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의 집

[Space] 집과 일터가 공존하는 30년 된 빨간 벽돌집, '노말H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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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김윤선  사진. 최진보  자료. 노말 건축사사무소

 

인류는 지난 2020년을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 전 세계가 팬데믹pandemic이라는 긴 터널을 함께 지나고 있는 지금, 우리의 일상은 곳곳에서 여전히 크고 작은 변화를 지속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안전’이 모든 생활 전반에 큰 전제 조건이 된 이 시대, 피난처이자 삶을 담는 그릇인 공간 역시 예외는 아니다. 우리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집과 일하는 공간에 대해 여느 때보다도 뜨거운 재조명이 일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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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노멀 시대 공간 활용법
바야흐로 공간도 멀티 플레이어가 되어야 하는 시대. 예측 불허·불확실성의 시대 속, 공간은 다양한 기능을 수용할 수 있는 곳으로 진화를 요구받고 있다. 그때그때 필요와 쓰임에 맞도록 변신하는 가변적 성격을 더한 다기능 공간이 대세. 첫 번째 주자는 단연 집이다.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진 요즘, 집은 그야말로 삶의 중심이 됐다. 그간 집에서 일어나지 않았던 갖가지 활동이 일어나며 그 활용이 확장됨에 따라 집은 단순히 자고 쉬는 곳이 아니라, 때로 사무실이, 놀이터가, 식당이, 호텔이 될 수 있다는 걸 우리는 이제 안다.
집뿐 아니다. 쓰임을 잃은 곳에 새로운 역할을 불어넣은 공간도 등장했다. 작년 말 서울 성북구에 문을 연 ‘안암생활’은 관광호텔을 고쳐 청년공유주택으로 탈바꿈시켰다. 기존 공간에 어울리지 않을 법한 새 기능을 추가한 복합 공간도 나타났다. SK가 올 초 오픈한 ‘길동 채움’은 주유소 공간을 개조해 전기차 충전소와 카페, 숍 등을 한데 모아 놓았다. 상대적으로 집값이 저렴한 빈집이나 오래된 공간을 실속 있게 고쳐 활용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최근 MBC에서 방영한 교양 프로그램 ‹빈집살래›는 서울 도심 속 방치된 빈집을 발굴해 새 공간으로 바꿔 나가는 과정을 보여주며 시청자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집과 일터의 공존이 시작됐다
집을 바라보는 관점이 바뀌자, 필연적으로 일터를 보는 시각도 변하고 있다. 고정적 업무 공간이 필요하지 않은 원격 근무와 재택근무 등의 근로 형태가 활성화되며 업무 공간 또한 공간의 재구성 혹은 재정의를 구축할 때를 맞이했다. 눈에 띄는 것은 집과 일터의 긴밀한 상호 관계다. 지난해 문을 연 ‘집무실’은 강남, 여의도 등 중심업무지구가 아닌 주거지역에 자리 잡은 업무 공간 서비스로, ‘집 근처 사무실’을 표방하며 거점 오피스의 가능성을 제안한다. 밀레니얼 세대의 새로운 라이프스타일과 업무 방식에 맞춘 주거와 업무를 결합한 코워킹, 코리빙 공간을 선보이는 ‘로컬스티치’도 주목할 만하다.

 

노말HQ ©︎BRIQUE Magazine

 

30년 된 빨간 벽돌집을 고쳐 사무소와 주택으로 재탄생시킨 ‘노말HQ’는 앞서 언급한 다양한 시대상을 함축하고 있다. 이 집을 통해 변화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맞이할 미래에 대한 한 가지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기를 바라며, 집 이야기를 소개한다.

 

빨간 벽돌집 고쳐 쓰기

 


가장 보통의 존재, 그 아름다움에 관하여

서울 광진구 자양동
떠들썩한 성수동과 건대입구를 한 켜 지나면 어느 고즈넉한 주택가가 나타난다. 강남과 강북으로 사통팔달 교통이 편리한 ‘역세권’에, 뚝섬유원지와 한강을 지척에 두어 ‘공세권’과 ‘한세권’까지 성립하는 동네. 이곳에서 건축가가 발견한 30년 된 빨간 벽돌집은 살기 위한 집으로도, 일하는 공간으로도 최적의 조건을 갖춘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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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된 빨간 벽돌집의 미학
서울의 오랜 주택가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빨간 벽돌집을 리노베이션했다. 작은 공간을 잘게 쪼개 다섯 세대가 모여 살던 벽돌집은 1층은 주거 공간으로, 2층은 업무 공간으로, 지하 1층은 두 세대의 임대 주거 공간으로 거듭났다. 건축가는 어디를 가도 만날 수 있는 이 보통의 빨간 벽돌집이 너무 흔하고 익숙해서 더 좋았다고 했다. 외국 생활을 오래 했던 그에게 빨간 벽돌집은 그 어떤 것보다도 서울 특유의 분위기를 담은 곳으로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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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은 집의 눈
외관은 낡은 창과 난간만 교체해 최대한 원형을 유지하며 집이 가진 고유의 아름다움을 살렸다. 무릎 높이까지밖에 오지 않아 낮고 위험했던 석재 난간은 안전한 높이의 얇은 철제 난간으로 바꿔 눈에 띄지 않게 했고, 단열에 취약했던 창은 전부 교체해 다소 어둡고 칙칙했던 집의 인상을 밝게 바꿨다. 건축가는 ‘사람의 얼굴에서 눈이 그 인상을 결정하듯, 창은 곧 집의 눈’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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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집 고쳐 쓰기’에 대한 몇 가지 오해들

외관보다 성능 먼저
지어진 지 30년이 훨씬 넘은 노후화된 건물이라 안팎으로 성능 개선이 시급했다. 외관을 치장하거나 단순히 내부 공간을 멋지게 디자인하는 것보다 건물이 더 오랫동안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만드는 일에 초점을 맞췄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집의 구석구석을 꼼꼼히 살펴 약해진 구조를 보강하고, 노후화된 전기와 설비 배관을 새것으로 교체했다. 창을 교체하면서 취약했던 단열 성능과 안전까지 꼼꼼히 챙겼다. 내부는 전면적으로 그 쓰임에 맞춰 문과 벽을 헐거나 새로 세워 거주자의 생활과 취향을 담은 공간으로 새롭게 단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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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와 전기, 설비는 현장에서 뜯어보기 전까지는 그 노후화 정도를 확인할 길이 없는 경우가 많다. 전기통신 설비나 배관, 정화조 설비는 바닥이나 벽체에 매설되어 있어 쉽게 교체와 점검을 하기 어렵기 때문. 구조 역시 마찬가지다. 보통 현장에서 경험 있는 시공자가 감으로 판단해 철거나 보강 정도를 결정하는 경우가 많지만 경험치는 결코 판단의 근거도, 안전을 보장하는 장치도 될 수 없다. 반드시 전문가가 구조체의 내부를 들여다보고 점검하는 구조안전진단이 선행되어야 한다. 정화조 용량이나 전력량 등 설비 용량에 대한 사전 검토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 리노베이션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부분을 살펴 건물의 면역력을 높이고 건물의 수명을 연장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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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축보다 싸다는 편견
구조와 전기, 설비, 창과 단열, 인테리어까지 2018년 기준 약 1억 5,000만 원의 공사비가 들었다. 비용 절감을 위해 공간마다 시공 자재 품질에도 차등을 두었다. 리노베이션이 신축보다 훨씬 저렴할 것이라는 생각은 편견에 가깝다. 신축보다 예산을 절감할 수는 있으나 드라마틱하게 싸게 지을 수는 없다는 것. 오래된 건물일수록 면역력을 높이기 위한 비용이 더 많이 요구되기 마련이다. 일반적으로 신축 대비 60~70%의 예산이 소요되며, 건물 상태와 상황에 따라 더 들 수도 덜 들 수도 있다. 신축에 비해 정확한 예산을 추측하기 어렵다는 리스크도 따른다.

새 건물엔 새 법규를
이 집을 고쳐 쓰기로 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법규 적용에 대한 부담 때문이었다. 신축을 했다면 현행 법규에 따라 주차장과 도로 이격거리 확보로 건축 면적이 지금보다 현저히 줄었을 것이다. 오래된 집을 고쳐 쓰기 위해 매입하는 경우 대지 조건에 따른 현행 법규를 상세히 검토하고, 불법 증축이나 개축된 부분이 없는지도 따져봐야 한다. 오래된 집일수록 그 세월을 겪으며 다양한 모습으로 변해 왔을 가능성이 크다. 베란다에 지붕을 덮어 내부 공간으로 만들거나, 건물이 인접 대지 경계선을 넘어 건축된 일이 빈번하다. 이 경우 개조된 부분이 현행 법규를 충족하지 않는 경우 건물을 부수고 다시 지어야 하는 상황을 맞이할 수도. 이는 신축뿐 아니라 증축이나 개축, 대수선을 할 때에도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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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에는 원래 이름이 없다

문이 없는 집
화장실과 욕실을 제외한 모든 공간에 문을 설치하지 않았다. 공간을 나누는 벽도 최소화했다. 작은 집을 더욱 넓고 개방감 있게 사용하기 위해서다. 다만 1층은 거주자 구성이나 생활의 변화를 고려해 필요에 따라 문을 달 수 있도록 헤드 부분을 남겨 두었다. 작은 집에선 벽체를 최소화하는 대신 재료의 변화나 바닥 또는 천장에 높낮이 차를 주어 공간의 경계를 나누는 것이 유리하다. 같은 공간 안에서도 재료나 색을 다르게 하면 공간이 더 풍부해지고 완전히 다른 공간처럼 구성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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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 평면도 ©︎NOMAL
2층 평면도 ©︎NOMAL

 

재료가 결정하는 공간의 경계
재료 변화로 공간의 경계를 구분한 만큼, 공간의 성격과 쓰임에 맞는 다양한 재료를 사용해 공간마다 다른 분위기를 연출했다. 2층은 주로 페인트와 목재를 사용했고 화장실은 회벽으로 발랐다. 페인트는 천장과 벽, 기둥, 바닥마다 각각 미묘하게 다른 톤의 화이트 페인트를 사용해 단순한 공간에 입체감을 더했다. 바닥은 주로 상업 공간에 쓰이는 셀프레벨링으로 마감했다. 셀프레벨링은 스스로 바닥 면의 고저차를 맞출 수 있는 모르타르 바닥 시공법으로, 유동성이 커 바닥면을 매끈하고 정갈하게 연출할 수 있는 시공법이다. 바닥 난방을 하는 경우 쉽게 크랙이 생길 수 있어 주거 공간에는 잘 쓰지 않는 소재이지만 벽, 천장과 일체감 있게 색상 톤을 맞춰 공간을 더 넓게 보이도록 하기 위해 사용했다. 안쪽의 작은 방은 벽을 목재로 감싸 집중이 필요한 업무를 할 때 사용하는 공간으로 구분했다. 1층은 벽지와 강마루를 사용하고, 화장실은 타일로 시공해 주거 공간의 느낌을 한층 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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