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모이는 따뜻한 길

[도시를 바꾸는 기획자들] ④ 문화콘텐츠 타운을 만드는 스타트업, 세간
ⓒBRIQUE Magazine
에디터. 김유영  사진. 이동웅  자료. ㈜세간

 

부여 백마강변에 자리한 마을 규암. 강을 두른 땅은 배로 오가는 사람과 물자로 번성했다. 물건을 사고파는 사람이 모여들어 큰 시장을 이루고, 사람이 모이니 상점과 주택 등 건물이 빼곡히 들어서 활기로 가득했다. 그러나 1968년 부여읍 동남리와 규암면 규암리를 잇는 백제교가 놓이며 상황은 달라진다. 유통의 중심지가 강 건너로 옮겨가면서 북적이던 거리는 한산해지고 건물을 채우던 이들마저 대부분 떠났기 때문. 규암은 자연스레 저무는 듯했다.

때로 애정이 깃든 마음은 생각보다 큰 힘을 발휘한다. 평생 전통 공예를 사랑해 온 한 사람이 그곳에 터를 잡으면서, 지금 규암은 문화 콘텐츠 타운으로 약동하고 있다. 2018년부터 ‘자온길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마을의 분위기를 바꿔 가는 박경아 ㈜세간(이하 세간) 대표 이야기다. 애초에 그가 이 일을 시작한 이유는 전통 공예를 더 알리고 싶어서였다. 대중이 일상적으로 전통 공예를 즐기고, 작가는 오래도록 안정적으로 작업할 수 있는 거리를 그리던 꿈이 규암에 닿아 더 크게 부푼 것.

자온自溫. ‘스스로 따뜻해지다’라는 프로젝트명의 뜻처럼, 규암은 다시 모여드는 이들의 온기로 채워지고 있다. 박경아 대표를 만나 진행 중인 프로젝트에 대해 물었다.

 

박경아 ㈜세간 대표 ⓒBRIQUE Magazine

 

세간 소개를 부탁드려요.

흔히 ‘세간살이’라고 말할 때 그 세간에서 이름을 따왔습니다. 일상에 전통 공예를 어떻게 접목할지 제안하는 리빙라이프 회사예요. 17년 전 서울에서 시작해 직접 공예품을 만들기도 하고 외부 작가 작품을 유통하기도 합니다. 지금까지 의식주에 쓰이는 물건에 전통을 입혀 현대 생활에 맞도록 제안해 왔습니다. 이를테면 한복 원단으로 양장을 짓거나 전통 청자를 빚는 방식으로 치즈 플레이트를 만드는 거죠. 부여로 와서는 집안을 채우는 물건뿐 아니라 집 자체와 공간까지 다루는 영역을 확대했어요. 그 일환으로 로컬 콘텐츠 타운 ‘자온길’을 조성 중입니다.

 

전통공예문화 마을을 만드는 프로젝트를 구상한 계기가 궁금해요.

서울 인사동과 삼청동, 파주 헤이리 등지에서 숍을 오래 운영하면서 거리의 흥망을 온몸으로 겪었어요. 작가들이 모여 거리를 예쁘게 만들어 놓으면 어느 날 월세가 폭등하고, 결국 작가는 거리에서 사라져야 하는 일들이 빈번하게 일어났죠. 그런 일을 여러 번 거치면서 작가가 쫓겨나지 않는 문화 거리를 만들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문화가 거리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그리고 젠트리피케이션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생생하게 느꼈으니까요. 경험하지 않았다면 이런 생각은 못 했을 거예요.

 

그 계획을 부여에서 시작한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어려서부터 전통에 대한 애정이 컸고 한 번도 이 길을 벗어나 본 적이 없어요. 부여에 있는 한국전통문화대학교와 대학원에 진학했을 정도로요. 학교에 다니면서 부여의 매력을 알게 됐어요. 부소산성, 관북리 유적, 정림사지 등이 있는 백제역사유적지구가 세계유산에 등재될 정도로 문화유산이 훌륭한 데다 자연도 아름답죠. 역사와 자연이 갖춰진 것에 비해 콘텐츠가 부족하다고 느꼈어요. 젊은이들이 즐길 수 있는 문화 시설이 없다는 점도 참 아쉽더라고요. 그래서 ‘부여라는 도시에 애정과 이해도가 있는 내가 한번 시작해 보자’ 결심했어요.

 

‘책방 세간’ 앞에 선 ㈜세간 팀 ⓒBRIQUE Magazine

 

도시 재생의 기쁨과 슬픔

 

마을에 새 숨을 불어넣는 일이 쉬울 리 없다. 자온길 프로젝트 역시 초반에는 주민들의 곱지 않은 시선을 받기도 했다. 빈집과 땅을 살피는 세간 팀을 투기 세력으로 오해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렇지만 작가가 쫓겨나지 않고 백 년이 지나도 유지되는 문화 마을을 조성하려면 부동산 매입은 필수였다. 매입부터 리모델링까지 쉬운 일이 하나도 없었지만 ‘책방 세간’과 ‘수월옥’ 등 공간이 하나둘 자리를 잡으면서부터는 응원과 격려가 늘었다.

 

세월을 품은 채 다시 태어나는 공간

부여 안에서도 고요한 마을인 규암을 선택했죠. 유동인구가 많은 곳이 아닌데, 규암에 터를 잡은 까닭이 있나요?

부소산성 아래나 읍내처럼 관광객이 많이 찾는 곳을 가장 먼저 고려했는데 막상 찾아보니 땅값이 너무 비싸더라고요. 많은 분이 지방은 무척 저렴할 거로 생각하시지만 꼭 그렇지는 않아요. 부여는 고도 제한이 있고 건물을 지으려는 수요에 비해 땅이 적다 보니 가격이 높은 편이에요. 부여 곳곳을 돌아다니다가 마지막으로 떠올린 곳이 규암이었어요. 학부 시절 민속 조사를 하러 가 본 경험이 있거든요. 동네 어르신을 만나 뵙고 피난 온 얘기, 직물 짜던 얘기 등 여러 말씀을 들었는데, 당시 만났던 할머니 댁이 적산가옥이었어요. 동네 분위기가 독특했다는 기억이 나서 다시 찾아가 봤더니 인적은 정말 드물지만 오래된 집이 많고 무척 아름다웠어요. 터미널과 가까운 데다 백마강이 지척인 것도 좋았고요. 무엇보다 세간이 이제껏 해 온 일, 진행한 프로젝트들과 결이 잘 맞는 마을이라는 점이 마음에 들었어요.

 

규암의 빈집 혹은 방치된 건물을 개조해 새로이 탄생시키는 일을 하고 있죠. 공간을 선택하는 기준이 궁금해요.

크게 두 가지 기준이 있어요. 먼저 너무 폐허라서 주변 경관을 해치는 곳부터 선택해요. 그곳을 건드리지 않으면 옆에 제아무리 예쁜 꽃을 심어 화단을 만든다 한들 풍경은 바뀌지 않아요. 어려운 일을 먼저 해야 해요. 두 번째로는 지은 지 50년 이상 흘렀고 역사적·미적으로 중요도가 있는 곳을 택합니다. ‘스토리’가 있는 곳이랄까요? 오래된 건물들이 거리에 남아 있어야만 동네의 표정을 지킬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 기준에 따라 고른 공간 이야기를 좀 더 들려주세요.

대표적인 예가 카페로 개조한 수월옥이에요. 그 건물은 원래 조그마한 선술집이었어요. 제가 그곳을 처음 봤을 땐 정말 열악한 상태였습니다. 건물이 무너져 내려가고 있어서 입구로 들어갈 수조차 없었죠. 근처에 사는 어르신들께서 “다 부수고 새로 짓지, 그걸 왜 고치느냐”고 말씀하실 정도였어요. 사실 그 건물이 엄청나게 정교하게 지어진 한옥은 아니었어요. 그런데 애초에 상업 공간으로 설계된 한옥은 별로 남아 있지 않거든요. 다양한 한옥의 형태를 보여주는 일도 중요하기에 수월옥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했어요. 뻔한 신축 건물을 올렸다면 조용한 마을의 카페에 이렇게 많은 분이 찾아 주었을까요? 저는 아니라고 봐요.

 

선술집을 개조한 카페 ‘수월옥’ ⓒBRIQUE Magazine
‘수월옥’ 내부 ⓒBRIQUE Magazine

 

리모델링하는 과정에서 늘 염두에 두는 점은 무엇인가요?

원래 공간이 가진 아름다움을 최대한 살리는 것. 세월을 품은 고택이 가진 이야기, 그 집이 가진 장점을 끌어내려고 해요. 한옥 공사를 하다 보면 덧칠을 잘못한 경우를 많이 봐요. 새시sash를 마구 댔다거나 서까래를 막는다거나. 그러면 원래 모습이 다 사라지는데, 그 모습을 되살리는 걸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요. 동시에 건물 구조를 탄탄하게 보강합니다. 낡은 건물인 만큼 내부를 다시 점검하는 것도 소홀히 해서는 안 돼요.
더불어 공간 특성에 맞춰서 적절한 파트너와 함께하거나 세간 직영으로 공사를 진행해요. 책방 세간은 이용재 아키텍츠의 이용재 건축가와 작업했고 수월옥과 웃집은 디자인 그룹 스타시스와 작업했습니다. 앞으로 자온길 프로젝트로 생기는 공간에서는 다양한 건축가의 특징을 느끼실 수 있을 거예요. 공간마다 최적의 파트너와 함께 다채로운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기 때문이에요. 물론 직영이 더욱 효과적일 때는 직영을 선택할 겁니다.

 

적합한 건물을 찾고 매입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닐 듯해요. 특히 원래 살던 곳이 아닌 지역에서는 더더욱.

초반엔 정말 어려웠어요. 지방 빈집은 인터넷에 나오지도 않을뿐더러 막상 괜찮은 집을 발견해도 주인이 누구인지 알 도리가 없어요. 직접 주민들을 만나 부딪치면서 여러 방법을 시도했습니다. 오래된 동네 찻집에 가서 평생 이곳에서 살아 온 어르신들과 대화하며 공간을 소개받거나, 수십 년 동안 영업 중인 부동산을 찾아 자문을 구하기도 했습니다. 자온길 프로젝트를 시작할 무렵에는 서울과 부여를 일주일에 두 번씩 왕복하면서 발품을 팔았어요. 현지 사람들에게 인식되고 경계 안에 들어가려고 노력했지요. 저희가 어느 정도 알려진 지금은 제보가 많이 들어와서 점차 수월해지고 있습니다.

 

이용재 건축가가 참여한 ‘책방 세간’  ⓒBRIQUE Magazine
ⓒBRIQUE Magazine

 

도시를 재생하는 ‘일’에 대하여

규암면 자온로와 수북로 일대의 집 16채와 대지 4천 평을 우선 확보해 시작했다고요. 토지 확보와 투자 유치는 어떻게 이뤄졌나요?

개인이 할 수 있는 규모가 아니에요. 세간은 스타트업이고 주식회사예요. 여러 투자자 덕분에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투자 방식은 다양해요. 마을 안에 건물을 사서 저렴하게 임대해 주거나 직접 주주로 참여한다거나…. 그렇지만 공통점은 확실합니다. 자온길 프로젝트를 응원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이죠. 저희가 하려고 하는 일, 도시 재생이라는 사업의 의도에 공감하고 응원해 주세요. 가치관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투자하기는 어려워요. 대표로서 VC들을 만날 때는 도시, 특히 지방 도시 재생 관련한 일에 투자할 때는 좀 더 긴 텀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말하곤 해요. 금세 떠오르고 눈에 띄는 성과가 나오는 사업이 아니라 멀리 보아야 하는 일입니다.

 

공공 부문에서도 세간이 하는 일을 주목하고 있을 듯해요. 공공에서도 새로운 움직임이 느껴지나요?

세간과 직접적인 협업을 진행한 건 아니에요. 그렇지만 관심이 분명히 늘고 있다고 느껴요. 부여군 산하 상권활성화재단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해서 근처에 가게들이 조금씩 생기고 있어요. 자온길 프로젝트를 진행한 지 4년 차에 들어선 지금 관심이 커지는 걸 차츰 체감합니다.

 

세간 역시 공공과 함께한다면 더욱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 같아요. 공공과의 협업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열려 있어요. 말씀하신 대로 저희가 하는 일은 공공과 협업할 때 훨씬 빠르게 진행되고 영향력도 커질 수 있어요. 민간이 잘하는 영역이 존재하듯 공공이 꼭 필요한 영역이 있습니다. 공공과 협력한다면 플레이어들이 안정된 상황에서 보다 자유롭게 일하게 되죠. 그러면서 훨씬 더 효과적인 결과물이 탄생할 것도 자명하고요.

 

국밥집을 개조한 숙소 ‘웃집’ ⓒBRIQUE Magazine
‘웃집’  내부에 전시된 전통 공예 소품 ⓒBRIQUE Magazine

 

서울에서 사업을 진행할 때와 비교해 뚜렷한 차이점은 무엇인가요?

지방에서 일을 진행하면 서울에서 진행할 때보다 성장하는 시간이 최소 3배 이상 걸립니다. 일단 서울에 비해 인구가 적어요. 예를 들어 부여의 땅은 넓지만 인구는 대략 6만5000명입니다(2021년 1월 기준). 고령 인구 비율도 높은 편이죠. 서울에서 사업할 때는 콘텐츠를 잘 만들어 놓기만 하면 금세 소비자가 생겨났어요. 유동 인구가 많으니까요. 그래서 만드는 제품 자체에만 집중해도 큰 무리가 없었지요. 그렇지만 이곳에서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콘텐츠 퀄리티는 기본이고 홍보와 사람을 끌어오는 일까지 전부 해결해야 해요. 소비할 수 있는 현지 인구가 적기 때문에 관광객에게도 소구하는 콘텐츠를 만들어내야만 한다는 점도 중요합니다.

 

도시에 새로운 숨을 불어넣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가장 어려운 점을 꼽는다면.

도시 재생을 위해서는 부동산부터 건축, 디자인, 홍보는 물론이고 자영업의 구조와 흐름까지 알아야 해요. 지식과 경험이 모두 필요한 일이죠. 무無에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한편 원래 있던 것과 어우러지도록 완성해야 한다는 점도 기억해야 해요. 도시 재생 작업의 복잡하고 미묘한 성격 자체에서 오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양조장을 운영한 우 씨 어르신이 기거하던 한옥은 문화 공간 ‘이안당’이 되었다 ⓒBRIQUE Magazine

 

오래오래 가기 위해서

“영화 <리틀 포레스트>는 3년이면 질린다고 우스갯소리를 하곤 해요.” 문화 시설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박경아 대표가 말했다. 지방 도시 재생에는 대도시에서 느낄 수 없는 자연을 강조하는 것뿐 아니라 지적·정서적 만족을 주는 시설을 갖추는 일도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일상적으로 누리는 문화적 혜택에 익숙한 젊은 세대가 찾는 도시를 만들기 위해서는 그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언지 직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세간은 낡고 버려진 공간을 문화적 쓰임으로 채워 넣는 일에 주력하고 있다.

 

내면을 풍요롭게 하는 콘텐츠

자온길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현재까지 오픈한 공간은 서점, 카페, 숙소 등이죠. 이러한 목적의 공간을 우선적으로 준비한 이유가 궁금해요.

처음부터 공간을 크게 네 가지 카테고리로 나눠 구상했어요. 각각 아틀리에, 숙박, F&B, 그리고 출판 관련 공간입니다. 문화 마을을 구상하면서 내가 조성하려는 것이 사람과 자연에 이로운가, 그리고 이곳에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오래 고심했어요. 건물 하나를 만들고 끝나는 게 아니라 10년을 내다보고 마을 자체를 기획하는 일이니까요. 뼈대를 먼저 잡고 세부적인 공간 하나하나를 그려 나갔어요.

 

책방 세간을 가장 먼저 열었어요. 문화적인 마을에 가장 필요한 공간이 ‘서점’이라 생각했다고 이해해도 좋을까요?

마을에 꼭 있어야 하는 공간이자 연령 불문 모든 사람에게 공통으로 필요한 공간이 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서점은 도서관과 또 달라요. 좀 더 쉽게 사람들이 들어설 수 있죠. 책방 세간 전에는 이 지역에 서점이 하나도 없었어요. 이제 이곳에서 주민과 관광객이 꾸준히 들러 책을 읽고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눠요. 마을의 앵커 스토어anchor store 역할을 하는 거죠. 특히 책을 판매할 뿐 아니라 다양한 문화적인 행동을 일으키고 있다는 사실도 중요해요. 저자를 모시고 특강을 한다든가, 책방에서 출발하는 자온길 투어 소풍을 연다든가 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거든요. 최근엔 청년들이 아침마다 이곳에 모여 시를 필사하고 있어요. 유의미한 현상이죠.

 

자온길 프로젝트로 인한 변화 중 특히 눈에 띄는 것이 있다면요?

대표적으로 멸실 신청이 줄었어요. 멸실 신청은 집을 부숴 달라는 얘기거든요. 예전에는 낡은 집을 부수고 새로 올리는 일이 잦았는데, 이젠 ‘이 집들을 부수면 안 될 것 같다’며 저를 찾아 상담한 후 리모델링하는 방향으로 가는 사례가 많아요. 거리의 풍경을 위해서는 오래된 집이 가진 가치가 아주 중요해요. 저희는 집주인을 한 분 한 분 만나서 건물을 부수면 안 된다고 설득도 하고, 심지어 건물 월세를 직접 낸 적도 있어요. 요즘은 종종 규암 밖 인근 동네에서도 찾아오세요. 우리 동네 집도 상담해 달라고요. (웃음) 청년들이 찾아 북적이는 동네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하시면서. 또 전국 각지에서 방문하는 분들이 많은데, 서울, 세종, 대전 등 멀리서 온 손님들이 “자온길 때문에 부여에 처음 와 봤다”라고 말씀하실 때면 큰 보람을 느낍니다.

 

‘책방 세간’에는 청년들이 쓴 독립 출판물이 많다 ⓒBRIQUE Magazine

 

달라지는 거리, 달라지는 사람

규암 주민의 실제 삶에도 직접적인 영향이 있을 듯해요. 설비, 미장, 조적 등 다양한 공사 작업을 현지 주민 기술자들과 함께한다고요.

이 프로젝트는 당연히 그래야 해요. 물론 필요한 경우엔 서울에서 기술자가 오시죠. 하지만 ‘우리 팀’이 있고 없고 차이는 굉장히 큽니다. 그리고 지역을 위해서 하는 일이잖아요, 웬만하면 현지 분들과 함께하려고 해요. 현지에서 저희 팀과 함께하는 편이 추가 설비나 보수 공사, 공사비 문제에 있어서 효율적이라는 장점도 있지요.
현지 기술자들은 처음에는 오래된 목재를 가져다가 가구를 만들고 최대한 원래 구조를 살리는 일을 이해하지 못하셨어요. (웃음) 이분들은 낡은 걸 부수고 새것으로 바꾸고 조립식 패널을 덧대는 공사에 익숙하시니까요. 그래서 초반엔 계속 지켜봐야 했어요. 순식간에 귀한 것들이 사라져 버리지 않도록 하려면요. 그렇지만 여러 단계를 거치며 한 팀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지금은 자온길 프로젝트를 이해하고 일의 성격을 알기 때문에, 오래 묵은 물건을 보면 먼저 가져다주실 정도예요.

 

지난해 유튜브 ‘세간TV’를 오픈해 빈집을 소개하거나 귀농 귀촌에 대해 알려주고 있죠. 이 역시 그 흐름을 만드는 데 일조했을 것 같아요. 영상에 대한 반응이 퍽 뜨겁더군요.

귀촌 상담이 너무 많이 들어와서 도저히 일일이 상담할 수가 없겠다 싶었어요. 그도 그럴 것이, 빈집에 대한 정보나 그 공간을 고치는 정보는 온라인에서 찾기 쉽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이 저처럼 발품을 팔 수도 없는 노릇이고요. 이렇게 된 참에 ‘지켜져야 하는 구옥들을 소개해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오래된 집을 매만지면 어떻게 다시 피어나는지 저는 경험해봤기 때문에 알잖아요. 그걸 널리 알리고 싶다는 마음이에요. 유튜브 영상을 만들어 올리고 구독자의 반응을 보면서 시골에 대한 정보가 너무 부족하다고 느껴요. 땅이나 건물 가격 등 기본 정보조차도 제대로 아는 분이 드물어요.

 

우체국 건물을 개조한 공예 상점 ‘편지’ ⓒBRIQUE Magazine
‘편지’ 내부 ⓒBRIQUE Magazine

 

규암에 새롭게 정착하는 인구도 늘고 있나요?

세간TV를 보시고 완전 이주부터 주말을 위한 세컨 하우스, 은퇴 후 거주 목적으로 구매하는 분까지 다양한 사례가 있어요. 물론 저희는 직접 거래를 진행하지 않고 현지 업체와 연결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 과정에서 이 집이 가진 가치가 무언지, 어떻게 고치면 좋을지를 전하려고 노력하죠.
프로젝트가 궤도에 오르며 문화적인 마을이 되어 가면서 이곳에 자리 잡아 창업하려는 젊은이는 물론 귀촌하려는 분도 많아요. 국내 인구 소멸 위험 지역 중에서 귀촌 희망자가 이렇게 많은 곳을 찾기 어려워요. 자온길 프로젝트의 영향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한 예로 근처 오래된 중국집이 폐업한 자리에 젊은 부부가 빵집을 오픈했는데, 오픈 전 저와 여러 번 대화를 나눴어요. 제 학부 시절 교수님도 자온길에 공방을 여셨고요. 어떤 흐름이 만들어지고 있는 듯합니다.

 

자연스레 자온길의 취지를 이해하는 분들이 들어오겠군요.

오래된 건물을 무작정 부수고 미끈하게 닦으려고 하는 분들과는 연결하지 않아요. 민가 한옥과 구옥은 귀중한 유산이에요. 유튜브로도 지금은 세간이 있는 부여 위주로 집을 소개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전국으로 다루는 범위를 확대할 계획이에요. 오래된 집을 보면 그곳의 역사가 담겨 있어요. 지역에 따라 생김새와 구조가 다 다르죠. 이 일은 도시를 활성화하고 지방 소멸 문제를 해결할 중요한 키가 될 수 있어요. 세컨 하우스라도 구매한 사람은 그 집이 자리한 도시를 완전히 다르게 바라보게 됩니다. 몇 주에 한 번씩 와서 소비를 하고 가고, 이곳에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 주의를 기울이게 되니까요. 세간이 작은 역할이나마 하고 싶다는 바람입니다.

 

㈜세간과 파트너십을 맺어 오픈한 ‘금강사진관’ ⓒBRIQUE Magazine

 

도시 재생이 장기적으로 이어지기 위해 필요한 건 뭘까요?

현재 활동 중인 전국 도시 재생 플레이어들이 잘 살아남아야 해요. 후발주자도 생기고 오랜 흐름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말이죠. 신scene이 건강해지려면 좋은 엑싯exit 사례도 나오고 돈을 많이 버는 그룹도 속속 생겨야 해요. 얼마 전 음악가 유희열 씨가 한 프로그램에서 “한 명의 스타가 나와 줘야 생태계가 넓어진다”고 말하더군요. 이 말에 공감합니다. 성공 사례가 나오면 판이 달라져요. 민간 혼자서는 너무 더디고 어려운 일이 산재해 있기 때문에 공공의 지원이 뒷받침된다면 엄청난 힘이 될 겁니다. 예산을 써야 할 곳에 쓰고 제반 시설을 갖춰 준다면, 플레이어들은 추진력을 얻고 사업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이미 강조했듯이 민간과 공공의 협력이 필요합니다.

 

앞으로 집중하려는 일에 대해 말해 주세요.

자온길 프로젝트는 이제 3분의 1 정도 온 것 같은데, 처음 구상한 대로 완성도 높게 만들어 가고 싶습니다. 계획된 일이 많아요. 최근 한옥 이안당 앞 갤러리 공사가 끝났고 파트너 관계로 운영하는 금강사진관에 이어 레스토랑이 오픈할 예정이에요. 초반에는 아무것도 없던 곳에 ‘문화 거리’라는 인상을 심기 위해 공간을 직영으로 운영했지만, 이제는 가맹이나 파트너십 등 더욱 다양한 방식으로 프로젝트를 키워 나갈 겁니다. 그러는 한편 중간 세대로서 역할을 다하려 해요. 막 일에 뛰어든 20~30대와 기존 주민, 은퇴 후 이주자 사이를 연결하는 일도 중요한 임무가 될 듯합니다. 공간을 발굴하고 새롭게 다듬으며 젊은이에게 기회를 제안하는 일에 집중할 타이밍이 다가오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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