2007년 최초의 한옥 호텔 ‘라궁’ 이후 낙락헌을 비롯한 다양한 현대 한옥을 설계한 덕분에 대중과 언론으로부터 ‘한옥 건축가’로 불린다. 하지만 그는 “한옥 건축가로 불리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대체할 만한 새로운 수식어를 묻자, “연구하는 건축가, 혹은 답사하는 건축가로 불리고 싶다”고 말했다. 수많은 집을 짓고 골목을 기록해 온 조정구 소장과 낙락헌, 한옥, 한국인의 집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은평한옥마을 기획 초창기에 마을 전체 설계에 참여하셨다고 들었어요.
처음부터 전부 관여하지는 않았어요. 서울주택도시공사(이하 SH공사)가 이미 단독 필지로 설계를 마친 상태였죠. 당시 구가도시건축이 서울시로부터 용역을 수주했는데, SH공사에서 이 작업도 도와 달라는 요청이 왔어요. 요청을 받았을 때는 마을 내 중심 도로는 이미 정해진 상황이어서, 골목길을 더 추가하고 한옥에 맞는 필지 크기를 조정해 제안하는 일을 맡았어요. 그 외 앞으로 들어설 한옥들의 디자인 가이드 라인을 제시했죠. 제가 참여했을 당시에는 하나의 필지가 100평 규모로 대단히 컸는데, 이후에 분양이 잘 안 됐는지 필지를 더 잘게 분화해 분양했더군요.
낙락헌의 가장 큰 특징은 양옥과 한옥의 결합입니다. 굉장히 독창적인 공간 구조네요.
양옥과 한옥의 결합을 저만 생각한 것은 아니었어요. 성북동의 고급 한옥 단지에 가 보면 지상은 한옥, 지하에는 현대적인 공간을
조성한 집들이 여럿 있어요. 건축역사학자이자 건축가인 김봉렬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님께서도 과거에 의정부 한옥 단지 설계
당시 하층부는 양옥, 상층부는 한옥으로 설계하는 아이디어가 있으셨다고 해요. 결과적으로는 구현되지 못했지만, 양옥과 한옥의 결합은 현대 한옥을 설계하려 했던 건축가들은 한 번씩 생각했던 아이디어였죠. 낙락헌은 그 아이디어를 조금 더 대놓고 솔직하게 구현한 집이라 볼 수 있겠네요.
‘솔직하다’라는 표현의 의미를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시겠어요?
낙락헌은 양옥 공간과 한옥 공간을 형태적으로 분리한 집이에요. 현대적이고 편리한 공간에서 살고 싶다는 욕구와 전통적인 한옥 양식을 경험하고 싶다는 욕구를 모두 공간에 반영하기 위해 양옥과 한옥으로 완전히 구조를 달리하면서 나눈 거죠. 양옥과 한옥으로 공간을 나눌 때, 구형 휴대폰과 충전기의 관계를 떠올렸어요. 지금은 휴대폰을 충전기 케이블에 연결해 충전하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충전할 때 휴대폰 자체를 충전 장치에 직접 꽂아야만 했잖아요. 위치상 아래 있는 충전기가 휴대폰에 전기를 공급하는 형태였죠.
낙락헌의 두 공간 사이 관계도 똑같다고 생각했어요. 1층의 한옥은 통창으로 자연경관을 누리도록 설계된 외향적인 공간이에요. 지하의 양옥은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서양식 거실과 선큰 가든이 있는 내향적인 공간이죠. 1층 통창을 통해 밖을 보고, 집 밖의 지나가는 사람과 인사도 나눌 수 있어요. 그러다 지치면 지하로 내려와 조용히 쉴 수 있죠. 지하 양옥이 1층 한옥을 위한 충전기 역할을 하는 셈이죠. 가족에게 필요한 각종 수납공간도 지하 양옥이 주로 지원하고요. 전통 한옥에 없는 현관, 각종 수납 공간을 지하에 설계했어요. 편리함과 휴식은 지하, 외부와 소통은 1층이 담당한다고 보면 되겠네요. 주차를 위해 필로티 구조로 주차장을 만들었고요. 주차장 바로 옆에 들어가는 문을 만들어, 주차 후 바로 집 안으로 진입하는 동선을 만들었어요.
결과적으로 낙락헌은 서촌과 북촌에서 볼 수 있는 전통 한옥과 다른 형태가 되었어요. 건축주의 반응은 어땠나요?
아주 마음에 들어 하셨어요. 처음에 이 아이디어를 떠올려서 건축주 부부에게 제안했을 때부터 굉장히 좋아하셨죠. 애초에 건축주 부부의 요구 사항이 거의 없었고, 첫 번째 설계안을 보여드린 이후 큰 수정 없이 거의 그대로 시공까지 이어져 집을 완성했어요. 북한산과 집 앞의 커다란 느티나무를 잘 볼 수 있게 해 달라고 요청하셨는데, 1층을 외향적인 공간으로 설계하면서 그 점을 해결했죠.
낙락헌이 지어지고 나서 언론의 주목을 한 몸에 받았습니다. 소장님도 방송에 많이 출연하셨고요. 그 이후로도 이어진 한옥 건축물들 덕분에 한옥 건축가로 불리고 계시죠.
한옥 호텔 ‘라궁’부터 시작해서 많은 한옥을 설계했는데, 솔직히 저는 한옥 건축가로 불리고 싶지 않아요. 그런 식으로 알려지는 게 제게 굉장히 힘든 일이고요. 가수로 치자면, 마치 제게 한 장르의 노래만 부르라고 강요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요. 트로트 전문 가수, 발라드 전문 가수처럼 불리는 것 같아요. 저는 그저 가수 겸 작곡가이고 제가 만들고 싶은 노래를 만들어서, 부르고 싶은 노래를 부르고 싶은 것뿐인데 말이죠.
그동안 한옥의 요소를 하나하나 고민하고 연구하면서 현실의 삶을 반영해 집을 만들어 왔어요. 그렇게 한 덕분에 낙락헌이 나왔다고 생각해요. 한옥에 진지하게 임해 온 결과를 사람들에게 인정받은 것은 좋지만, 저는 그냥 건축가인 거죠. 굳이 수식어를 붙이자면 답사하는 건축가, 혹은 연구하는 건축가라고 말하는 게 더 적합하겠네요.
그렇다면 ‘답사하는 건축가’라는 정체성도 궁금한데요. 수요 답사는 어떻게 시작하셨나요?
사무소 설립하고 난 직후에 일이 없었어요. 일도 없는데 지인들과 답사 다니는 게 어떨까 싶어서 시작했죠. (웃음) 처음에는 종묘와 인근 동네들을 중심으로 답사를 다녔어요. 금은방과 보석 가게들이 있는 골목부터 시작했는데, 엄청나게 재밌었어요. 인터뷰도 하고 중요하다 싶은 오래된 집들도 실측해서 기록으로 남겨놓았죠. 그런데 계속하다 보니 서울에 사라지는 골목과 집들이 너무 많은 거예요. 사라지는 동네에 대한 기록이 없으면 안 되겠다 싶어서, 점차 체계적으로 조사하기 시작했죠. 기록을 남겨 도시의 ‘마지막 관찰자’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지금은 사라진 왕십리·돈의동 쪽방, 서촌의 한옥 골목, 청계천 을지로의 공구상가 등 서울의 여러 골목을 답사했어요. 때로는 서울시나 서울역사박물관 등의 용역을 받아 조사나 전시 작업을 하기도 하고, 다른 조사팀들과 협업하여 진행을 하기도 했지요.
답사와 건축 설계가 어떤 관계인지 궁금합니다. 답사를 통해 설계 아이디어를 얻으시나요?
처음에는 답사가 설계에 도움을 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서울의 보편적인 집들을 실측하며 얻은 경험과 지식이 편안한 집을 설계하는 데 영향을 주겠다 싶었죠. 오직 설계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 시작한 것은 아니었지만요. 아니면 상호보완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생각했죠. 그런데 20년 가까이 답사를 하다 보니, 답사 자체도 하나의 작업으로 독자성을 갖게 되더라고요. 건축 설계만큼 골목 답사와 조사 작업 역시 저와 구가도시건축을 대표하는 중요한 작업이 된 셈이죠.
이제는 답사와 설계를 병행한다는 것이 마치 ‘픽션fiction’과 ‘논픽션nonfiction’을 오가는 일과 같다고 생각해요. 소설가에 비유하자면, 소설가는 픽션에 기반한 문학 작품을 쓸 수도 있지만 논픽션에 기반한 문학 작품을 쓸 수도 있잖아요. 저도 소설가처럼 사실에 기반한 ‘논픽션’ 같은 답사, 상상에 기반한 ‘픽션’ 같은 건축 설계를 독자적인 작업으로 진행한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주로 일본의 영화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를 보며 영감을 받았어요. ‹어느 가족›,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바닷마을 다이어리› 등의 영화들로 국내에도 팬이 많은 감독이에요. 픽션에 기반한 극영화들이 그의 대표작이지만, 처음에는 TV 다큐멘터리를 연출하던 사람이었다고 해요. 그래서 다큐멘터리의 느낌이 그의 극영화에도 묻어나죠. 저도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처럼, 픽션의 영역과 논픽션의 영역을 자유롭게 오가며 저만의 창의적인 작업을 하고 싶어요.
소장님의 건축 작업을 설명할 때 주로 ‘마당집’이라는 표현을 쓰시죠. 어떤 의미인가요?
제 건축 작업의 성격을 규정하기 위해 만든 용어는 아니고, 원래 많이 쓰이던 말이었어요. 제가 마당집이라는 용어를 쓰는 이유는 한국 건축의 원형이 곧 마당집이라고 보기 때문이에요. 일본 가옥의 마당처럼 감상하는 마당이 아니라 쓰는 마당, 삶과 가까운 마당이요. 오래전부터 지금까지 한국인의 집에는 마당이 존재하고 마당이 삶의 중심이 되어 왔다고 생각해요. 이것 역시 그동안 답사 작업을 하며 직접 실측하고 기록하며 알아낸 사실이죠. 마당이라는 집의 유전자가 아주 옛날 집부터 조선시대 한옥, 지금의 아파트에도 남아 있다고 보고 있어요. 아파트에 마당이 정확히 어떻게 변형되어 남아 있는지는 아직 연구가 필요하긴 해요. (웃음)
‘처마’도 마찬가지로 한국인의 집에서 중요한 요소예요. 처마를 통해 집 안과 마당 사이 중간 영역이 생기거든요. 저는 중간 영역을 ‘말랑말랑한 공간’이라고 부르는데, 마당과 집 사이 관계를 부드럽게 만들어주는 게 처마더라고요. 이런 것들을 답사와 설계 작업을 하면서 하나하나 알아가고 있어요.
한옥이든 양옥이든, 결국 한국인의 집을 결정하는 핵심 유전자는 마당과 처마인 셈이네요.
맞아요. 마당과 처마만 환경에 맞게 잘 구현할 수 있다면 한옥이든 양옥이든 상관없겠죠. 요즘 한옥을 고쳐 사용하는 카페나 레스토랑이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하고 있는데, 현대식으로 리모델링했다고 그게 한옥이 아니라고 할 수 없잖아요. 지금도 한옥을 새롭게 이해하고 활용하는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어요. 익선동의 상업 한옥들도 빠르게 진화하고 있고요. 한옥은 꼭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는 틀을 부수고 새롭게 사고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지금까지는 한옥에 기와지붕을 쓰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지만, 기와지붕 없이 구조미만 살리고 현대적인 재료를 사용할 수도 있는 거예요. 이런 식으로 전통 건축과 현대 건축 사이의 경계를 허무는 작업이 앞으로 더 많이 나와야 하고, 앞으로 저희가 할 일이라 생각해요.
낙락헌 이외에 마당집과 처마를 구현한 다른 사례를 소개해주신다면.
판교에 설계한 ‘함양재’라는 집이 있어요. 단순한 해석이지만 낙락헌이 한옥과 양옥 사이 관계를 수직적으로 구현했다면, 함양재는 수평적으로 구현한 집이에요. 한옥 세 칸 중 한 칸을 양옥 속에 넣어 결합시켰죠. 그러면서 한옥과 양옥이 마당을 중심으로 하나가 되는 집이에요.
파주에 설계한 ‘파주 k 주택’은 건축주가 처음부터 한옥적인 정서를 가진 현대 건축으로 집을 설계해 달라고 요청했어요. 그래서 한옥의 3칸 대청을 연상할 수 있는 거실을 만들고, 처마로 마당과 집 안을 연결하는 말랑말랑한 중간 영역을 만들었죠.
흥미롭네요. 한옥 설계를 의뢰하는 사람들도 많아졌을 것 같은데요.
확실히 한옥에 살고자 하는 수요는 꾸준하게 있는 것 같아요. 그렇다고 해서 시장의 반응은 생각보다 크지 않아요. 대중들에게 한옥은 아직 어려운 대상이에요. 비용도 부담스럽고, 익숙하지도 않고 왠지 직접 살면 추울 것 같아서겠죠. 그래서 한옥보다는 오히려 ‘한옥 같은 집’ 설계 의뢰가 많아요. 구가도시건축의 지난 작업을 보고 한옥 같은 집을 잘 설계해줄 것 같다며 찾아오시는 분들이 늘었어요.
구가도시건축이 작년에 20주년을 맞았죠. 늦었지만 축하드립니다. (웃음) 20년간 많은 건축주를 만나면서 체감하는 변화가 있을까요?
작년 11월 11일에 20주년을 맞았죠. 감사합니다. (웃음) 갈수록 건축주들의 요구가 명확해지는 것 같아요. 원하는 사항을 프레젠테이션으로 준비해 저희 앞에서 1시간가량 발표하는 건축주도 있었죠. 굉장히 섬세한 요구를 하는 건축주들도 있었고요. 그렇다 보니 ‘이제 개인의 시대가 왔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건축주들도 자신만의 선명한 요구나 살고 싶은 환경을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고 있어요.
마지막 질문입니다. ‘좋은 집’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자기 몸에 잘 맞는 옷이 좋은 옷이듯, 자기 삶에 잘 맞는 집이 좋은 집이라고 생각해요. 삶에 잘 맞는 집이라고 하면, 사는 사람을 압박하거나 긴장하게 만드는 집이 아니라 마음 편하게 해주는 집이 잘 맞는 집이겠죠. 집에 사는 사람을 마음 편하게 만들려면, 역시 무덤덤하고 자연스러운 게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건축가의 역할은 무덤덤하고 자연스러운 집, 건축주를 마음 편하게 만드는 좋은 집을 설계하고 제안하는 것이라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