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적 뛰놀던 동네골목 같아요”…도심 속 ‘틈새살이’

17평 땅에 협소주택 지은 서울 토박이 부부 이야기
©Inkeun Ryoo
에디터. 정지연  자료. 조한준 건축사사무소 JoHanjun Architects

 

부부는 서울에서 나고 자랐다. 나름 부유한 동네, 이름만대면 알만한 아파트에서 성장기 대부분을 지냈다. 그런데 둘 다 아파트가 싫었다. 어떤 결핍이 있었을까?

 

서울시 서대문구 천연동에는 골목골목에 다세대주택들이 자리잡고 있다. 이 골목 17평 땅에 들어선 ‘틈’은 자신만의 라이프스타일을 살리면서도 도시에서 경제활동과 육아를 병행해야하는 부부가 찾아낸 또다른 해법이다. ©Inkeun Ryoo

 

어릴적 시골 할머니댁에서 지낸 적이 있어요. 흙집이었는데, 기찻길도 옆에 있었던 것 같고. 길지 않았던 시간이었지만 그 곳의 생활은 장면장면 기억 속에 남았어요. 제 평생 ‘마음 속의 집’이 된 것이죠.” -남편-

“동네의 숨막히는 경쟁이 싫었어요. 틀에 박힌 기준으로 성장기 아이들을 평가했죠. 그래서 어디서 사느냐, 누굴 만나느냐가 삶을 규정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아내-

 

부부는 초등학교를 다니는 딸아이는 자신들과 좀 다른 환경에서 키우고 싶었다. 대중예술 분야에 종사하는 자신들의 라이프스타일을 살린 작업 공간도 필요했다. 그러나 맞벌이를 하는 입장에서는 집과 일터도 가까와야하고, 주위로부터 육아의 도움도 받아야했다. 그래서 멀리 외곽으로 나갈 수도 없었다.

 

다세대주택이 밀집한 골목에 들어선 ‘틈’은 주차장을 빼면 10평이 안되는 바닥면적에 지하 1층, 지상 5층의 규모를 갖췄다. 사생활 보호와 채광, 감성 등을 고려한 쪽창과 공간을 이어주는 틈창이 특징적이다. ©Inkeun Ryoo

 

도심 속 주택살이, 해법을 찾아서
부부가 서울 안 주택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이 때문이다. 방배동 서래마을에 1970년대 지어진 집에서 전세도 살아봤다. 서촌과 북촌 등 사대문 안 한옥을 뒤지며 리모델링 계획도 세워봤다.
크게 두 가지가 걸렸다. ‘예산’과 ‘주차공간’. 교통이 편리하고 조금이라도 알려진 주택단지는 작은 집이든, 오래된 집이든 대지 가격 때문에 이미 상당한 가격을 보이고 있었다. 한옥들도 가격이 천정부지로 올라있었다. 리모델링은 더더욱 쉽지 않았다. 한옥은 기존 골조를 살리면서 서까래와 지붕 등을 바꿔야하는데 맞는 자재를 구하기도 어렵고 단가가 엄청났다. 부부의 예산에는 턱없는 규모였다.

 

배치도 ©JoHanjun Architects

 

또 한 가지는 주차. 아이를 키우고 일을 하려면 기본적으로 자동차 한 대는 필수였다. 하지만 구도심 한옥들은 주차공간도 없을 뿐 아니라 차량 입출입이 용이하지가 않았다. 또 경유차 진입 제한 등 점차적으로 규제가 확대될 것으로 예상됐다.
두 가지 과제를 모두 해결할 방법을 찾다가 발견한 것이 바로 서대문구 천연동의 17평 땅. 골목 가운데 오래된 단층주택이었다. 아내의 일터와 가깝고 인근에 딸아이를 보낼 초등학교도 있었다. 조금만 걸어나가면 대중교통편도 많았고 무엇보다도 6미터 폭의 진입도로가 있어 주차장도 확보할 수 있었다. 예산만 맞으면 될 것 같았다.
그런데 과연 이 작은 땅에서 세 식구가 살 공간을 확보할 수 있을까?

 

“여러가지 걱정이 됐어요. 대지도 워낙 작았지만 각 자가 필요한 공간들이 너무 다양해서 건축가의 전문적인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됐죠.” -아내-

 

협소주택 한계에 도전하다
부부가 조한준건축사사무소와 이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하기로 결정했던 것은 이 사무소가 앞서 서교동에 지었던 출판사 사옥 ‘뿔’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건물도 19평대의 대지에 40평 남짓 공간을 만들어낸 사례다. 남편은 함께 작업할 건축가를 찾기 위해 지인의 추천을 받고 여러 정보를 찾던 중 ‘뿔’을 만나게 됐다. 해당 건물을 직접 찾아가 반나절 이상 둘러보면서 건축을 결심하고 계약을 의뢰했다고 한다.
그러나 문제는 지금부터였다. 건축주가 산 대지는 17평이었지만 건축가가 실측을 해보니 오차가 있었다. 더 작았다는 얘기다. 반면에 건축주의 공간에 대한 요구는 평범하지 않았다.

층별 평면도 ©JoHanjun Architects
입면도 ©JoHanjun Architects

 

남편은 방음도 되고 집중할 수 있는 혼자만의 작업공간이 필요했다. 대중예술가인 아내는 자신의 의상과 분장도구를 수납할 공간이 필요했다. 딸아이가 좋아하는 다락방도 있어야했고, 아이를 돌볼 베이비시터의 공간도 필요했다. 세 식구의 기본 공간-침실 2, 욕실 2, 주방, 거실, 공부방, 주차장- 이외에 필요한 공간이 너무 많았다.
건축주와 건축가가 수 많은 토론 끝에 찾아낸 해법은 지하실을 파서 작업공간을 확보하고 스킵 플로어Skip floor를 도입해 아래 위로 연결된 수직적인 공간을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뒷편 건물이 해당 대지보다 2미터 이상 높은 점을 활용, 지하 1층, 지상 5층 규모의 작지만 큰 공간 창작이 시작됐다.

 

©Inkeun Ry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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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을 확장하는 ‘단차’, 감성을 연결하는 ‘틈’
이 집은 각 층의 공간을 분리시키지 않고 1미터 정도의 높이로 좌우로 어긋나게 배치해 확장감을 주도록 설계됐다. 즉 반쪽짜리 두 개의 공간을 옆으로 이어 공간을 넓게 느끼도록 한 것이다. 계단은 한쪽으로 몰아 스킵 플로어와 브레이크 플로어Break-floor를 적절하게 배치해 아래 위로 연결, 공간 이동을 지원한다. 이는 보통 협소주택 설계에 대중적으로 이용되는 방법이다.
채광과 환기, 프라이버시 등을 고려한 쪽창의 적절한 배치도 당연히 도입됐다.
이 집의 설계의 가장 큰 특징은 각 층을 이어내는 ‘틈’의 배치다. 공간과 공간을 이어주면서 답답함을 제거하고 가족 간 소통을 돕고 유대감을 높여주는 장점이 있다. 단절된 느낌을 배제하고 심리적 안정감을 준다. 또 무엇보다 실내 공간을 심미적으로 만드는 효과가 있다.

 

부부가 2층 거실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3층 주방과 연결된 틈을 통해 두 공간이 이어진 느낌을 줘 답답함을 최소화했다. ⓒBRIQUE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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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과 협업의 결과물
협소주택은 설계도 쉽지 않지만 시공은 더 어렵고 위험하기까지 하다. 작은 집이라고 해서 결코 싸지 않다고 지적하는 것은 시공 과정에 필요한 숙련된 기술과 투입 시간 때문이다. 평당 공사비로 간단하게 정리하기가 어려운 이유다. 틈의 경우, 바닥 면적이 10평이 안된다. 결국 10평이 안되는 좁은 공간에서 작업을 해야 한다는 얘기다.

 

©Inkeun Ry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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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조공사를 할 때 토목과 철근, 전기배선 등을 담당하는 작업자 10여 명이 한꺼번에 들어가 동시에 작업했다. 서로 부딪히지 않기 위해 신경을 써야 했고 다치는 사람이 없도록 촉각을 곤두세웠다. 건축주가 요구한 작업실을 위해 만들기 위해 지하를 팠을 때에는 단단한 암반이 나왔다. 암반을 깨는 데에 당초 예상하지 못한 공정과 시간이 필요했다. 즉, 상당한 비용이 지하실 공사에 투입됐다. 도면에 담지 못하는 이 과정들은 결국 건축주와 건축가, 시공사가 서로 배려하고 소통과 협업을 통해 풀어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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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 속 ‘틈’에서 사는 ‘수직적’ 삶
건축주와 건축가에게 이 집의 의미를 물어봤다.
건축주는 “서울 도심 한가운데서 어릴 적 동네 골목의 정서를 느낀다”고 말했다. 며칠이 채 안돼 동네 친구를 사귄 딸아이가 친구들과 이집저집을 돌아다니며 논다. 부부가 원했던 그런 정서적 환경이다. 일과 육아를 병행하면서 감성을 채우고 추억을 만들어 줄 수 있는 것이 이같은 집짓기라고 봤다.
건축가는 “수직적 삶에 대한 수용이 있어야 가능하다”고 평가했다. 협소주택에 살기 위해서는 평면이 아닌 수직으로 이어진 공간의 장단점을 이해해야한다고 했다. 또 대지를 고르기 전부터 건축가랑 상의하면 좀 더 효과적인 공간을 만들 수 있다는 조언도 덧붙였다.
도심 속 ‘틈’을 찾아 바깥과 실내를 이어주는 ‘틈’을 내고, 공간과 공간을 이어주는 ‘틈’을 통해 앞으로 세 가족이 이뤄낼 그들만의 이야기가 사뭇 궁금해진다.

 

©Inkeun Ry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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