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배송으로 꽃과 풀을 소비하는 시대

[Life in greenery] ③우리나라 최초로 꽃 정기배송 서비스를 시작해 화훼산업의 게임체인저가 된 박춘화 꾸까 대표 이야기
ⓒBRIQUE Magazine
글 & 사진.  이현준 에디터

 

집과 사무실, 상업공간을 막론하고 풀과 꽃으로 사람의 주변을 밝히는 것은 이제 자연스러운 일이 됐다. 곡식 낱알마저 귀하던 시절, 영그는 보리를 베어다가 취미일뿐인 꽃꽂이를 하는 행태를 사치스럽게 여기던 과거와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펼쳐지고 있다. 경조사나 특별한 날의 선물용으로만 꽃을 찾던 사람들은 가끔 일상에 지친 나를 위해 공간에 꽃을 놓고, 혼자 사는 지인의 집에 초록을 들고 찾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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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일상 속의 꽃’을 꿈꾸며 기존에는 없던 비전과 정기배송이라는 사업 모델로 화훼 산업계에 뛰어든 인물이 있다. 꾸까Kukka (핀란드어로 꽃을 뜻한다)의 박춘화 대표이다.
박 대표는 고려대 공대에서 산업공학을 전공하고 아모레퍼시픽 경영팀과 독일계 스타트업 인큐베이팅 회사 로켓인터넷에서 커리어를 쌓았다. 그를 창업으로 이끈 아이디어는 제철을 맞아 가장 싱싱한 꽃을 고객에게 정기적으로 배송하는 시스템. 고객이 직접 꽃을 고를 수도 있고 플로리스트가 디자인한 작품을 선택해 격주로 배송받을 수 있다. 마치 넷플릭스처럼 일정 금액을 선지불하고 구매자에게 상품이나 서비스 등을 주기적으로 제공하는 구독 경제(subscription economy)의 흐름에 꽃을 적용한 것이다.
반응은 초기부터 뜨거웠다. 창업 첫해 6억 원의 매출을 거뒀고, 2016년 40억 원, 2018년 60억 원까지 빠르게 성장시켰다. 이에 힘입어 그는 오프라인 사업에도 나섰다. 직접 고르고 작업한 꽃들로 각기 다른 분위기와 성격의 복합 매장을 운영 중이다. 꾸까를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시도다.
사업 6년 차. 그의 야심 찬 아이디어와 실험 정신은 어느 정도 열매를 맺고 있을까. 박 대표를 경리단길 꾸까 카페에서 만나 그간의 이야기를 들었다.

 

박춘화 꾸까Kukka 대표 ⓒBRIQUE Magazine

 

화훼산업의게임체인저’가 되기로 하다

 

보통 공대를 졸업하면 살던 곳을 떠나 일을 하게 된다. 삼성전자에 입사하더라도 수원으로, 건설사나 중공업체로 가면 캄보디아나 사우디 쪽으로 파견 나가는 일은 부지기수다. 서울에서 일하고 싶었다.(웃음) 그래서 따로 전공을 한 건 아니지만 경영 쪽에 늘 관심을 두고 스스로 공부했다. 그 덕에 아모레퍼시픽의 경영팀에 첫 직장을 얻을 수 있었다.  2011년에는 독일계 스타트업 인큐베이팅 회사인 ‘로켓인터넷’에 입사해 화장품을 랜덤으로 꾸려 배송해주는 ‘글로시 박스’라는 브랜드의 운영을 맡게 됐다. 2014년도에는 마침 무언가 새로운 걸 해봐야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품고 있었다. 원래 꽃을 보면 죽고 못 살거나, 꽃 아니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한 것은 아니었다. 화훼산업이 오랜 시간 동안 변화가 없는 산업으로 보였다. 전반적으로 어렵고 긴 기간 침체되어있다는 건 알았는데 그게 신기했다. 왜 화훼산업만 발전이 더딜까 고민했고, 그러다 ‘일단 들어가서 부딪혀보자’ 하고 시작한 게 지금 여기까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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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다수 꽃을 취급하는 곳들의 이름을 보면 ‘OO플라워’, ‘OO블룸’ 같은 이름들뿐이더라. 그렇게 했을 땐 선물을 위한 꽃집의 느낌이 강했다. 어쨌든 일상에서 즐기는, 라이프스타일과 공간 또는 인테리어의 느낌을 주고 싶었기에 꽃을 뜻하는 핀란드어 단어 ‘KUKKA’를 차용했다. 
‘꾸까의 경쟁력이 어디 있나’를 이야기하자면 약간은 애매한 부분이 있을 수 있다. 우리 꽃이 예쁘다, 우리 꽃이 싸다고 단정 지을 순 없다. 주관적인 부분이기 때문이다. 방점은 미감과 가격을 말하기 이전, 우리의 존재 이유에 있다. 꾸까는 꽃과 풀, 화훼 문화를 바꾸기 위해 시작됐다. 실제로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 어떤 방향으로 전환해야 하는지를 두고 연구를 거듭하고 누구도 하지 않았던 시도를 지속해서 해 왔다. 그 점이 업계의 다른 회사들과 구별되는 지점이다. 

 

커피를 사 마시듯 꽃을 소비하는 시대

 

꾸까가 태어나기 전보다 사람들의 꽃과 식물 소비가 확실히 늘어났다. 이전엔 ‘꽃을 즐긴다’는 말은 그야말로 허상이었는데, 지금은 꽤 많은 사람이 납득하는 말이 됐다. 그만큼 문화가 바뀌었다. 일례로 몇 년 전만 해도 이런 사업을 한다는 것에 대해 의아해했고, 꽃을 왜 파는지를 납득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백화점에서 행사한다고 해도, ‘별안간 꽃을 왜 팔아?’하는 반응을 숱하게 목격해야 했다. 지금은 바뀌었다. 지나가다가 꽃을 발견하고 ‘어차피 쓰레기 될 걸 왜 팔아’하는 말에 동행한 사람들이 놀라며 타이른다. 요즘 그런 말 하면 무식한 거라고.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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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를 떠올려보면 된다. 커피를 안 마신다고 죽지 않는다. 그러나 커피 한잔을 마시는 하루와 그렇지 못한 하루의 차이는 크다. 꽃이 없다고 죽는 법이 없는데, 꽃을 곁에 둔 일주일과 그렇지 않은 일주일에는 차이가 생긴다고 여기기 시작하는 거다. 오히려 커피 한잔이 두어 시간가량의 여유를 선사한다면, 1~2만 원에 구할 수 있는 꽃 한 다발은 일주일간의 즐거움과 여유를 준다. 
꾸까를 통해 고객들의 행동이 변하는 것을 꾸준히 체험하고 있다. 일회성 구매에서 정기 배송으로 바뀌는 것은, 필요에 의해서
꽃을 사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보고 즐거워하기 위한 구매를 하는 고객들이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다는 의미다. 보통 구독만 하는 고객들은 평균적으로 4~5개월 정도 받아보고, 그 이후에는 자신이 원하는 꽃을 한두 송이 혹은 한 단씩 구매하는 패턴으로 많이 전환한다. 이런 양상은 언젠가 시장이 ‘확’ 열리는 시점이 있을 거라는 걸 의미한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사람들은 오늘처럼 커피를 즐겨 마시지 않았다. 테이크아웃 커피는커녕 다방만 즐비했다는 것을 우리 모두 알고 있다. 지금은 하루에 4~5잔씩 먹는 사람들이 수두룩할 정도로 커피 시장이 성장한 것처럼, 화훼 시장도 그렇게 폭발적으로 커질 수 있으리라 내다본다. 

 

꾸까가 지향하는 공간

 

공간에 관심이 많았다. 여행을 좋아해 자연스럽게 여행지에서 다양한 공간을 경험했다. 소비재를 다루는 사업을 하다 보니 이런저런 소품과 가구에 관심이 갔다. 꾸까에서도 다양한 공간을 꽃과 식물로 꾸민다. 서울 재즈 페스티벌의 주 출입문과 아이스크림 체인 ‘나뚜루’의 20주년 기념 매장 등 크고 작은 규모의 공간 스타일링 작업도 진행했다.
꾸까는 이태원 카페를 시작으로 광화문, 잠실 롯데타워까지 모두 세 개의 매장을 운영 중이다. 세 공간은 각각 성격이 다르다. 꾸까라는 회사가 문화를 이해하는 회사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세 매장이 다 똑같은 공간과 형태로 운영되면 프랜차이즈업을 하겠다는 생각밖에 안 된다. 나는 꾸까의 공간이 ‘꾸까가 해석한 공간’이라는 평가를 듣고 싶었고, 각 지점이 특색을 갖도록 하는 데 힘을 모았다.

 

칵테일을 주문하듯 꽃을 골라 주문할 수 있는 꾸까 이태원점의 Flower Bar ⓒBRIQUE Magazine
칵테일을 주문하듯 꽃을 골라 주문할 수 있는 꾸까 이태원점의 Flower Bar ⓒBRIQUE Magazine

 

이곳, 이태원 경리단길의 꾸까 오프라인 1호점은 원래 사람이 사는 일반 주거 용도의 빌라 건물이었다. 기획 당시 보여주고 싶었던 건 이태원의 지역성과 가장 잘 어우러지는 공간이었다. 어떻게 하면 꽃이 더 사람들에게 가깝게 다가갈까,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편하고 즐겁게 꽃을 보고 즐기고 또 구매할 수 있을까 고민하며 디자인한 공간이다. 1층의 플라워 바에서는 마치 칵테일 바에 온 것처럼 주문서에 원하는 꽃을 적으면 즉석에서 플로리스트가 꽃을 엮어 준다. 같은 공간도 플로리스트의 손길이 닿으면 사뭇 다른 느낌이 연출된다. 역으로 공간 자체가 캔버스가 되면서 플로리스트의 창의력을 자극하고, 덩달아 방문하는 사람들도 새로운 영감을 얻는다.

 

어차피 시들어버릴

 

요즘 ‘고수’ 이야기를 자주 한다. 우리가 먹는 그 알싸한 고수풀 말이다. 꽃을 소비한다는 것은 고수의 맛을 알아가는 것과 같다. 개인적으로 고수를 아주 좋아한다. 그런데 처음부터 고수를 좋아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래서 어딜 가나 고수의 맛과 향을 욕하고 깎아내리기 바쁜 사람들이 있다. ‘고수를 왜 먹냐’부터 시작해 ‘이상한 냄새가 난다’, ‘역하다’ 등등.
그런데 분명한 사실은 세상에 대단히 많은 인구가 고수를 즐겨 먹고, 고수가 빠지면 진정한 요리가 아니라고 여겨지는 음식도 많다는 것이다. 고수를 자꾸만 입에 넣다 보면, 방해됐던 그 씁쓸하고 기이한 맛을 어느 순간 즐기기 시작하고 풍미로 받아들이게 된다.
꽃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처음에 꽃을 사면 ‘역시 꽃은 이렇게 시들어버려’라고 여기며 불편함만 기억할 수 있다. 고수의 씁쓸하지만 매력적인 풍미에 길들듯, 꽃이 시드는 모습을 지켜보고, 그 순환과 섭리를 받아들이다 보면 꽃을 달리 볼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이걸 어떻게 좀 더 오래 가게 하지?’ ‘어떤 꽃을 내가 더 예뻐하지?’ 하는 생각으로 자연스럽게 전이된다. 5,000원짜리 커피를 실수로 쏟으면 잠시 안타까워하지만 이내 그러려니 한다. 그런데 2,000원 주고 산 꽃 한 단이 시들면 그렇게들 실망을 한다.(웃음) 여전히 우리의 인식 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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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집을 열려는 사람은 있어도 화훼 산업의 현장에 뛰어들려는 사람은 거의 없다. 개인적으로도 이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안다. 솔직히 가끔은 후회도 한다. 창업 당시 이 사업이 아니라 다른 걸 선택했으면 어떨까. 너무 어렵게 산업을 키워가야 한다는 것, 꽃을 하던 사람도 아니면서 이렇게 바닥부터 올라가야 한다는 것에 대한 후회가 전혀 없는 건 아니었다. 그럼에도 지금껏 이 사업을 이어오고 있는 건, 실제로 이 업계에서 문화가 바뀌고 있음을 체감하기 때문이다. 꾸까로 인해 말이다.
이렇게 건축을 다루는 매체에 종사하는 분이 찾아오시는 것만 해도 그렇다. 다양한 업계의 사람들이 화훼 업계에 점점 관심을 보이는 것. 이제는 사명감도 느끼고 있다. 꾸까가 실패한다면 화훼 업계 전체에 실망감을 안겨줄 거라 생각한다. 물론 우리가 기존의 시장에서는 본 적 없는 전혀 다른 행보를 보이기에 탐탁지 않아 하시는 분들도 분명히 있다. 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회사도 아니고, 나 자신도 전혀 다른 분야에서 온 사람이니까. 그럼에도 꾸까가 선전하지 못했을 때 ‘아, 한국에서 화훼시장은 정말 가망이 없나 보다.’라며 업계의 판단이 뒤따를 가능성이 큰 상황이고, 일반 고객들이나 투자자들도 같은 생각을 할 것이다. 그렇기에 일종의 책임감을 가지고 이 일을 끝까지 이어나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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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일반적인 소비재처럼 변할 날이 오길 바란다. 여드름이 날 때만 화장품을 사진 않는다. 과거엔 남자가 메이크업도, 스킨 케어도 안 했던 시절이 있었다. 오늘 ‘일반소비재’라고 불리는 것들은 예전과 달리 일상에서 사람들이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는 것들이다. 유럽에서는 사람들이 일용할 양식인 빵을 사듯 마트 어디에서나 소량으로 꽃을 사고, 미국은 월마트 같은 대형 마트에 꽃 냉장고를 두고 정찰제로 꽃을 판매한다. 특별한 날에만 필요한 무언가가 아니라 꽃은 일상의 소비재인 것이다. 한국 사람들에게도 꽃이 그런 존재가 됐으면 좋겠다. 조금 더 시간이 걸릴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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