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지만 충분한

[Space] 가볍고 오롯한 세컨드 라이프를 위한 집, 'ODM'
©Gansam Human Environment & Design
에디터. 김윤선  사진. 최진보  자료. 간삼생활디자인

 

10년 전만 해도 ‘세컨드 하우스’라고 하면 으레 서울 도심과 가까운 양평 등지의 40~50평대 전원주택을 떠올렸다. 은퇴자라면 전원 속의 삶을 꿈꾸며 도심의 집을 처분하고 아예 거처를 옮기는 사람도 많았다. 하지만 주택은 토지와 달리 짓자마자 감가상각이 일어나고 되팔기도 쉽지 않다. 도심에서 누리던 생활 편의 또한 포기해야 한다. 주택 과세 규제 강화도 무시할 수 없다.

이런 이유를 포함해 최근 나타나는 세컨드 하우스 수요는 과거와는 분위기가 좀 다르다. 정주의 개념은 약해졌고, 소유보다 경험을, 겉치레보다 실속을 우선시한다는 점이 뚜렷이 나타난다. 평일에는 도시에 머물다가 주말이면 도심을 벗어나 자연을 즐기고자 하는 사람들의 움직임은 닷새는 도시에서, 이틀은 촌에서 산다는 뜻의 ‘5도 2촌’ 같은 말이 대변한다.

무엇보다도 군더더기를 빼 꼭 필요한 것만 남긴 가벼운 집을 찾는다는 것이 화두. 생활의 흔적이 깊게 밴 살림살이와 끊어내기 힘든 잡생각으로부터 해방되어 자기만의 오롯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간편하고 홀가분한 집 말이다.

 

ODM ©Gansam Human Environment & Design

 

작지만 충분한
무거운 집에서 벗어나 가벼운 집을 찾는 경향은 자연스레 이동식·모듈형 주택으로 이어지고 있다. 해외에도 다양한 사례가 나와 있다. 일본의 생활용품 브랜드인 무인양품은 2.75평짜리 오두막 ‘무지헛MUJI HUT’을 2017년 출시해 300만 엔(약 3,050만 원)에 판매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간삼생활디자인이 2018년 내놓은 6평짜리 이동식 주택 ‘ODM’이 대표적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공장에서 모든 공정을 끝낸 100% 완제품의 집을 고객이 원하는 장소에 배달해 준다는 것. 인허가와 기반 시설 공사를 마친 땅을 미리 준비해 둔 다음, 택배를 받듯 집을 받아 땅에 앉히기만 하면 된다. 원하는 곳 어디든 설치·재이동할 수 있고 단기간에 배달 가능하며, 완성품을 미리 보고 살 수 있어 가벼운 집을 찾는 사람들에게 장점이 분명하다.

세컨드 라이프를 꿈꾸는 이들에게 작지만 충분한 대안이 될, ODM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간소하지만 옹색하지 않고, 비워냈지만 모자람이 없는. 작지만 충분한 어느 오두막에 대하여.

 

©Gansam Human Environment & Design

 

움직이는 집

 

어디든 설치 가능한 집

ODM은 사전에 공장에서 100% 완성한 주택 상품을 고객이 원하는 장소로 배달하는 이동식 주택이다. 말 그대로 이동이 가능한 집으로, 설치 후 다른 장소로 재이동도 가능하다. 주택을 규격화했다는 점에서 ‘모듈형 주택’과 개념은 유사하지만, 모듈형 주택은 규격화한 벽과 바닥, 지붕 등의 구성 요소를 반조립 상태로 가져와 현장에 조립 후 설치하는 반면 이동식 주택은 현장에서는 설치만 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ODM은 ‘Off-site Domicile Module’의 약자로, ‘어디든 설치 가능한 집’이라는 뜻을 담고 있으며, 영문 약칭 ODM에는 ‘오두막’이라는 중의적 의미도 담겨 있다.

 

판교 쇼룸 ©BRIQUE Magazine

 

정주형과 비정주형

소비자의 라이프스타일에 맞춰 정주형 상품과 비정주형 상품으로 나뉜다. 정주형 상품인 모노mono는 1인 가구가 거주하기에 적합한 집으로, 거실, 화장실, 주방, 외부 발코니, 복층의 다락으로 구성되어 있다. 비정주형 상품인 네스트nest는 거실과 평상, 화장실, 주방, 외부 발코니로 구성되어 있고, 세컨드 하우스로 사용하기에 적합하다. 모노와 네스트의 가장 큰 차이는 다락의 유무다. 모노는 다락이 있는 복층인 반면, 네스트는 단층의 원룸형 구조다. 주방 테이블과 세탁기, 파우더룸 또한 정주를 위한 시설이므로 모노에만 포함된다. 대지 조건에 따라 좌측형과 우측형을 선택할 수 있으며, 가격은 부가세를 포함해 4,800만 원부터 7,300만 원 선이다.

 

판교 쇼룸 내부 ©BRIQUE Magazine
정주형 상품 모노mono 1층 평면도 ©Gansam Human Environment & Design
정주형 상품 모노mono 다락층 평면도 ©Gansam Human Environment & Design
비정주형 상품 네스트nest 평면도 ©Gansam Human Environment & Design

 

상업 특화형

원하는 용도에 따라 맞춤 설계를 제안하는 ‘DOO’도 있다. DOO는 ‘Design your Own ODM’의 약자로, ODM의 상업 특화형 상품이다. 목구조인 ODM과 달리 가벼운 경량철골구조를 채택했고, 면적과 창문 위치도 사용자가 원하는 대로 조정할 수 있다. 카페, 키오스크, 작업실 등 고객이 원하는 기능과 사용 목적에 맞게 맞춤 제작 가능하다.

 

DOO 천문대 평면도 (예시) ©Gansam Human Environment & Design
DOO 키오스크 평면도 (예시) ©Gansam Human Environment & Design

 

배달하는 집

 

동산과 부동산

ODM은 주택이지만 상품이므로 구매 시 자동차나 휴대폰처럼 ‘동산’으로 여겨지지만, 대지에 두어야 하는 특성상 결국은 ‘부동산’이 된다. 부동산은 건축법상 이름표를 달아 줘야 하는데, ‘가설건축물’, ‘건축 신고’, ‘건축 허가’가 그것이다. 가설건축물은 20㎡ 이하 농막과 같이 임시로 건축하여 제한된 기간동안 사용하는 건축물을 말하며 간단한 신고만으로 설치 가능하다. 20㎡ 이상이면 건축 신고와 건축 허가가 필수. 땅의 제한 요건과 고객의 필요에 따라 그 용도를 결정하여 인허가를 받으면 된다.

 

©BRIQUE Magazine

 

3개월 만에 입주 가능

인허가 절차를 마친 다음에는 기반시설 조성 작업이 필요하다. 기반시설 공사에는 상수, 하수, 오수, 전기공사, 기초공사 등이 수반된다. 인허가와 기반시설 공사, 이동 및 설치에는 보통 약 1,500만 원의 별도 금액이 발생한다. 인허가와 기반시설 공사를 완료하는 데 걸리는 2~3개월의 기간을 고려해, 구매 후 배송까지 계약 후 3개월을 기준으로 한다.

 

©BRIQUE Magazine

 

운반할 수 있는 규모

완제품 형태로 배송하므로 규모는 운송 가능한 상한선으로 제작된다. 외경 기준 6.6m(D)×3.2m(W)×4.2m(H)가 기본형. 우리나라 도로 기준법상 너비는 3.3m까지 허용돼 3.2m로 맞췄다. 길이는 최대 15m까지 가능하나 그에 따라 트럭 회전 반경도 길어지는 까닭에 배송 전 도로 사정을 확인하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하므로 길이가 길어질수록 배송 비용이 최대 2배까지 상승한다. 이를 고려해 9m까지만 확장할 수 있도록 했다. 높이 역시 상한선인 4.5m를 고려해 4.2m로 맞췄다. 운송에는 바닥에서 30cm 정도 올라오는 저상 트레일러를 사용한다.

 

작지만 충분한 집

 

단열이 좋은 목구조

ODM은 경량목구조를 적용했다. 일반적으로 목구조는 스틸 구조에 비해 두껍고 부재가 많이 들어간다. 스틸 구조는 6,000mm 간격을 기둥 2개로 지지할 수 있지만, 목구조는 캐나다 목구조 표준 기준으로 1,200mm 기둥 간격 사이에 간벽기둥인 스터드stud를 4개나 세워야 한다. 자재 수가 많다 보니 집이 무거워지는 것은 당연지사. 스틸 구조의 컨테이너 하우스가 보통 3t인 데에 비해, ODM은 그 3배인 10t에 달한다. 그럼에도 목구조를 고집한 이유는 무엇보다도 단열 때문이다. 스틸 구조는 가볍고 내구성이 좋지만, 열전도율이 높아 목구조보다 단열성이 떨어진다. 단열 성능을 높이기 위해 벽과 지붕, 바닥 모두 기준 이상의 단열재를 사용했고, 3중 유리로 된 독일식 시스템 창호를 설치했다.

 

©BRIQUE Magazine

 

작지만 단단하게

이동과 재이동을 전제로 하는 만큼 보이지 않는 곳에도 신경을 많이 썼다. 내진 설계를 적용하고 양중揚重을 위한 구조 검토 결과를 반영했다. 바닥판도 일반보다 두꺼운 10inch 두께로 탄탄하게 만들어 내구성을 높였다.

 

©BRIQUE Magazine

 

박공지붕의 비밀

‘작지만 충분한’ 집의 비결은 지붕 안에 숨어 있다. 박공지붕은 ODM의 가장 중요한 디자인 콘셉트로, 정서적으로는 집의 이미지를 연상시킨다. 형태는 모름지기 기능을 따르기 마련. 박공지붕 양쪽은 경사도는 같지만 좌우 대칭이 아니라 중심이 한쪽으로 치우친 형태를 하고 있는데, 이에 따라 너비가 짧은 쪽의 지붕 아래에 여유 공간이 만들어져 에어컨 실외기와 온수기 등 잡다한 유틸리티 수납이 가능하다.

 

©BRIQUE Magazine

 

단순하고 실용적인 자재

외관은 호주산 유칼립투스 집성 외장용 보드로 마감했다. 간결함을 지향하는 디자인 코드에 맞춰, 면 평활도가 높아 단순하면서도 깔끔한 느낌을 극대화하는 자재를 선택했다. 유칼립투스 나무를 파라핀과 섞어 압축시킨 목제 보드는 호주 제품을 독점 수입한다. 보드 위에 메탈릭 도장을 해 얼핏 보면 금속 소재로도 보인다. 내장재는 자작나무 합판의 원장을 사용했다. 최소한의 가공으로 재료 본연의 물성을 살려 자연스럽고 편안한 분위기를 내려 했다.

 

©BRIQUE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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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너스 몰딩

실내 벽과 천장에 사용한 자작나무 합판은 합판 사이의 틈을 몰딩 없이 시공하는 방법인 ‘마이너스 몰딩’을 적용해 미니멀한 느낌을 더했다. 자작나무의 단면을 보이지 않게 안쪽으로 숨길지, 바깥으로 드러나 보이게 할지를 미리 계획해 단면이 노출되는 부분은 18t, 노출되지 않는 부분은 6.5t 합판으로 마감했다. 자작나무의 마감 상태가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에 시공에 공이 많이 드나, 입체적인 디테일과 재료 본연의 물성을 살리기에 적합한 방법이다. 기온에 따른 나무의 수축과 팽창을 고려한 것이기도 하다.

 

©BRIQUE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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