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공의 밤 Midnight in Saigon

[City, Space, People] ④ 사이공의 밤길을 내리걷다 마주한 도시와 사람, 시선과 생각
글 & 사진. 호찌민 시티(베트남)=이현준

 

에드워드 호퍼

 

만약 당신이 이 도시의 오롯한 이방인이라면, 카메라를 아로 쥐고 도시와 눈을 맞추며 걷고 있다면. 사이공(호찌민 시티의 옛 이름)의 밤은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의 시선을 선물할지도 모를 일이다. 특유의 고독한 감성과 색채로 사랑받는 호퍼는 20세기 미국의 사실주의 화가다. 텅 비어버린 도심, 쓸쓸한 자연 풍경, 외따로 고립된 인물은 사실 그의 기질을 반영한 다분히 선택적인 시선이었다. 사진적 묘사뿐 아니라 화가의 시선을 그림으로 번역하는 것도 사실주의임을 호퍼의 그림은 보여준다.

 

ⒸBRIQUE Magazine

 

호퍼의 심정이 되는 건 비단 나뿐이었을까. 번잡한 호찌민 시내를 내리 걷는동안 우악스런 불빛, 소음, 공해를 뒤로 가만히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이 잇달아 눈에 밟힌다. 호퍼의 인물과 달리 번듯한 옷을 입지도, 여유를 만끽하지도 않는다. 생업의 현장이어서, 누군가를 기다리느라, 잠이 쏟아져서, 어쩌면 정말로 갈 곳이 없어서, 이들은 이방인의 두 눈에 깃든다. 해묵은 테바 샌들을 신고 사이공의 여느 밤거리를 걷고 또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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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밤

 

태동하는 도시 사이공엔 낮이나 밤이나 공사가 한창이다. 햇빛엔 분진이, 가로등엔 부산스러운 희망 같은 게 춤췄다. 지난해 완성된 동남아 최고층 ‘랜드마크81’엔 우아한 조명이 명멸하고, 늦은 밤 물을 긷던 인부는 머리를 주억인다. 두들기면 당장이라도 일어나 철근을 들어 올릴 깜냥으로 크레인이 선잠을 청하는 동안 기운찬 젊은이들의 축제는 이제 막 들숨이다. 달과 호수가 밤이라면 빛과 음악은 밤의 밤일까 했다. 맘의 맘처럼 흘러가지 않는 게 세상사라지만 자라는 이 도시가, 지켜온 역사가 아프지 않기를. 못다 깬 꿈의 꿈을 헤매듯, 더운 바람을 더듬어 숙소로 돌아가는 길. 아, 이제 겨우 반의 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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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일과 사는 일

 

노상에 앉고 누울 수 있도록, 차라리의 더위를 허락해준 하나님에게 감사했다. 무언가를 돈 주고 산다는 것도, 그 산 것들을 이고 지고 삶을 영위하는 것도, 어느 것 하나 녹록지 않다. 살려면 사야 하고, 사려면 살아내야 했다. 살자면 좋은 거, 예쁜 거만 사야 하는 삶이 있는가 하면, 사 주려면 사 먹이려면 어떻게든 살아야 하는 삶은 수천 타래쯤 있다. 살기 위해 사 가기를, 팔리기를, 그도 여의치 않을 테면 그냥 좀 도와주소, 길 위에 누웠다. 느른한 하루의 끝이거나 말거나 끝난 건 오늘 하루. 내일도 모퉁이에선 머리고기를 넣은 국수를 팔 테고 모래는 마천루가 두 개 들어서겠지. 살고, 사고, 더러는 춤을 추고, 누군가는 노래하고. 모쪼록 어느 사이공의 밤. 그리고 그들의 ‘사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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