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와 작은 집, 그리고 세 식구

[Space] ‘오카 드 코히’ 공간 이야기
ⓒBRIQUE Magazine
에디터. 장경림  사진. 최진보, 송인탁  자료. 디자인오

 

심플하게 산다
단순함과 간소함을 추구하는 ‘미니멀리즘minimalism’ 철학이 취향을 넘어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복잡하고 다양한 현대 사회 속에서 역설적으로 궁극의 간결함을 추구하며 가장 본질의 것을 찾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필요한 물건을 고심해 고르고, 쌓인 물건을 버리는 생활 방식뿐만 아니라 간소한 디자인을 추구하는 미학 역시 산업 전반에서 주목받는 화두다. 화려한 장식 대신 단순한 색과 형태를 지향하는 제품, 기능과 실용성을 추구하는 건축은 복잡한 현대 사회 속에서 비움을 자처하는 ‘미니멀리스트’의 사랑을 받고 있다. 미니멀리즘을 지향하는 생활은 군더더기를 거둬내고, 인생에서 중요한 가치를 하나씩 발견하는 여정이다.

 

ⓒIntak Song

 

작은 집에 산다
집은 다양한 방식으로 단순함의 철학을 담아낼 수 있다. 형태, 소재, 공간 구성뿐 아니라 인테리어, 거주자의 물건에 이르기까지 곳곳에서 드러난다. ‘오카 드 코히’의 건축주는 결혼 전 도쿄에서 협소주택에서 생활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인천에 작은 집을 짓고 살아가는 젊은 부부다. 1층에서 아내가 카페를 운영하고, 2~3층에서 딸과 함께 세 식구가 살아가고 있다. 그들은 유학 시절 살았던 협소주택의 기억을 담아 유행을 타지 않고 오래도록 살 수 있는 담백한 집을 원했다. 건물의 형태부터 자재까지 세심하게 고려한 덕분에 그 바람은 하나의 간결한 실체로 완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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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 위의 작은 집

 

건축주 부부는 집을 짓기 전, 유학 시절의 추억이 깃든 가게와 동네의 풍경을 떠올렸다. 아침마다 들르던 카페의 커피와 디저트가 선사한 행복, 협소주택에 살며 얻게 된 새로운 생활 방식은 아파트에서 벗어나 작은 집과 카페를 만드는 과정에 큰 용기를 주었다. 그들이 선택한 곳은 인천 중구 전동에 위치한 언덕길 골목. 집과 집 사이, 좁고 긴 대지에 주택을 지어야 했지만, 넘치지 않는 삶을 지향하는 그들에게는 크지도 작지도 않은 적당한 땅이었다. 그렇게 선택한 골목길 언덕 위에 세 식구의 작은 집이 지어졌다.

 

ⓒIntak Song

 

번화가, 그 이후 남겨진 땅

 

동인천역 앞 그 동네
오카 드 코히가 자리 잡은 전동은 과거 인천의 중심지였던 동인천역을 비롯해 주요 명소인 차이나타운과 월미도, 인천항, 자유로공원까지 지척에 둔 동네다. 한 시절을 풍미했던 번화가의 모습을 뒤로 한 채 남겨진 풍경은 몇십 년 된 가옥과 오래된 골목이다. 청년들은 다른 지역으로 이주했고, 남은 동네와 사람은 함께 나이가 들어 현재는 중장년층이 많은 지역에 속한다. 외국 문물을 빠르게 흡수하던 과거의 항구 동네는 보존보다는 쇠퇴라는 아쉬운 결과를 맞이했지만, 여전히 우리나라의 역사를 동네 곳곳에 간직하고 있었다. 그 덕분인지 최근 들어 다시 젊은 층의 관심을 받으며 작은 가게들이 들어서고 조금씩 활기를 되찾고 있다.

 

좁고 긴 경사 대지
인천에서 자라 신혼 생활을 해 왔던 건축주는 그리 크지 않은 땅을 찾아다녔다. 작아도 알차게 살 수 있는 크기를 원하던 찰나에 골목길 언덕, 건물 사이의 대지를 만났다. 양쪽 건물로 인해 빛을 집 내부로 들이는 일은 숙제가 되었고, 좁은 면적에서 세 식구의 보금자리를 마련해야 했지만, 집 안 곳곳에 빛과 바람을 들일 수 있는 요소를 배치해 쾌적한 협소주택을 지을 수 있었다. 소방 시설 중 하나인 드렌처 설비가 필수인 방화 지구에 속해 예상보다 오랜 시공 기간이 소요되었지만, 일 년여 만에 세 식구와 딱 어울리는 협소주택이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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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 위 작은 집

 

단순한 직육면체 매스
건물은 약 64㎡의 건축 면적에 3층 규모로, 한 층씩 쌓아 올린 단순한 직육면체 형태를 띠고 있다. 깔끔한 디자인을 추구하는 건축주와 디자이너의 만남으로 화려한 기교나 색채보다는 건물 그 자체로 완결된 느낌을 주고, 날 것이 주는 담백함이 그대로 느껴진다. 좁고 긴 매스는 협소주택의 전형이며, 과함이 없는 파사드에서 그들의 성향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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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내리는 아내의 카페
아내는 동네의 따뜻한 공간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카페 문을 열었다. 테이블이 네 개밖에 없는 작은 규모로, 혼자 디저트를 만들며 꾸려 가는 소박한 카페지만 꾸준히 찾아오는 손님 덕분에 즐겁게 운영 중이다. 주말에는 직원을 자처하는 남편과 함께 바쁘지만 행복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도쿄 유학 시절 자주 갔던 카페처럼 도시적이고 간결한 인테리어를 좋아했던 그들은 외부와 내부를 모두 노출콘크리트 마감재로 택했고, 유리와 돌, 나무, 푸른 식물을 활용해 인테리어를 완성했다.

 

출근하는 남편의 주차장
인천에서 직장이 있는 서울까지 매일 출퇴근하는 남편은 주택을 지은 덕분에 차를 편하게 관리하고 있다. 단독주택에 전기차 충전 시설을 설치해 아파트에서 생활할 때보다 기다림을 줄일 수 있게 됐고, 가게가 쉬는 날이면 지상 입구를 주차장으로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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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지만 좁지 않은 협소주택

 

거실의 연장, 게스트 룸
2층은 거실과 부엌에서 바라보는 게스트 룸이다. 미닫이 형식으로 만들어진 문은 공간의 확장을 가능케 한다. 문을 열면 거실의 일부가 되고, 문을 닫으면 폐쇄된 방이 되어 독립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현재는 6 살 난 딸의 놀이방으로 쓰인다. 유학 시절의 기억을 담아 코타츠(일본식 온열 테이블)를 놓고 가족끼리 시간을 보내기도 하며, 게스트 룸 내부 역시 미닫이형 수납장을 활용해 공간의 활용도를 높였다. 게스트 룸은 2층과 3층 사이 스킵 플로어 구조를 적용해 마련했다. 규모는 작지만, 계단을 활용해 오르내리는 재미를 주어 협소주택의 지루함을 해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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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놀이터, 중정
건물의 전면부와 후면부에서만 빛을 받을 수 있는 대지로 인해 집 내부로 빛을 들이는 것은 중요한 과제였다. 양쪽 건물로부터 사생활을 보호하고, 아이가 마음껏 놀 수 있는 내부 공간을 만들고자 3층에는 작은 중정을 마련했다. 이는 환기와 채광을 위한 해법이기도 했다. 중정은 여름에는 물놀이 공간이 되고, 식물을 키우는 작은 마당이 되어 사계절의 흐름을 느낄 수 있는 가족의 놀이터가 된다. 중정을 아이 방까지 연결하여 아이가 독립된 공간에서도 자연을 느끼고, 좋은 영향을 받으며 크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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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 걸어 내려오는 계단
2층과 3층을 연결하는 계단은 두 명이 함께 걸을 수 있을 만큼 간격이 넓다. 2층은 전면부와 후면부의 창을 통해서만 빛을 받기 때문에, 중정과 천창에서 내리쬐는 빛을 계단을 통해 2층까지 그대로 받아들이기 위함이다. 계단의 난간을 유리로 설치해 협소주택의 답답함을 해소했다. 빛이 그대로 투영되는 넓은 계단은 아빠와 엄마가 딸의 손을 잡고 오르내릴 수 있게 해 가족에게 일석이조의 효과를 안겨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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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을 걷는 시간

 

무늬목이 만든 따뜻함
무늬목은 천연 원목의 질감이 살아있고, 따뜻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마감재 중 하나다. 시공 과정에서 집의 분위기에 맞춰 자연스럽게 선택되었는데, 유학 시절 두 사람이 살았던 주택에서 사용된 자재이기도 해 새집을 향한 애정을 더하는 요소가 됐다. 집 내부를 깔끔하고 하얗게 마감했기에 나뭇결이 만들어내는 자연의 느낌은 집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한층 따뜻하게 만들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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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식 화장실
화장실은 유학 시절의 기억을 담아 건식으로 마련했고, 샤워실과 분리했다. 한국의 욕실은 타일을 활용한 일체형 습식 구조가 대부분이지만, 지진과 재해가 잦은 일본은 건물의 부식을 막기 위해 때와 곰팡이를 줄이는 건식 구조의 화장실을 주로 택하고 있다. 요즘은 한국에서도 흔히 찾아볼 수 있는 방식이 됐다. 습식 화장실보다 관리가 쉽고, 물이 닿지 않아 인테리어 선택의 폭도 넓어 젊은 층의 선호도가 더욱 높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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