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보다, 향香

[Scent in Space] ④이원희 베러댄알콜 대표와의 ‘향중토크香 中 talk'
ⓒBRIQUE Magazine
에디터. 김윤선  사진. 최진보  자료. 베러댄알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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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러댄알콜은 2013년 조향사 이원희가 시작한 향 전문 브랜드다. 시각디자인을 전공하고 광고대행사 아트디렉터로 일했던 그녀는 취미 삼아 시작했던 조향의 매력에 빠져, 브랜드를 창업하기에 이르렀다. 누군가의 바뀐 샴푸 향을 금방 알아채고 맛과 향에 유달리 예민한 사람이었지만, 조향을 직업으로 삼을 줄은 몰랐다. 향으로 무언가를 하는 브랜드를 만들어야겠다고 마음먹은 배경에는 목적 자체가 순수한 일을 하고 싶었던 까닭도 있다. 이를테면 ‘좋은 향 만들기’ 같은… 단순한 명제가 빛나는 일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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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러댄알콜BETTER THAN ALCOHOL’이란 인상적인 이름은 향이 술만큼이나 ‘분위기’를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여겨 붙인 이름. 그 이름에 걸맞게, 창업 초기 오픈했던 매장은 ‘바Bar’ 콘셉트로 꾸미기도 했다.
따뜻한 뱅쇼 한 잔이 생각나는 어느 겨울날, 경의선 숲길 뒤 한적한 동네에 자리 잡은 작업실 겸 쇼룸에서 이원희 대표를 만나 향과 공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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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에 향을 더하는 것들

베러댄알콜은 공간에 향을 더하는 다양한 제품을 선보여 왔다. 주요 제품군은 소이 왁스 캔들과 리드 디퓨저, 리본 타입 디퓨저, 왁스 태블릿, 룸 스프레이, 섬유 탈취제, 차량용 방향제 등이다. 리본 타입 디퓨저인 ‘홀드 미 타이트Hold Me Tight’와 차량용 방향제 ‘센트 드롭Scent Drop’은 베러댄알콜만의 독창성이 드러나는 제품이다. 홀드 미 타이트는 승용차나 문고리, 가구 손잡이 등에 매달아 간편하게 향을 즐길 수 있다. 센트 드롭은 콘크리트 오브제에 직접 오일을 묻혀 사용하는 제품으로 차량 송풍구에 끼우거나 대시보드 등에 올려놓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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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제품은 리드 디퓨저다. 얼마 전 선보인 디퓨저 보틀은 블로우 공법(입으로 부는 방식)으로 뽑아낸 간결한 형태의 유리병에 수공예로 제작한 콘크리트 홀더를 씌우고, 섬유 스틱을 꽂아 사용하는 방식이다. 건축과 공예를 바탕으로 한 소품 브랜드 ‘그레이 스펙트럼GREY SPECTRUM’과 협업해 만들었다.

“디퓨저 보틀은 일반적으로 시장에 나와 있는  기성품을 많이 사용합니다. 하지만 향을 담는 병의 역할뿐 아니라, 인테리어 소품으로서 고급스럽게 공간에 녹아드는 베러댄알콜만의 보틀을 만들고 싶었어요. 저에겐 큰 숙원 사업이었는데, 아주 간결하고 덤덤한 형태의 아름다운 보틀이 나왔어요. 대량생산보다는 수공예적인 느낌을 추구하는 베러댄알콜의 방향성이 잘 반영되었습니다.”

 

ⓒBETTER THAN ALCOH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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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을 만드는 브랜드라고 하면 으레 향수를 떠올리기 마련. 향수 제품이 없다는 점이 의아했다.

“브랜드를 처음 론칭했을 때는 머지않아 향수를 제작하게 될 줄 알았어요. (웃음) 하지만 일을 하다 보니 개인적인 영역에서만 느낄 수 있는 향수보다는 공간과 함께 어우러질 수 있는 제품을 만드는 일이 재미있었어요. 제품 구성과 용기 디자인, 패키지를 만드는 일련의 과정들이 흥미로웠죠. 무엇보다도 눈에 보이지 않는 향을 공간에서 눈에 보이는 형태로 표현할 수 있다는 점이 저에게는 더 매력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올해로 8년 차에 접어들면서 짧지 않은 시간 동안 향 트렌드의 변화와 흐름도 느껴왔을 터. 이전에는 캔들 제품을 찾는 이들이 많았다면 요즘은 공중에 뿌리는 스프레이 타입을 선호하는 추세라고 한다. 하지만 그가 추천하는 것은 향초나 탈취 제품. 탈취와 소취를 제대로 해야만 좋은 향을 온전히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어느 광고 문구처럼, ‘화장은 하는 것보다 지우는 것이
중요하니까’.

“요즘은 스프레이 타입을 많이 찾으시는데, 소취가 된다는 실용적인 관점에서 캔들을 더 추천해드리는 편이에요. 좋은 향을 더 잘 즐기기 위해서는 좋지 않은 향을 없애는 것 또한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비단 실내 공간뿐만 아니라 차량에서도 마찬가지다. 좋은 향기를 즐기기 위해서는 차량 내부 환기가 우선. 차량 내부는 공간이 좁고 한번 냄새가 배면 꽤 오래가기 때문에 방향제 사용 만족도가 가장 떨어지는 공간이기도 하다. 불쾌한 냄새가 뱄을 경우, 이를 덮기 위해서 강한 방향제를 사용하는 것보다는 옅은 향이 포함된 탈취제를 써서 먼저 냄새를 없애주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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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 간 향기

얼마전 종료한 한가람 디자인 미술관에서 열린 ‹매그넘 인 파리› 전시에서도 베러댄알콜의 향기가 쓰였다. 파리의 모습을 다양한 스펙트럼을 통해 보여주기 위해 시인, 작곡가, 공예가, 영화감독, 시각 디자이너, 조향사 등이 참여한 ‘아티스트 컬래버레이션’ 프로젝트를 통해 베러댄알콜이 전시 공간의 조향을 맡은 것. 전시는 총 12개 파트로 구성되었는데, 전시 초반 전쟁과 전쟁 후의 혼란스러운 분위기의 작품으로 구성된 공간에서는 우디 계열의 스모키 향인 ‘포기 나잇 인 파리Foggy Night In Paris’를, 전시 후반 패션 사진들을 모아 놓은 공간에서는 화려하고 요란한 느낌의 플로럴 계열 향 ‘써니 데이 인 파리Sunny Day In Paris’로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대조적인 분위기의 전시 공간에 맞춰 ‘낮과 밤’을 주제로 전혀 다른 느낌의 향기를 제안했다.

 

ⓒBETTER THAN ALCOH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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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특정 다수의 사람이 모이는 전시 공간인 만큼 호불호가 없으면서도 전시 콘셉트에 맞는 향을 만들어달라는 주문에도 충실해야 했다. 주로 집이나 사무공간 등 개인 공간에서 사용하는 제품을 만들어왔지만 300평의 대공간에 쓰일 향을 만들면서 처음으로 발향 기기도 사용해봤다. 디퓨저나 스프레이 형식이 아니라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설치해 가습기와 같은 원리로 분사하는, 공조를 활용한 방식이다. 발향이 공간의 공조 상태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조향사뿐 아니라 엔지니어가 지속해서 방문해 관리하고, 현장에서 일일이 조율하는 과정을 거쳤다. 

“무엇보다도 전시 동선을 고려해야 해서 발향 기기를 설치할 수 있는 위치가 무척 제한적이었습니다. 특정 위치에 향이 약해진
것 같은 느낌이 들면 그 위치의 공조 상태를 확인해 원하는 강도가 나올 때까지 계속해서 발향 강도를 조절하는 과정을 여러 번 거쳤어요. 전시가 계속되면서 사람이 많아지니까, 향을 적게 써도 향이 많이 나는 상황이라고 하더라고요. 공간의 환경에 따라 향기 농도가 계속해서 변하거든요.”

작년 9월부터 열리고 있는 전시는 향에 관한 관람객들의 만족도가 높다. 전시를 관람한 후 향 제품을 구매하기 위해 직접 베러댄알콜을 찾는 이도 상당수. 미술관 내 아트숍에서는 이미 전시 공간에 쓰인 향으로 만든 캔들을 비롯해 디퓨저와 왁스 태블릿, 룸 스프레이 등을 판매하고 있고, 1월부터는 베러댄알콜에서도 제품으로 출시해 판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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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변화시키는 힘

조향 작업을 할 때 그가 가장 큰 영향을 받는 것은 계절과 날씨 같은 일상적인 것들. 그래서인지 베러댄알콜의 향은 계절감을 고려한 향이 주를 이룬다. 향 이름 역시 일상적이고, 그 이름만 들어도 향이 직접적으로 느껴지도록 단조로운 단어 두세 개를 조합해 간결하게 짓는다.

“계절이 바뀔 때의 냄새, 가을에 비가 왔을 때 비에 젖은 은행잎의 향을 좋아합니다. 묘하게 향긋한 느낌이 있거든요. 그 향을 만들어보고 싶어서 혹시 그런 향료가 있는지 찾아보기도 했어요. 4월 즈음 남산에 가는 401번 버스를 타면 거짓말처럼 라일락 향기가 버스에 확 들어와요. 그런 것들로부터 영감을 받아 ‘눈 떠보니 봄이네’, ‘초여름이 좋아’ 같은 향도 탄생했습니다.”

최근 향 관련 용품이 다양해지고 시장이 확대되면서 향에 대한 사람들의 시각이 많이 열리고, 개인의 취향이 중요해지고 있음을 느낀다는 그는 일상 속에서 후각이 미치는 영향을 강조했다.

“향은 사람들이 행복감, 만족감, 또는 불쾌감을 느끼게 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 같아요. 이제는 시각만큼이나 후각의 중요성을 많은 사람이 인지하고 있다는 걸 느낍니다. 각자의 취향에 맞는 향을 잘 알고, 내가 싫어하는 향이 나지 않도록 하는 것. 우리의 생활과 공간 속에서 후각을 위한 그 두 가지만 잘 챙겨도 우리의 일상이 더 좋은 기분으로 채워질 거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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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러댄알콜이 전하는 향 제대로 활용하는 팁 다섯 가지

 

| 공간별로 쓰기 좋은 향 제품
자주 가지 않아도 한번 가면 오래 머무는 공간(침실 등)에서는 캔들을, 짧게 머물러도 자주 다니는 공간(화장실, 현관 등)에서는 디퓨저를 추천.

| ‘도시의 집’에 어울리는 향
각자의 취향이 가장 중요하다. 맡았을 때 내 코가 좋아하는 향!

| 에센셜 오일 vs 향장향, 다른 점이 뭔가요?
에센셜 오일은 천연 오일, 향장향은 향을 위해 만들어진 일종의 합성 향료를 말한다. 에센셜 오일은 테라피 효과가 있는 반면, 향장향은 오로지 향을 내는 데 그 목적이 있다.

| 캔들 깔끔하게 끄는 방법
‘웍 디퍼’ 등의 전용 도구를 이용해 타고 있는 심지를 녹아 있는 왁스에 적셔서 끄는 것이 가장 좋다. 그래야 연기가 발생하지 않기 때문. 전용 도구가 없다면 스테인리스 젓가락을 이용해도 된다.

| 미세먼지의 계절, 실내 공기 질과 향기 관리법
조향사도 이 부분은 어렵다. 캔들을 태우고 난 후에는 반드시 환기를 해야 하지만, 미세먼지가 많은 계절에는 이마저도 힘든 일. 최소한의 환기는 필요하겠지만 그게 어려울 땐 탈취에 집중하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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