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위한 새활용 실험장

[no more room] ⑥ 새활용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공공의 움직임
©BRIQUE Magazine
에디터. 박종우  사진. 윤현기  자료. 서울새활용플라자

 

환경을 둘러싼 크고 작은 목소리와 도시의 지속 가능성을 다양한 관점에서 점검한 기획 연재 ‘no more room’을 시작합니다.
버려진 것들을 재해석해 활용한 공간과 서비스, 환경에 관한 고유의 철학을 가진 기업과 브랜드, 업사이클링을 실현하는 크리에이터, 도시 생태를 고민하는 공공과 개인의 활동을 고루 담았습니다.
재생과 순환, 공존이라는 무거운 키워드보다는 ‘지구와 도시를 지키는 일’이 곧 나를 위한 것, 우리 모두를 위한 것임을 자각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라봅니다. 

 

① 도로 위 트럭 방수포가 어깨 위 가방으로, 프라이탁FREITAG
② 홈퍼니싱 기업, 이케아IKEA가 지키려는 것
③ 복합문화공간 부천아트벙커 B39의 리모델링 이야기
④ 근대 양조장의 재탄생, ‘산양 양조장’
⑤ 플라스틱 프리에 도전하는 ‘알맹상점’
⑥ 새활용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공공의 움직임
⑦ 동네공원의 파수꾼 ‘서울환경운동연합’
⑧ 자연과 도시의 건강한 관계를 만드는 ‘사회적협동조합 한강’ (끝)

 


하루에도 수없이 쓰레기로 버려지는 마스크와 플라스틱 제품을 보며 마음 한구석이 불편해지는 요즘. 쌓여가는 쓰레기들을 해결하려면 재활용과 분리수거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재활용의 차원을 넘어선 ‘새활용’이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새활용은 버려지는 자원에 디자인을 더하거나 활용 방법을 바꿔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업사이클링Upcycling의 우리말로, 스위스의 가방 브랜드 프라이탁Freitag이 대표적인 새활용 브랜드이다.

 

스위스의 새활용 가방 브랜드 ‘프라이탁’ ©︎Roland Tännler

 

프라이탁이 버려진 트럭 방수천에 독창적인 디자인을 가미해 가방을 만들듯, 새활용은 사용가치가 없는 자원에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디자인을 가미해 새로운 가치를 지닌 제품을 만드는 일이다. 프라이탁 외에도 안전벨트, 돛, 양탄자 등을 의류로 만드는 핀란드의 ‘글로베 호프Globe Hope’, 소방호스로 가방을 만드는 영국의 ‘앨비스 앤 크레세Elvis & Kresse’, 사탕 포장지로 액세서리를 만드는 미국의 ‘에코이스트Ecoist’ 등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독창적인 디자인과 가치를 지닌 새활용 브랜드들이 점차 관심을 얻고 있다. 하지만 새활용 자체가 재활용과 비교해 많이 알려지지 않은 개념인지라, 전 세계적으로 새활용과 새활용 브랜드가 주류라 보긴 어렵다. 이는 한국에서도 마찬가지.

 

ⓒSeoul Upcycling Plaza

 

우리나라는 코로나 19와 기후 위기를 계기로 새활용과 새활용 브랜드가 점차 주목받고 있지만, 그래도 대중의 인식은 여전히 많이 부족하다. 실제로 2016년 한국과학예술포럼이 진행해 약 300명이 응답한 ‘새활용 브랜드에 대한 인식 조사’에서 새활용 제품을 구매한 적 없는 이들의 82%가 ‘제품의 존재를 몰랐기 때문’이라 답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서울시와 환경부가 함께 설립한 ‘서울새활용플라자’는 2017년부터 새활용을 대중들에게 널리 알리고자 노력하고, 새활용 기업을 육성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서울새활용플라자 박삼철 센터장에게 이 기관의 설립 배경과 역할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Seoul Upcycling Plaza

 

끝없이 실험하는 전진기지

서울새활용플라자의 시작은 지난 2015년 쓰레기종량제 20주년을 맞아 서울시가 발표한 ‘자원순환도시 서울 비전 2030’. 자원을 쓰고 버리는 도시에서 친환경적으로 자원을 순환 관리하는 도시로 장차 발돋움하기 위해 서울시가 발표한 비전이다. 이러한 목표에 따라 자원순환도시(Zero Waste City) 서울로 거듭나기 위한 세부 추진 과제로서 서울 안에서 자원 순환 허브를 담당할 기관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그에 따라 2017년 서울시와 환경부가 공동으로 설립한 기관이 바로 ‘서울새활용플라자(이하 새활용플라자)’이다. 자원 순환과 재사용, 새활용을 시민들에게 널리 홍보하고 새활용 산업을 지원·육성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특히 박삼철 센터장은 기관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실험’과 ‘전진기지’를 거듭 언급했다. 새활용은 지금 당장은 주목받지 못하더라도 미래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므로, 새활용플라자는 전진기지처럼 맨 앞에서 실험하고 연구하며 고민하는 곳이라는 것. 이런 점에서 서울새활용플라자는 미래를 위한 다양한 가능성을 시도하는 실험장이라 할 수 있다.

 

새활용플라자 1층 ©BRIQUE Magazine
ⓒSeoul Upcycling Plaza

 

새 소재 줄게, 헌 소재 다오

서울새활용플라자의 중요 시설 중 하나는 바로 지하 1층에 위치한 ‘소재은행’. 버려진 소재(폐기물)를 세척·살균 등의 가공을 거치고 새활용 소재화 시켜 판매·중개·유통하는 온·오프라인 플랫폼 공간이다. 이곳의 주된 목적은 새활용 제품 연구 개발에 필요한 소재들을 제공하는 것. 플라스틱, 원단, 목재, 고무, 비닐 등 다양한 소재들이 규격화되어 보관 중이며, 기업이 요청하는 만큼 제품 연구 개발에 필요한 소재를 제공 및 판매하고 있다. 또한 어린이와 청소년, 성인들을 대상으로 세척된 폐기물에서 소재를 직접 해체하고 분류하는 체험 프로그램 ‘소재구조대’도 소재 은행에서 진행 중이다.

 

지하 1층 소재은행 ©BRIQUE Magazine
ⓒSeoul Upcycling Plaza
ⓒSeoul Upcycling Plaza

 

알리고, 모으고, 교육하다

새활용플라자의 주된 역할 중 하나는 시민들에게 새활용의 개념과 필요성을 널리 알리는 것. 그에 따라 생애주기별로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유아 대상으로 새활용에 대한 기본 개념을 자연스레 익힐 수 있는 프로그램을, 초등학교 저학년 등 아동 대상으로 환경에 대해 학습하는 각종 체험 프로그램들을 운영 중이다. 중·고등학생 청소년 대상으로 새활용을 직접적으로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그 외에도 청년과 중장년을 위한 새활용 포럼과 콘퍼런스, 직장인 워크숍 등 다양한 활동을 꾸려나가고 있다.

 

ⓒSeoul Upcycling Plaza
ⓒSeoul Upcycling Plaza
자전거 해체 쇼 ⓒSeoul Upcycling Plaza

 

2020년 이전에는 유치원 및 초중고 학생 위주의 체험학습 위주로 하루 평균 200~300여 명의 방문객이 새활용플라자를 찾았다. 코로나 19로 인해 현장 프로그램을 최대한 줄인 후로는 새활용 키트를 보급해 온라인 교육으로 직접 새활용 제품을 만들어보는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지난해 코로나 19 유행이 전국적으로 심각한 와중에도 8,500여 건의 키트 보급이 진행되었고, 비대면 교육은 현재까지 74,000여 명 이상이 이수했다. 올해 들어 다시 문화시설의 제한적 입장이 가능해지면서 새활용에 관심 있는 학생과 시민들의 예약 방문이 다시 늘어나는 추세다.

 

2018년 진행했던 ‘새활용 마켓’ ⓒSeoul Upcycling Plaza

 

될성부른 기업, 떡잎부터 알아본다

새활용플라자는 교육 및 체험 프로그램 이외에도, 새활용 기업을 육성하고 지원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전체 5층 건물에서 2층 일부와 3층, 4층은 입주한 새활용 기업들의 사무실 겸 작업실로 쓰이고 있다. 현재 입주 기업은 총 28곳으로, 입주를 문의하는 새활용 기업들이 점차 늘어나는 상황이라고. 입주한 기업들은 모두 새활용과 재활용을 기반으로 창업하거나 사업을 운영하는 곳으로, 버려지는 폐기물의 쓰임새를 늘리거나 새로운 활용법을 만들어 이를 수익으로 창출하기 위해 노력하는 창작자들이다. 지난해 걸그룹 ‘블랙핑크’가 무대 의상으로 입어 화제가 되었던 한복을 만든 패션 브랜드 ‘단하’도 새활용플라자 입주 기업 중 하나이다.

 

2층 ©BRIQUE Magazine
2층에 입주한 새활용 기업 ‘에코파티메아리’의 쇼룸 ©BRIQUE Magazine
3층 ©BRIQUE Magazine

 

지난해 세계적인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이 모델로 등장해 화제가 되었던 ‘큐클리프’ 역시 버려진 우산, 낙하산 등을 지갑, 가방 등으로 만드는 새활용 기업이며, 새활용플라자에 입주해있다. 이렇게 새활용플라자에 입주한 28개 기업은 임대료와 관리비가 저렴한 사무실을 이용하게 되며, 외부의 새활용 제품 문의 시 새활용플라자로부터 상호 매칭을 지원받는다. 새활용플라자가 대기업이나 외부 기관에서 소재를 기부받을 경우, 외부 기업보다 우선하여 기부받을 수 있다. 지난해 11월에는 이케아 코리아가 기부한 소재를 서울새활용플라자가 입주 기업과 협업해 어린이용 보조가방과 새활용 교육용 교재로 만들어 배포하기도 했다.

 

©BRIQUE Magazine

 

확고한 ‘가치’로 만드는 브랜드

큐클리프, 단하 등 국내 새활용 브랜드들이 조금씩 주목받는 요즘. 국내 브랜드들도 새활용 브랜드의 대명사 ‘프라이탁’처럼 소비자들이 열광하는 브랜드로 거듭날 수 있을까? 다양한 새활용 기업들을 지켜봐 온 박삼철 센터장은 확고한 팬덤이 존재하는 새활용 브랜드에는 아이디어 대신 ‘가치’가 저변에 깔려있다고 연거푸 강조했다. 기발한 제품 아이디어는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환경 문제를 해결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들겠다는 가치를 브랜드 구성원들이 공유하고 있다면 그 가치에 이끌리는 팬들이 반드시 나타난다는 것. 더 좋은 세상을 향한 고민과 훌륭한 물건을 만들어 내겠다는 의지만이 좋은 브랜드를 완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에코파티메아리의 제품들 ©BRIQUE Magazine


기업을 바꾸는 키워드, ‘ESG’

환경(Environmental),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의 약칭으로 기업의 비재무적 성과를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으로 최근 들어 급부상하고 있는 ‘ESG’. 지난해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ESG를 기업 경영의 새로운 축으로 삼겠다고 선언했으며, 삼성전자도 지난해 ESG 투자를 확대하겠다 밝힌 바 있다. 그에 따라 국내 기업들의 ESG에 대한 관심도가 부쩍 올라간 상황. ESG 열풍은 서울새활용플라자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올해 들어, ESG 경영을 위해 서울새활용플라자와 협업할 방안을 찾고자 방문하는 기업들이 늘어나는 중이다. 기업의 생산활동으로 인해 발생하는 각종 폐기물을 효과적으로 처리하고 관리할 방법을 찾고자 새활용플라자의 문을 두드리는 것. ESG에 기반한 가치를 내재화했는지가 기업의 투자 여부를 좌우하게 되자, 생존을 위해 친환경적인 폐기물 처리 방법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코로나 19와 기후변화로 인해 환경에 계속 관심을 쏟을 수밖에 없는 상황, ESG 관리를 위해 새활용플라자를 찾는 기업들의 발길은 당분간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아름다운 가게’에서 기증받은 중고 물품을 재분류·가공하여 활용하는 지하 1층 작업장 ⓒSeoul Upcycling Plaza
ⓒSeoul Upcycling Plaza

 

일상과 만나는 새활용 라이프스타일

하루에도 수없이 버려지는 일회용 마스크를 보며 환경오염의 심각성을 직면하게 된 오늘날. 이러한 상황 속에서 서울새활용플라자가 앞으로 할 일은 무엇일까? 박삼철 센터장은 지금까지의 새활용플라자가 열심히 실험하며 성장해왔음에도, 시민의 삶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지는 못했다며 자평했다. 서울 시민들에게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새활용을 홍보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꿈꾸는 새활용 기업들을 키워왔지만, 아직 사람들의 일상과 직접적으로 맞닿지는 못했다고 답했다.

 

ⓒSeoul Upcycling Plaza
ⓒSeoul Upcycling Plaza

 

그럼에도 새활용플라자가 이루어야 할 목표는 시민들의 삶에 새활용을 연결하는 것. 매일 매일 살아가며 자원 순환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새활용의 가치를 알게 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새활용을 우리 삶의 새로운 라이프스타일로 자연스레 받아들이는 것이 서울새활용플라자의 최종 목표이다. 이를 위해 새활용플라자는 코로나 19 상황에서도 안전하게 시민들과 만날 방법을 찾고 있고, 입주 기업들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새활용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머지않아 조만간 새활용을 재활용만큼 우리 삶에서 자연스레 익숙해질 날을 기다려본다.

 

ⓒSeoul Upcycling Plaz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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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QUE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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