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공존하는 도시를 위하여

[도시를 바꾸는 기획자들] ③ 지역의 변화를 돕는 사회혁신기업, 로모
로모팀 서울 ⓒROMOR
에디터. 장경림  사진. 이동웅  자료. 로모

 

우리나라는 1970년대 이후 산업화 시대를 거쳐 최단기간 눈부시게 성장한 국가로 꼽힌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도 정부와 국민의 적극적인 노력으로 모든 산업 영역에서 눈에 띄는 성과를 냈고, 가파른 국내 총생산(GDP) 성장세를 보여주며 세계 속에 자리매김했다. 서울은 이제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메가시티Mega City’가 됐다.

급격한 경제 성장 속에서 국민의 기본 생활은 개선되었지만, 성장 위주의 개발 정책에서 파생된 심리적, 문화적 수준의 격차는 여전히 해소되지 못했다. 획일화된 개발 속에서 도시인의 개인성은 사라지고, 지방 도시는 고유의 문화를 찾기 어려워진 것. 행정이 나서 해결책을 제시하지만 효용성을 확보하기는 쉽지 않다.

사회혁신기업 ‘로모ROMOR’는 지역의 변화를 이끄는 공간을 만드는데 집중하고 있다. 대도시가 잃어버린 개인의 목소리와 공유 공간의 본질적인 기능을 회복하고, 수도권에 집중돼 주목받지 못한 지역의 지속가능한 문화를 만들기 위해 다양한 형태의 사업을 펼친다. 프로젝트의 겉모습은 각기 다르지만, 하나의 메시지 아래 지역의 변화를 도모하고 있는 로모의 철학과 사업의 행보를 박주로 대표를 만나 들어봤다.

 

박주로 로모 대표 ⓒBRIQUE Magazine

 

도시를 경영하는 사람들

 

하고 계신 일의 규모나 성격이 참 다양해요. 로모는 어떤 일을 하는 기업인가요?

도시와 지역의 변화를 이끄는 공간을 만들고자 설립된 기업이에요. 서울과 같이 인구가 밀집된 도시에서는 사라졌던 개인성을 회복하기 위한 공간과 개인이 모일 수 있는 새로운 개념의 커뮤니티를 만들고 있습니다. 반면에 인구가 줄어들고, 변화를 자생적으로 만들지 못하는 인구 소멸 지역, 산업단지 지역에서는 일종의 서브 컬쳐나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역할이죠.

로모ROMOR는 ‘room for more, the better together’의 약자예요. 회사를 만들 때 도시 재생, 지역 혁신, 로컬과 같은 단어도 나왔지만, 이제는 도시나 지역 같은 큰 범주를 말하기보단 개인의 삶에 주목해야 하지 않겠냐는 의견으로 모였어요. 과거에는 도시를 발전시키는 방식이 강한 정책으로 유지됐다면, 지금은 세상이 워낙 복잡하고 다양하기 때문에 개인의 힘을 믿을 때가 왔어요.

‘room’이라는 표현이 하나의 방과 같은 개념이잖아요. 지역, 로컬이라는 넓은 단위보다 개인의 공간, 우리만의 공간을 잘 보장한다는 의미를 담고 싶었어요. 회사의 미션이 누구나 자신만의 방식으로 공존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자는 건데요. 팀원 모두가 개인성과 다양성에 대해 관심이 많아요. 채용 면접 때도 이런 질문을 많이 했어요. 조직 활동 안에서도 개인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인가. 공간 사업에서 상업성을 생각하다 보면 개인성과 다양성의 관점이 자연스럽게 상실될 수도 있어요. 이때 타고난 감각을 가진 사람인지 보는 거죠.

 

서울하우징랩에서 열린 ‘민주주의 서울 시민제안 워크숍’ ⓒROMOR

 

구체적으로 어떤 사업을 진행하셨나요?

여러 분야의 일을 동시에 진행하고 있는데요. 공간 운영 및 지역개발, 연구 컨설팅, 식음료 업종까지 관련돼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열거하자면 주거의제 거점공간 ‘서울하우징랩’, 커뮤니티 바 ‘삼만항’, 이탈리안 레스토랑 ‘헬로 포멜로’ 등이 운영 중인 공간이고요. 2020년엔 ‘충남사회혁신센터’를 위탁받아 서울뿐 아니라 지방 도시에서도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저희는 특정 사업에 집중하기보다 ‘도시의 전환’을 끌어낼 수 있는 구체적인 계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로모 사업구조도 ⓒROMOR

 

도시의 전환을 이끌어내는데 관심을 두게 된 계기가 있나요?

원래 저는 법학을 전공했어요. 사회에 나와 자연스럽게 입법 기관 안에서 국회의원을 보좌하는 일을 했죠. 이 시기에 일하며 느낀 게 참 많았습니다. 우리나라는 지난 몇십 년간 아주 빠르게 발전했고, 그 이유로 모든 사람이 잘 살고 있을 거라 막연히 예상했는데요. 자원의 관점에서 본다면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는 상황이 눈에 선히 보이고, 지방으로 갈수록 다양성을 찾을 수 없더라고요.

산업단지가 있는 지역을 예로 들어볼게요. 외국에서 철강 문화가 자리 잡은 도시라면 서브 컬쳐는 철과 관련된 문화가 결합하고 있어요. 반면 우리나라는 산업단지와 기업이 크게 자리 잡으면 도시가 수혜를 입는 방식으로만 산업과 교류를 하고 있었죠. 또, 그 당시 아동이나 노인에 관심이 많았어요. 도시는 계속 고령화되고 있는데, 사회는 대비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더군요. 어느 날은 계단이 20개밖에 안 되는 곳에 에스컬레이터 줄은 50m 이상 대기하고 있는 광경을 봤어요. 모두 노인 분들이셨죠. 이런 사회의 모습을 목격하면서 ‘우리가 진짜 살기 좋은 도시에 살고 있는가?’라는 의문을 품게 됐어요.

 

사회적인 문제를 로모와 같은 민간 기업을 통해 해결하고자 한 이유가 있나요?

입법 기관에서 일하면서 정치와 행정 단위가 이 문제를 풀 수 있을지에 대한 회의감이 들었어요. 당시 재미있게 일했지만, 우리나라의 현재 상황은 누군가 빨리 미래를 대비해야 하는데, 첨예한 갈등 구조에서는 이런 마이너한 주제가 잘 다뤄지지 않는다고 생각했죠. 제가 보기엔 주류가 되어야 할 주제였는데도요. 공공 영역보다 민간의 영역에서 혁신적인 모델을 만들어낼 때 사회적 변화의 담론을 생산할 수 있고, 파급력이 더욱 커질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이런 면에서 미래를 준비하는 건 기업의 몫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서울하우징랩에서 열린 주거 이슈 공론장 ‘이슈텃밭’ ⓒROMOR

 

개인성이 회복된 사회를 위해

 

서울하우징랩을 ‘주거의제 거점공간’이라고 설명해주셨는데요.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하는 곳인가요? 카페나 도서관처럼 지역 주민 시설같이 느껴지기도 해요.

도시에서는 다양한 주거 문제가 발생하고 있어요. 이 문제를 특정 집단이나 정치인이 해결해야 한다고 많은 분이 생각지만, 서울하우징랩은 도시에서 살아가며 느끼는 주거 문제를 개인이 마음껏 제시하고 의논할 수 있는 공간이 되면 좋겠다는 게 가장 큰 목적이었어요. 이렇게 토론의 장이 열리기도 하고, 평소에는 인근 주민들의 쉼터이자 도서관, 동네 카페가 되기도 하죠. 공간의 표면적인 모습에서까지 저희의 의도나 장치를 전부 설명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서울하우징랩을 소개할 때 카페라고 소개해요. 물리적 공간은 지역에 존재하기 때문에 주거의제를 다루고, 시대의 문제를 해결하는 곳이라고 자세히 설명하기보다 지역에서 잘 사용될 수 있도록 좋은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 더 중요하죠. 그래서 맛있는 커피와 좋은 서비스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그 기저에는 기업의 미션과 핵심 가치에 기반하는 장치들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서울하우징랩’ 전경 ⓒBRIQUE Magazine
‘서울하우징랩’ 내부 모습 ⓒBRIQUE Magazine

 

서울하우징랩을 통해 논의된 주거 문제나, 이뤄낸 변화가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서울하우징랩을 열고 첫 해에 주거의제를 논의하는 포럼을 열었어요. 그때 포럼에 참여하며 새로운 아이디어나 해결 가능성을 발견한 분들께 연락을 요청했죠. 그중 본인과 가족이 휠체어를 타는 분이 계셨어요. 우리나라는 아직 휠체어를 타는 사람을 위한 낮은 싱크대, 침대와 같이 유니버설 디자인universal design이 보편적이지 않고, 의무화되지 않아 많은 고민을 하셨던 분이에요. 가족을 위해 디자인 업체를 찾아다니며 노력을 많이 했지만, 좌절만 하셨던 거죠. 평소 고민했던 주제인 만큼 문제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열정도 있었어요. 그저 기획력을 갖추지 못했던 거예요. ‘이게 서울하우징랩이 생긴 이유다’라는 생각이 문득 들더군요.

곧바로 서울하우징랩에서 이런 논의를 할 수 있는 그룹을 모았어요. 이 논의에 참여한 분들은 어떤 법적 전문 용어도 사용하지 않으셨지만, 경험을 통해 해답을 갖고 계셨던 거죠. 이야기를 들어보면 장애인정책연구원, 주택공사, 변호사를 만나 해결하면 되는 사항이었어요. 저희 팀은 연결하고 기획하는 역할이니 토론회를 주최했습니다. 4개의 주제를 갖고 300여 명이 모였는데요. 그때 ‘우리 회사가 원하던 개인성이 이거구나’라는 깨달음을 얻었어요. 참여자는 각자 관련된 주제라 열심히 참여했고, 그 과정을 통해 흩날리던 생각이 좀 더 구체화된 형태로 모였어요. 거기에 전문성이 더해지면서 비로소 실현이 이루어진 논의였죠. 여러 과정이 있었지만, 결국 1년 이내에 관련 법이 개정되었어요.

 

서울하우징랩에서 열린 ‘민주주의 서울 시민제안 워크숍’ ⓒROMOR

 

멋진 성과네요. 서울하우징랩뿐 아니라 로모 역시 영등포에 거점을 두고 있어요. 특별히 영등포에 주목한 까닭이 있나요?

서울 서남권에 대한 생각이 많았어요. 로모를 창업하기 전, 3년간 운영했던 서울시 청년공간 ‘무중력지대 G밸리’라는 곳이 과거 구로공단부터 가산 디지털단지를 잇는 위치에 있었거든요. 그때 30명의 청년 노동자를 24시간 살펴보고 추적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요. 일주일 동안 추적해 결과를 내고, 2시간 반씩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어요. 인터뷰하며 울컥하는 순간이 많았어요.

서울이라는 도시에 일하러 왔지만, 오히려 환경이 생존을 힘들게 만드는 구조가 되어버렸더군요. 임금 수준이 여전히 낮고, 어쩔 수 없이 일을 위해 서울에 올라와야 하는 사람들은 소득 대비 지출이 많아요. 그래서인지 행복도와 만족도는 서울에 집이 있을 때 더 높거나, 부모님의 경제 사정과 비례했죠. 그런 상황 속에서 가산디지털단지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해 어떤 공간이 필요할지 고민했습니다.

 

어떤 공간이 가장 필요하던가요?

영등포나 가산디지털단지에는 많은 유흥업소가 있어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아요. 유흥업소에 대한 가치관은 다를 수 있지만, 저는 산업단지가 들어왔을 때 그 배후의 문화, 특히 나이트 컬쳐가 유흥업소가 되는 건 명확한 문제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원하던 산업단지의 모습인가 고민하게 됐죠. 서울 서남권 시민들은 스스로 결정하지 않았지만, 피해를 받았다고 생각해요. 영등포 지역은 공장이 일찍부터 들어서며 오랜 기간 발전해왔는데, 실제로 이곳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문화적 혜택이 있나 고민하게 됐어요.

결론에 다다른 게 문화적으로 큰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서남권에 계속 남아있자는 결심을 하게 됐죠. 사회적인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팀, ‘소셜벤처’라고 불리는 그룹은 주로 성수나 강남 쪽에 분포해 있는데, 서울 서남권엔 저희가 유일해요. 영등포는 경기도, 충남까지 이어지는 요충지이기도 해서 이곳을 더 나은 문화 장소로 바꾼다면 주변까지도 그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거라 판단했어요. 

 

커뮤니티 바 ‘삼만항 ‘시즌1, 현재 시즌2를 준비 중이다. ⓒROMOR

 

시즌2를 준비 중인 삼만항이나, 새로 문을 연 레스토랑 헬로 포멜로처럼 식음료 사업을 영등포에서 시작한 것도 문화 장소를 만들기 위한 일환이죠.

영등포는 가족 단위의 거주지이자, 여성 인구가 많은 동네인데요. 그들이 편하게 즐길 공간이 몇 곳 없었어요. 누구나 와서 대화도 나누고, 여가를 즐길 수 있는 외식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죠. 영등포 주변에는 ‘방석집’이라고 하는 폐쇄적인 유흥업소가 많아요. 보통 바깥에서 안이 잘 들여다보이지 않는 건물이죠. 또 서울 지자체 중 유일하게 산이 없는 동네기도 하고요.

헬로 포멜로를 열며 목재와 돌, 식물로만 인테리어를 진행하고, 안까지 투명하게 보이도록 만들었어요. 가게가 동네를 밝히는 역할을 했으면 싶었죠. 6~8인석의 원목 제작 테이블을 만든 것도 휠체어를 타거나, 가족 단위가 와도 편하게 식사할 수 있는 공간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였고요. 아무래도 회전율이 낮다 보니 투자하는 관점에서는 사회적 역할을 지나치게 추구하는 게 아닌가 싶겠지만, 동네에서 우리가 만드는 음식과 서비스를 사랑해주는 고객들을 만날 수 있을 거란 자신감을 갖고 시작했어요.

 

레스토랑 ‘헬로 포멜로’ 내부 ⓒROMOR
‘헬로 포멜로’ 외부 모습 ⓒROMOR

 

로모가 운영했던 커뮤니티나 사회적 기능을 하는 공간은 기업 차원에서 정량적인 성과를 평가하기 어려운 지점이 있을 것 같아요.

이 시대의 과제가 아닐까 싶어요. 과거에는 행정 중심으로 산업을 펼치고, 사고를 해왔어요. 동네에 필요한 것도 민원을 넣어 해결했죠. 지금은 오히려 개인과 기업이 더 공익적이고, 사회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봅니다. 우리가 평가해야 할 사회적 가치의 영향력은 비슷한 사업에 세금을 투입했을 때와 기업에서 일을 진행했을 때 만들어지는 결과를 비교해보는 거예요. 비용이 절감되고 고용 창출 또는 여러 결과물들의 효과가 어느 게 더 높은지 보는 거죠. 우리나라 공무원의 근무는 교대 시스템으로 이뤄져요. 전문가를 기르기보단 어떤 사항에 대해 일반적인 절차를 잘 처리할 수 있는 역할이라 노하우는 쌓이지 않아요.

저희는 기업이다 보니 프로젝트를 짧게 진행하려는 팀이 아니에요. 10년 이상 지속할 마음으로 전문가가 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여기서 노하우가 축적되면 비용이 절감돼요. 2~3년만 지나도 시스템이 잡히니까 필요한 인력이 줄어들죠. 이런 면에서 더욱 기업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공유 재산이나 커뮤니티 공간을 운영하며 기업이 100% 이윤만을 추구할 순 없어요. 여기서 나온 수익을 어떻게 분배할 수 있는가에 관한 사회적 논의가 지속해서 필요할 것이고, 가치 창출에 힘쓰는 적극적인 기업의 운영은 환영받아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영등포에 혼자 사는 사람들의 네트워크 프로젝트, ‘나나타운’ ⓒROMOR

 

지역의 고유성을 만들다

 

2020년엔 충남사회혁신센터의 운영을 위탁받아 프로젝트를 시작하셨다고요. 어떤 프로젝트죠?

행정안전부가 진행하는 사업으로, 기본적으로 서울혁신파크를 모델링했어요. 사회혁신을 돕는 팀과 개인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운영하는 역할이에요. 이 공간은 중부농축산물류센터가 있던 자리예요. 600억 원 정도 투입해 만든 물류센터인데, 몇 년 만에 제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됐죠. 이 공간을 어떻게 활용할지 고민하던 중 저희가 충남사회혁신센터 사업을 맡게 됐습니다. 이곳의 가장 큰 역할은 충남으로 이주하는 사람들이 정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거예요. 전문가와 행정가가 충남 지역을 바꾸자고 선언하는 게 아니라, 개인이 모여 지속가능한 환경을 직접 만들기 위함이죠.

 

로모 충남사회혁신센터 팀 ⓒROMOR

 

지속 가능한 환경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요?

보통 지자체에서 영농 지원이나 농축산 지원을 많이 해요. 하지만 이런 지역에서 투자해야 할 것은 20~30대가 원하는 직업군을 개발하는 일입니다. 젊은 층이 살기 좋은 환경은 좋은 일자리가 동반될 때 생겨나요. 그러면 자연스럽게 기술력을 가진 사람들이 이주를 원하게 되겠죠.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돈을 아끼지 않아야 해요.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IT 벤처기업에 정부는 적극적인 투자를 했어요. 지금의 포털 사이트나 정보통신기술의 밑바탕이 됐죠.

그렇다면 이제 공공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개발 시대에 수도권과 광역단체 중심으로 진행한 형태에서 벗어나 지방으로 떠날 수 있도록 문화 인프라를 만들고 지원하는 일이라고 봐요. 우리나라의 지방 도시는 새로운 일에 도전할 수 있는 환경이 구축되어있지 않거든요. 이건 비용이 많이 들고, 개인이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기업의 역할이 필요합니다. 지역을 관리하고, 작은 비즈니스를 만드는 많은 기업이 필요해요. 로모뿐만 아니라 많은 팀이 도전하고 있어요. 저희도 그중 하나의 씨앗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고, 앞으로는 조금 더 과감하게 지역을 위한 개발에 도전할 생각입니다.  

 

울릉도 청년 거주 프로젝트, ‘울릉살이’ ⓒROMOR

 

지방 도시에서 유휴 공간 문제 역시 해결해야 할 과제 중 하나죠.

단순히 지자체의 문제라기보단 필연적인 과정에서 생겨났다고 봐요. 예를 들자면, 한 국가의 조선소를 평생 유지할 수 있을까요? 유럽의 조선소는 아시아에 산업을 뺏기고, 그 공간을 다 비워 도시 재생에 활용했어요. 조선업은 언제까지나 잘 될 수 있는 게 아니니 대비가 필요하죠. 산업의 이동이란 건 막을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대표적으로 스웨덴의 ‘말뫼의 기적’이란 사례가 있어요. 스웨덴 말뫼항에 있는 조선소 부지를 스타트업의 연구실과 회의실로 재개발한 사례인데요. 조선산업도시가 정보기술과 바이오 중심의 도시로 변신한 상징성을 갖고 있죠. 저는 기적처럼 지역이 몇 년 만에 다시 살아난 거라 생각했는데, 인터뷰를 읽어보니 실제론 30년 전부터 준비했더라고요. 시대가 빠르게 변하고, 산업이 고도화되면서 도시 속 산업인이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 적극적으로 논의해야 할 단계가 왔어요. 저희 팀은 그런 일을 해보고 싶어요.

 

충남사회혁신센터에서 또 어떤 일을 준비하고 계신가요?

농축산 산업에서는 상상 이상으로 폐비닐과 플라스틱이 많이 나와요. 사회적으로 친환경이 이슈가 되고 있지만, 아직 이 산업 안에서는 움직임이 전혀 없거든요. 이런 일에 앞장서는 기업들의 자리를 만들고, 같이 일하려 해요. 또 지방에서 인구가 유출되는 건 부가가치가 낮은 산업이 많기 때문인데요. 기존의 축산업을 디지털 기술과 결합해 소비자에게 편의를 제공하는 것도 기업의 새로운 역할이 될 수 있어요. 꼭 수도권에 살지 않아도 지역 안에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부가가치를 만드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임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또 다른 개인성을 살리는 방법이기도 해요. 사실 글로벌 기업, 대기업에서 이런 프로그램을 만들어줄 수도 있거든요. 하지만 ‘우리 지역의 문제는 우리가 해결한다’는 마음으로 임하는 팀이 많이 생겨날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충남사회혁신센터’가 들어서기 전 물류센터 모습 ⓒROMOR

 

‘사회혁신기업’이 나아갈 길

 

그간 성격이 다른 프로젝트를 여럿 진행하니, 팀만의 장점도 생겨났을 거라 예상됩니다.

기본적으로 도시를 개발하고, 경영하는 사람들이 갖춰야 할 배경을 갖추고 있는 팀이라 생각해요. 또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한다는 게 큰 장점이죠. 한 주제에 대해 각기 다른 시선을 갖고 있어요. 그러다 보면 말이 많아질 때도 있지만요. (웃음)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보니 저희가 만드는 모델 자체도 다양해지고, 흥미로워진다고 생각합니다. 충남사회혁신센터를 시작하며 팀원들과 무수히 많은 토론을 했어요. 전공도 모두 달랐고, 각자 의견도 달라 어려움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결과적으로는 다양성을 포용할 수 있는 계기가 됐어요. 그렇기에 저희가 진행하는 사업도 많은 분께 사랑받을 수 있지 않을까 예상합니다.

 

로모 서울 팀 ⓒROMOR

 

로모는 앞으로 어떤 목표와 지향점을 향해 나아갈 예정인가요?

최근에 채용 공고를 올리며 이런 문장을 썼어요. ‘나도 도시도 건강해지길 바라는 동료를 찾습니다.’ 기업을 운영하는 입장만 보면 개인과 도시가 함께 성장하는 걸 왜 생각하는지 의문을 가질 수 있어요. 저희는 개발 시대에 배제된 다양성이 회복되지 않으면 도시가 이상적으로 성장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이런 관점에서 로모가 만든 공간이 도시에 있는 많은 구성원의 자긍심이 되거나, 조금이라도 주인의식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공간이 되면 좋겠어요.

지금껏 우리는 도시를 만드는 과정에 참여했던 경험이 없었어요. 저희가 만든 공간을 통해 내가 사는 동네와 지역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드는 데 직접 참여할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하고 싶어요. 이로써 도시의 진정한 도시의 지속가능성을 만들어내고, 주민들이 ‘내가 자랐던 동네를 떠나지 않아도 되는구나, 살기 재밌는 곳이구나’라고 말할 수 있는 요소를 많이 만드는 거죠. 이를 통해 살기 좋은 도시나 지역에 대한 갈망이 조금이나마 해소되면 좋겠습니다.

 

영등포에 혼자 사는 사람들의 네트워크 프로젝트, ‘나나타운’ ⓒROM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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