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부부의 하동살이

지리산과 섬진강이 맞닿은 곳에 지은 도시 사람의 시골집
ⓒKyung Roh
에디터. 박경섭  자료. 일상건축사사무소 ILSANG ARCHITECTS

 

6년 차에 접어든 부부의 하동살이. 아내는 “하동에서의 삶이 이젠 안정기에 접어든 것 같다”고 말했다.
전형적인 도시 사람이었던 부부가 지리산과 섬진강이 맞닿은 하동군 화개골과 연을 맺고 뿌리내리기까지, 지난 수 년의 시간을 그들의 집 ‘삼연재然緣姸’는 ‘세 개의 연’을 통해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었다.

 

ⓒKyung Roh

 

그럴 연 然 – 도시 속 일상에 지친 그들, 하동을 떠올리다.

“결혼 전에 처음 왔던 여행지가 하동이었어요. 화개골은 산과 강, 계곡이 모두 있어 풍경이 다양해요. 덕분에 사계절 내내 꽃이 피는 동네에요. 봄과 여름에는 산과 들판에 온갖 꽃이 자라나고, 가을에는 감이 열리고 겨울에는 눈꽃이 피어요.” – 아내

2014년 무렵, 부부의 일상에 균열이 찾아왔다. 남편은 당시 입시 컨설팅 사업을 하고 있었다. 모든 일이 그렇지만, 사업의 부침은 일상 전반에 큰 스트레스를 안겼다. 아내는 안산에서 국어 교사로 근무하였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고 개인적 고민 또한 깊어지면서 가르치는 일에 관한 회의감이 찾아들었다.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쳤을 무렵, 부부는 하동군을 떠올렸다. 둘이 처음으로 여행을 갔던 하동의 풍경이 일상의 균열 사이로 파고들었다.

 

ⓒKyung Roh

 

부부는 6개월씩 번갈아가며 하동에서 머물렀다. 당장 생계를 해결해야 하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었지만, 부부로서의 삶뿐만 아니라 개인으로서의 일상 또한 하동에 녹아들 수 있을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서로에게 반년간의 시간을 벌어주었다.

하동으로의 귀촌을 결정하고 세간을 정리했다. 일상을 영위하기 위한 최소한의 짐만을 챙겨 하동으로 떠났다. 단 둘의 삶을 위해 부부는 어떻게 채울까가 아니라, 어떻게 비울까를 고민했다. 부부는 마을에 완전히 뿌리를 내려도 되겠다는 확신이 들면, 미리 봐둔 터에 집을 짓기로 했다. 하동에서 지낸 지 2년이 넘어가던 무렵, 마침내 부부는 그들만의 집을 짓기로 마음먹었다. 다만 곧장 공사를 시작하지는 않았다.

부부는 거의 매일 집터를 방문했다. 산책을 나와 잠시 들리기도 하고, 시간을 내어 날씨와 시간대에 따라 터의 풍경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살폈다. 매일같이 터에 말을 걸고, 때에 따른 계절감의 추이를 두 눈에 아로새기며 1년을 보냈다. 그때의 노력은 훗날 어느 방향과 위치에 창을 낼지, 그래서 어떤 창밖 풍경이 집 안으로 들어오게 할지 정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부부의 눈 앞에는 집터에 들어설 삼연재의 모습이 자연스레 그려졌다.

 

ⓒKyung Roh
ⓒKyung Roh

 

인연 연 緣 – 하동에서 쌓은 인연으로 집을 짓다.

“저는 이 집을 저와 남편 둘이서 지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하동에 와서 연을 맺은 모든 분의 도움이 있어서 무사히 지을 수 있었어요.” – 아내

삼연재는 부부의 하동살이뿐만 아니라 공부방 아이들의 배움과 경험을 위한 공간이기도 하다. 1층과 2층을 완전히 분리했다면 사용 가능한 면적이 늘어났겠지만, 부부는 1층 천장을 터 거실의 층고를 높이고 공간의 개방성을 높였다. 삼연재 한 면을 가득 채운 책장은 장서를 보관하는 동시에, 아이들이 경험의 폭을 넓히는 훌륭한 배경으로 기능한다. 삼연재를 설계하고 시공한 일상건축사사무소의 김헌 소장은 ‘감각의 확장’을 삼연재의 핵심으로 꼽았다.

횡단면 ⓒilsang architects
종단면 ⓒilsang architects
ⓒKyung Roh

 

“이 집은 건축주가 이미 설계 가이드라인을 세세히 잡아 놓은 경우였어요. 내부 설계를 논의할 때, 동네 아이들의 공부방으로도 쓰일 거라는 이야기를 듣고 아이들이 주변 지역 건물에서는 느낄 수 없는 공간감을 느낄 수 있는 곳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지식 차원에서의 공부뿐 아니라 감각 영역에서의 체험과 배움도 이뤄질 수 있도록요. 하동군 화개골은 풍광이 건물을 완성하는 느낌을 주는 지역이지만, 건축주 부부의 의지가 더해져서 집 주변 조경에도 신경을 많이 쓸 수 있었어요. 아이들이 집이라는 영역 안에서 느낄 수 있는 감각과 자연에서 체험할 수 있는 감각은 다른 거잖아요. 건축주가 직접 나무를 사다 심고, 현장소장 역할을 겸하기도 했고요. 저는 결국 좋은 건축주야말로 좋은 건축물이 탄생하는 핵심이라고 생각해요.” – 김헌 소장

 

ⓒKyung Roh

 

삼연재에 관한 부부의 구상은 일상 건축사사무소 김헌, 최정인 두 소장을 만나면서 보다 구체화되었다. 부부의 가이드라인을 바탕으로 건축가들은 효율적인 공간의 구성과 형태, 상징적 공간의 효과성 극대화를 고민했다. 만남이 거듭되면서 집이라는 공간의 본질이 무엇이어야 하는지가 공통의 언어로 다듬어졌다. 무엇보다 공간은 그 순간 머무르고 있는 이가 주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 부부와 건축가가 바라보는 집의 방향은 그렇게 일치되었다.

하동에 내려와 집을 짓기까지, 부부는 크고 작은 일상의 변화를 겪어야 했다. 각각 녹차밭과 펜션에서 일자리를 얻어 밥벌이를 꾸려나가기도 했고, 동네 어르신들과 친해지며 마을에서 사는 방법을 배우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만나고 알게 된 모든 이들로 인해 집은 화개골에 지어질 수 있었다.
부부는 하동에서의 삶을 꿈꾸고 실현하는데 손을 뻗어준 이들 모두에게 삼연재의 이름 한 글자를 내어주었다. 삼연재는 부부의 삶의 터인 동시에, 공부방 아이들의 배움터이자, 화개골 마을 터를 이루는 일부이기도 한 것이다.

 

ⓒKyung Roh

 

고울 연 姸 – 부부가 삼연재에서 함께 그리는 일상

“집을 짓기 위해 남편이 고민을 많이 했어요. 어느 날 이런 집을 짓고 싶다고 이야기를 꺼냈는데, 제가 하루를 어떻게 보내는지, 습관과 동선까지 고려했더라고요. 고마웠죠. 그런데 살다보니 더 고마워지더라고요. 집 전체가 잘 맞는 옷처럼 편해서 어느 한 군데 가장 좋아하는 공간이라고 말하기가 힘들 정도예요.” – 아내

부부는 삼연재가 각자의 취향과 생활 습관에 맞춘 공간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도록 만들었다. 2층에는 남편이 주로 쓰는 서재를 배치했다. 1층에 하나 있는 방은 온돌을 넣어 몸이 찬 체질인 아내를 위한 구들방으로 만들었다. 하루 중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부부가 각자의 사적 공간과 시간을 충분히 가질 수 있도록 고려한 결과이다. 반신욕을 즐기는 아내를 위해 2층 욕실 욕조 옆에는 큰 창을 내어 지리산 풍경 속에서 하루를 마무리 할 수 있도록 했다.

 

ⓒKyung Roh
ⓒKyung Roh

 

“비운다는 것은 욕심을 버린다는 것과 같다고 생각해요. 귀촌해서 집을 짓고 산다고 하면, 많은 분이 결과만 바라보세요. 멋있는 풍경 속의 좋은 집 안에서의 삶 정도로요. 지역에서의 삶을 꾸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주어진 것에서 감사함과 행복함을 찾을 줄 알아야 해요. 도시에 있을 때 내가 어떤 일을 했고, 직위가 어땠는지에 매몰되어 지내서는 안 돼요. 지금 내가 사는 이곳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바라볼 줄 알아야 하는 거죠.” – 남편

부부는 집을 지으면서 그간의 삶에 대해 돌아보게 되었다고 말하였다. 삼연재를 설계하고, 내부 공간을 어떻게 비워낼지 고민하는 과정. 그 기간은 부부에게 있어 그간 단둘이 보내온 삶의 궤적을 돌아보고 앞으로의 삶의 방향을 조정하는 시간이었다. 서울에서 하동으로 내려올 때, 한 차례 정리한 세간을 다시금 정리하였다. 한 달여간 무엇을 버릴지, 그래서 공간을 어떻게 비울지 차근차근 가다듬었다.

비워냄으로써 부부의 오롯한 일상을 담아낸 곳. 앞으로도 삼연재는 부부가 살아갈 하동에서의 삶을 품어내기 위해 비워지고 또 비워질 것이다.

 

ⓒKyung Roh
ⓒKyung Ro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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