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 아키텍츠 | 김현석 대표

[QnA] 건축가 김현석의 집과 공간 이야기
글. 이현준  자료. 준 아키텍츠

 

라이더 재킷을 즐겨 입는 김현석의 눈매는 저도 모르게 철든 소년을 닮아있다.
잘생겼다 퉁치기엔 그의 얼굴과 매무새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다단하다.
한참 셔터를 누르는데 겸연쩍게 웃으며 목걸이형 블루투스 이어폰을 주섬주섬 벗는다.
“빼고 찍을 걸 그랬어요, 이건 정말 영락없는 아재템이라는데…”

 

 

3D 모델링 작업에 유달리 공을 들인다. 모델링을 통해 시공상에 문제가 없는지도 철저하게 확인한다. 커튼과 블라인드의 재질, 가구의 위치마저 계산해 미리 모델링으로 대비한다. 집이 완성되면 건축주들이 입을 모은다. “예상했던 그대로에요.” 평창동 벽돌집 설계 단계에서 그가 만든 섬세한 모델링 작업들을 넋 놓고 구경했다. 그 가운데 가장 공들인 부분이 뭐냐 물었다.

 

“하나로 말하기는 어려워요. 각 단계마다 신경 써야 할 것들이 다 다르고 굉장히 많거든요.
저희와 건축주는 서로 원하는 사항을 모두 사전에 협의했어요. 아무래도 중요한 건 집이 가지는 전반적인 분위기를 어떻게 이끄느냐였어요. 차분하고 고급스러우면서도 동선 같은 실생활의 요소들은 역동적이기를 바랐죠.  

다만 우리가 설계할 때 가장 신경 쓰는 것 중 하나가 사실은 ‘단면’이에요. 평면은 기능적인 걸 충족해야 하니까 당연히 봐야 하고요. 단면으로 봤을 때 품을 넉넉하게 주기도 하고, 너무 빈 부분은 살짝 조여주기도 하면서 공간감을 최대한 확보해야 해요. 그렇게 하면 같은 평면이라도 실제 사용자는 훨씬 다른 공간을 느낄 수 있어요.”

 

ⓒBRIQUE Magazine

 

그가 내는 조명

 

조명에 신경을 많이 쓴다. 천장을 최대한 깨끗하게 유지하려고 한다. 보통 집에서는 바닥을 항상 사용하고 있다. 물건이 놓여있거나 사람이 지나다니거나. 벽도 마찬가지다. 선반이 있거나 그림이 걸려있거나 하는 식이다. 그러다 보면 집 안의 여백이 차츰 사라진다. 집에서라도 빈 여유 공간이 있어야 편안한 마음으로 쉴 수 있다. 그래서 벽 하나 정도는 온전히 비우도록, 그리고 기본적으로 천장을 깨끗하게 두도록 설계한다. 집 안 시야에서 1/4은 사실 천장이다. 천장이 깨끗한가, 그렇지 못한가에 따라 공간이 주는 느낌은 사뭇 달라진다. 천장 안쪽으로 라인조명을 숨겨두거나 청량감을 주는 작은 스포트라이트 정도만 마련한 이유다. 평창동 벽돌집의 모든 공간은 조명을 통해 세 가지 분위기를 낼 수 있다. 그러고 보니 지금 이 인터뷰를 하는 사무실의 작은 공간에만 해도 구석구석 네 개의 조명이 있다.(웃음)

 

ⓒKyungsub Shin
티 없이 깨끗한 천장에 점찍힌 스포트라이트 ⓒKyungsub Shin

 

공간, 감

 

건축을 하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공간감이다. 단순한 몇 가지 요소로만 공간을 만들었을 때 그 안에서 풍요로움과 여유를 느낄 수 있는 건축이 좋다. 풍성한 공간감을 부여하기 위한 몇 가지 방법이 있다. 이를테면 걸음을 옮김에 따라 등장하는 시퀀스에 변화를 주는 것, 건물이 자연 빛을 들이는 모습에 따라 변화를 주는 식이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한 평면에 얼마만큼의 간격으로 벽이 놓였는지, 천장이 얼마나 높은지, 어떤 모양의 천장인지, 그리하여 공간과 공간이 서로 어떻게 이어지는지와 같은 것들이 굉장히 중요한 이슈다.

 

미스 반 데어 로에와 루이스 칸

 

루이스 칸과 미스 반 데어 로에의 건물을 좋아한다. 그들의 건축적인 아이디어나 형태보다도, 공간이 주는 감각이 인상깊다. 두 사람을 처음 접하게 된 건 20대 초반이다. 당시엔 시각적으로 화려한 것들에 더 이끌렸던 터라 도면과 사진으로만 마주한 이들의 작품에는 크게 관심이 가지 않았다. 그러다 이들이 만든 공간에 실제로 가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가장 처음 만난 루이스 칸의 작품은 예일대학교의 브리티시 아트 갤러리였다. 외관과 내부 모두 굉장히 단순했지만 건물을 노닐며 느끼는 공간 고유의 감각, 재료, 빛의 변화와 같은 것들이 정말 좋았다 그 이후로 소크 생물학 연구소, 킴벨 아트 뮤지엄 등 루이스 칸의 작품을 찾아다녔다.

미스 반 데어 로에 역시 의외였다. 베를린의 뉴 내셔널 갤러리만 해도 지극히 형태가 단순하지만 압도적인 기운이 있더라. 우선 그는 굉장한 비례 감각의 소유자다. 입면뿐 아니라 공간의 모든 구성에서 아름다운 비례를 찾아볼 수 있다. 같은 네모라도 공간에 따라 아름다운 네모가 있고 그렇지 못한 네모가 있다. 바르셀로나 파빌리온의 경우 네모진 판으로만 이루어진 공간이다. 그런데 어떤 구간은 속도감이 느껴지는 반면 어떤 공간은 가만히 머무르는 공간으로 다가오면서 전체적으로 공간에 끊임없는 흐름이 생긴다. 보통 네모는 단순하고 재미없다는 생각이 지배적인데, 그런 90도 직각의 완고함 가운데서도 풍요롭고 다이내믹한 감각을 만들어내는 이들의 건축이 참 인상적이었다.

 

감동을 주는 집

 

평창동 벽돌집은 기능과 편안함을 추구한다. 그러면서도 그 톤과 매너에서는 얼마간의 고급스러움도 묻어있다. 특별한 부분을 꼽으라면 한쪽에서 봤을 때 두드러지는 둥그런 매스, 그리고 외부에서 바라볼 때 건물 안으로 굽어드는 창과 테라스 정도일 것 같다. 내부는 편안하고 여유로운 느낌이 지배적이다. 높고 깨끗한 천장에 군더더기 없고 기능적인 인테리어가 각자 맡은 역할에 충실한 집이다.

어떠한 경우라도 기본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주거시설의 기본이 되는 ‘기능’ 측면은 꼭 붙들고 있어야 한다. 어느 정도 타협을 할 수는 있어도, 기능으로부터 완전히 괴리된 무언가를 무리하게 시도하지는 않는다. 누군가 구태여 건축가를 찾아와 집을 짓겠다고 하면, 여간해서는 기대할 수 없는 ‘감동’을 원해서 찾아온 것이라고 믿는다. 어떤 공간을 매개로 오롯한 감동, 감흥을 선사할 수 있는 건축물을 만들고 싶다.

 

아이를 위한 집짓기

 

건축주는 30대 후반의 부부다. 남편은 개인사업을 꾸리고 있는 엔지니어, 아내는 전문직에 종사하다 몇  년 전 전업주부가 됐다. 처음부터 아이 둘셋 정도 낳을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집 짓기를 시작할 무렵만 해도 아이가 하나였는데 얼마 전에 한나가 태어나 지금은 둘이다. 큰아이는 네 살, 작은 아이는 갓 100일을 넘겼다. 아파트 생활은 편한 만큼 아이들을 키우는데 불편한 점도 많았다. 아이들이 한창 자라는 시기에 마음껏 움직이고 뛰어놀 수 있는 집이 있었으면 했다.

아이들과 더불어 사는 집이라고 해서 너무 귀엽고 아기자기한 물건들로만 집 전체를 메우고 소재와 재료까지 온전히 아이들을 위주로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나도 아이를 키워보지만 개인 공간과 물건들 만으로도 아이만의 환경을 조성하는데 충분하다. 그보다 아이들만의 천진난만함, 왕성한 호기심과 에너지로 가득한 천성을 발산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더 중요한 과제라고 판단했고, 흐르듯 흥미롭고 다이내믹한 동선을 디자인했다. 반면 집의 분위기를 결정짓는 인테리어와 재료 등은 보다 의젓하길 원했다. 아이들의 취향을 녹일 순 없어도 성향을 다각도로 분석해 이들이 어른이 되어서도 살 수 있는 집이 되도록 했다. 아이가 행복해야 어른들도 행복하다지만, 달리 생각하면 행복한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좋은 에너지를 전달할 수 있지 않을까. 디자인과 컬러, 재료는 어른들이 차분하게 누릴 수 있도록 하되, 아이들이 마음껏 에너지를 발산할 수 있도록 구획된 공간과 동선을 마련하는 것이 아이를 위한 집이 아닐까 한다.

 

ⓒBRIQUE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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