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은 사람을 담는다. 사람은 집을 닮는다.

[People] '아홉칸집' 건축주 고경애 씨의 집 이야기
ⓒBRIQUE Magazine
에디터. 김윤선  자료. 네임리스 건축 NAMELESS Architecture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아홉 개의 방, 온통 거친 콘크리트로 감싸 덜 지어진 것 같은 건물. 그런데 여기가 사람이 사는 집이라고?
처음에는 그 형태가 가진 독특한 미감이 눈길을 끌었다. 그리곤 이내 궁금해졌다. 이런 집에 사는 사람은 누구인지.
서울에서 한 시간 남짓 달렸을까. 낯설지만 익숙한 풍경이 펼쳐진다. 음? 여기가 바로 오래된 미래인가?
드디어 궁금했던 그녀를 만났다. 누군가 그랬지. 집과 사람은 닮아 있다고.

그렇다. 집은 사람을 담는다. 그리고 사람은 집을 닮는다.

 

‘아홉칸집’ 건축주 고경애씨와 반려견 코르뷔지에  ⓒBRIQUE Magazine

 

반갑습니다. 가족 소개를 부탁드려요.

저희 가족은 집안 살림을 맡으며 그림을 그리는 저 고경애, 반도체 연구원으로 일하는 남편 이상욱, 7살 아들 준성, 5살 딸 은솔. 그리고 반려견 코르뷔지에까지 다섯 식구가 함께 살고 있어요. 저와 남편은 일본에서 만나 결혼을 했고, 10여 년간 살다가 2015년에 귀국했어요.

 

근대 건축의 거장 코르뷔지에 선생님을 여기에서 만나 뵙네요. (웃음)

예전에 산책하러 나가면 동네 아이들이 항상 강아지 이름을 물어봤어요. “얘 이름은 코르뷔지에인데, 아줌마가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 할아버지를 좋아해서 같은 이름으로 지었어. 르 코르뷔지에 할아버지는 스위스에서 태어났고 건물도 만들고 의자도 만들었어.” 이름을 말해주다가, 결국 건축가 이야기까지 하게 되더라고요. 아이들은 발음이 어려운지 코르뷔지에를 항상 ‘꼬지’라고 불렀어요. (웃음)

 

건축과 디자인에 대한 관심이 각별하신 것 같아요.

건축을 ‘집’이라 하고 디자인을 ‘일용품’이라 한다면, 집과 일용품은 당연히 우리들 생활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잖아요. 집과 일용품에 대한 관심의 연장인 것 같아요. 사실 아들 준성이를 건축가로 키우고 싶어요. 그래서 준성이의 첫 생일에 르 코르뷔지에의 LC2 암체어를 선물하기도 했죠.

 

르 코르뷔지에가 디자인한 LC2 암체어에 앉아 있는 건축주 고경애씨 ⓒBRIQUE Magazine

 

처음 설계를 의뢰할 때 임스하우스 도면을 참조해서 아이디어 스케치를 해오셨다고 들었어요. 어떤 집을 짓고 싶으셨어요?

임스하우스는 단순한 박스형 집인데요. 그 형태보다는 안에서 일어나는 풍요로운 삶의 풍경에 끌렸어요. 집안 구석구석 임스 부부가 좋아하는 것들이 잘 정돈되어 있고, 집 주변에는 오랜 수목이 시원하게 들어서 커다란 창을 통해 자연과 소통하고 있죠. 그런 곳에서 살면 얼마나 좋은 생각과 영감이 떠오를까 싶더라고요. 특히 아이들을 그런 공간에서 키우고 싶었어요.

 

임스하우스가 실린 잡지를 보며 집에 대한 꿈을 키웠다. ⓒBRIQUE Magazine

 

집 안에 일본 건축 잡지가 아주 많네요. 일본에는 어떤 일로 머무셨어요?

저는 센다이 한국 총영사관에서 여권과 비자를 담당하는 사무 행정원으로 일했어요. 남편은 도호쿠대학교에서 항공우주학을 공부하던 유학생이었죠.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났을 때 자원 봉사를 하던 남편을 만나 일본에서 결혼을 하고 10여 년 살다가 이후에 남편이 한국에서 근무하게 되어서 2015년에 귀국했어요.

 

ⓒBRIQUE Magazine

 

동일본대지진은 일본 관측 사상 최대 지진이자 재난이었잖아요. 어떠셨어요?

그 이후로 삶의 가치관에 분명한 변화가 생겼어요. 삶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태도를 갖게 되었죠. 제가 하고 싶은 것들, 오래전부터 행동으로 옮기고 싶었던 것들을 시작하는데 주저하지 않게 되었어요. 시간에 대한 관념도 많이 바뀌었어요. 내 삶의 시간이 얼마나 남아있는지 알 수 없잖아요. 그래서 하루하루의 행복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지더라고요. 아이들에게도 자주 물어봐요. 오늘은 얼마나 행복했고, 뭐가 제일 재밌고 좋았는지.

 

거주하셨던 센다이는 어떤 지역이었나요?

도쿄에서 신칸센으로 1시간 30분 남짓 걸리는 동북지방에 있는 도시 중 하나예요. 홋카이도와 동경 사이에 위치하고요. 소박하고 작지만 오랜 문화와 전통을 간직한 곳이죠. 도쿄의 세련된 맛은 없지만, 정갈하게 정돈된 길과 수목들, 걸으면서 만나는 계절과 햇살, 새소리, 다채롭게 변하는 하늘의 색깔들. 그런 풍경들이 가장 기억에 남네요.

 

‘센다이’ 하면 일본 건축가 이토 도요Toyo Ito가 설계한 센다이 미디어테크Sendai Mediatheque*가 가장 먼저 떠올라요. 가보셨어요?

미디어테크는 센다이 시내 중심가에 있는 시민문화공간이에요. 세계적인 건축가가 설계했다는 건 나중에야 알았어요. 센다이는 작은 도시인데도 유난히 문화축제가 많아요. 9월이 되면 시내에 즐비하게 늘어선 오래된 나무 아래서 재즈페스티벌이 열리고는 했어요. 그 기간에는 미디어테크 1층의 큰 유리문이 개방되어 안과 밖의 경계가 허물어져서 자유롭게 돌아다니곤 했죠. 걷다가 지치면 그곳에 들러 책도 읽고, 영화도 보고, 갤러리 안으로 들어가 쉬곤 했어요.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났을 당시에는 유리 건물인데도 너무 멀쩡해서 다들 놀랐어요. 천장 합판 몇 개만 떨어졌거든요.


*센다이 미디어테크
하이테크와 새로운 매체의 결합을 통해 물질적인 건축에 가상의 세계를 접목하는 실험적인 건축물로 유명한 이토 도요의 독창적인 디자인을 가장 잘 보여주는 대표 작품. 도서관, 전시 갤러리, 시청각 자료실, 영화스튜디오 등이 있는 하이테크 정보 건축물이다.


 

고경애씨가 직접 찍은 센다이 미디어테크와 거리 풍경 ⒸAele Family

 

일본에 살면서 안전 문제와 관련해 한국과 비교해서 느낀 점이 있다면요?

우리나라도 요즘 태풍이나 폭염이 오면 재난 문자 보내주잖아요. 재난 수준을 국가에서 국민들에게 알리고 주의시키는 게 좋은 훈련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큰 재난에 대한 대비도 중요하지만, 생활 속에서 안전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 길에 무질서하게 주차된 차들도 너무 위험하죠. 소방차나 구급차가 지나가는데 방해가 될 수도 있으니까요. 일본에선 차를 살 때 집에 주차장이 있어야 하거든요. 경찰이 직접 와서 차의 크기를 재고 주차장에 차가 제대로 들어가는 지를 꼼꼼하게 확인해요. 얼렁뚱땅하지 않죠. 안전에 대한 감각이 생활 속에서 습관이 되어야 하는데 우리 사회가 아직은 무딘 것 같아요.

 

센다이에서는 어떤 집에 사셨어요?

결혼 후 첫 신혼집은 20년도 더 된, 노출콘크리트로 만든 삼각형의 빌라였어요. 저희 집은 꼭대기에 있는 복층 집이었는데, 아래층에는 거실과 부엌, 위층에는 침실이 있었죠. 넓지는 않았지만, 창문이 많아서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는 집이었어요. 방은 물론이고 화장실에도 한 뼘 두 뼘되는 조그만 테라스가 딸려 있었는데, 그 좁은 공간에서 함께한 소소한 추억들이 언제 떠올려도 참 좋아요. 일본에서 그림을 시작했는데 그 집에 살면서 그림을 많이 그렸죠.

 

그 집과 동네의 환경이 작가로의 전향에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겠네요.

5시에 퇴근하면 늘 한달음에 집으로 달려가 그림을 그렸어요. 한국에서 청와대에 근무하던 시절엔 틈나는 대로 미술관에 다녔어요. 그 동네에 갤러리가 무척 많거든요. 그땐 관광객도 거의 없었는데 지금은 완전히 시끄럽게 변했더라고요. 점심 먹고 거길 다니면서 구석구석 갤러리를 찾아다녔어요. 아마 그때부터였는지도 모르겠어요.

 

고경애씨의 작업실 한편 ⓒBRIQUE Magazine
아들이 좋아하는 물고기가 가득 그려진 그림은 고경애씨의 작품이다. ⓒBRIQUE Magazine

 

한국으로 돌아와 집을 짓기 전에는 아파트에 사셨다고 들었어요.

남편 회사와 가까운 동탄에 자리를 잡았어요. 둘째 아이 임신 중에 귀국했는데 어른들께서 생활이 편리해야 한다며 아파트에 들어가라고 권하셨죠. 그런데 아파트 생활이 그렇게 숨막힐 줄 몰랐어요. 한국에서의 아파트 생활이 처음이 아니었는데도 말이죠. 게다가 온 식구가 새집 증후군 증상을 보이며 밤낮으로 기침을 했어요. 십 년 가까이 센다이에 살면서 한적한 주택가에 길들어졌던 몸과 감성이 한국의 아파트에 거부반응을 일으켰어요.

 

아마 신도시의 새 아파트라 더 그랬을 것 같아요.

아파트가 있는 곳은 주변 환경이 다 비슷하더라고요. 여기 경기도 광주에서도 제가 동탄에서 본 아파트와 비슷한 곳이 많아요. 어느 지역을 가나 똑같구나 싶었죠. 2년 계약했는데, 못채우고 1년 남짓 살다 나왔어요. 도저히 안 되겠더라고요. 저희가 살았던 아파트는 베란다 확장형이었는데 살면서 창문을 몇 번 못 열었어요. 빗소리가 듣고 싶어도 비가 바로 들이치니까, 또 아이가 위험하니까. 물론 아파트가 편리한 점도 많죠. 하지만 저희에게는 맞지 않았어요. 그리고 아파트에서 제일 싫었던 건 화장실이에요. 변기에 앉으면 허벅지에 문이 닿는데, 그게 표준 규격이라는 게 아이러니예요.

 

왜 집을 짓게 되셨는지 점점 이해가 돼요.

불평불만이 쏟아지니까 결국 집을 지은 거죠. (웃음) 삶을 살아가는 공간과 방식에 대한 의심을 많이 품었던 것 같아요. 아이들이 먹는 음료수의 용기 디자인만 해도 그래요. 아이들이 스스로 먹을 수 있게 만들어야 하는데, 반드시 엄마의 손이 필요하도록 만들어진 게 많더라고요. 물건도 그렇지만 아파트에 대해서도 그런 생각을 많이 했거든요. 집에 들어오면 편안히 쉬고 싶은데, 왜 병원에서 쓰는 하얀 전구를 썼을까? 왜 이렇게 끼우기 힘들게 만들었지? 그런 불만과 의심들요.

 

한국식 아파트에서의 삶과 여기 노곡리 아홉칸집에서의 삶의 가장 큰 다른 점을 꼽는다면 뭘까요?

눈에 띄게 달라진 점은 현관문을 열면 엘리베이터가 있는 복도가 아니라 흙을 밟을 수 있다는 거예요. 아파트에선 27층에 살았거든요. 외출이라도 하려면 한참동안이나 엘리베이터를 기다려야만 했죠. 이곳에서는 아침에 잠에서 깬 아이들이 잠옷 바람으로 마당을 거닐어요. 메뚜기나 사마귀와의 만남을 기대하면서요. 도시에서 살 때는 주변에서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매일 어딘가로 외출을 해야 했어요. 하지만 이젠 집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아지니까 집에서 온전히 가족들과 함께 더 많은 시간을 보내요. 그리고 또 한가지, 오디오를 크게 틀어놓고 마이클잭슨의 ‘Beat it’에 맞춰 마음껏 춤을 출 수 있다는 점? (웃음)

 

ⓒBRIQUE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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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선 특히 자녀를 둔 부모들이 집을 선택할 때 주변 교육 환경을 최우선으로 고려하잖아요. 학군 따라 이사도 많이 다니죠. 정반대의 선택인데 혹시 두려움은 없으셨나요?

아파트 게시판을 보면 학원 과외 홍보 전단이 빼곡히 붙어 있었는데, 너무 놀라웠어요. 부모가 자녀 교육에 대한 확고한 철학이 있어도 아파트에 살면서 그런 걸 계속 보다보면 무의식적으로 학원에 보내야한다는 강박이 생길 것 같더라고요. 글 좀 늦게 읽으면 어때요. 저희는 아이들을 그런 경쟁 속에서 키우고 싶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우리가 이런 방식으로 살 거면 굳이 도시에서 살지 않아도 되겠구나 하는 생각에 여기로 오게 된 거예요.
저희 집 터가 원래 야채밭이었어요. 새들이 이 땅을 자주 지나다녔는지 집을 짓고 첫 해에 유리창에 부딪혀 새 서너마리가 죽었어요. 그럴 때마다 아이들과 같이 묻어 줬는데, 어느 날 아이가 울면서 묻더군요. “엄마, 우리도 죽어요?” 생명이 있는 건 언젠가 모두 죽는다고 했더니, 엄마가 죽으면 누가 묻어 주느냐고 되묻더라고요. 죽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 거예요. 누구도 가르쳐 주지 않는 걸 어릴때부터 자연에서 직접 보고 질문하면서 하나씩 알아가는 게 어쩌면 가장 좋은 교육이겠죠. 스스로 깨우쳐 가는 삶. 저희가 기대했던 삶이기도 하고요. 아이들이 내년엔 어떤 질문을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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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설계에 관한 특별한 요구사항이 있었다면요?

생활을 반영한 요구사항이 몇 가지 있었어요. 아이들은 부엌이랑 좀 멀리 있게 하고, 침실에는 아무것도 놓지 않고 잠만 자는 곳으로 해달라고 했어요. 그래서 현관 쪽에 옷방을 두었죠. 내외부 마감재를 콘크리트로 하기로 결정한 후로는, 어느 정도의 질감으로 할 지 몰라서 여러 군데 보러 다녔죠. 거칠어도 좋고 구멍은 안 메꿔도 될 것 같더라고요. 그러다가 세면대와 욕조까지 콘크리트로 만들어 달라고 했어요. 처음에는 네임리스 건축 소장님들도 놀라셨어요. 그런데 네임리스 건축과 저희가 좋아하는 지점이 잘 맞았거든요. ‘괜찮겠어요? 애들 있는데 위험하지 않겠어요?’ 했으면 아마 엄두를 못냈을 텐데, 저희를 지지해줬어요. 거기서 용기를 얻어서 ‘하고 싶은 거 그냥 하면 되는구나’ 했죠. 좋아하는 거 하려고 집 짓는 거니까요. 저희는 좋고 싫음이 확실했던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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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은 모든 방에 정해진 용도가 없는 집이죠. 이후에 집이 아닌 다른 공간으로도 활용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똑같은 규모를 가진 아홉 개의 방을 자유롭게 쓸 수 있도록 용도를 정해놓지 않아서 그 점이 참 좋았어요. 보통은 건축가가 미리 정해 놓은 집에 맞춰 사는 경우가 많죠. 하지만 여긴 스스로 채워가는 집이에요. 집이 아 니라면 작업실로도 쓸 수 있을 것 같아요. 집을 짓기 전부터 일본에 다시 들어갈 계획을 하고 있었거든요. 언젠가 그렇게 된다면 그때는 이 집을 여러 사람이 경험하는 집으로 만들까 하는 생각도 해봤죠. 새로운 주택문화와 가구를 더 많은 사람이 체험해 볼 수 있게요. 임스하우스도 그렇게 쓰고 있대요.

 

불편한 점은 없으세요?

정원 일이 꽤나 힘들어요. 그리 넓지도 않은데 할 일이 너무 많더라고요. 정원에 수국이 있는데 그 주변에 풀이 있으면 자라는 걸 방해한대요. 그래서 항상 관리를 해줘야 해요. 정기적으로 잔디도 깎아야 하고요. 그리고 숲 가까이에 살면 습해요. 특히 여름에 장마 오면 더 습하죠. 여기 라탄 의자는 플라스틱 라탄이거든요. 진짜 라탄은 여름 한 계절 습한 것 때문에 곰팡이가 피더라고요. 지하 창고는 대용량 제습기를 지난 여름 두 달 동안 매일 틀어놨어요. 숲에서 살면 이런 건 감수해야 해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숲이 아니었다면 우리가 여기에 집을 지었을까 싶어요. 남편은 땅 살 때 땅이 아니라 숲을 샀다고 말했죠.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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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지나가던 사람들이 찾아와서 집을 보고 가기도 한다고요.

테라스에 조명이 있는데 저녁이 되면 일부러 항상 켜놔요. 시골에 있으니까 캄캄할 때 빛이 있으면 안심이 되더라고요. 센다이에서 지진 때문에 정전되고 사람 구경하기 힘들었을 때, 불빛만 보여도 안심이 되는 기분을 경험한 적이 있거든요. 그런데 그 불빛 때문에 오해하고 집에 찾아오는 분들도 있었어요. 카페나 식당인 줄 알고. 대낮에도 집 코앞까지 찾아와서 보고 가는 분도 있었죠. 집이 독특하다고요. 동네 어르신들이 우리 집을 뭐라고 부르시는지 아세요? ‘누드집’이라 그래요. 벌거벗은 집 같다고요. (웃음)
“공사 다 안 끝났는데 사시네요.”, “외벽은 언제 칠해요?” 궁금해하는 분들이 아주 많았어요. 이제는 기름 주문하려고 전화할 때, “여기 누드집인데요.” 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해요. 주소를 말해주면 모르고 누드집이라고 하면 그제서야 아세요. 저는 그런 유머러스한 해학이 좋아요. ‘미완성의 집’이란 조금은 철학적인 표현도 가능하겠지만, ‘누드집’은 참 순수한 해석이잖아요. 그런 게 재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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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짓기 전과 후의 가장 큰 달라진 점을 꼽는다면요?

삶의 안정감이 커졌어요. 저와 남편은 세상에서 정하는 기준이나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사람들이에요. 우리가 좋아하는 것으로 만드는 온전한 삶, 아이를 키우는 방식 등 여태 살아온 것, 앞으로 살아가고 싶은 삶을 여기에 다 담았던 것 같아요. 이 집은 저희가 살아온 삶의 연장선상이자 가치관의 반영이에요.
아파트에 살 때는 하루, 일주일, 한 달···항상 미래에 대한 걱정이 많았거든요. ‘내일은 어떡하지?’, ‘주말엔 어디 가지?’ 하면서요. 지금도 미래에 대한 걱정이 있긴 하지만, 목표나 지향하는 바를 향하는 태도에 여유가 생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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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어떤 곳이라고 생각하세요?

집은 의미를 두면 둘수록 끝이 없더라고요. 아이들에게 왜 집이 좋냐고 물어보면 자기 장난감이 있어서 좋다고 그래요. 매일 아침 먼 길을 운전해 출근해야 하는 남편에게는 이 집이 휴식이죠. 쉼이자 숨 쉴 수 있는 공간이요. 그리고 저에게는 이 집이 새로운 영감을 줘요. 예전에는 인물화를 많이 그렸는데, 지금은 노곡리의 주변 풍경들을 기록하고 싶어져요. 집안에 머물면 창문들이 자꾸 제게 말을 걸거든요. 창문 너머의 모습들을 어서 기록하라고.
집이라는 질문은 끝이 있을 수 없고, 정답도 없는 것 같아요. 사람사는 그 모든 이야기들이 담긴 곳이 집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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