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을 침투하는 비일상의 가구

[Uncommon Living] ① 아트 퍼니처 작가 최동욱
ⓒDongwook Choi
에디터. 윤정훈  사진. 윤현기  자료. 최동욱

 

대다수의 삶을 담는 주거 양식은 여전히 획일적이고 보편적(common)이지만 들여다보면 집이라는 공간을 장소로 만드는 것은 바로 개개인의 삶, 삶을 이루는 시간과 취향의 켜다. 취향에 기반한 공간은 개별적이고 고유하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기성과 ‘다른(uncommon)’ 선택을 하는 경향에 주목하고자 한다. 장인 정신이 깃든 리빙 브랜드, 각자의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하는 맞춤형 브랜드, 독창적인 아이디어로 유일무이한 제품을 구현하는 디자이너, 확고한 취향으로 특색 있는 리빙 제품을 선별해 소개하는 편집숍까지.
<브리크brique> vol.9 기획 특집은
범람하는 리빙 트렌드 속에서 마침내 중심이 될 자신만의 취향을 찾아가는 여정이 될 것이다.


Art and Craft

①일상을 침투하는 비일상의 가구 – 최동욱
②텅 빈 장식품의 초대 – 쉘위댄스
③한 명의 랩, 하나의 콘크리트 – 랩크리트
④공간의 가능성을 확장하는 나무 조각 – 안문수
Craftsmanship
⑤패브릭 아틀리에의 한 끗 – 일상직물
⑥낡은 기술이 완성한 디자인 조명 – 아고
⑦생활 가구를 잘 만드는 사람들 – 스탠다드에이
Customizing
⑧사용자가 곧 크리에이터 – 몬스트럭쳐
⑨주방에 컬러를 입히다 – 스튜디오 비엘티
⑩생활 속 긍정의 감도를 높이다 – 비밥 디자인 스튜디오
⑪벽지를 만나는 새로운 방법 – 스페이스 테일러


 

여기 앉아도 되나요? 전시장이나 갤러리, 감각적인 카페 혹은 편집숍에 놓인 독특한 형태의 사물을 보고 이런 질문을 떠올린 적이 있을 것이다. 가구인지 예술 작품인지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아트 퍼니처는 고정관념에서 탈피한 낯선 형태로 기분 좋은 이질감과 호기심을 선사한다.

 

ⓒDongwook Choi

 

곁을 내준 예술
아트 퍼니처의 선구자 최병훈은 아트 퍼니처를 ‘디자인의 기능성, 예술의 독창성, 공예의 숙련된 기술이 모두 내재된 예술 가구’로 정의한 바 있다. 독창성과 기능성, 정교한 만듦새를 두루 갖춘 이러한 오브제는 소위 ‘고이 모셔두어야 하는’ 예술 작품에 비해 좀 더 친숙하게 다가온다. 전시장에 놓여 그 자체로 감상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누군가의 생활 공간에 놓여 사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앉고, 만지고, 여닫는 등의 행위를 통해 작품에 배어 있는 독특한 감성과 질감이 고스란히 피부로 전달된다.
MZ세대를 중심으로 예술을 감상하고 소장하는 방식이 다양화되고 동 세대 작가들의 활약이 도드라지는 가운데, 생활과 예술의 경계를 넘나드는 아트 퍼니처는 전시장으로부터 다양한 상공간 및 주거 공간으로의 진입을 시도하는 중이다. 이와 더불어 코로나19는 인테리어 시장의 호황에 불을 지폈고, 공간에 개성을 부여할 크고 작은 인테리어 요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덕에, 리빙 디자인 분야에서도 ‘컬렉터블 디자인collectible design’이 주목할 만한 흐름으로 떠올랐다. ‘소장할 만한 가치가 있는 디자인’을 일컫는 이 용어는 아트 퍼니처, 펑셔널 아트functional art와 같은 선상에 놓여 그 자체로 하나의 장르로 일컬어지기도 한다. 아트 퍼니처 작가 최동욱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지점은 이 컬렉터블 디자인이다.

 

최동욱 작가 ⓒBRIQUE Magazine

 

일렁이는 금속, 부드럽게 감싸는 이빨
최동욱은 예술과 실용의 경계에 걸친 사물을 만든다. 비정형적이고 유기적인 형상이 특징인 그의 작품은 ‘가구’ 하면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이미지와는 한층 다른 결을 지닌다. 주변의 빛과 사물을 은은히 반사하며 일렁이는 은빛 물결이 특징인 ‘마루와 골’은 파동의 간섭에서 영감을 받은 가구 연작이며, ‘투스 체어’는 이(또는 이빨)가 사람을 부드럽게 감싸는 모습을 상상해 만든 의자다. 일반적인 가구의 미덕이 공간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흩뜨리지 않고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데 있다면, 최동욱의 가구는 오히려 공간에 크고 작은 균열을 일으키며 강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Dongwook Choi

 

느슨한 쓰임에서 파생된 다양한 활용
최동욱의 작품은 예술품인 동시에 가구이지만 쓰임, 기능에 대한 고민은 의도적으로 뭉뚱그린 것이 특징이다. 다시 말해 대략적인 용도를 정하고 작품을 구상하되 특정한 쓰임을 유도하는 요소는 배제한 것이다. 만들고자 하는 가구가 의자나 테이블이라면, 기능성을 갖추는 측면에서는 팔걸이의 유무나 상판의 모양을 고민하기보다 그저 하중을 잘 견딜 정도를 목표로 삼았다. 이렇듯 느슨한 쓰임을 가진 기물에는 그것을 보다 열린 마음으로 대하는 태도가 쉽게 투영될 수 있다. 단번에 사용법을 알아차리기는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그러기에 있는 그대로의 형태와 질감, 작품이 주는 첫인상에 먼저 주목하게 되는 셈이다.
느슨하게 규정된 기능은 역설적으로 더 다양한 활용을 가능하게끔 하기도 한다. ‘마루와 골’의 사이드 테이블은 작품 위에 유리 상판을 두어야 본래의 쓰임을 다하는 것이지만 전시장이나 편집숍 등에 놓인 모습을 보면 상판이 없는 경우가 대다수다. 사이드 테이블의 조형성과 텍스처가 제 기능을 위해 꼭 필요한 상판을 잃었을 때 더욱 부각되는 점은 흥미롭다. 가운데 동그란 구멍과 구불구불한 다리가 만드는 공백마저 그 자체로 즐기고 감상할 만한 대상처럼 보인다. 반대로 상판을 얹으면 그 위에 놓이는 것이 무엇이든 특별해진다.

 

ⓒBRIQUE Magazine

 

손의 가치를 대체하는 것
3D 프린터 등 보다 정교한 제작 기술이 예술·디자인 분야에 새로운 흐름을 만드는 가운데, 작가의 손길이 일일이 닿지 않았다 해서 작품 또는 소장할 만한 오브제로서 가치를 갖지 못할 이유는 없다. 그보다는 뚜렷한 정체성과 새로운 미감, 특유의 분위기를 내재하는 것이 중요할 터. 최동욱의 작품은 일일이 손으로 조형한 듯 불규칙한 곡면이 특징이나, 이는 작가의 디지털적 상상력과 제조 기술이 조화를 이룬 결과다. 우선 ‘마루와 골’의 울퉁불퉁한 표면은 파동의 마루와 골이 만나 서로 간섭하는 가운데 진폭이 커지거나 일그러지며 만드는 다양한 패턴을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구현했다. 이를 토대로 손수 만든 프로토타입을 몰드로 제작한 다음, 그에 맞춰 성형한 FRP(유리 섬유 강화 플라스틱)에 메탈릭metallic 도료인 크롬을 증착했다. 이 과정에서 능력 있는 제조 기술자들의 도움을 받았다. 새로운 소재와 기술은 작가의 수고뿐만 아니라 사용자가 겪는 불편 또한 덜어준다. ‘마루와 골’은 언뜻 보면 무척 무거워 보이지만 플라스틱의 겉면을 얇게 도색한 것이기 때문에 두 손으로 거뜬히 들어 옮길 정도로 가볍다.

 

최동욱 작가의 작업실 ⓒBRIQUE Magazine

 

하나의 공간을 위한 하나의 오브제
근래 들어 아트 퍼니처 작가의 작품을 전시하고 판매하는 사례가 늘었을 뿐 아니라 특정 브랜드 혹은 건축가와의 협업도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이미 만들어진 사물 중에 공간에 적당히 들어맞는 것을 찾아 쓰기보다, 하나의 공간을 위한 단 하나의 오브제를 제작해 해당 공간의 특성을 극대화하고자 하는 수요가 높아진 탓이다.
최동욱이 의류 브랜드 ‘블러1.0’과 협업해 만든 조형물은 단조로운 분위기의 피팅룸을 단번에 전시장으로 변모시킨다. 고인돌을 연상케 하는 이 오브제에 대한 브랜드 측의 요구는 ‘거울로 기능하지만 거울이 배제된 오브제’였다. ‘마루와 골’ 시리즈의 결을 살려 디자인하되 ‘(컬처, 아트, 패션의 경계를) 흐릿하게 만든다’는 브랜드 정체성을 강조하기로 했다. 그 결과 거울처럼 상을 선명하게 반사하지만 둥글고 일그러진 표면을 가진 조형물이 탄생했다. 주변 공간과 그 공간을 이리저리 누비는 사람들의 형태를 왜곡해 반사하는 이 오브제는 방문객을 위한 포토 스폿으로도 기능한다. 사물이란 본래 공간에 귀속되는 것이지만 때론 한 공간의 분위기를 압도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지점이다.

 

ⓒDongwook 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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