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과 ‘길’ 사이

[Scent in Space] ⑦윤한진 푸하하하 프렌즈 소장이 설계한 '향'의 언어
ⓒFHHH friends
에디터. 이현준  자료. 푸하하하프렌즈

 

수토메 아포테케리의 쇼룸 겸 작업실은 기존 주거 공간을 리모델링해 만든, 작지만 섬세한 구획과 디자인이 반짝이는 공간이다. 공간을 구현한 주인공은 홍윤경 대표의 제부이자, 젊은 건축가로 큰 활약상을 보이고 있는 ‘푸하하하 프렌즈’의 윤한진 소장이다. 여동생과 윤 소장 부부는 그 당시 ‘수토메 스테이’의 1층에 신혼집을 두고 살며 매일 함께 맥주 한 잔을 나눴을 만큼 홍 대표와 각별한 사이다. 아닌 게 아니라 윤한진 소장만큼 수토메 아포테케리라는 브랜드를 잘 알고 있는 사람도 없다고 홍 대표는 말한다.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놓칠 수 없어 윤 소장에게 직접 물었다. 사려 깊은 그는 푸하하하 프렌즈 특유의 익살, 유쾌하고 위트 있는 통찰을 녹여 답변해 주었다. 다음은 윤 소장과의 서면 인터뷰다.

 

ⓒFHHH friends

 

수토메 공간 디자인을 위한 구상 과정은 어땠나요?
저는 망리단길이라고 불리는 포은로 일대를 혐오하는 사람 중 한 명이기도 하고 평소 워낙에 깔끔하고 고급스러운 사람인데 현장은 낡고 허름하고 비좁았고 정체 모를 냄새까지 나는 통에 영 내키지 않았던 게 사실입니다. 올라가면 머리가 부딪치는 계단에 서서 머리를 천장에 붙인 채로 천진난만한 표정을 지으며 “야, 완전 홍콩 같지 않아?”라고 물어보는 처형(홍윤경 수토메 대표, 이하 처형)을 보며, ‘그래 이 사람은 죄가 없다. 공수래공수거. 내게 강 같은 평화.’ 

“처형아, 맞아. 완전 홍콩 같아”라고 대답해주었습니다. 

 

ⓒBRIQUE Magazine

 

가장 염두에 둔 공간의 특징은 무엇이었나요?
코인노래방, 편의점, 식당 등이 얽혀있는 오래된 상가건물 2층에 쇼룸을 계획하면서 수도원의 이미지가 떠올랐습니다. 세속의 풍경 안에 나 홀로 세상과 등지고 있는 수도원 같은 장소가 되면 어떨까 생각해 보았지요. 
처형은 모서리가 많은 사람이고 일반인의 이해 범주에서 한참 벗어나 있는 초인(폐가를 홍콩이라고 했다니까요)이기도 해, 어느 정도는 세상으로부터의 격리가 필요하지 않을까···. 그런 면에서 수도원의 이미지와 수토메 아포테케리는 서로 제법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습니다. 계단과 쇼룸 그리고 조향사의 작업실이 좁고 긴 길 그 자체입니다. 실의 개념이 여기엔 없어요. 깊숙이 들어갈수록 은밀해지고 엄밀해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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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토메 공간 설계 시에 가장 어려웠던 문제는 무엇인지, 그리고 어떻게 극복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좁은 공간에 채광이 나쁘고 천장이 낮고 2층에 위치해 접근도 불리하고··· 여러 악조건이 있었습니다만, 그런 것들을 굳이 덮으려고 하면 단점이 많은 공간이 될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악조건들을 숨기지 않고 드러나도록 해, 마치 처음부터 의도되었던 것처럼 공간을 만들면 그건 나름의 멋이 되지 않겠어요? 사기는 사기인데 고급 사기죠. 결국 극복하려고 노력한게 없다는 얘기를 저는 하고 있는 걸까요? 그런 것 같습니다. 

 

ⓒFHHH friends

 

공간 안에는 물론 공간 밖 근경까지 향기가 가득합니다. 공간에서 의 발산이나 표류를 위해 특징적인 설계가 있었다면 무엇인가요? 
디퓨져들을 숨겨두는 벽체를 계단실에 만들어 두었어요. 천장의 광원이 어디에 있는지 알기 힘든 간접적인 조명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것처럼 향도 같은 속성일 거라 생각했어요. ‘어디서 나는 향인지 모르겠지만 이 골목에만 들어서면 좋은 향이 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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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님이 생각하시는 공간 속 이란 어떤 역할과 의미인가요? 
인공적인 향을 가미해서 공간을 만드는 시도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지만, 냄새는 공간에 감정을 담는 중요한 요소임을 알고 있어요. 시각 따위는 죽어도 못하는 후각의 고유한 영역일 거에요. 설계하면서 그 공간의 냄새를 상상해 보는 건 저에겐 중요한 의식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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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제 난간에 책상을 펴서 고정할 수도, 안 쓸 땐 들어 올려서 벽에 붙여둘 수도 있는 설계가 참 흥미로우면서도 실용적입니다. 이 밖에도 공간의 특징적인 디테일들이 있다면. 
수토메 아포테케리의 공간은 ‘실’이 아니라 ‘길’이잖아요. 그래서 방향성이 중요했어요. 내부에 난간이 있는 이유도 그러한 이유고 테이블의 배치도 길을 따라 이어져 있는 거고요. 계단에서 출발한 바닥의 화강석도 코너를 돌 때마다 벽체를 감싸고 돌아가는 나름의 흐름이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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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좋아하는 수토메의 향을 꼽아주세요. 
‘제부 에디션’. 예전에 처형이 만들어준 제부 에디션이 있어요. 꿉꿉하고 눅눅한, 어디에나 있을 법하지만 있을 수 없는 향이었어요. 

 

ⓒFHHH frien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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