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첫 만남

[스페이스 리그램] ④ 학교에 대한 생각들 - 윤중중학교
ⓒKyung Roh
글. 김은산  자료. 에이코랩  건축사사무소

 

‘기억극장(아트북스, 2017)’,  ‘애완의 시대(문학동네, 2013)’, ‘비밀 많은 디자인씨(양철북, 2010)’  등을 통해 사회적인 분석과 미학적인 시선이 교차하는 영역에서 작업해온 김은산 작가가 ‘스페이스 리그램space regram’이라는 연재로 <브리크brique> 독자와 대화의 문을 엽니다. 인문학과 영상문화이론을 전공한 그는 인문서점 운영과 사회주택 기획, 지역 매체 창간 등을 통해 공간과 사람을 매개하는 일에 관심을 갖고 다양한 활동을 지속해 오고 있습니다. 한 컷의 사진을 매개로 도시인의 일상을 돌아보는 그의 독특한 시선을 통해 독자 여러분도 짧은 사색의 시간을 가져보시길 기대합니다. 

 

지금은 아니지만 꽤 오랫동안 초등학교 화장실이 꿈에 나오곤 했다. 안 좋은 일이나 기억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잠에서 깨고 나서도 늘 기분이 개운치 않았다. 사실 학교는 처음부터 편안한 공간이 아니었다. 건물은 단조롭고, 무미건조하고 시설들은 낡고 불편했다. 그러나 그 공간에서 정확히 무엇을 느꼈는지 언어화할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나서 그것이 ‘공포’라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단조롭고, 무미건조한 건물이 모두 공포로 다가오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사실 학교 건물은 시각적으로 커다란 자극을 주거나 강렬한 인상을 남기지는 않는다. 게다가 뭔가 허술했다. 그렇다면 어떤 부분이 그렇게 공포로 다가왔던 것일까.

2020년 서울시 교육청이 주관하는 학교 공간 재구조화 사업의 아카이빙 프로젝트에 프로젝트 매니저로 참여하게 되었다. 그 전해 서울 지역 150여 개 초중고교에서 이뤄진 학교 리모델링 작업을 백서로 묶는 일이었다. 서울시 공공건축가로 참여한 건축가분들이 보내온 글과 도면, 완공 사진을 정리하며 개인적으로 인상 깊은 작업들을 꼽아보기도 했다. 영등포에 있는 윤중중학교의 교무실을 리모델링한 작업이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Kyung Roh
ⓒKyung Roh

 

건축사무소에서 보내준 완공 사진을 본 순간, 조금 난데없지만 첫사랑의 장소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누구와 누가 만나는지도 분명치 않았지만, 누군가의 첫 만남을 위한 장소 같았고, 그것을 지켜보는 느낌이 들었다. 목조 창틀 창가 주변으로 아이보리 색상의 둥근 탁자와 의자가 놓여있었다. 그 외에는 사실 특별할 것 없는 조촐하고, 미니멀한 디자인이었다. 그러나 기존의 학교 공간과 무언가가 확실히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다.

오래된 교무실을 개조한 이 공간에 왜 이토록 끌리는지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그것이 ‘배치’의 문제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선생님들이 담소를 나누는 공간은 둥근 탁자 주변으로 의자를 서로 둘러앉는 방식이었고, 사무 공간의 배치도 위계질서를 없애고, 원을 수평적으로 점점이 배치하여 모든 선생님이 하나의 원 형태의 영역에서 연구와 휴식, 학생상담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장 샤오강의 ‘학교’

생각해보니 기억 속 학교와 교실의 풍경은 중국 현대 미술가 장 샤오강(张晓刚)의 그림에 가까웠던 것 같다. 실제로 그런 모습은 아니었으나 나는 나의 기억을 날조한다. 면사무소로 보이는 건물이 멀리 보이고 깃대 위에는 스피커가 보인다. 하나의 소실점으로 모이는 가시성의 질서, 하나의 방향과 의미만을 허용하는 너무나 확고한 배치의 질서. 들뢰즈는 프랑스어에서 의미와 방향이 ‘sens’로 동일하다는 것을 일깨운 바 있다.

학교는 늘 하나의 단일한, 방향성만을 가진 공간으로 기억된다. 교문에 들어서 고개를 들면 바라보이는 국기 게양대에 나부끼는 태극기와 학교 건물과 정면으로 마주 보이는 넓은 운동장. 월요일마다 일렬종대로 나란히 서서 교장 선생님의 끝나지 않는 훈화 말씀을 들어야 했던 국민교육의 장소. 그 배치는 교실에서도 반복된다. 칠판과 교탁에서 교실 맨 뒤 책상까지 일렬종대로 늘어서 서로의 뒤통수를 바라보며 누가 무엇을 하는지 모두 보이는 가시성의 구조.

운동장에 들어서면서부터 우린 누군가에 의해 보여지는 존재이다. 어느 곳으로도 숨길 수 없이 전시되고 있는 느낌, 누군가 늘 나의 뒤통수를 보고 있다는 사실이 괴로웠다. 친구가 없어 혼자 밥을 먹거나 화장실에 혼자 가는 일이 그토록 신경 쓰이는 것도 누군가에게 보여지고 있다는 것을 의식해야하기 때문이다. 혼자가 되지 않기 위해 그렇게 필사적으로 누군가에게 친한 척을 하거나 다른 아이들을 따돌리는 이유 또한 그 때문은 아니었을까.

학교에 다니는 동안 그렇게 서로를 바라보았지만 우린 한 번도 제대로 마주한 적이 없었다. 선생님도 아이들도, 우리 모두는. 윤중중학교의 교무실을 보며 처음으로 학교 공간에 머무는 이들이 한자리에 모인 느낌이 들었다. 마치 어디선가 등을 켠 듯 환한 불빛에 둘러싸인 것 같았다. 선생님, 학생, 학부모, 교직원. 그들이 처음으로 얼굴을 맞대고 무언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된 것 같았다.

다시 한번, 이런 배치를 어디선가 보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일본의 영화감독 하마구치의 류스케의 다큐멘터리 ‘파도의 소리’였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으로 고향을 떠난 사람들에게, 지금은 사라진 고향에 대한 기억을 묻는 것이 영화의 내용이었다. 사람들은 다다미방에 모여 앉은 듯 탁자 주변에 모여앉았다. 감독도 무릎을 끓고 그 자리에 함께 앉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대부분의 다큐멘터리영화에서 감독은 화면 밖에 머물거나 자신을 대리하는 누군가를 내세워 그 자리를 구조화하는, 보이지 않는 권력으로 자리한다. 하지만 류스케 감독은 그저 이야기를 듣는 청자 중 하나로, 카메라는 그 만남을 주선하는 역할에 지나지 않는다는 한계를 분명히 하며,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하나의 공간을 만들어냈다.

윤중중학교의 교무실을 리모델링한 건축가가 한 일도 이와 흡사해보였다. 건축가가 할 일은 그저 하나의 배치를 바꾸어 어떤 장소를 마련해주는 일이었다. 그다음은 그곳에 머무는 사람들이 일을 이어갈 것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건축가가 완공 사진과 함께 보내온 글의 제목은 ‘선생이라는 집, 학생이라는 거주자’였다. 가장 단순하지만 가장 근본적인 변화를 만들어내는 시작에 걸맞는 제목이었다.

 

ⓒKyung Ro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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