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것과 새 것의 공존에 대하여: 함께 사는 집, ‘리브 어반’

30년 노후주택 증⋅개축해 셰어하우스로 탈바꿈, 낡은 건물을 심폐소생술로 살려내
ⓒNamsun Lee
서울 망원동 골목 어귀에 자리잡은 오랜 건물 위로 어느 날 마치 중세시대 기사의 갑옷을 입힌 듯한 트랜스포머가 내려 앉았다. 30년 노후주택 위에 새 집을 얹은 ‘리브 어반.’ 옛 것과 새 것의 공존을 시도한 집이다. ⓒNamsun Lee

“긴 시간을 품은 옛 동네가 새로운 미래도시로 탈바꿈하는 과정의 한 장면처럼 묘한 힘이 리브 어반의 외관에서 뿜어져 나온다.”

글_매거진브리크 편집팀/ 사진_이남선

국내에서는 ‘분노의 질주’로 알려진 영화 ‘The Fast and the Furious(2001 film)’는 길거리 자동차 경주와 범죄 액션을 다루는 팝콘무비다. 2001년부터 시작된 이 영화가 히트를 치면서 공식적인 시리즈가 8편까지 이어지고 있는데, 삭발한 근육질 배우 빈 디젤과 고인이 된 폴 워커의 버디 무비(Buddy Movie)+패밀리 무비(Family Movie)로 우리나라에서도 큰 흥행 성과를 거뒀다.

영화의 또다른 재미요소는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끈(물론 국내에서는 보기 힘든) 자동차들이 대거 등장한다는 점이다. 이미 단종된 희귀종이거나 미국 10~20대가 좋아하는 자동차, 그리고 그 자동차들을 튜닝(tuning)한 트랜스포머들이 선보여 일종의 대리만족과 판타지를 제공한다.

튜닝문화는 서구에서는 일반적인데,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성능이 검증된 모델을 자신의 기호와 필요에 의해 커스터마이즈(customize: 원래 무엇을 주문 받아서 만들다는 의미로, 이용자가 사용 방법과 기호에 맞춰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를 설정하거나 기능을 변경하는 것을 말한다)하는데 익숙한 환경이기에 가능한 것이 아닐까 싶다.

예를 들면 내비게이션과 에어백 장치가 없는 클래식 자동차에 이런 장치를 장착해 안전하게 운행한다거나, 기계식 장치로 움직이는 예전 모델의 자동차에 최신 운행기술이 가능하도록 엔진 등을 교체해 스타일은 유지하되 성능은 최신으로 바꾸는 식이다. 온전히 그것은 아니지만 일정정도 욕구를 충족시킨다는 장점이 있다. 튜닝의 목적은 사실 자동차 경주에서의 우위보다는 유지 관리에 있다. 좋은 자동차를 계속해서 관리하고 정비하면서 차량을 운행하는 문화가 생활 깊이 투영된 결과다.

때문에 집을 고치고, 수리하고, 증축하고, 개축하는 식의 문화 역시 생활 깊숙하게 자리잡고 있다. 유럽의 경우, 구도심에 새롭게 건물을 짓는 것이 엄격하게 제한돼 있는 경우가 많다. 문화유산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과거의 건물을 고쳐쓰는데 익숙하다고도 볼 수 있다. 베토벤의 생가, 피카소의 학교, 고흐의 침실 등이 그대로 보존돼 있는 배경이며, 옛 건물의 내부만 리모델링한 호텔이 많은 이유이기도 하다.

세월의 흔적이 여전한 서울 망원동 골목 어귀에 자리잡은 작은 건물들 위로 어느 날 마치 중세시대 기사의 갑옷을 입힌 듯한 외형이 들어섰다. 그것은 SF영화의 고전이 돼 버린 리들리 스콧 감독의 ‘블레이드 러너(Blade Runner)’와 오오토모 카츠히로 감독의 ‘아키라(Akira)’의 한 장면을 연상시켰다. 어반 소사이어티(Urban Society)의 ‘리브 어반(Live Urban)’ 얘기다. 그 첫 모습은 옛 것인데, 마치 튜닝한 자동차의 모습처럼 인상적이었다.

오래된 나무에서 나온 새싹은 가녀리거나 연약하지 않고, 꽤나 단단하고 매끈한 형태의 구조를 지녔다. 노쇠한 나무를 보호하려는 의지가 투영된 것처럼 되레 젊은 힘이 느껴진다. 리브 어반 역시 마치 긴 시간을 품은 옛 동네가 새로운 미래도시로 탈바꿈하는 과정의 한 장면처럼 묘한 힘이 건물의 외관에서 뿜어져 나왔다.

ⓒNamsun Lee

리브 어반의 가장 큰 특징은 낡은 집 위에 새 집을 얹었다는 점이다. 건축용어로는 ‘증개축’이라고 한다. 1989년에 만들어 진 기존 집은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였다. 여기에 구조를 보강해 위로 2개층(4~5층)을 쌓아올렸다.

30년이 다 된 옛 건물에 철근으로 골조를 보강하고, 그러한 보강된 구조를 바탕으로 새롭게 2개 층을 증축해서 과거와 현재를 잇는 건물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마치 오래된 낡은 자동차를 다시 새롭게 복원하고, 개선하는 튜닝의 결과물을 보는 듯했다. 리브 어반이라는 작명 역시 도심에 생기를 불어넣겠다는 의지가 투영된 듯한데, 꽤나 어울린다는 생각이다.

ⓒUrban Society
ⓒUrban Society
ⓒUrban Society

어쨌든 새롭게 탄생한 이 건물은 근린생활시설과 공동주거 부분을 각각 3개층씩 사용하는 주상복합 건물이 됐다. 지하 1층은 제작 공간, 1층은 상업 공간, 2층은 업무 공간, 3층은 스튜디오형 주거, 4층은 공유주방과 셰어하우스, 5층은 복층형 스튜디오와 옥상정원으로 마무리됐다. 옥상정원은 야외 영화 상영, 루프탑 파티 등 거주자들 간 소통을 늘리기 위한 장소로 활용된다.

ⓒNamsun Lee
ⓒNamsun Lee
ⓒNamsun Lee

이처럼 새로운 개념의 건물을 기획한 이가 궁금했다. 오래된 동네라 나이 많은 노부부가 건물주일 것 같았다. 그러나 예상을 깨고 인터뷰 자리에 나타난 이는 이 건물에 입주해 있는 미혼 여성이었다.

“서울 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아파트에서 살았습니다. 결혼을 하지 않다보니 주로 소형 아파트였죠. 좁은 공간의 답답함을 넘어 단절돼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일 때문이었지만 강남의 아파트 생활이 너무 싫고 외로왔습니다.”

그는 혼자 독립적으로 살지만 외롭지 않고 적절하게 사람들과 어울릴 방법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일하는 곳과 집이 가깝지만 번잡하지 않기를 원했다. 그러던 차에 우연히 망원동을 들렀다가 동네의 정취에 크게 매료됐다고 한다.

“직업이 디자이너다 보니 합정이나 홍대 부근에서 미팅이 많았습니다. 우연히 이 근처를 지나게 됐는데 옛날 어릴적 살던 동네같은 푸근함이 느껴졌습니다. 사람 냄새도 나구요. 강남에 있던 작업 공간도 옮길 겸 본격적으로 공간을 알아보러 다녔습니다.”

자금이 많지 않았던 그가 이 집을 발견하고 형제들과 자본을 합쳐서 구매를 결정하고, 사회주택기금 지원을 받아 공동주거 형태의 현재 모습으로 바꿔낸 데에는 이 집의 리모델링을 담당했던 어반소사이어티 양재찬 소장의 힘이 컸다.

건물주는 “1인 주거의 대안을 찾다가 자연스레 사회주택 개념을 접하면서 양소장의 활동에 대해 알게 됐다”면서 “자금 확보에서부터 설계, 공사, 그리고 공동주거 부문의 운영까지 파트너십을 갖고 적극적으로 뛰어줘서 가능했다”고 평가했다.

신축이 아닌 증개축을 했던 이유를 물었다. 그는 “공사과정에서 걸림돌이 됐던 입구의 은행나무도 잘라내지 않고 보존했다. 그 세월의 가치를 인정해주고 싶었다”면서 “오래된 것과 새 것이 공존할 때 훨씬 더 삶이 풍요로와진다는 걸 느껴가고 있다”고 말했다.

30년의 세월을 딛고 새롭게 태어난 리브 어반이 나이테가 더 쌓이면서 또 어떻게 변해갈지 궁금해진다.


♦리브어반 세입자 인터뷰 : 걸어서 10분, 출퇴근 시간을 줄여 여가를 즐기는 도심생활

“다락방 침대 창으로 한강이 보여요.”

‘리브 어반’ 1호 입주자인 그는 맨 꼭대기인 5층 복층 스튜디오에 산다. 또 최근에는 망원동에 가게를 열었다. 리브 어반에서 걸어서 10분이 안된다. 일터와 집이 가깝기 때문에 입주를 결정한 걸까?

“이 동네로 이주를 해야겠다고 결심한 것은 가게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집을 보자마자 입주를 결정한 것은 전혀 다른 이유예요.”

그러면서 그는 머리 위 천청을 가르켰다. 평소 다락방이 있는 복층 스튜디오에서 살아보고 싶었는데, 여기는 맨 꼭대기층이라 천청이 있었다. 햇볕이 쏟아져 내렸다. 아침에 다락방 침대에서 눈을 뜨면 멀리 한강이 보인다고 한다. 채광과 조망이 주는 만족감이 그의 에너지원인 듯했다.

ⓒNamsun Lee
ⓒNamsun Lee
ⓒNamsun Lee

“이 동네의 한적하고 정적인 분위기도 아주 좋았습니다. 가게와 가까운데 옛 정취도 남아 있고 한강공원도 걸어갈 수 있어요.”

아쉬운 점에 대해 물었다. 그는 “수납공간이 많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개인 공간은 원룸 형태라 수납공간이 적으면 내부가 정리되지 않고 엉망진창이 되기 쉽다. 공간의 구분이 어렵기 때문이다. 복층 계단 아래에 가구를 짜넣거나 별도의 수납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었다.

공유 공간에 대해서는 “생활에 필요한 주요한 기능은 모두 개인 공간에서 해결하기 때문에 큰 불편함은 없다”면서도 “다만 공동 주방과 세탁실 운영이 중단된 것에는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커뮤니티 활동에 대해서는 “크게 필요성을 느끼지는 않는다”면서 “서로 인사할 정도면 되고 독립적인 공간을 더 선호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리브 어반이 도시주택으로서의 공동주거 문화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풀어야할 과제가 있어 보였다.

You might also like

건축에도 올드머니룩Old Money Look이 있을까?

[정해욱의 건축잡담] ⑩ 정통과 퓨전의 변증법에 관하여

스테이 창업 전, 반드시 두드려보아야 할 돌다리 ‘스테이 스쿨’

스테이 스쿨 강사진으로부터 미리 들어보는 생존 전략

일상의 웰니스 라이프 큐레이터에게 묻다

[Wellness Lifestyle] ⑧ Life Curators

패러다임 전환의 시대

[Portrait] 호텔을 만드는 사람 한이경

‘왜 홀리스틱 웰니스인가’, 그는 이렇게 말한다

[Interview] 상하 리트릿 CCO & 총괄 건축가 — 캘빈 싸오Calvin Tsao

짓기 전에 꼭 넘어야 할 스무고개가 있습니다

[다시 만난 브리크의 공간] ① 서교동 카페 ‘콤파일Compile’ 황지원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