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으로 집을 그리다

공학과 낭만의 만남, ‘펨벌리 하우스 Pemberley House’
ⓒJinhwan Jung
에디터. 장경림  자료. 보편적인건축사사무소 Office For Ordinary Architecture

 

드레스를 입은 주인공처럼
이 집에 대한 에디터의 첫 인상은 소설 속 집이었다. 눈부신 아침, 햇살을 받으며 드레스를 입고 계단을 내려오는 모습을 상상한 건축주는 집 이름을 ‘펨벌리 하우스’라고 지었다. 펨벌리는 제인 오스틴의 소설『오만과 편견』속 주인공 다아시가 속한 가문의 이름이다. 말 그대로 소설 속 인물이 등장할 것만 같은 집에서 살기를 원했던 건축주의 상상을 반영한 집이다.

 

ⓒJinhwan Jung

 

이 집의 건축주는 대학에서 공학을 가르치는 남편과 재봉을 사랑하는 아내다. 그들은 과거 중국, 스웨덴, 캐나다 등에 거주하다 부인의 고향인 군산에 다시 자리 잡았다. 부부는 평생 머물 계획을 가지고 집을 짓기로 했다. 아내는 소설 속 등장할 법한 집을 짓고자 하는 바람이 있었던 반면, 남편은 직업적 성향을 반영하듯 패시브 하우스를 짓고자 설계를 의뢰했다. 패시브 하우스는 단열과 기밀에 중점을 둔 공법으로 건축가의 세밀한 설계가 필요하다. 부부는 각자의 바람을 잘 반영해 줄 건축가를 찾고 있었다.
그들이 찾아낸 건축가는 보편적인건축사사무소. 친환경 건축과 세심한 설계를 동시에 해결해 줄 건축가를 찾은 것. 이 프로젝트를 맡았던 전상규 대표와 황은 소장을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다.

 

ⓒBRIQUE Magazine

 

나만의 집에 살고 싶어요.
‘펨벌리 하우스’는 부부의 희망사항이 녹아있는 집이다. 스킵 플로어 방식을 이용해 반 층 차이로 각 공간을 펼쳤고, 계단으로 동선을 다양하게 만들었다. 또한 그들은 집 안에서 서로가 시선 안에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벽의 사용을 최소화했다. 욕실 역시 벽을 설치하지 않고, 부부가 함께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드레스를 입고 계단을 오르내리는 건축주의 상상 속 모습처럼 이 집의 내부는 다양한 레벨의 층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굉장히 입체적인 집이죠. 다양한 공간이 계단으로 연결되면 좋겠다는 바람을 많이 얘기하셨죠. 대다수 건축주는 아파트에서만 살던 분들이 많아 주택을 지으려고 문의를 주셔도 본인이 어떤 집을 선호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굉장히 많습니다. 새로운 것을 저희가 제안해도 ‘아파트 같은 형태가 좋아요’라는 분들도 있어요. 반면에 이 집의 건축주 부부는 본인들이 그리는 집의 모습이 명확했어요. 평생 살고자 하는 마음도 보였어요.” – 전상규 건축가

 

3층에는 부부 전용 욕실로 내려가는 계단(사진 중앙)이 따로 설치되어 있다. ⓒJinhwan Jung
게스트 룸이 있는 복도에서 부부의 욕실이 보인다. ⓒOffice For Ordinary Architecture
넓은 욕조와 두 개의 세면대가 있는 부부 전용 욕실 ⓒOffice For Ordinary Architecture

 

“부부 욕실은 한 층 내려가야 있어요. 별도의 동선이 존재하죠. 이것도 요청사항 중 하나인데, 이 욕실이 오픈형이라 게스트 룸이 있는 복도에서도 보이거든요. 갈 수는 없지만 계단이 뚫려 있어 볼 수 있어요. 손님들이 지나가다 볼 수도 있으니까 저희끼리는 고민이 많았죠. 요청사항을 다 반영했는데 이게 정말 원하는 게 맞을까? 내부에선 의견이 많았어요. 그런데 아내분께서 정말 좋아하셨습니다. 원하던 집의 모습 그대로라고 하셨죠.” – 황은 건축가

 

유리 칸막이를 통해 분리한 3층 ⓒJinhwan Jung
스킵 플로어로 연결해 각 공간이 시야 안에 들어온다. ⓒJinhwan Jung

 

이 집은 욕실뿐 아니라 부부 전용 공간도 남다르다. 침대에 누워 고개를 돌리면 보이는 3층 서재는 부부의 요청이 가장 잘 반영된 특징적인 공간 중 하나다. 오직 유리 칸막이를 통해서만 공간 분리를 시킨 것. 또한 스킵플로어 형식으로 각 층을 단절시키지 않고, 계단 아래 주방과 거실에서도 누가 어디에 있는지 파악이 가능해졌다.

 

3층 부부 전용 공간. 침실과 서재가 유리창으로 연결돼 있다. ⓒOffice For Ordinary Architecture
3층 부부 전용 공간. 침실과 서재가 유리창으로 연결돼 있다. ⓒOffice For Ordinary Architecture

 

건축주는 당초 부부 전용 공간을 맨 위층, 다락을 염두했다고 한다. 하지만 건축가는 다락은 제약이 많고, 건물이 상가주택인 것을 고려해 1층 층고를 최대로 하되 2~3층의 층고를 효율적으로 정하고자 했다. 이런 생각에서 자연스럽게 스킵 플로어 방식으로 공간을 풀어나가게 된 것. 전상규 건축가는 “부부가 말한 집의 묘사를 다이어그램으로 나타내니 자연스럽게 그들이 원하던 집이 되었다”고 말했다. 

 

ⓒOffice For Ordinary Architecture
ⓒJinhwan Jung

 

“집이 완공돼 손님을 초대하면서 많은 분들이 계단을 오르내리기가 불편하지 않냐고 묻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본인이 좋은 공간에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은 건축주의 확고한 신념이에요. 사실 집을 짓고자 하면 주변 사람들이 하는 말에 흔들릴 수 있거든요. 건축주와 건축가가 많은 고민 끝에 내린 결정에도 제 3자가 아무렇지도 않게 툭툭 말을 던지곤 해요. 하지만 두 분은 스스로 원하는 것이 확고해 의사 결정도 빨랐고, 유지하려는 마음도 강했습니다.” – 전상규 건축가

 

아내의 요청으로 냄새가 새어나가지 않도록 부엌과 거실을 유리로 분리했다. ⓒJinhwan Jung

 

패시브 공법으로 완성한 친환경적인 집
이 집의 매력은 공학과 낭만, 또는 이성과 감성의 조화로 압축할 수 있다. 주택보다는 ‘저택’에 더 어울릴 법한 이름은 우아한 건물을 연상시키지만, 일반적인 집보다 훨씬 많은 공학적인 설계와 장치가 필요한 패시브 하우스라는 점에서 특징적이다. 건축가에게 패시브 하우스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창문 외부에 설치된 외부 블라인드의 모습 ⓒOffice For Ordinary Architecture

 

“패시브 하우스는 독일에서 시작됐어요. 집 내부에서 쾌적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 우리는 보통 에어컨을 가동하거나 보일러, 온풍기 등 에너지를 소비하며 유지하잖아요. 패시브 하우스는 그런 에너지를 최소화하기 위해 설계부터 단열에 더욱 신경을 쓰고, 기밀성을 높여 설계합니다. 집 안에서 공간이 닫혀 있다고 생각하지만 알게 모르게 새어나가는 게 많거든요. 이런 것을 설계 과정에서부터 막고, 어떻게 보면 능동적으로 에너지를 끌어와 쓰던 방식에서 벗어나 집 내부에 있는 열을 가지고 수동적으로(passive) 에너지를 쓰게 되는 거죠.”

전상규 건축가는 “일반적인 집이 내복을 입은 상태라면, 패시브 하우스는 거위털 패딩을 입었다고 할 수 있다”면서 “하드웨어의 취약한 부분을 외부 에너지를 이용해서 쾌적함을 유지하는 방식의 보통의 집이라면, 패시브 하우스는 밖에서부터 완전히 차단해 내부 에너지를 최소화하는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Office For Ordinary Architecture

 

에너지 관련 전공으로 대학 강단에 서는 남편은 시공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의견을 나누었다. 일반적으로 패시브 공법은 수익성 때문에 상가보다는 단독주택에서는 적용하는데, ‘팸벌리 하우스’는 근린생활시설에는 일반 설계, 주거 공간에는 패시브 방식을 각각 적용했다. 상가주택의 일반적인 문법에서 벗어난 모습이다.

 

ⓒOffice For Ordinary Architecture

 

내부로부터 시작된 시선
펨벌리 하우스가 있는 대지는 군산 안에서도 택지 개발 지구에 속한다. 이로 인해 건물 형태에 대한 규제가 생긴다. 또한 상가주택을 패시브 하우스로 만들기 위해서도 신경을 써야할 부분이 많았다. 쉽지 않은 설계와 건축 과정이었지만 건축주의 이해도가 새로운 도전을 가능케했다. 

 

아래층 도면 ⓒOffice For Ordinary Architecture
2층 거실과 주방 ⓒJinhwan Jung
위층 도면 ⓒOffice For Ordinary Architecture
3층 거실과 주방 ⓒJinhwan Jung

 

“이런 택지 개발 지구에 전형적인 상가주택의 모습이 있잖아요. 그런데 지인이 방문하면 너무 놀란다고 하시는 거예요. 어떻게 상가주택이 단독주택보다 더 과감한 공간으로 만들어졌냐고 의아해하신다고. (웃음) 사실 본인이 원하는 바가 있으면 단독주택과 같은 원하는 집을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희가 했던 다른 프로젝트에 비하면 형태적으로 눈길이 가는 집이 아니긴 해요. 흔히 저희끼리 익명의 건축이라고 하거든요. 누가 설계했는지 드러나지 않는 형태죠. 당연히 건축가들은 내·외부에 시선을 모두 주지만, 이번 프로젝트는 시선을 내부에서 시작했달까? 집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조금 더 큰 비중이 아니었나 싶어요.”
황은 건축가

 

발코니 ⓒOffice For Ordinary Architecture
ⓒJinhwan Jung

 

택지 개발 지구의 규정과 패시브 하우스의 공법은 그들에게 제약이 될 수도 있었지만, 한 겹을 벗기고 들어가면 이 집의 진가가 드러난다. 가족의 쾌적한 주거 환경과 삶을 반영한 입체적인 공간은 부부의 소신과 건축가의 고민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Jinhwan Jung
ⓒJinhwan Jung
ⓒOffice For Ordinary Architec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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