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지금 ‘일하고 싶은 곳’으로 출근하고 있나요?

‘업무 공간’에 물음을 던지는 김란 디자이너와의 대화
에디터. 장경림  자료.  김란 디자이너

 

집이라는 공간이 사람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누구나 공감대가 있을 것이다. 어떤 곳보다 자율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장소이자, 일상의 뿌리와 안식처가 되어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질문을 던져본다. 당신이 하루 동안 가장 오래 머문 곳은 어디인가? 집인가, 혹은 다른 공간인가. 우리는 각 공간마다 실제 사용하는 시간과 점유율을 살펴보며 중요도를 재설정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직장인들은 회사가 지정해 준 업무 공간으로 출퇴근하고 머물며 일하는데 하루의 절반을 투입한다. 근무 장소에 제약이 없거나 재택 근무를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들은 되레 업무와 일상이 명확히 분리되지 않아 어려움을 호소하는 경우가 잦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은 일하는 환경을 개선하는 방법을 깊게 고민하지 않는다. 아마 업무 공간은 ‘잠시 머무는 곳’이라는 인식 때문일 것이다.

하루 중 가장 긴 시간을 투자하는 업무에 효율적으로 몰입하기 위한 ‘환경’과 ‘영역’은 도시인에게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주변 환경에 큰 영향을 받는 사람이라면 몸과 마음이 오래 머무는 ‘일하는 공간’에 대해 진지한 시각으로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

 

강원도 공간기반 청년창업 프로젝트, 여행자센터 ‘고구마 쌀롱’ ⓒRan Kim

 

‘스튜디오 일공오일공Studio 105-10’은 업무 공간을 디자인하고 가이드를 제안하는 디자인 스튜디오다. 일공오일공을 이끄는 김란 디렉터는 다양한 오피스와 창업 공간을 디자인한 경험을 밑천으로 퍼블리PUBLY에 ‘오피스 디자인 가이드’를 작성한 바 있다. 2020년에는 <나만의 공간을 만드는 창업 가이드>를 출간하며 공간 창업을 꿈꾸는 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실질적인 정보를 제공해 이목을 끌었다. 창업자에게는 자신만의 공간을 만드는 가이드를, 회사에게는 더 나은 업무 환경을 위한 해법을 제공하는 김란 디렉터는 ‘업무 공간’에 특화된 전문가 역할을 맡고 있다.

어디서나 근무할 수 있는 시대에 누구나 고민하지는 않던 ‘일하는 공간’을 주제로 그와 서면 인터뷰를 진행했다. ‘일하는 공간은 본질적으로 무엇을 지향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함께 나누며 더 나은 환경을 구축하는 요소는 무엇인지, 자신의 공간을 만들어 일을 시작하는 이들이 궁극적으로 가져야 할 생각은 무엇인지에 대해 물어봤다. 과연 ‘업무 공간 디자이너’는 어떤 시각으로 공간을 바라보고 있을까?  

 

김란 디자이너 ⓒJaemin Kim

 

‘일하는 공간’을 만드는 디자이너

 

학부 때 건축을 전공하고, 스튜디오 일공오일공을 열기 전까지 설계사무소에서 일했다고 들었어요. 설계와 디자인의 영역이 무척 다양한데, 주거 및 상업 공간이 아닌 ‘업무 공간’에 관심을 둔 이유가 궁금합니다.

대학생 때 무척 좋아하던 건축가가 있었어요. 마지막 학기 여름방학 때 그 건축가 사무실에 포트폴리오를 제출했는데, 졸업하자마자 외국에서 인턴 생활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죠. 멋진 동료들과 큰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하며 좋은 경험을 쌓았습니다. 그런데 설계 사무실의 업무 환경은 막상 생각한 것처럼 그리 좋지 못했어요. 차 30대는 족히 주차할 수 있는 으리으리한 별장을 디자인하는 곳에서 저희는 화장실도 마음 편히 가질 못했죠. 그때 ‘일하는 공간은 중요하지 않은 걸까?’ 고민이 찾아오기 시작했어요. 만약 제가 한국이든, 외국이든 업무 공간이 좋은 곳에서 사회 생활을 시작했다면 지금 다른 일을 하고 있을지도 몰라요. (웃음)

 

이후 경영대학원에 진학한 경험이 ‘일하는 공간을 디자인하는 사람이 되는 데도 영향을 주었을까요?

대학원에서 경영을 전공한 이유는 단순했어요. 건축 설계는 정말 잘하지만 경영이 서툴러서 곤란한 회사를 많이 봤거든요. 대학원을 다니면서 팀 프로젝트를 하다 보니 여러 회사에 방문할 기회가 생겼는데, 대기업부터 중소기업, 심지어 1인 기업까지 다들 업무 환경에 대한 고민이 많다는 걸 알았어요. 대학원 동기들도 제게 공간과 관련된 고민을 상담하곤 했는데요. 예를 들어, 회사에서 큰 돈을 들여 인테리어를 새로 했는데, 막상 직원들의 집중도가 저하되는 상황이 찾아오는 상황에 대한 거였죠. 그 이유가 궁금해지면서 자연스럽게 좋은 업무 공간의 조건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김란 디렉터의 <나만의 공간을 만드는 창업 가이드>, 워크북 <나만의 공간 만들기 워크북> ⓒRan Kim

 

현재 스튜디오 일공오일공의 디렉터로서 어떤 역할을 맡고 있나요?

일하는 공간에서 생기는 고민을 해결하는 역할입니다. 한 회사의 업무 공간을 디자인하고, 공간 창업을 돕고 있어요. <나만의 공간을 만드는 창업 가이드>라는 책은 스스로 일하는 장소와 직업을 만들고 싶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썼습니다. 

 

재택 근무가 활성화되고, 어디서든 근무가 가능해졌어요. 이런 시대에 ‘업무 공간’에 대한 관심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어디서나 일할 수 있는 상황이라 업무 공간이 더욱 중요해졌다고 생각해요. 사무실보다 집과 카페에서 일을 더 잘 할 수 있다면 1시간 이상 지하철 타고 회사로 출근하는 게 무의미하잖아요. 이제는 제대로 몰입할 수 있는 업무 환경이란 어떤 걸까 깊게 고민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된 거죠. 프리랜서가 많아지고, 직장인의 회사 외 작업이 흔해지면서 요즘 일과 생활을 분리하기란 모호해요. 어떤 환경에서 일을 잘 하는지 스스로 아는 게 중요해졌어요.

 

2020년 코로나19가 휩쓸면서 자신의 디자인 작업에 변화가 생겼나요? 공간을 디자인할 때 새로운 고려 사항이 생겼는지 궁금합니다.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가장 중요한 키워드로 ‘안전’이 떠올랐습니다. 예전에는 직원들이 수시로 만나 서로 친해질 수 있는 공간을 오피스에 많이 만들어달라는 요청이 있었는데, 지금은 재택 근무를 주로 하고 꼭 필요한 경우에만 출근하는 사무실을 어떻게 만들 수 있는지 물어봐요. 창업 공간도 비슷합니다. 더 많은 사람이 찾아오고, 오래 머물 수 있는 곳이 아니라 공간을 찾는 이유가 분명하고, 수시로 방문하기보다 예약자 혹은 커뮤니티 멤버가 중심이 되는 공간을 기획합니다. 동시간대에 많은 사람이 존재하는 상황 대신 방문객들이 다양한 시간대에 새로운 경험을 얻는 방법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요.

 

강원도 공간기반 청년창업 프로젝트, 공유 작업실 ‘미음 공간’ ⓒRan Kim

 

스튜디오 일공오일공의 ‘디자인 계약’부터 ‘공사 시작’까지

 

1. 상담 신청
메일로 제안 요청서를 확인하고 현장 방문 날짜를 정합니다. 제안 요청서에는 프로젝트 목적, 일정, 위치, 예산, 요구사항, 특이사항, 참고자료 등이 포함됩니다.

2. 현장 방문 및 업무 범위 확인
현장을 확인하고 디자인 업무 제안서를 준비합니다. 디자인·감리 계약서의 기본이 되는 내용이므로 최대한 자세하게 작성합니다.

3. 디자인 계약
업무 내용과 범위, 산출물에 대해 충분히 의논하는 시간을 가집니다. 현장 위치, 난이도, 3D 모델링과 렌더링 요청 수준, 현장 방문 및 감리 보고서 작성 횟수 등의 조건에 따라 디자인 비용도 달라집니다.

4. 디자인 진행
콘셉트 스케치, 배치도, 평면도, 입면도, 3D 모델링 등의 작업으로 공간의 모습을 확인합니다. 공사에 쓰이는 모든 재료와 색상, 마감 방법을 결정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공간 창업자와 충분히 의논하고 디자인이 결정되면, 시공팀에게 견적서 작성을 의뢰합니다.

5. 견적 회의
공정별 사용 재료, 규격, 단위, 수량, 자재비, 노무비, 경비 등이 포함된 견적서를 함께 확인합니다. 사용 가능한 예산에 맞추기 위해 시공 방법 또는 공사 범위를 변경하기도 합니다. 리모델링의 경우에는 일부 철거를 진행해야 정확한 공사비를 아는 경우도 있으니 참고해주세요. 최종 견적서를 확인하고 시공 계약서를 작성합니다.

 

출처 : <나만의 공간을 만드는 창업 가이드> 

 

‘서울혁신파크 상상청’ 디자인 작업 ⓒJaemin Kim

 

일에 맞는 공간을 선사하는 일

 

사회적 기업 슬로워크가 공유 오피스 헤이그라운드에 입주했을 때 오피스 디자인을 맡았어요. 공유 오피스 내부에 오피스를 따로 디자인하며 생각나는 에피소드가 있을까요?

공유 오피스의 내부를 디자인하는 건 저도 낯선 경험이었어요. 공유 오피스는 기본적인 시설이 마련되어 있어서 책상 배치만 잘해도 좋은 업무 환경을 만들 수 있죠. 하지만 조금만 더 신경써서 디자인하면 공간을 훨씬 쓸모있게 활용할 수 있고, 회사 성격에 맞는 공간으로 탈바꿈해요. 기본 시설이 많기 때문에 오피스 디자인을 부담 없이 시도할 수 있는 기회라고 봤어요. 공유 오피스의 경우, 이웃한 회사에 민폐를 끼치면 안되요. 그래서 소음과 먼지가 발생하는 공사는 주말에 진행하길 권합니다. 슬로워크 오피스 디자인을 진행하며 더 이상 쓸모가 없어진 가구와 소품을 정리하려고 플리마켓에 내놨던 게 꽤 흥미로웠어요. 마침 필요했다며 헤이그라운드의 다른 입주사들이 얼른 구매해 가시더군요.

 

강원도 공간기반 청년창업 프로젝트, 여행자센터 ‘고구마쌀롱’ ⓒRan Kim

 

강원도에서 ‘공간기반 청년창업 코디네이터’로 활동할 때는 어떤 일을 맡았는지 궁금합니다.

공간을 기반으로 창업하려는 청년들에게 노하우를 알려주는 역할이었죠. 강원도에서 하는 일이 대체 뭐냐고 친구들이 물어보면 공간 기반 창업자를 위해 족집게 과외를 하고 있다고 말했답니다. 그동안 직접 공간을 기획하고 도면을 그리는 일에 익숙했는데, 강원도에서 코디네이터 역할을 시작하면서 창업자 본인이 만족할 만한 결과물을 낼 수 있게 안내하는 역할을 주로 했어요. 공간 창업을 위한 건축 수업도 했죠. 시간이 지나고 보니 제가 이런 일을 꽤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답니다. (웃음) 서울, 경기권이었다면 제가 현장에 수시로 갈 수 있었을 텐데, 강원도는 그러기가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더 자주 통화를 하고 메일을 주고 받으며 현장 사진을 확인했어요. 그때 기록한 글이 <나만의 공간을 만드는 창업 가이드>를 집필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죠. 

 

작업 지역이 ‘강원도’라서 기존과 달랐던 포인트가 있다면?

“서울에서는 가능하겠지만, 강원에서는 안 돼요.”라는 말을 참 많이 들었어요. 동시에 강원이라서 할 수 있는 일도 많더라고요. 예를 들어 서울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건물주’가 될 수 있고, 비교적 적은 예산으로 공간 창업을 할 수 있는 건 큰 장점이죠. 무엇보다 돈벌이를 위한 공간이 아니라 그 지역의 거점을 만든다는 태도로 접근했습니다. 괜찮은 공간 하나만 있어도 같이 일을 도모할 수 있는 동네 친구들이 생기거든요. ‘어쩐지 여기 주인하고는 말이 통할 것 같다’는 직감은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한 눈에 파악할 수 있죠. ‘나만의 공간, 나만의 일’을 만들기 위해 다른 지역으로 이주한 친구들을 보며 저도 많이 배웠습니다. 덕분에 서울 아닌 다른 지역에서 살아보고 싶은 꿈이 생겼어요. 

 

강원도 공간기반 청년창업 프로젝트, ‘묵호사진관’ ⓒRan Kim

 

여러 업무 공간을 다니며 주로 어떤 점을 눈여겨 보나요? 

오피스에 방문 상담을 가면 꼭 확인하는 게 있어요. 첫 번째로는 입구 디자인이고, 그 다음으로는 입구 근처에 누가 앉는지 봐요. 막내 직원이 앉아 있어서 다들 모니터를 들여다보거나, 영업팀이 앉아서 수시로 드나들며 손님을 맞이하는 모습들이죠. 자연스럽게 회사 분위기를 알 수 있는 방법입니다. 이 외에도 대표실이 따로 있는지, 재택 근무가 가능한지 등을 살핍니다. <브리크>는 어떤지 궁금하네요. (웃음)

 

저희는 각자 원하는 자리에 앉는 편입니다. (웃음) 혹시 입구에 주목하는 까닭이 있나요?

자리를 자유롭게 선정할 수 있는 회사가 의외로 흔하지 않은데 말이죠.(웃음) 입구는 공간의 첫 인상입니다. 오피스의 입구는 근무자들이 출근할 때 느끼는 기분을 좌우하는 요소이자, 면접을 보러 온 사람에게 인상을 남기는 역할을 맡아요. 창업 공간이라면 아직 밖에 있는 손님이 ‘들어갈까 말까’ 결정을 내리는 데 영향을 미치고요. 창업 초보자나 사용자 입장에서는 놓치기 쉽지만, 업무 공간에서는 의외로 중요한 지점이 될 수 있죠. 

 

요즘 관심을 갖는 새로운 업무 공간이 있나요? 

최근에는 ‘홈 오피스’에 관심이 많습니다. 슬로워크에서 진행한 프로그램 ‘오렌지라이브’에서 ‘코로나19 시대의 (홈)오피스 꾸미기’라는 제목으로 강의를 하기도 했어요. 최근 ‘남의집 프로젝트’에서 시작하는 홈 오피스 서비스도 신청했죠. 지금은 ‘사무실 계의 에어비앤비’가 필요한 시대라고 생각합니다. 회사 측에서는 사무실로 출근하지 말고 집에 있으라 하지만, 그래도 어디론가 출근해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집에서 쾌적하게 일하는 환경을 조성해두진 못하거든요. 카페에서 2~3시간 넘게 일하면 편안하지 않고요. 제3의 공간은 카페가 아니라 홈 오피스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아직 홈 오피스 디자인 프로젝트를 경험하진 못했지만 기회를 기다리고 있어요. 좋은 홈 오피스 사례가 많아지길 기대합니다.

 

강원도 공간기반 청년창업 프로젝트, 카페 ‘녹색시간’ ⓒRan Kim

 

일과 공간을 창조하는 사람들

 

창업 공간 디자인에 대한 콘텐츠를 여럿 만드셨어요. 물리적인 공간을 넘어 창업 방향성처럼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디자인을 의뢰하는 분을 만나면 창업을 왜 하고 싶은지, 본인이 정말 잘 할 수 있는 일인지부터 확인합니다. ‘세상에 아직 없어서…’라는 대답은 좋은 이유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없는 이유는 다 있더군요. (웃음) 공간 창업을 처음 하는 분들을 위해 <나만의 공간 워크북>을 만들었어요. 방문 상담을 신청하면 미리 워크북에 과제를 표시해 보내드립니다. 공간 창업에 관심을 가진 계기, 예상하는 장단점, 참고하고 싶은 대상 등의 공란을 어떻게 채웠는지 확인해보면 어떤 방향으로 안내해야 하는지 감이 잡히더라고요. 혹 자기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다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꾸준히 하던 일들, 좋아해서 수집한 물건들, 회사에서 선호했던 업무 등을 계속 여쭤봅니다. 공간 창업의 재료는 지금까지의 경험에서 발견해야 하지 않을까요? 

 

공간 창업을 돕는 디자이너이지만, 공간 창업에 늘 호의적이진 않다고 알고 있는데요. 

자신이 원하는 일을 스스로 만드는 행위는 커다란 행복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제 일을 사랑한답니다. (웃음) 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일을 위해서 공간이 정말 필요한지는 따져볼 필요가 있어요. 제 책을 읽거나, 워크북을 작성하다 보면 ‘내가 하고 싶은 일은 공간 창업이 아니었네’ 깨닫는 분들이 계세요. 물리적인 공간을 관리하고 운영하는 과정 속에서 원하는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는 걸 꼭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창업은 정말 다양한 분야와 방식으로 가능해요. 요즘처럼 소셜 미디어가 발달한 시기에는 온라인 공간에 ‘디지털 벽돌’을 충분히 쌓아놓고 공간 창업에 대한 생각을 하시길 바라요.

 

디지털 벽돌이란 표현이 흥미롭네요.

개인 창작자가 작업물을 만들고, 판매까지 하는 업종으로 창업을 할 때는 작업을 제작하는 시간을 꼭 확보해야 해요. 그런데 손님이 수시로 드나드는 매장까지 운영하려고 하면 제작에 집중해야 할 시간을 확보하는 게 어렵답니다. 작업실 겸 서점을 열었는데 책 판매를 관리하다가 정작 글 쓰는 시간이 부족해서 힘들어하는 분들도 종종 만났어요.

 

‘위시컴퍼니’ 오피스 디자인 ⓒJaemin Kim

 

물리적 공간이 창업의 필수가 아닌 시대에 ‘업무 공간’이 가져야 할 본질은 무엇일까요?

‘생산성’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루에 세운 목표를 성공적으로 마치는 생산적인 환경이요. 1시간만이라도 내 계획대로 일할 수 있고 집중할 수 있는 공간. 저는 어설프게 9시간 일하는 것보다 온전히 몰두해서 5시간만 일하는 편이 훨씬 좋다고 생각해요. 이를 도울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고요. 

 

김란 디렉터의 ‘일하는 공간’은 어떤 모습일까요? 모두 궁금해합니다.(웃음)

제 책에도 밝혔고 인터뷰에서도 여러 번 말했지만 제가 무언가를 이루었다면 절반 이상은 작업실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작업을 만들고 운영하는 과정에서 배운 것도 많고, 알게 된 사람들도 많기 때문입니다. 8년째 작은 건물의 두 개 층을 집과 작업실로 사용하고 있어요. 처음에는 아랫층이 작업실, 윗층이 살림집이었어요. 그러다 작년에 이사를 하면서 아랫층이 살림집, 윗층이 작업실로 바뀌었지요. 출퇴근에 걸리는 시간이 5초입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하루에 2시간 이상을 벌었다는 마음으로 지내는 이유죠. (웃음) 새로운 작업실은 옥상 마당과 연결되어 무척 만족스러워요. 집중력이 떨어지면 마당으로 나와 바깥 공기를 쐬고, 꽃과 나무에 물을 주거나 흙을 만지고, 야외 벤치에 앉아서 차를 마시며 책을 읽습니다. 서울 한복판에서 자연을 느낄 수 있어요. 오래된 건물이라 리모델링 공사가 쉽지 않았지만 훌륭한 선택이었습니다. 일하는 공간과 생활 공간이 가까이 있으면서, 확실하게 구분되길 바랐어요. 계단 한 층을 올라가더라도 출근하는 기분이 필요해서요. 집중해서 일해야 하는 업무는 오전 중에 작업실에서 끝내려고 노력합니다. 오후에는 공사 현장에 가거나 미팅을 하고, 다양한 공간을 찾아다녀요. 사실 작업실에 있는 시간은 짧은 편이에요. 도면을 그리거나 글을 쓰는 것보다 생각에 몰두하는 데 시간이 훨씬 많이 필요하더군요. 

 

김란 디자이너의 작업실 풍경 ⓒRan Kim
김란 디자이너의 작업실 풍경 ⓒRan Kim

 

책, 유튜브 등 다양한 콘텐츠로 대중과 만나고 있는데요. 말하고 싶은 핵심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50년쯤 뒤에 2020년, 2021년을 떠올리면 어떤 기분이 들까요? 제 손녀가 있다는 가정 아래 “그때 할머니는 뭐 했어?” 물어보면 어떻게 답해야 할까요. (웃음)

“코로나19라는 무서운 바이러스가 퍼져서 사람들이 회사로 출근하지 않고 카페에서 커피를 마실 수 없던 시기였어. 그렇게 무서운 시대에도 ‘나만의 공간’을 만들고 싶은 사람들의 요청이 계속 들어왔어. 그때 새삼스럽게 공간을 갖고 싶다는 사람들의 욕구가 얼마나 큰지 알게 되었던 것 같아. ‘나만의 공간’을 만드는 건 개인의 욕구를 실현하는 동시에, 코로나19를 포함한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기도 했어. 안전한 공간이 만들어지고, 믿을 수 있는 커뮤니티가 생기고, 같은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만나는 과정에서 다양한 직업과 소득이 생겼거든.”

나만의 작업 공간을 잘 만들고 싶다면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잘 파악하는 게 우선입니다. 그리고 나 혼자 일을 하는 게 아니라는 점도 알게 될 거예요. 특히나 작은 공간을 운영하는 사람은 커뮤니티의 중심에 서게 됩니다. 표면적으로는 커피 한 잔, 책 한 권 사는 손님으로 보이지만, 그 공간의 가치를 은근히 응원하는 커뮤니티 멤버인 경우가 많아요. 그런 분들이 공간을 만들 때 더 나은 방향을 제시하는 게 제 역할이 아닐까 싶네요.

 

강원도 공간기반 청년창업 프로젝트, 공유 작업실 ‘미음 공간’ ⓒRan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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