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맞고 그때도 맞다

33년 된 집 고쳐짓기: 세 식구의 미아동 주택
에디터. 이현준  자료. Studio Nontext

 

찰나 뒤면 ‘지금’은 어느새 ‘그때’가 되어 있다. 아닌게 아니라 ‘그때’의 본래 이름은 생동하는 ‘지금’이다. 1986년 준공되어 서른 해를 훌쩍 넘기는 동안 같은 자리를 지킨 한 채의 집은 얼마나 많은 그때와 지금을 넘나들었나. 그때의 공간과 지금의 공간이 기어이 다르고야 만들, 둘 중 어느 것도 틀린 적은 없다. 사람과 이야기가 거기 있는 한.
33년 제자리를 지킨 미아동의 단독주택을 고쳐 지었다. 이제 젊은 부부와 어린 자녀, 단란한 세 식구의 집이 되었다. 스튜디오 논텍스트Studio Nontext 대표 디자이너 ‘정한’이 프로젝트를 지휘했다. 그가 들려주는 몇 가지 ‘오래된 지금’.

 

ⒸStudio Nonte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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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비디오

의뢰인은 아이를 둔 30대의 젊은 부부였다. 처음에 연락을 준 아내분은 이미 우리(Studio Nontext)를 잘 알고 있었다. 오랜 시간동안 우리 작업을 눈여겨보며 집이 생기면 꼭 맡기고 싶었다고 했다. 유년 시절부터 신혼까지 오랜 시간 아파트 단지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했다. 아이가 태어났고, 주택으로 이사하고자 마음을 먹었다. 부부는 공간 구성과 디자인, 심미적인 요소에도 큰 관심이 컸다.
건물을 매입한 뒤 의뢰인은 현장의 면면을 찬찬히 담은 영상 한편을 보내왔다. 손의 미동마저 고스란히 전달되는 휴대폰 영상 속 시선을 좇으며 덩달아 설렜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 현관에 이르는 그 길이 참 좋았다. 가장 먼저 정원이 눈에 들고, 한번 더 돌아 들어가면 현관이 나타났다. 집 안으로 진입하기도 전에 프로젝트를 해보자, 마음을 굳혔다.

 

그대로 아름다워

방 세 개, 총 45평 가량의 미아동 주택은 겉에서 보이는 것과 달리 아담한 규모다. 이제는 미싱 공장으로 바뀐 집 옆 자리엔 병원이 있었다. 한때 이 집에 그 의사가 살며 정갈하게 관리하기도 했다. 세 식구가 이사오기 직전까지는 노모가 혼자 사셨다. 신식으로 쾌적하게 고쳐짓는 대신 그냥 이대로, 예전 모습을 지키며 사셨다.

 

ⒸStudio Nontext
ⒸStudio Nonte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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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상 현장엔 되살려 쓸 수 있는 게 거의 없었다. 다만 원래의 집이 가진 톤 앤 매너(tone & manner)는 지켜내고 싶었다. 기존에 있던 색깔이라든지. 옛 집의 사진을 보면, 천장의 재질 자체가 나무는 아니지만 나무의 톤을 지니고 있었다. 나무 느낌이 나는 천장을 살리고, 하얀 톤의 방을 똑같이 하얗게 두는 식으로 기존의 분위기를 최대한 유지하고자 했다.

 

ⒸStudio MO
ⒸStudio M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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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집 느낌 그대로 외장재는 얼룩진 부분을 위주로 페인트칠만 새로 했기에 외관의 변화는 거의 없다. 굉장히 흥미로웠던 건, 1980년대 준공 당시 쓰고 남은 타일 몇 박스가 집 지하에 고스란히 보관되어 있었다는 사실이다. 당시의 타일들을 가져다 외벽에 덧입혀 그 시절의 분위기를 되살렸다.

 

오늘의 LDK (Living / Dining / Kitchen)

집을 이루는 가장 큰 부분은 LDK가 아닌가 생각한다. 리빙, 다이닝, 키친 각각이 어디에 위치했는지, 서로 어떻게 연결되고 또 분리되는지가 주거공간의 많은 것들을 결정짓는 것이다. 30년 전 미아동 집의 LDK는 무거운 벽으로 구분되고 주방의 싱크대는 거실, 다이닝과 완벽하게 분리되어 벽을 마주보고 있었다. 보통 주거공간의 구조에서처럼 등지고 설거지를 하는 것, 나머지 공간과 괴리되는 구성이 싫었다. LDK 간 관계를 새롭게 제안해 보고 싶었다.

 

ⒸStudio Nontext
ⒸStudio MO

 

이 집에는 어린 자녀가 있다. 어느날 미팅에 의뢰인 부부와 함께 온 아이를 보니 한창 엄마의 시선과 손길이 필요한 시기였다. 주방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엄마가 어느 각도에서나 아이가 보이는 구조라면 참 좋을 것 같았다. 독립적인 공간의 기능을 하면서도 시야는 개방된, 말하자면 주방이 일종의 컨트롤 타워가 되는거다. 주방에 들어서면 거실과 현관, 안방까지 한눈에 바라 볼 수 있다. 인터폰으로 현관에 누가 있는지 확인이 가능하다. 물론 정원도 보인다.

 

ⒸStudio M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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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지금의 조각들 : 미아동 주택 들여다보기


재료?
바닥재는 구정 강마루, 천장은 합판이다. 흰색 천장보다는 비용이 많이 든다. 현장에서는 ‘와리나눈다’는 표현을 쓰는데, 천장별로 사이즈에 맞게 나눠야하다 보니 더 신경 쓴 편이다.

 

ⒸStudio MO

 

가구는 직접 제작했나.
가구에 대한 모든 것을 일임하는 의뢰인도 있고, 우리가 제안을 드리기도 한다. 이번엔 테이블이나 의자 등 몇 가지 디자인 해 협력 업체를 통해 라왕으로 제작했다.

기간은 얼마나 소요됐나.
한 달 정도에 걸쳐 설계했다. 그 사이에 클라이언트와 세 번 정도 미팅을 갖는다. 시공은 한달에서 한달 반 가량 걸리는데, 겨울철에 외부와 직접 면하는 상업공간을 시공하는 경우 두 달에 이르기도 한다.

예산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45평 집의 대부분을 바꾸는 프로젝트인걸 감안하면 굉장히 적은 예산이었고, 선택의 폭이 넓지는 않았다. 불가피한 구조 보강에 예산이 투입되느라 마감재에 힘을 빼기도 했다.


조명
간접조명이 있고 대부분이 스팟 조명이다. 은은한 카페의 분위기를 선호하셨던 것도 있고, 밝은 조도에 대한 욕심은 없으셨다. 그래서 원래 거실에는 간접조명만 계획했으나 추후 추가했다. 

 

ⒸStudio MO
오랫동안 자리를 지켰던 천장 등을 그대로 살렸다 ⒸStudio MO

 

현관이 참 넓고 쾌적하다.
옛날 집이라 그런지 현관이 굉장히 넓었다. 원래 있던 중문을 철거해서 더 넓어졌다. 재밌는건, 현관 옆에 작은 문(사진에선 보이지 않지만)을 열면 원래 아주 작은 손님용 화장실이 있었다. 들어가보니 정말 요만한 사이즈의 귀여운 세면대와 변기가 들어있더라.(웃음) 그 공간을 살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어쩔 수 없이 철거하고 신발장으로 대체했다.

 

ⒸStudio MO

 

| 스튜디오 논텍스트  Studio Nontext

내추럴Natural과 컨텍스트Context를 합쳤다. 문맥이 자연스러운 디자인. 로고를 자세히 보면 알파벳이 모두 뒤집혀있어도 자연스레 ‘논텍스트’라 읽힌다. 환경과 상황에 어우러져 편안하게 다가가는 디자인을 지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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