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국적 근대 건물에 덧입히는 요즘 한국 이야기

[Place_case] ④ 명동 리노베이션 카페 '더 스팟 패뷸러스The Spot Fabulous'
©Place_case
글 & 사진. Place_case (플레이스 케이스)

 

오래된 공간의 가치가 긍정적으로 평가되며 건물 업사이클링이 더욱 활기를 띠는 요즘, 공장이나 주택을 리모델링한 상업공간들은 우리에게 익숙한 풍경이 되었다. 골조만 남겨두고 새로이 만드는 경우가 아니라면 이러한 재생건물들에서는 기존 공간과의 조화를 고려한 다양한 시도를 엿볼 수 있다.
물성과 색감, 시퀀스 등을 통해 옛것과 새것의 확연한 대비를 주거나, 옛것과 유사한 새것을 입혀 비슷한 결을 이어 나가거나, 혹은 두 가지를 모두 적용해 저만의 조화를 찾아나간다.

 

하지만 어느 것을 택하던 결국 중요한 것은 신구의 어우러짐을 통해 느껴지는 시간의 연속성일 것이다. 볼 수 없는 시간의 축적이 현재진행형으로 보이는 공간. 이것의 특별함이 있기에 수많은 이들이 신축보다 어려운 ‘이어짓기’를 하고 있는 게 아닐까.  ‘더 스팟 패뷸러스The Spot Fabulous’도 이와 같이 오래된 장소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써나가고 있는 곳이다.

 

‘더 스팟 패뷸러스’ 외관 ©Place_case

 

더 스팟 패뷸러스는 서울 명동의 중국 대사관 맞은편, 대만을 상징하는 청천백일 문양이 붙어있는 흰색 건물 1,2층에 자리한 카페이다. 건물만 본다면 대만 정부 건물 같은 곳이 왜 카페로 사용되고 있는지, 그리고 왜 하필 사이가 좋지 않은 중국 대사관을 마주하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알고 보면 현 중국대사관 자리는 원래 대만 대사관이었고, 흰 건물은 일제강점기 시절부터 중국 국민당의 지부였다고 한다. 1961년 5·16 군사정변 이후 해외 정당의 국내 활동이 금지되면서 지부 건물의 소유주가 ‘삼민주의 대동맹’이라는 화교 단체로 넘어갔고, 지속적으로 대만 대사관의 별관 역할을 수행했다.

그러다 1992년 한중 수교 시 한국이 대만과 단교하고, 대만 대사관을 중국에 넘겨주면서 별관도 중국 관공서로 쓰이게 되었다. 이후 해당 필지의 소유권을 두고 중국과 대만 정부의 갈등이 오갔고 어느 시점부터 건물은 스튜디오, 카페 등 다른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 안타깝게도 용도가 언제부터 어떻게 변했는지 정확히 알 수가 없다. 임차인도, 건물관리인도 “대만 정부의 한국 지부로 사용되다 바뀌었다”는 정도의 이야기를 구전동화처럼 전해줄 뿐이다.

 

창 건너편으로 중국 대사관이 보인다. ©Place_case
©Place_case

 

상세한 내막을 알 수 없어 약간의 미스터리를 간직한 이 건물은 대신 건축양식과 공간을 통해 역사와 시간의 흐름을 보여준다. 외벽 초석에 새겨진 ‘중화민국 45년 5월 10일 왕동원 주한 중화민국대사(1951-61)’로 미루어보아 1950년대부터 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좌우 대칭의 석조 외관, 가운데 경사지붕과 큰 창들은 건물을 지을 당시 대만이 유럽 건축을 수용하며 근대 국가로의 위상을 표현하고자 했음을 보여준다. 내부의 가장 큰 특징은 2층의 목구조 천장인데, 보존이 잘 되어 현재까지 공간감을 돋보이게 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천장을 포함한 내부의 본모습을 볼 수 있게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인 2019년도이다. 이곳은 더 스팟 패뷸러스 이전에도 카페였으나 리노베이션 전까지는 덧입히고 덧발라진 채 긴 시간을 보냈다. 당시부터 이곳 카페를 운영해온 김필균 대표는 성수동에서부터 재생건축이 유행하는 것을 지켜보며, 명동에 위치한 근대 문화유산인 이 공간 또한 잠재력이 있다고 판단했다.

 

“서울에 많은 중심가가 있지만, 명동은 ‘진짜’ 중심인 동네에요. 명동 성당과 예술극장처럼 종교와 예술, 하동관, 명동교자, 중국집 거리처럼 음식 문화까지 모든 것이 밀집되어 있는 곳이죠. 외국인들에게는 관광명소이지만 내국인에게 인심을 잃었던 이 동네에 다시금 사람들이 찾아올 수 있을 만큼 매력적인 곳으로 재탄생 하길 바라며 리노베이션을 진행하게 되었어요”  – 더 스팟 패뷸러스 김필균 대표

 

리모델링 전 모습 ©Design Studio MAOOM
©Place_case

 

공간의 변화를 지휘한 것은 재생인테리어에 일가견이 있는 디자인 스튜디오 마움이었다. 외관과 1층은 손대지 않고 2층만 리노베이션하는 것이 공사 범위였고, 철거 전까지 원래의 내부를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공사 착수 후 여러 개의 실을 조성하던 벽체와 약 다섯 겹의 천장을 벗겨낸 뒤 마주한 공간은 커다란 창들이 시원하게 뻗어있는 큰 홀과 같았고, 잘 보존된 목구조 천장은 시간의 영향을 받지 않는 압도감과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었다. 이 목천장을 구심점으로, 스튜디오 마움은 공간의 ‘시간’에 주목하기로 했다. 오래된 시간의 흔적을 보여주되, 현재의 시간을 쌓아갈 공간을 만드는 것.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유의한 점은 시간의 흔적을 존중하는 것이었어요. 무엇을 비워내고 무엇을 채워 넣을지에 대한 고민이 많았죠. 이러한 존중의 태도 없이 기존의 공간에 새로운 것을 얹었을 때 과연 어울릴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있었습니다.” – 디자인 스튜디오 마움 최민규 대표

 

더 스팟 패뷸러스에서는 유심히 보지 않으면 어느 것이 옛 것이고 어느 것이 새것인지 모호한 것들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2층을 올라가는 계단 손잡이이다. ‘시간의 흔적을 이어나가는 시작이 되는 곳’으로 벽체 철거 후 발견한 끊어진 계단 손잡이를 새롭게 연결한 곳이다. 수많은 사람의 손길이 닿았을 이 기물은 말 그대로 단절된 채 벽 뒤에 숨겨져 있었고, 이를 발견한 스튜디오 마움에서는 손잡이를 철거하지 않고 유사하지만 다른 디자인의 손잡이를 이어붙여 다시금 그 기능을 활성화시키고 시간의 단절을 연결했다.

이 손잡이를 잡고 2층으로 올라가다 보면 반짝이는 풍경이 보인다. 천장에서 달아내린 거울 구조물과 그 사이사이로 내려오는 조명들, 그리고 큰 창들이 만들어내는 장면이다. 천장의 구조물은 ‘새로운 시간의 결합’을 상징하는 오브제로 옛 목천장과 중첩되어 보이면서도 아래를 향하는 면이 거울로 되어있어 카페의 모습을 비춰준다. 바닥과 천장 구조물 모두 공간의 새로운 요소들이지만, 천장과 비슷한 나무를 사용해 마치 원래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옛 것을 배경으로 두고 보는 이의 움직임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현재를 시적으로 풀어낸 조형물이다.

 

시간의 흔적을 이어나가면서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손잡이 ©Design Studio MAOOM
이어붙인 손잡이와 ‘새로운 시간의 결합’을 상징하는 천장 구조물 ©Place_case

 

이와 반대로 강렬하게 시선을 끄는 오브제도 있다. 무기둥 공간에서 바닥과 천장을 이어주는 핑크색 기둥이다. 지나간 시간을 상징하는 천장과 현재의 시간을 상징하는 바닥, 수평 하게 마주하는 이 둘을 더 스팟 패뷸러스를 상징하는 핑크색 수직 오브제를 통해 연결해 상징성을 부여했다.

무대처럼 연출된 오픈바를 지나 더 안쪽으로 들어가 보면 15개의 창과 14개의 거울이 마주하며 만들어내는 은은함하고 몽환적인 공간을 만나볼 수 있다. 사 면이 모두 창이었던 건물에서 뷰가 없는 후면은 거울로 채워버림으로써 전면의 좋은 뷰에 집중할 수 있도록 했다. 반대편 창이 비치는 거울은 외부를 내부로 끌어들이기도 하고, 과거의 시간과 현재를 중첩해 담아주는 액자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천장의 거울 구조물과 핑크색 기둥 ©Place_case
과거의 시간과 현재를 중첩해 담아주는 거울 ©Place_case

 

창 너머 중국대사관이 보이는 건물의 사연을 되짚어 보면, 우리나라가 중국(당시 중화인민공화국)과 수교 시 요청받은 조건은 대만(당시 중화민국)과 단교하고 그들의 대사관을 중국이 그대로 쓸 수 있도록 내어주는 것이었다고 한다. 수교가 결정됨과 동시에 우리나라의 오래된 우방국가였던 대만은 국기와 현판을 내리고 72시간 내로 철수를 통보 받았다. 별관 건물은 공식적으로 대사관의 일부가 아니었기에 국기 문양을 남겨두었던 것 같다. 이 카페 건물은 어찌보면 아픔을 직면한 자리에서 담담히, 그리고 우직하게 긴 세월을 버텨온 셈이다.

어느덧 밝아온 새해, 이제 새로운 건생(建生)을 살고있는 이 공간에서 커피 한잔과 함께 쌓아온 시간과 쌓아갈 시간에 대해 사색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Place_case

 

더 스팟 패뷸러스 The Spot Fabulous
서울 중구 명동2길 22
매일 10:00 – 22:30
www.instagram.com/the_spot_fabulous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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