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동 건축가의 성수동 집 짓기

[QnA] 소수건축의 ‘3/1(일삶)빌딩’ ③성수동 건축가, 소수건축
ⓒBRIQUE Magazine
글. 김윤선  자료. 소수건축사사무소

 

미세먼지로 뿌연 봄날, 잠시나마 마음 놓고 숨 쉴 수 있을 것만 같은 싱그러운 식물들로 가득한 소수건축사사무소(이하 소수건축)을 찾았다. 2016년 성수역 근처에서 시작해 최근 서울숲 쪽에 새롭게 둥지를 튼 그들은 전보다 비교적 조용한 동네에서 지내니 가끔 예전의 활기찬 분위기가 그리울 때가 있단다. ‘3/1(일삶)빌딩’은 소수건축 개소 초창기에 성수동 토박이가 의뢰한 성수동에 있는 집이다. 뻔한 표현이지만 그야말로 ‘성수동의, 성수동에 의한, 성수동을 위한’ 집이랄까. ‘성수동 건축가’의 ‘성수동에 집 짓기’란 어떤 의미였을까. 그들이 전해온 성수동 집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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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동에 사는 건축주, 성수동에서 일하는 건축가

건축주와의 인연은 정말 우연이었어요. 당시 저희 사무실 건물 1층에 큰 고깃집이 있었는데요. 건축주가 식사하시다가 저희 사무실을 발견하고 상담을 받으러 오신 거예요. 건물 우편함에 건축사무소 간판을 보고 들르신 거였는데, 마침 저희가 야근을 하고 있었죠. (웃음) 새로 집을 짓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히 하던 중에 저희를 만난 건데, 애초부터 동네에 있는 건축사무소에 설계를 의뢰하고 싶으셨대요. 요즘 서울시에서 ‘마을 건축가’ 사업을 하는데요. 동네를 잘 아는 지역 건축가가 그 지역의 일을 한다는 게 참 좋다고 봐요. 현장도 자주 들를 수 있고 자연스럽기도 하고요. 건강하게 집 짓는 방법의 하나라고 생각해요. 그때만 해도 저희가 개소 초기라 경험도 적고 이력도 별로 없었는데 믿고 맡겨주신 게 감사했죠. 결과적으로 서로 만족할만한 결과가 나와서 기뻤어요.

 

소수건축 사무실 풍경 ⓒBRIQUE Magazine
사무실 한편 성수동의 곳곳을 함께 누볐을 작업화가 놓여 있다. ⓒBRIQUE Magazine

 

가장 성수동다운 집을 짓자

건축주와 처음으로 가진 미팅에서 ‘오래된 미래’라는 단어를 썼던 게 기억나요. ‘가장 성수동다워야 가장 오래 남는다.’는 내용이었죠. 저희가 ‘3/1(일삶)빌딩’을 짓기 전, 대지 부근에 신축 건물이 하나 있었어요. 동네와 어울리지 않는, 오로지 수익성에 집중한 모습의 건물이었어요. 그걸 보며 일대의 건물 반 이상은 결국 저렇게 개발되지 않을까 싶더군요. 한편으로는 골목의 모서리에 자리 잡은 ‘3/1(일삶)빌딩’이 성수동다운 모습을 지키고 있으면 주변 건물들도 그런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따라가면서 개발돼 동네 고유의 모습을 지킬 수 있지 않을까 생각도 들었어요. 건축주 역시 동네 모습이 너무 쉽게 변하는 건 좋지 않다고 저희 생각에 동의해주신 덕에 기존 모습을 지키면서 규모를 최대화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고 했어요. 쉽지 않은 일이었죠.

 

소수건축의 김미희 소장 ⓒBRIQUE Magazine
소수건축이 포착한 성수동의 풍경 ⓒSOSU ARCHITECTS
소수건축이 포착한 성수동의 풍경 ⓒSOSU ARCHITECTS

 

내가 사는 집 vs 빌려주는 집

집을 지을 때, 건축주가 실제 거주하는지 여부가 설계 방향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돼요. 거주가 아니라 임대나 분양만을 목적으로 집을 지으려고 하는 건축주의 건물은 자산 가치에 초점을 맞추다보니 아무래도 집 짓는 정성이 부족할 수밖에 없거든요. 앞서 말한 집 주변의 새 건물은 건축주가 다른 지역에 살면서 임대만 관리한다고 알고 있어요. 아마 그래서 그렇게 지어진 거 아닌가 싶기도 하죠. (웃음) 그와 달리 ‘3/1(일삶)빌딩’ 건축주는 자신이 살던 동네에 내가 계속 살 집을 짓는 상황이라, 집을 제대로 지어 본인들도 편안하게 살면서 동네에 피해가 가지 않게 하고 싶어 하셨고요. 더불어 세입자를 좋은 이웃으로 만들이고자 하는 분들이었습니다.

 

건물의 꼭대기층에 있는 건축주의 집 ⓒKyung Roh

 

성수동의 매력, 일과 삶이 공존하는 곳

저희가 처음 사무소를 꾸릴 때 성수동을 선택한 이유는 동네가 갖는 특유의 매력 때문이었어요.학창시절을 주변에서 보내서 익숙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이 지역이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모습이 정말 좋았어요. 성수동의 매력 중 하나는 일과 삶이 공존한다는 점이에요. 도시가 건강하려면 일과 삶이 공존하면서 끊임없이 상호 작용해야 해요. 그래야 활기가 생기거든요. 저희는 활기찬 성수동의 모습이 참 좋아요. 지금은 서웊숲 쪽으로 사무실을 옮겨서 상대적으로 조용한데, 개소 초기의 성수역 주변 분위기는 아직도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어요. ‘3/1(일삶)빌딩’은 일과 삶이 공존한다는 점에서 도시의 축소판이자 성수동의 모습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죠. 그래서 이 건물에서, 그 활기를 어떻게 기획할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저층부의 근린생활시설에 일시적으로 사람들이 머물다 가는 카페나 음식점보다, 사람들이 상주하는 사무실을 계획하자고 제안했어요. 사람들이 살고, 일하면서 생기는 활기가 자연스럽게 건물에서 뿜어져 나오길 바랐죠.

 

소수건축의 고석홍 소장 ⓒBRIQUE Magazine
ⓒKyung Roh

 

“동네가 훤~해졌네!” 동네에서 환영받는 집

이 집을 지으면서 골목에 있는 동네 주민분들을 거의 다 만난 것 같아요. 대부분 신축에 관심이 있으셔서 1층에 작게 차려놓은 현장 사무실이 마치 동네 사랑방 같은 곳이 되었거든요. 건물이 노후해서 다들 조금씩 집에 문제가 있으니까 시공사 현장 소장님과 상담도 하시고, 남은 자재를 가져가셔서 집수리에 쓰시기도 하고요. 아마 동네 민원을 잠재우는 현장 소장님의 비법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웃음) 주민들이 전해준 이야기 중 가장 기분 좋았던 건 동네가 훤해졌다는 말씀이었어요. 두 개의 가로에 만나는 삼거리에서 건물 하부가 비워지면서 답답한 느낌이 해소된 거죠. 옛날 집은 담장과 대문으로 꽉 막혀 있었거든요. 옛날 집보다 4개층이나 높아졌는데도 불구하고 거부감보다 호감을 표시하시는 분들을 보며 그제야 안심했어요. 비로소 동네에서 환영받는 집이 된 거니까요. 건물 하나가 동네를 바꿀 수는 없겠죠. 하지만 ‘3/1(일삶)빌딩’이 일과 삶이 공존하는 건물로서 지속해서 동네에 활기를 불어넣고 성수동의 기억을 상기시키는 집으로 남았으면 해요.

 

ⓒKyung Ro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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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동 건축가들! ⓒBRIQUE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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