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콕’하고 박힌 집

흥미진진한 일상을 선물하는 동명동 상가주택 ‘콕’
ⓒWoochul Jung
에디터. 박종우  자료. 조한준 건축사사무소 JoHanjun Architects

 

한적한 주택가와 젊은이들이 붐비는 상권이 마주한 광주 동명동. 동명동 골목에는 유난히도 별난 이름을 가진 집, 상가주택 ‘콕’이 있다. 이러한 독특한 이름이 붙여진 사연이 궁금해 설계를 맡은 조한준건축사사무소 조한준 소장을 찾아가 이야기를 나누었다. 건축주와는 서면 인터뷰를 통해 현재 집에 살면서 느끼는 점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상가주택 ‘콕’ ⓒWoochul Jung

 

동명동 골목에 ‘콕’ 박힌 땅

상가주택 ‘콕’의 건축주는 동명동에 꼭 집을 짓고 싶어했다. 2년여 전에 이미 집터를 매수할 정도로 동명동을 마음에 들어했지만, 정확히 어떤 집을 지을 지 명확하지 않아 결정을 못하고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중 매체를 통해 조한준 건축사사무소를 알게 되어, 상담을 위해 사무소의 문을 두드렸다.

“예전부터 꾸준히 조한준 건축가의 상가 건물 포트폴리오를 인터넷에서 접하고 있었어요. 특히 포항에 설계하신 상가주택이 인상적이었어요. 상가 기능과 주택 기능을 조화롭게 풀어내려는 노력을 보고 제 집 설계를 의뢰했죠.”

집터는 폭은 넓지 않지만 길쭉한 형태로, 땅의 모양을 본 건축가는 동명동 골목에 집이 끼어 있는 듯한 집의 인상을 떠올리게 됐다고 했다. 마침 집터를 기준으로 동명동의 주택가와 새롭게 생겨나는 상가 지역이 나뉘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건축가는 목구조에서 자재를 짜맞추는 기법인 ‘장부이음(요철)’을 떠올렸다.

 

조한준 건축가 ©BRIQUE Magazine

 

“기존의 주택가 분위기와 새롭게 밀고 들어오는 상가 분위기 사이를 이어주는 ‘장부’ 같은 느낌을 받았어요. 집터가 얇고 길어서 더 그랬던 것 같아요.”

두 장소를 연결하면서 동시에 그 사이에 ‘콕’ 박혀있는 느낌. 우연히도 영단어 ‘Coak’은 우리말로 장부이음, 나무마개를 뜻한다. 그렇게 이름부터 집터와 꼭 맞는 상가주택 ‘콕’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대지 계획 ⓒJoHanjun Architects
이 집은 상가 공간과 주거 공간을 구분하기 위해 스킵 플로어 방식을 도입한 것이 특징이다. ⓒWoochul Jung

 

공간에 스며든 스물네 시간

건축가는 건축주에게 원하는 공간을 말하기 보다, 집 안에서 보내는 일상을 구체적으로 적어달라고 요청했다. 집을 짓게 된 이유와 현재의 일상, 새로 지어질 집에서 살고 싶은 삶을 24시간으로 나눠 써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두 자녀와 함께 살 집을 짓고자 한 건축주 부부는 아내는 암 전문의로, 응급의학과 전문의인 남편과 근무시간이 정반대였다. 아내가 퇴근한 시간에 남편은 일하고, 남편이 퇴근해서 집에서 쉬는 시간에 아내는 출근하는 셈. 방음 문제와 함께 부부가 독립적으로 집에서 편히 쉴 수 있는 방법이 필요했다. 부부는 그러한 사항들까지 꼼꼼하게 적어 건축가에게 보냈다.

 

단면도 ⓒJoHanjun Architects
입면도 ⓒJoHanjun Architects

 

부부는 아이들이 장래에 살 공간에 대해서도 생각이 깊었다. 초등학생과 유치원생인 두 아이가 자란 뒤 내부 공간 구성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달라고 요청했다.

“주택 2층과 3층을 언제든지 분리할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드렸어요. 그래서 설계 단계에서 개별 현관, 개별 전기공사, 개별 난방 등을 요청했죠.”

 

2층 거실의 모습. 우측 상단에 가변적인 공간 구획을 위한 수벽이 설치돼 있다. ⓒWoochul Jung

 

건축가는 아이들이 성장한 뒤 달라질 삶에 맞추어 공간을 바꿀 수 있도록 내부 공간을 설계했다. 가장 신경 쓴 부분 중 하나는 ‘수벽’. 창이나 문을 내기 위해 설치된 벽의 일부인 수벽을 천장에서 약간 돌출시켰다. 수벽 없이 벽을 설치하려면 완성돼 있는 천장을 뜯어내는 작업이 필요하다. 여러 고민 덕분에 천장을 뜯어낼 필요 없이 수벽을 이용해 벽을 설치하거나 접이식 문을 설치할 수 있게 됐다.

“원래 계획은 그냥 경사지붕에 다락방은 없었어요. 그런데 제가 층고를 조금 높여 다락방을 만드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드렸죠. 60cm만 더 높이면 충분히 나올 수 있는 공간이었거든요. 처음에는 내부가 답답할까봐 걱정하셨는데, 지어진 걸 보시고는 안 만들었으면 큰일날 뻔 했다고 하셨죠. (웃음)”

‘어떤 집을 만들고 싶은가’에 대한 고민은 건축주만 갖고 있지 않다. 건축가가 생각하지 못한 걸 제안하기도 한다. 이 집에선 다락방이 대표적인 예다.

 

3층 거실과 주방을 단차를 이용해 구분하고, 다락방을 설치했다. ⓒWoochul Jung

 

흥미진진한 놀이터가 된 집

상가주택 ‘콕’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3층 바닥 일부가 계단으로 높아진 형태, 스킵 플로어Skip floor다. 스킵 플로어가 만들어진 이유를 건축가에게 물었다. 디자인적인 아름다움을 위해 만들었을 것이라는 에디터의 예상과는 다른 대답이 돌아왔다.

“처음부터 스킵 플로어를 무조건 해야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어요. 일단 건축주는 1층부터 2층 전면부까지는 상가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주택이 도로에 마주하고 있으면 주변 소음에 영향 받을까 우려했거든요. 그래서 2층 후면부부터는 주택인데, 상가와 주택의 층고 높낮이가 달라요. 그러다보니 그걸 극복하는 방법이 자연스럽게 스킵 플로어가 되었죠.”

2층 전면부 상가와 후면부 주택의 동선을 분리하다보니 높낮이가 달라지게 됐고,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등장한 것이 스킵 플로어인 것.

동선 다이어그램 ⓒJoHanjun Architects
반대편에서 본 3층 주방 ⓒWoochul Jung

 

필요에 의해 등장한 스킵 플로어는 높이 차이 문제를 해결하면서, 동시에 내부 공간을 다채롭게 만든다. 스킵 플로어와 함께 있는 다락과 평상은 아이들에게 인기 만점 공간이 됐다.

“원래 가족이 살았던 한옥 앞 툇마루에 평상을 이어 붙여 아이들이 잘 놀았대요. 그래서 그 평상을 새로운 집에 갖고 오고 싶었는데 그건 좀 어려울 것 같아 평상을 만들어드렸어요. 그냥 있으면 발코니나 테라스 같은데, 평상을 알려드리려고 제가 직접 앉아서 사진도 찍었어요. (웃음)”

 

ⓒWoochul Jung

 

건축가는 새로운 집에서 일상을 보낼 사람들을 위해 작지만 중요한 디테일을 여럿 심어놓았다. 누워서 책 보는 아이들을 위한 계단 밑 간접 조명이 그 중 하나다.

“이 집 가족들이 책을 엄청 좋아해요. 책 읽는 시간도 많고, 아이들도 책을 많이 읽어요. 엎드려서 책 읽다 잠이 들기도 한데요. 그래서 엎드려서 책 읽을 수 있도록 스탠드를 설치했어요.”

3층 계단 바로 옆 독립 욕조도 아이들을 위한 배려가 묻어난 부분이다. 이전에 살던 집에서도 마당에서 물놀이를 즐겨하던 아이들이 이 집에서도 물놀이를 하거나, 놀고나서 씻기 편하도록 욕조를 평상 근처에 설치했다. 덕분에 아이들은 평상에서 놀고 난 뒤 놀이의 연장선처럼 독립 욕조에서 목욕할 수 있게 됐다.

 

계단 아래 간접 조명과 독립 욕조 ⓒWoochul Jung

 

“아이들에게 집이라는 공간을 아파트처럼 평면으로 인식시키고 싶지 않았어요. 공간의 다양함을 느끼는 집이 아이들의 주거 환경으로 적합하다고 생각했죠.”

아내는 처음 집을 지어야 겠다고 결심한 이유를 위와 같이 말했다. 이 요구를 반영해 건축가가 만들어낸 공간이 바로 평상과 스킵플로어, 욕조, 다락방. 결과적으로 건축주의 고민이 공간으로 구현된 셈이다. 덕분에 아이들에게 집은 더 이상 잠만 자는 곳이 아닌 ‘흥미진진한 놀이터’가 되었다.

 

따뜻한 집을 위한 최적의 솔루션

건축주의 중요한 요구사항 중 또 하나는 ‘따뜻한 집’을 짓고 싶다는 것이었다. 상담 당시 살고있던 집이 단열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여름에 덥고 겨울에 춥게 생활했기 때문이다. 요구사항을 들은 건축가는 단열 외에도 다른 사항을 제안했다.
건축가는 ‘열회수 환기장치’ 설치를 제안했다. 열회수 환기장치는 필터로 오염물질을 걸러 쾌적하고 신선한 외부 공기를 공급하는 장치로, 환기 뿐 아니라 실내 단열에도 효과적이다.

“집 안에서 단순히 잠만 자고 쉬는 것 뿐 아니라, 일상이 집 안에서 이루어진다고 하면 환기에 대해서도 신경을 써야한다고 말씀드렸죠. 열회수환기장치는 창을 열지 않아도 항상 신선한 공기를 유지하게 해줘요. 겨울에는 열을 안 뺏기고 여름에도 냉기를 안 뺏기고.”

 

2층 거실 ⓒWoochul Jung

 

열회수 환기장치 외에도 건축가는 적합한 내장재와 외장재를 고르는 데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쾌적한 실내환경을 위해 창호와 단열재까지 하나하나 건축가의 안목으로 골라 추천했다.

“적어도 창과 단열재, 환기장치 만큼은 제대로 했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렸죠. 그래서 창호도 시스템 창호를 썼고 단열재도 6주 이상 숙성해서 변형이 없는 네오폴로 하고. 단열재도 두껍게 들어가고 내부 환기도 신경썼죠.”

좋은 내외장재를 찾아서 쓰면 자연스럽게 비용이 증가한다. 하지만 단순히 잠만 자는 곳이 아닌 자신의 일상을 보내는 곳으로 집을 짓고자 한다면, 포기할 수 없었다. 건축가의 제안은 현재 코로나19로 인해 집 안의 일상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다락방으로 이어지는 3층 주방 ⓒWoochul Jung

 

이해와 소통의 하모니

건축가와 건축주 모두 집이 지어지는 과정이 매우 순조로웠다고 기억했다. 아내는 특히 건축가와 소통하는 과정에서 굉장히 만족스러웠다고 이야기했다.

“언제나 좋았어요. 제 요구에 거의 매순간 동시에 답변과 해결책을 제안하셔서 아주 만족스러웠죠. 특히 안전에 대해 요구했던 게 많고 내부 공간에 대해서도 여러 번 제안드렸는데, 바로 바로 해결되고 건축물에 반영하셔서 건축주로서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습니다.”

건축주가 이토록 만족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건축가에게 본인이 생각하는 ‘좋은 집’에 대한 대답을 들으며, 그 이유를 조금은 짐작할 수 있었다.

 

조한준 건축가 ©BRIQUE Magazine

 

“사용자가 원하는 공간, 그리고 그게 왜 필요한 지에 대해 건축가가 충분한 이해를 바탕으로 설계한 집이 좋은 집인 것 같아요. 의뢰인이 정말 엉뚱한 요구를 했을 때도, 요구한 이유를 바탕으로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소통과 진행도 쌍방향이여야죠. 항상 타협점이 있어야해요. 별다른 설명 없이 ‘안 된다’라고 하기보다 왜 안 되는지도 이야기하면서 대안도 제시해야죠.”

조한준 건축가는 상호 이해와 소통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한 쪽이 일방적으로 정해서 강요하는 것이 아닌, 머리를 맞대고 해법을 찾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는 것. 그래야 양쪽 다 만족스러워하는 집이 만들어지는 것 아닐까.

덕분에 부부에게는 쾌적한 쉼터이자, 아이들에게는 흥미진진한 놀이터가 된 상가주택 ‘콕’. 건축주와 건축가가 끊임없이 고민하고 소통하며 만들어낸 이 집은 거주자 가족에게 새로운 일상을 선물해주었다. 과거의 삶을 담아내 완성한 이 집은 앞으로의 삶도 고스란히 담아낼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Woochul Jung
ⓒWoochul Jung
ⓒWoochul Jung
ⓒWoochul Jung

 

‘동명동 상가주택 ‘콕’’ 전체 스토리 담은 <브리크brique> 종이잡지 vol.4

*책 자세히 보기           https://brique.co/book/brique-vol-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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