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김윤선 자료. 네임리스 건축 NAMELESS Architecture
경기도 광주 노곡리의 한 마을, 이전에 보지 못한 전혀 새로운 집이 나타났다. 세상의 잣대보다 스스로 원하는 삶의 방식을 찾고 싶었던 건축주. 그리고 그 삶의 가치를 고스란히 공간으로 풀어낸 건축가가 만나 외딴 숲에 집을 지었다. 이 집은 대체 어떻게 탄생했을까? 집을 설계한 네임리스 건축 나은중 소장에게 세상에 없던 집, 그 탄생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집 주변이 온통 숲이네요. ‘아홉칸집’이 위치한 노곡리는 어떤 곳인가요?
아홉칸집은 경기도 광주시 노곡리 작은 마을에 자리 잡고 있어요. 파란색 지붕과 샌드위치 패널로 된 가설 건물들이 마구 놓여있고 약간은 키치한, 전통적인 느낌의 건물들이 연속된 풍경이 있는, 전형적인 서울 근교의 모습이 있는 곳이에요. 그런데 시골길을 지나 대지에서 바라보면 그런 인공 구조물이 하나도 안 보여요. 처음에 현장을 답사하러 건축주와 함께 갔는데, 강원도 산골에나 들어가야 볼 수 있는 첩첩산중 산이 겹쳐진 풍경만 펼쳐지더라고요.
건축주는 어떤 분들이었나요?
유치원에 다니는 자녀가 둘 있는 30대 후반의 젊은 부부예요. 신기했던 건 동네에 연고가 전혀 없다는 점이었죠. 도시에 살던 젊은 사람들이 왜 외딴 시골로 이주하려고 하는지, 처음에 그 속내가 궁금했었어요.
저도 그 이유가 궁금해지는데요. 건축주는 왜 이런 시골 작은 마을에 터를 잡고 살려고 했던 걸까요?
건축주는 당시 동탄 신도시의 한 아파트에서 살고 있었어요. 원래 일본에서 10년 넘게 살다가 직장때문에 한국으로 돌아와 아파트에 살게 되었는데, 아파트 생활이 너무 불편하고 힘들었대요.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차를 타고 지나가다가 서울 근교에 이런 한적한 동네가 있다는 걸 알게 됐고, 구글 지도를 보면서 집 주변이 전부 숲으로 둘러싸인 이 땅을 찾은 거예요.
구체적으로 어떤 집을 지으려고 하셨어요?
세부적인 요구 사항을 말하기에 앞서 먼저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어요. 그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취향이나 삶의 방식에 대해 많은 대화를 나누었어요. 아내분은 화가인데, 두 아이를 출산하고 아파트에 거주하면서 그림 작업을 거의 못 하고 있는 상황이라 작업실이 필요했고요. 그리고 땅의 풍경이 너무 좋아 집을 지을 결심을 한 만큼 주변 풍경과 어울리는 집이기를 바랐어요.
건축주는 어떻게 네임리스 건축에 설계를 의뢰하게 되었나요?
‘삼각 학교’ 프로젝트를 보고 저희를 찾아왔다고 했어요. 학교를 이렇게 설계할 수도 있구나, 학교도 이렇게 달라질 수 있구나, 라고 생각했대요. 지금은 없어졌지만, 판교에 있는 옹느세자매 카페에 세 번이나 갔다 왔다고 하시더라고요. 거기에서 저희가 펠트로 만든 가구도 보셨고요.
건축주가 건축은 물론이고 가구에도 관심이 많으시더라고요.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나 찰스 앤 레이 임스Charles and Ray Eames, 이사무 노구치Isamu Noguchi 등의 오리지널 가구를 소장하고 있을 만큼요. 인상적이었던 건 건축주가 땅을 보면서 임스하우스Eames House1를 떠올렸다고 한 점이었죠. 그래서 처음에 임스하우스 도면을 참조해서 아이디어 스케치를 해 오셨어요. 그런 이야기들을 들으니 재밌을 것 같더라고요. 흥분되는 마음으로 설계를 맡았어요.
*임스하우스 (Eames House)
건축가이자 가구 디자이너인 찰스 임스와 레이 임스 부부가 1949년에 작업실 겸 주택 용도로 지은 집. 20세기 중반 현대 건축 양식이 잘 표현된 것으로 평가받는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 있다.
비슷한 결의 사람들끼리 만나 집을 짓게 된 거네요.
서로 잘 맞았어요. 기본적으로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는 마음이 있어서 소통도 원활하게 이루어졌고요. 건축가와 건축주의 관계는 항상 상호적이에요. 의견이 서로 다를지라도 각자의 생각을 존중하면서 대화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큰 차이가 있거든요. 서로 존중하면서 집을 지어나갈 수 있었던 프로젝트였죠.
처음에 두 개의 계획안을 제안하셨다고요.
첫 번째 대안은 대지 형태에 맞춘 길쭉한 평면 계획이었어요. 큰 거실이 하나 있어서 그게 집의 구심점이 되고 옆으로 방들이 나열된 형태였고요. 이 안은 안정적이죠. 아파트를 상상하면 익숙한 집일 수도 있어요. 두 번째 안은 현재 아홉칸집의 모습이에요. 아홉 개의 동일한 방들이 평등하게 나열된 계획안이었어요. 구심점이 없이 모든 공간이 거실이 될 수도, 방이 될 수도 있는, 살아가는 사람의 취향이나 계절감에 맞게 변화시킬 수 있는 형태죠.
건축주는 왜 두 번째 계획안을 선택했을까요?
계획안 미팅이 끝난 후 고민을 해보겠다고 하시고 두시간이 지났을 때쯤인가 전화가 왔어요. 집에 돌아가는 길에 차에서 한참을 얘기하셨대요. “우리가 첫 번째 계획안으로 집을 지을 생각이었다면 네임리스 건축에 오지 않았을 것 같아요. 두 번째 계획안으로 결정할게요.” 삶을 능동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재미있는 집일 것 같다고 확신에 찬 말투로 말씀하셨죠. 계절마다 방도 달리 쓰고 가구 배치도 바꾸면 재밌겠다고 하면서요.
어디서 살고 싶은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에 대해 확고한 생각을 가진 분들이었군요.
집을 짓는 일이 정말 보통 일은 아니거든요. 아파트든 빌라든 누가 만들어 놓은 집을 골라서 사는 것과 내 집을 짓는 건 천지 차이예요. 지으면서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히면서 받는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고요. 집을 짓는다는 건 어디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 스스로 답을 찾아 나가는 과정이에요.
내가 내 자신을 아는 것조차 쉽지 않은 일이지만, 어떤 공간에서 사는지가 그 사람을 말해주는 것 같아요.
건축가인 저 역시도 어떤 공간에서 살고 싶냐는 질문에 선뜻 답하기가 어려워요. 모든 삶의 고민은 거기에서부터 시작되는 것 같아요. 나의 삶은 어떤 가치를 추구하고 있을까? 그리고 그 가치를 담는 공간은 어때야 할까? 그 고민이 삶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죠.
“어떤 집에 살 것인가. 어디서 살 것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
그 질문으로부터 출발했던 것 같아요. 아홉칸집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