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은 비용으로, 임대가 잘 되는 집을 지어 주세요.”

[QnA] 피그건축의 '밝은 다세대주택' ① 집 짓기의 시작
ⓒKyung Roh
글. 김윤선  자료. 피그건축사사무소

 

‘밝은 다세대주택’은 경기도 안산의 주택가에 위치한 10세대의 원룸과 1세대의 주인집으로 구성된 다세대주택이다.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이 빨간 벽돌집에는, 건축가의 경험에서 비롯한 집에 관한 고민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거주자의 삶의 질과 공간의 품질을 높이기 위한 6가지의 설계 키워드는 다세대주택이 가진 불리한 환경을 극복하며 집을 환하게 밝히고 있다. 2018년 한국건축문화대상에서 일반주거부문 대상 수상의 영광을 누리기도 한 ‘밝은 다세대주택’의 이야기를 집을 닮은 건축가, 피그건축의 이주한 소장에게 들어본다.

 

ⓒKyung Roh
피그건축사사무소의 이주한 건축가 ⓒBRIQUE Magazine

 

집의 시작 : 오래된 집 다시 짓기

‘밝은 다세대주택’은 어떻게 시작된 집인가요?

‘밝은 다세대주택’ 자리에는 원래 90년대에 지은 다세대주택이 있었어요. 2층짜리 빨간 벽돌집이었죠. 건축주의 부모님이 살고 있었는데, 집이 오래되니까 곳곳이 낡아지고, 물까지 새는 등 크고 작은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어요. 주택을 팔고 다른 곳으로 이주할까도 생각하셨지만, 30년 가까이 그 집에서 사셨기 때문에 살던 동네를 떠나서 갑자기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에 큰 부담을 느끼셨어요. 그리고 지하철 4호선 역에서 10~15분 정도 떨어진 역세권 지역이라 교통도 편리하고 부동산 가치가 있는 땅이라 팔지 않고 집을 다시 짓기로 하셨습니다.

 

기존의 2층짜리 빨간 벽돌 다세대주택 ⓒfig. architects

 

기존 주택을 증축할 수도 있었을 텐데, 신축을 선택한 이유가 궁금하네요.

처음에는 증축을 고려했어요. 그런데 증축을 할 때 원래보다 늘어난 면적에 대해서는 현행법을 다 충족시켜야 하거든요. 원래 집에는 주차장이 없었으니 주차장을 새로 만들어야 하는 상황인 거죠. 그런데 필로티 구조로 지은 집이 아니니까 주차공간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었어요. 결국 기존 규모를 유지하면서 마감재를 바꾸거나 낡은 배관을 교체하는 수준으로 증축하면 집을 손보는 의미가 없어져서 신축을 생각하게 됐어요. 그리고 내부 공간 구성이 요즘 다세대주택 거주자들이 선호하는 구성이 아니고, 보안의 문제도 있어서 임대나 분양을 고려했을 때 어려움이 생길 소지가 많아서 신축이 낫다는 판단이 선 거예요. 또한 주택을 통으로 매도할 생각도 있었기 때문에 ‘팔릴만한 상품’이 되어야 한다는 전제도 있었죠.

주변 상황은 어땠나요?

대지는 경기도 안산시에 위치한 도심 주거지 안에 있고요. 빨간 벽돌로 만든 다세대주택이 모여있는 전형적인 ‘빌라촌’ 분위기의 동네로, 개별 필지마다 부동산 업자들이 계속해서 새로운 집들을 짓고 있었어요. 동쪽으로는 보도와 차도, 노면 주차장이 혼용된 11m 폭의 도로가 접해있고, 그 맞은편으로는 학교가 있어요. 그리고 이곳은 특이 사항이 하나 있었는데요. 혹시 미관지구라고 들어보셨나요? 일반적으로 주거지에 집을 지을 때 뒤편에 있는 집의 채광을 확보하기 위해 북쪽으로부터 일정 간격 물러나야 하는 제한이 있어요. 이것을 ‘일조 사선제한’이라고 하는데요. 이 제한에 의해 북쪽이 사선으로 잘려나간 형태로 된 집을 많이 보셨을 거예요. 그런데 미관지구에서는 도시계획시설에 면해 있는 대지에 한해서 이 제한을 적용하지 않아도 돼요. 도시계획시설은 덩어리가 크고 밀도가 낮아 여유 부지를 확보한 건물이 대부분이니까 여기에 면해 있으면 간접적인 채광이 가능한 땅이라는 보는 거죠. 따라서 도시계획시설인 학교와 붙어 있던 이 대지는 그 제한에서 자유로웠고, 형태나 면적 확보 면에서 비교적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Kyung Roh
ⓒBRIQUE Magazine

 

그 외에 지켜야 할 법적 사항은 없었나요?

‘건폐율 60%, 용적률 250%, 4층 이하’로 건축할 수 있고, 1층 전부를 필로티 구조의 주차장으로 만들면 5층까지 허용되는 땅이었습니다. 그런데 건폐율 60%로 필로티 층을 제외하고 4개 층으로 지으면 아무리 꽉 채워 지어도 용적률 최대치가 240% 예요. 따라서 용적률을 최대로 맞출 수는 없는 땅이고, 층수 또한 정해져 있으니까 층수와 건폐율을 최대로 맞춰서 건물의 볼륨을 조정했어요.

집의 목적 : 싸고 임대가 잘 되는 집 짓기

건축주의 주된 요구사항은 무엇이었나요?

‘싸게 짓고, 임대가 잘 되는 집’이요. 예산이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에, 최대한 공사비를 적게 들이면서도, 이 집을 짓는 이유가 거주뿐만 아니라 임대를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거니까 그 목적에 맞게 임대가 잘되도록 하는 게 중요했죠. 그리고 또 한 가지는 ‘갖고 싶은 집’이라는 말씀을 하셨어요. 싸게 짓는다고 해서 막 짓고 싶지는 않았던 거에요. 건축주에게 이 집은 ‘자산’으로서 가치가 있기도 하지만, ‘내 집’이라는 의미도 있었던 겁니다.

여타 건축주와 조금 다른 점이 있으셨다고요.

건축가를 전적으로 믿어준 점입니다. 아마 그래서 더 설계가 잘된 부분도 있다고 생각해요. 건축주가 관여를 덜 하면 도리어 건물이 잘 나올수도 있어요. (웃음) 하지만 수억 원을 들여 건물을 짓는데 건축주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건축가 말만 들어줄 수는 없어요. 옆에서 누가 한마디씩 하면 정말 그런가 싶어서 갈팡질팡하기도 하고요. 이 건축주는 제가 하겠다고 하는 걸 그대로 많이 수용해주셨고 이견은 거의 없었어요. 어떻게 보면 일정 부분은 건축주의 역할을 건축가가 담당한 거죠.

처음부터 ‘분양’이 아니라 ‘임대’를 목적으로 지었다고 들었어요.

‘분양’과 ‘임대’는 여러 가지 차이점이 있어서 기획단계에서부터 결정하고, 그에 맞춰 건축계획을 진행해요. 분양하는 집은 최대한 빨리 분양을 하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고, 건축주는 그 집에서 살지 않을 가능성이 커요. 사실상 ‘주인이 없는 집’이죠. 진짜 주인은 집을 다 짓고 분양이 끝난 이후에 각 세대 단위로 생기는데, 그때부터는 세대 간 관리 규약을 ‘약속’삼아 집이 굴러가게 되요. 대부분의 다세대주택은 그 ‘약속’이 잘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고, 그래서 그 ‘약속’에 의해서 관리되는 공용공간들을 최소화하게 되죠. 곧 미래의 ‘주인’이 신경 쓰는 세대의 내부공간 위주로 공간을 만들게 되는 거예요.

반면 임대하는 집은 ‘주인이 있는 집’이에요. 건축주가 건물 전체를 관리해요. 그래야 계속해서 임대가 잘 될 테니까요. 그래서 장기적으로 임대가 잘 되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 여러가지로 신경을 쓰게 되고요. 최근 들어 건축가들이 다세대주택을 설계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회적으로 임대소득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주인이 있는 집’에 대한 요구가 많아진 것이 큰 이유인 것 같아요. ‘밝은 다세대주택’은 임대를 목적으로 하는 집으로 사업 방향이 결정되었고, 그로 인해 가장 크게 고려한 부분은 그곳에서 사는 사람들이었어요. 안산 지역에서 분양이 잘 되려면 적어도 방 3개를 가진 30평 규모는 갖춰야 하는데, 그런 집에는 보통 3~4인 정도의 가족들이 살죠. 반면 임대 수요는 1~2인 가구가 많아요. 즉 그들이 살기에 좋은 집을 만드는 방향으로 이 주택의 설계 목표가 정해진 것이죠.

 

1~2인 가구를 위한 임대 주택으로 계획했다. ⓒKyung Roh

 

집의 고민 : 사람을 위한 집 짓기

설계의 출발점이 된 것은 무엇이었나요?

임대를 결정하면서 주인 세대를 제외한 모든 세대가 원룸 형태로 구성되었고, 거주자는 1~2인 가구가 대상이 됐어요. 그리고 거주자에 대한 고민이 설계의 출발점이 되었죠. 저희의 경험이 여기 반영되기 시작한 거예요. 학생 시절에 저희가 살았던 다세대주택. 어떻게 보면 도시에서 가장 흔한 집인데 그 집에 사는 사람들의 삶에 대해 별로 얘기가 없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죠. 다세대주택은 단독주택이나 아파트보다 쾌적한 환경을 만드는데 불리한 점이 많아요. 창문을 열면 옆집이 보이고, 빛도 잘 안 들고, 환기도 어렵고, 주차장은 복잡하고… 우리의 경험만 돌아봐도 거기 사는 게 불편하고 좋지 않은데 그 부분을 개선하려고 했던 시도가 그동안 별로 없었어요. 그래서 다세대주택에서 누리는 삶의 공간과 품질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설계의 시작이었습니다.

 

ⓒBRIQUE Magazine

 

설계 전에 현장을 답사하러 기존 집에 처음 갔을 때 재미있게 본 것이 있었는데요. 기존 주택의 세입자분들이 집과 담장 사이의 작은 틈새 공간마다 열심히 화초들을 기르고 계셨어요. 그때 오히려 작은 집에 살수록 외부공간이 더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가령 10평짜리 집에 사는데 실내공간을 더 확보해서 11평으로 만드는 것보다 1평짜리 외부공간이 있는 것이 더 풍요로운 삶이 되겠다고 생각한 거죠. 그래서 지금 밝은 다세대주택을 보면 세대마다 차이는 있지만 그래도 집에서 바로 외기를 느낄 수 있는 외부공간들을 만들어두려고 노력했어요. 이 부분은 건축주도 동의를 하셨는데, 건축주가 지방에서 단독주택에 사는 분이에요. 집에서 외부 공간이 갖는 의미와 그 곳에서 일어나는 활동의 중요성을 전적으로 체감하는 분이었죠. 그래서 외부 공간 계획에 대해 제가 제안한 부분을 무척 좋아해주셨어요.

 

기존 주택 거주자들이 담장 사이 공간에 작은 정원을 만들었다. ⓒfig. architects
초기 계획의 일부 ⓒfig. architects

 

다세대주택에 살았던 경험 덕에 그러한 관점을 가질 수 있었던 거네요.

제가 다세대주택에 살아보지 않았다면 아마 이 집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요소가 변했을지도 몰라요. 이 집을 설계하던 즈음이 젊은 건축가들이 다세대주택 프로젝트를 많이 해나가는 시기였어요. 한발짝 떨어져서 볼 때만 해도, 주택을 건축적으로 어떻게 창의적으로 해석했는지, 아니면 재료를 어떻게 썼는지에 관심을 갖고 지켜보았죠. 그게 부정적이라는 것은 아니고요. 이후에 제가 ‘밝은 다세대주택’을 설계하면서 고민을 하다 보니 외적인 부분보다 훨씬 중요하고 집중해야 할 것은 이 집에 매일매일 사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기존에 빨간 벽돌집이 있었는데, 또다시 빨간 벽돌집을 만들었어요.

이 동네는 전형적인 빨간 벽돌집들이 밀집한 주거지에요. ‘빨간 벽돌’이 동네의 시각적인 분위기를 만들고 있었죠. 최근에 짓는 빌라를 보면, 전면에 노출되는 부분은 돌로 하고, 옆면은 드라이비트* 같은 재료로 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빨리, 싸게 지으려고’ 그렇게 하는 거죠. 하지만 그게 싫었어요. 어떻게 보면 빨간 벽돌집들도 그런 생각으로 지어진 것일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몇십년간, 오랜 시간 동안 만들어져온 거잖아요 그런게 한순간에 바뀌는 것보단, 더 나은 방향으로 유지되었으면 하는 막연한 생각이 있었던 거죠. 오랫동안 이 동네에 사는 사람들에게 ‘우리 동네는 이런 동네야’라고 만들어져 있는 분위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드라이비트(Dryvit)란? 미국 Dryvit사에서 개발한 외단열공법 및 그 상품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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