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미래를 찾아서

[도시를 바꾸는 기획자들] ⑤ 제주 원도심 ‘예술 재생’의 새 그림, 아라리오 제주
©︎BRIQUE Magazine
에디터. 김윤선  사진. 이병근, Nils Clauss

 

1990년대 제주 탑동 지역은 시장과 상점, 극장이 모여 있어 늘 젊은이들로 북적이는 제주 최고의 번화가였다. 신제주로 행정기관이 옮겨가고, 인구와 상권이 이동하며 아무도 찾지 않는 동네가 되기 전까진. 그렇게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가는가 싶던 이 동네에 몇 년에 걸쳐 조금씩 새로운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방치돼 있던 건물에 미술관이 들어서고, 지역의 매력적인 콘텐츠를 담은 가게와 식당이 문을 열며 새로운 활기가 돌기 시작한 것. 그 중심에는 예술 기반 생활 문화 창조 기업, 아라리오가 있다.

 

제주 원도심 탑동 지역 ©︎BRIQUE Magazine

 

예술이 있는 곳에 사람이 모인다
아라리오는 1978년 창립자인 김창일 회장이 천안터미널 사업을 인수하며 시작한 기업으로, 상업 시설과 문화 공간, 주차장 운영과 부동산 임대까지 생활 전반에 걸친 다양한 사업을 진행해 왔다. 현재 충남 천안에서 신세계백화점 아라리오점과 버스터미널을 운영하는 한편, 천안을 비롯해 서울, 제주, 상하이에서 미술관과 갤러리를 운영하며 젊은 작가를 발굴하고 육성해 대중에게 현대 미술을 알리고 있다. 2014년부터는 제주 원도심에서 미술관을 시작으로 색다른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다양한 공간을 통해 ‘아트가 있는 곳에 좋은 사람들이 모인다’는 신념을 실현해 가는 중이다.

원도심 예술 재생을 위한 큰 그림
제주에서 아라리오가 구현하고자 하는 계획은 ‘예술’을 기반으로 지역이 가진 콘텐츠를 담은 공간을 만들고, 길과 골목을 중심으로 사람들의 발길을 불러 모아 지역을 활성화하는 것. 이름하여 ‘아라리오 로드’다. 그들이 원도심의 오래된 건물을 개조해 만든 미술관과 갤러리, 레스토랑은 원도심 지역에 새로운 길을 만들었고, 이는 예술을 통한 원도심 재생의 밑그림이 됐다. 지난해 일본 기업 디앤디파트먼트 D&DEPARTMENT와 함께 ‘디앤디파트먼트 제주’를 오픈하며 그 밑그림에 본격적으로 색을 더해가고 있다.

제주 원도심에 다시금 시작된 붓질은 훗날 어떤 그림으로 완성될까. 아라리오는 지난해 제주 법인을 별도로 설립하며 제주에서 계속 활동을 이어가고자 하는 의지를 굳혔다. 김지완 아라리오 제주 대표를 만나 이 도시에서 그들이 그리는 공간과 도시에 관해 이야기를 들어 봤다.

 

김지완 아라리오 제주 대표 ©︎BRIQUE Magazine

 

제주 원도심, 예술로 다시 태어나다

 

제주에서도 원도심 지역에 자리 잡은 이유가 있나요?

쇠퇴한 지역에서 예술을 통해 사람들을 모으고 지역을 되살려 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원도심은 도시 형성과 발달 과정에서 최초로 도심지 역할을 했던 지역이잖아요. 도심은 지리학적으로 도시의 중심부가 될 수밖에 없었던 까닭을 반드시 가지고 있는데, 탑동은 탑동항을 중심으로 발전해 어선이 드나들던 곳이에요. 어부들이 이곳에서 경제활동을 하며 자연스럽게 시장과 상권이 형성됐죠. 자생적으로 만들어진 오랜 역사와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지역의 콘텐츠를 살려 새로운 문화를 만들 수 있는 곳이라고 봤습니다.

 

주로 오래된 건물을 개조해 공간을 만들었죠. 신축보다 리노베이션에 집중하는 까닭이 뭘까요?

오래된 건물 그 자체, 그리고 건물이 가진 이야기가 곧 지역을 담고 있는 콘텐츠이기 때문입니다. 최대한 원형의 모습을 보존해 개조한 것도 같은 이유죠. 영국 런던 남부 빈곤 지역의 발전소를 리노베이션한 테이트 모던 미술관은 낙후된 지역을 부흥시키고 관광 명소가 됐어요. 일본 나오시마섬 역시 환경 오염으로 버려졌던 곳을 예술을 통해 되살렸고요. 모두 과거의 기억으로부터 이야기를 찾아 새롭게 예술을 불어넣은 공간이죠.

아라리오뮤지엄 탑동시네마는 1999년 개관해 2005년 문을 닫은 제주 최초의 복합 상영관인 탑동시네마가 있던 곳이에요. 미술관 이름에도 옛 지명을 그대로 붙였죠. 당시 탑동시네마 건물 1층에는 KFC가 있었는데, 거기에서 썼던 노란색 타일을 그대로 남겼어요. 탑동시네마를 기억하는 분들은 그 장소에 대한 추억과 향수를 느끼시겠죠. 아라리오뮤지엄 동문모텔 역시 마찬가지예요. 객실 공간을 그대로 두고 방마다 다른 분위기의 전시 공간을 연출했어요. 그 또한 하나의 콘텐츠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죠.

 

아라리오뮤지엄 탑동시네마 ©︎BRIQUE Magazine

 

제주에 뿌리를 둔 향토 기업이 아닌 아라리오가 여러 채의 건물을 매입하자 항간에선 부동산 투기라는 오해도 있었다고요.

2014년에 뮤지엄 세 군데를 동시에 오픈했는데, 당시 중국 자본이 들어와서 제주의 부동산을 거의 싹쓸이하다시피 했던 때였어요. 어찌 보면 그런 분위기 속에서 당연한 반응이었을 수도 있죠.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건, 정말 부동산 투기를 하려고 했다면 여기에 미술관을 세 곳이나 열지는 않았을 거라는 점이에요. (웃음)

아라리오의 근간은 예술이고, 미술관은 아라리오의 영혼과도 같아요. 보통 미술관은 특정 자본을 바탕으로 운영하는 경우가 많은데, 저희는 미술관을 운영하기 위해 역으로 기업을 운영하니까요. 다만 제주에서 미술관을 만든 것은 더 많은 사람에게 예술을 알리는 것뿐 아니라 예술을 통해 사람들을 지역으로 이끄는 데에 궁극적인 목적이 있어요. ‘아라리오 로드’를 통해 그걸 실현해 나가려고 합니다.

 

제주 원도심 산지천 근처에 자리잡은 아라리오뮤지엄 동문모텔 I ⓒArario Museum
아라리오뮤지엄 동문모텔 II ⓒArario Museum

 

아라리오 로드에 관해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시겠어요?

일종의 ‘뮤지엄 박스museum box’예요. 미술관을 중심으로 여러 가지 프로그램이 모여 있는 형태의 그림을 떠올렸죠. 한 건물에서 구현될 수도 있는데, 탑동에서는 아라리오뮤지엄을 중심으로 한 골목과 지역 자체가 하나의 뮤지엄 박스가 될 수 있어요. 그렇게 된다면 탑동시네마 근방과 산지천 너머 동문 모텔까지, 아라리오뮤지엄 세 곳을 거점 삼아 새로운 길이 열릴 거라고 봤죠.

이 길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선 미술관만으로는 한계가 있고, 매력적인 가게나 고유의 ‘라이프스타일’ 개념을 가진 다른 기능이 필요해요. 전시도 보고, 커피도 마시고, 쇼핑도 하고, 책도 읽으면서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머물 수 있는 장소가 되어야 하죠. 아라리오뮤지엄 탑동시네마와 디앤디파트먼트를 중심으로 ‘카페 크림’, ‘파도 식물’, ‘프라이탁’, ‘포터블’ 등 예술과 디자인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브랜드와 공간을 엄선한 것도 그 때문이에요. 결국 아라리오 로드는 미술관을 통해 골목과 지역을 활성화하는 계획이고, 지금까지 해 온 모든 일은 그 연장선에 있다고 볼 수 있어요.

 

아라리오뮤지엄을 오픈하면서 근처에서 베이커리와 레스토랑 등을 직접 운영하셨던 것으로 알아요.

베이커리, 카페, 돈가스 전문 식당, 이탈리안 레스토랑 등 수제맥주 전문점 맥파이를 제외한 모든 공간을 직접 운영했어요. 당시 탑동은 지금보다 인적이 드물어서 함께 할 브랜드를 모으기가 어려웠거든요. 리스크가 너무 컸죠. (웃음) 한동안 꽤 많은 사람이 찾아주었고 큰 사랑을 받으며 운영을 이어갔지만, 제주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탓인지 결국 다 문을 닫게 됐어요. 돌이켜보면 그땐 막연히 ‘천만 관광객’이라는 숫자에 의지했던 것 같아요. 연간 제주도 방문객이 천만 명이나 되니까, 여기에도 당연히 사람들이 많이 찾아올 거라는 어리석은 생각을 했죠. 올레길이나 한라산만큼 특별한 경험을 제공하지 않으면 절대로 올 구실이 없다는 걸 깨달았고, 그러면서 이곳만이 줄 수 있는 특별한 경험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고민의 결과물이 ‘디앤디파트먼트 제주’였군요.

지속 가능하고 발전적인 방향으로 가려면 모든 걸 직접 할 게 아니라, 각 분야에서 가장 전문성 있고 감도 높은 기업과 브랜드를 찾아 함께 일해야겠다고 결정했어요. 무엇보다도 원도심 지역에서 도시재생이나 로컬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야 하고 저희와도 결이 맞아야 했죠. 그렇게 해서 찾은 기업이 디자이너 나가오카 겐메이Nagaoka Kenmei가 이끄는 디앤디파트먼트예요. 디앤디파트먼트는 긴 생명력을 지닌 디자인, 유행이나 시대에 좌우되지 않는 보편적 디자인을 뜻하는 ‘롱 라이프 디자인Long Life Design’에 기반한 제품을 찾아 소개하는 일을 해왔고, ‘지역다움’을 찾는 일을 핵심으로 해요.2013년에 밀리미터밀리그람MMMG와 협업해 서울점을 열었고, 제주는 국내 두 번째 지점이에요.

이걸 통해 이제 막 아라리오의 두 번째 페이지가 시작되었다고 봐요. 첫 번째 페이지는 잠잠했던 탑동을 깨운 일이고, 그때 느낀 점을 보완해 잠에서 깬 탑동이 움직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두 번째 페이지에서 할 일이죠.

 

디앤디파트먼트 제주 ©︎BRIQUE Magazine
아라리오뮤지엄 탑동시네마(좌)와 디앤디파트먼트 제주(우) ©︎BRIQUE Magazine

 

롱 라이프 디자인과 지역다움을 전하는 공간

 

아라리오와 디앤디파트먼트는 각각 ‘예술’과 ‘롱 라이프 디자인’을 통해 지역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발견해 온 기업이라는 점에서 이번 만남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디앤디파트먼트는 브랜딩을 비롯한 전반적인 공간 기획을, 아라리오는 운영을 맡았습니다. 특히 디앤디파트먼트 서울점을 운영하는 MMMG가 현지 코디네이터 역할을 맡아 많은 도움을 주셨어요. 디앤디파트먼트의 모든 지점은 본사에서 직영하는 몇 군데를 제외하고는 전부 그 지역에서 오랫동안 활동해 온 기업과 파트너십을 통해 만들어져요. 추구하는 방향과 비전은 동일하지만, 지점마다 파트너가 다른 만큼 조금씩 다른 색깔을 가지고 있어요. 이를테면 서울점은 MMMG가 디자인 회사라 디자인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제주점은 문화예술에 집중하는 식이죠. 운영사가 ‘롱 라이프 디자인’을 어떻게 해석하는지를 존중한다는 점이 참 좋았어요. 단순히 상품을 판매하는 상점이 아니라 상품을 발굴하고 그 상품의 기술과 매력, 역사와 생산자를 함께 소개하면서 그것을 손님들에게 전하는 것 또한 롱 라이프 디자인의 일환이에요.

 

제주 지점에서만 만날 수 있는 ‘롱 라이프 디자인’이 있다면.

제주에서 옛날부터 만들어지고 지금까지도 사용되고 있는 롱 라이프 디자인 상품을 발굴하고 엄선해 소개하고 있어요. 그중 ‘정동벌립’은 제주의 대표적인 공예품인데, 제주 중산간 지대 자생하는 정동줄(댕댕이 덩굴)을 엮어 만든 모자예요. 농부들이 주로 썼던 모자인데, 무형문화재 홍양숙 선생님과 협업해서 현대적으로 새로 디자인해 선보이고 있죠. 그런가 하면 제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플라스틱 귤 수확 상자도 있어요. 한 사람이 혼자 들기 적당한 20kg 용량에, 부피를 줄이면서 쌓아서 보관할 수 있는 단순한 구조로 되어 있어 무척 실용적인 상자예요. 보통 노란색이나 파란색이 많은데, 흰색을 디앤디파트먼트 제주만의 오리지널 상품으로 개발해 생활에서 수납 상자로 쓸 수 있도록 판매하고 있어요.

 

2층 d 스토어 ⓒNils Clauss
©︎BRIQUE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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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뿐 아니라 제주에서 나는 제철 식자재를 사용한 한식으로 제주 식문화를 전하는 식당도 운영하고 있고요. 앞으로도 계속 제주의 가치 있는 상품과 생산자를 발굴하는 작업을 해 나갈 예정이에요. 롱 라이프 디자인은 단순히 상품이 아니라 지역에서 오랫동안 이어져 온 모든 것을 포함해요. 다만 세대와 시대 변화에 적응하면서 어떻게 발전시켜 나가는가가 중요하겠죠.

 

1층 d 식당 ⓒNils Clauss
ⓒNils Clauss

 

일본의 스키마타 건축Schemata Architects이 설계를 맡은 점도 화제였죠.

사실 이전에 미술관을 만들 때는 건축에 대해 그리 깊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공간보다는 예술품을 어디에, 어떻게 배치할까에 더 집중했거든요. 당시 운영했던 베이커리나 레스토랑도 그저 오래된 건물을 개조한 것뿐, 공간마다 특색이 없이 비슷비슷한 분위기였고요. 콘텐츠가 강력한 힘을 발휘하게 하려면 카페는 카페답게, 상점은 상점답게 공간마다 본질적인 성격과 개성을 명확하게 드러낼 수 있는 곳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어요. 그걸 실현해 줄 건축가를 찾다가 스키마타 건축의 조 나가사카Jo Nagasaka와 인연이 닿았죠. 인위적인 것을 배제하고 본질에 집중하는 그의 철학에 공감했습니다.

 

공간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무엇이었나요?

‘보이지 않는 개발’이라는 콘셉트가 있었어요. ‘개발하되, 개발했다는 것을 느낄 수 없는’ 또는 ‘여기에 있을 법한’. 언제부터 있었던 건물인지 알 수 없게 하는 것이 중요한 콘셉트였어요. 불필요한 것은 다 빼고 건물이 가진 본질에 충실한 자연스러움을 녹여내고자 했죠.

 

©︎BRIQUE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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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동선’이었어요. 이건 아라리오 로드와도 연관이 있는데, 아라리오뮤지엄 탑동시네마와 디앤디파트먼트 제주, MMMG가 운영하는 프라이탁 건물까지 점으로 존재하는 공간을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 그리고 사람들을 어떻게 움직이게 할 것인가가 키포인트였어요. 이를 위해 건물 1층에는 필로티를 두어 서성이거나 머무를 수 있는, 안도 밖도 아닌 연결의 공간을 만들었어요. 건물과 건물 사이 경계를 흐트러뜨리며 잇기 위한 장치죠.

 

©︎BRIQUE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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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출입구가 대로가 아닌 골목 안쪽에 위치한 것도 그 때문인가요?

아라리오뮤지엄 탑동시네마는 처음에는 대로변에만 출입구를 두었는데, 지금은 안쪽 골목에서도 건물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게 했어요. 골목에서 1층 카페를 통해 미술관까지 연결하는 입구를 새로 만들었죠. 뮤지엄뿐 아니라 디앤디파트먼트, 프라이탁 건물까지 모두 이 골목에 입구를 만든 것은 골목으로 사람들의 움직임을 끌어들여 활성화하려는 의도였어요. 대로변보다 노출은 덜 되지만, 골목에서 느껴지는 온도는 훨씬 높아요. 골목에 대여섯 명만 모여 있어도 꽉 찬 기분이 들죠. 그런 친근한 분위기를 만들고 싶었어요.

 

©︎BRIQUE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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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앤디파트먼트의 대표 나가오카 겐메이가 창업 때부터 구상한 숙박 시설이 제주에서 처음 실현되었다고요.

1층 식당, 2층 상점과 더불어 제주를 즐기러 오는 손님을 위한 숙박시설 ‘디룸d room’을 디앤디파트먼트 일본과 한국 전 지점을 통틀어 제주점에서 최초로 선보였어요. 기존 아라리오뮤지엄 탑동바이크의 운영을 종료하고 그 건물과 레스토랑으로 운영하던 건물을 연결해, 숙박 시설을 만들 수 있는 규모를 확보했고, 3층에 13개 객실을 마련했어요.

숙박시설 계획에서 중요한 콘셉트는 ‘호텔 같지 않은 호텔’이에요. 호텔이 아니라 친구 집에 놀러 온 듯한 느낌을 경험할 수 있는 곳이 되기를 바랐죠. 체크인을 하면 스태프가 방까지 동행하며 안내하고, 라운지 대신 ‘거실’ 같은 공간을 만들었어요. 객실마다 아라리오의 취향을 담아 선별한 회화와 조각 작품을 설치했고요.

일반적인 호텔 객실에서 찾아볼 수 없는 완전히 열리는 창과 살아있는 식물이 있다는 점도 특별해요. 식물이 차지하는 존재감은 디앤디파트먼트 제주점에서 아주 중요한 요소인데, 이를 지속적으로 잘 유지하기 위해 ‘파도 식물’이 1층에 숍을 함께 운영하며 관리하고 있어요. 다른 숙박 플랫폼에서는 예약이 어렵고 멤버십 제도로만 제한적으로 운영하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입니다.

 

체크인을 하면 스태프가 방까지 동행해 안내한다. ©︎BRIQUE Magazine
객실 문에는 실 번호가 적혀 있지 않다. ⓒNils Clauss
‘호텔 같지 않은 호텔’  ⓒNils Clauss
ⓒNils Clau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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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실마다 아라리오가 선별한 예술 작품이 걸려 있다. ©︎BRIQUE Magazine
라운지 대신 ‘거실’ 같은 공간으로 계획했다. 정성스럽게 가꾸는 식물은 공간에 한층 생기를 더한다. ©︎BRIQUE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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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 레지던스 공간인 ‘디뉴스d news’ 또한 흥미로워요.

디뉴스 역시 제주점에서 처음으로 시도한 공간이에요. 1층에 작업 공간과 상점, 2층에 숙박 시설을 갖춘 일종의 ‘장기 거주형 팝업스토어’예요. 1층과 2층은 전용 직통 계단을 통해 연결되고, 상점은 건물 외부에서도 바로 접근이 가능해요. 마치 안쪽에 주인집과 가게가 붙어 있는 시골 구멍가게를 연상시키죠. 이곳은 다른 지역에서 온 사람이 장기 체류하면서 제주의 매력을 외부의 시선으로 발견하고 지역과 교류하는 공간으로 계획했어요.

예를 들어 일본에서 메밀 장인이 와서 한 달간 머무른다고 하면, 일본 메밀 장인은 제주 메밀의 성격과 특성을 스터디하고 제주 사람들은 그가 제주 메밀을 새롭게 해석하는 걸 보면서 서로 배우고 교류할 수 있겠죠. 여담이지만 메밀 하면 강원도 봉평 막국수를 떠올리는데, 사실 우리나라 메밀의 70%는 제주에서 생산돼요. 제주에서 나온 걸 봉평에서 가공해서 유명해졌죠. (웃음)

 

디뉴스 ©︎BRIQUE Magazine

 

첫 주자로 3월 한 달간 프릳츠커피컴퍼니 FRITZ COFFEE COMPANY가 머물기로 했어요. 서울에서 온 프릳츠의 바리스타들이 제주의 식자재를 활용해 커피를 내리고, 제주의 바리스타, 그리고 주민들과 소통하는 시간이 될 거라 기대해요. 거기에서 또 다른 에너지와 임팩트가 피어나겠죠.

 

제주에서 만들어 갈 도시 생활의 오래된 미래

 

그간 원도심에서 활동하면서 느낀 점이 많을 것 같은데요. 지역에 새 기능을 불어넣거나 활성화를 위한 개발을 할 때, 가장 중요한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그곳에 ‘있을 법하게’ 만드는 일이요. 뻔한 얘기일 수도 있지만 가장 중요한 건 자연스러움인 것 같아요. 그 자연스러움은 가까이에서 지역이 가지고 있는 이야기에 귀 기울일 때 찾을 수 있죠. 탑동시네마는 당시 상영관을 4개나 가진 극장으로, 정말 많은 사람들이 방문했던 곳이었어요. 지역이 과거에 누린 영광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존재죠.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기억을 가진 채 방치돼 있던 건물이 많은 힌트를 줬어요. 부서지고 망가진 것조차 그저 자연스러움이라고 느껴졌죠. 그런 이야기를 알고 나면 너무 높아서 부자연스럽다고 느낄 법한 8m 층고의 전시 공간이 오히려 자연스럽게 다가와요.

 

앞으로 이곳에서 새로운 계획이 있다면.

아라리오뮤지엄과 디앤디파트먼트, 이후 새로 들어설 상권이 조화롭게 잘 이어지도록 하는 게 남겨진 과제예요. 아라리오 로드는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까요. 이 근처에서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콘텐츠를 고민하고 있는데, 근처 해수 사우나 건물을 건식 핀란드 사우나나 암벽 타기 체험을 할 수 있는 스포츠 공간으로 바꾸는 아이디어도 있어요. 2년 전 영업을 종료해 비어 있는 서울관광호텔을 스타트업을 위한 공유 오피스로 만드는 계획도 구상 중이고요. 앞서 말씀드렸듯이 이전에는 천만 명의 관광객을 대상으로 일을 구상했다면 지금은 단 백 명의 주민을 생각하고 있어요. 지금 저희가 가진 목표는 이 근처에 있는 주민 백 명을 골목으로 모으는 거예요. 그렇게 될 때 이곳이 더 제주다운 지역이 될 거고, 더 많은 사람이 찾아 줄 것으로 예상합니다. 자연스럽게, 진정성 있게, 어떻게 지속 가능하게 할 것인가가 관건이겠죠.

 

©︎Schemata Architects

 

그렇게 된다면 지역 주민과 관광객 모두가 함께하는 곳이 되겠네요. 창업을 하거나 이주를 하는 사람들도 생기겠죠.

아직 이 지역엔 ‘생활감’이 없어요. 주간에 활동하는 사람이 별로 없기 때문이죠. 원도심에서 진짜 생활이 돌아가고 지역이 활성화되려면 주간에 일을 하고, 밥을 먹는 사람들이 있어야 해요. 그렇다고 여기에 365일 거주하거나 일하는 이주민이 필요하다는 게 아니라, 일시적으로 혹은 비정기적으로 머무는 생활자들이 들어올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고 봐요. 요즘 원격근무도 활성화됐고, 미팅도 비대면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잖아요. 단순히 창업이나 이주가 아니라, 그런 새로운 업무 방식과 생활이 이곳에서 이루어질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또 그 사람들이 지역 주민과 교류를 만들어 내는 그림을 실현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저희의 과제가 될 것 같아요.

 

©︎BRIQUE Magazine


아라리오가 제주에서 실현하고자 하는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인가요?

원도심 지역을 알리고 더 많은 사람의 발길을 불러모아 다시 사랑받는 지역이 되게 하는 것. 그리고 지역에서 예술이 생활의 기반으로 자리 잡도록 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예요. 동네 마실 가듯 미술관에 가고, 식사를 하면서 그림을 감상하고, 롱 라이프 디자인 상품을 구입하고···. 그렇게 생활 가까이에서 예술을 즐길 수 있는 환경을 이 지역에서 또 하나의 콘텐츠로 만들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서 생활 문화로서의 예술과 지역의 가치를 발굴하고 창조하며 전하는 일을 앞으로 계속 해 나가야겠죠.

 

©︎Schemata Architects
©︎BRIQUE Magazine
ⓒNils Clau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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