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은산 자료. New York Times
‘기억극장(아트북스, 2017)’, ‘애완의 시대(문학동네, 2013)’, ‘비밀 많은 디자인씨(양철북, 2010)’ 등을 통해 사회적인 분석과 미학적인 시선이 교차하는 영역에서 작업해온 김은산 작가가 ‘스페이스 리그램space regram’이라는 연재로 <브리크brique> 독자와 대화의 문을 엽니다. 인문학과 영상문화이론을 전공한 그는 인문서점 운영과 사회주택 기획, 지역 매체 창간 등을 통해 공간과 사람을 매개하는 일에 관심을 갖고 다양한 활동을 지속해 오고 있습니다. 한 컷의 사진을 매개로 도시인의 일상을 돌아보는 그의 독특한 시선을 통해 독자 여러분도 짧은 사색의 시간을 가져보시길 기대합니다.
팬데믹의 공포 한 가운데 놓여있던 작년 5월, 뉴욕타임즈 조간에는 흥미로운 사진이 실렸다. 당시 뉴욕과 마찬가지로 이동제한(록다운) 상태에 놓인 파리의 텅 빈 거리를 촬영한 이탈리아 사진가 마우리치오 리마Mauricio Lima의 사진이 실린 것이다. 리마의 사진은 한 세기 전 파리의 텅 빈 거리를 촬영한 으젠느 앗제Eugène Atget의 사진에 대한 일종의 오마주hommage였다.
리마는 앗제가 촬영한 파리 6구 세느 가의 모퉁이, 몽마르트로 올라가는 계단, 세르방도니 가 14번지, 노트르담 성당, 부르도네의 막다른 골목을 다시 찾았고 인적이 사라진 거리를 카메라에 담았다. 그곳엔 앗제의 사진에서 보았던 것과는 또 다른 정적이 감돌고 있었다.
알려진 대로 앗제는 1850년대부터 시작된 오스만Baron Georges-Eugène Haussmann 남작이 주도한 파리 개조사업으로 사라져가는 파리 시가지의 모습을 기록했다. 앗제는 남 앞에 좀처럼 자신을 드러내려 하지 않는 성격과는 대조적으로 사라져버릴 옛 파리의 모습을 남기겠다는 자신만의 야심을 가졌고, 파리와 교외의 건축물을 집요하게 사진에 담았다.
인적이 끊긴 새벽 거리의 차가운 공기와 가스등 불빛에 빛나는 골목의 포도를 담은 앗제의 사진에서 초현실주의자들은 저물어가는 한 세기와 세기말의 분위기를 감지했고, 당시 앗제가 공식적인 사진가로 활동한 적이 없음에도 그의 작업을 높이 평가했다.
앗제의 사진이 가진 진가를 제대로 읽어낸 것은 비평가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이었다. 앗제의 사진을 두고 벤야민은 “그의 사진들은 어떤 징후를 드러내는 것 외에 아무런 다른 목적도 갖고 있지 않다”고 평했다. 그렇다면 그 징후는 무엇이었을까.
사람의 흔적과 어떤 정취가 사라진 공허한 세계의 모습에서 벤야민은 ‘아우라aura의 소멸’을 예감했고 이를 현대의 시작이라고 보았다. 어떻게 정의를 내린다고 해도 여전히 모호한 ‘아우라’라는 용어를 끌어들이며 벤야민은 여러 논란을 낳았으나 이를 통해 현대 사회의 중요한 특징을 묘사하려 했다.
아우라는 어떤 대상이나 현상을 지칭하는 것이라기보다 인간과 그를 둘러싼 환경이 한 덩어리를 이루며 발산하는 일종의 ‘분위기’를 말한다. 자연과 인간, 인간과 사물 사이의 어떤 지속적인 관계성을 이르는 말이다.
아우라의 파괴는 그러한 관계성의 변화를 의미한다. 벤야민은 그 중심에 어떤 단절과 간극, ‘소외(entfremdung)’가 있다고 보았다. 앗제의 사진에서 인간과 세계 사이의 ‘유익한’소외를 보았다고 말하며 벤야민은 양가적인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벤야민은 앗제의 사진에서 질식할 것 같은 19세기의 종말을 보았으나 새로운 세기가 가져올 변화에 대해 낙관하지는 않았다. 앗제가 그토록 옛 파리의 모습에 집착한 것도 그것을 감지했기 때문일까.
COVID-19가 전세계적으로 확산되며 자발, 비자발적인 자가격리와 강제적인 이동제한이 시행되면서 지구 곳곳에서 거리와 고속도로, 유적지와 관광지 등이 텅 비어가는 모습을 목격했다. 상황은 조금 달랐지만 우리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명동 도심이 텅 비어가고, 종로 일대의 가게들이 비어가는 것을 지켜보아야 했다. 학교는 문을 닫고, 공항은 폐쇄되고, 거리는 한산해졌고, 저녁이 되면 사람들은 일찌감치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그동안 인간들의 활동의 배경이 되었던 환경과 구조물들이 전면에 드러나는 모습에서 무엇을 보았던 것일까. 그것이 이제 막 시작된 변화인지 아니면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 돌이킬 수 없이 변해버린 것들이 이제서야 모습을 드러낸 것인지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어떤 단절과 간극, 어떤 관계성의 변화가 있었음을 감지했던 것은 아닐까.
COVID-19가 가져온 여러 변화들 앞에서 보통의 사람들이 느끼는 일상의 불안이나 두려움, 삶의 변화를 바라보는 감정들은 거대한 파도 앞에 가벼운 포말처럼 그 존재가 잘 드러나지 않는 것 같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처럼 우리 각자가 느끼는 감정과 정서, 그것의 연결과 결합 또한 새로운 시간대의 전염원일 수도 있지 않을까.
‘기분’이라는 우연적이고 일시적인, 날씨만큼이나 복잡하고 예측 불가능하지만 너무나 분명한 영향을 주는 또 다른 징후를 통해 ‘21세기’라는 거대한 시간과 경제와 문화의 구조에 다가서려는 이유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공간의 변화가 놓여있다. 오스만 남작이 주도하는 파리 개조 사업으로 새롭게 열린 시가지의 스카이라인을 통해 20세기라는 새로운 세기가 엿보였듯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