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건축시장에서 ‘집 짓기’

원로 교수와 두 젊은 건축가가 말하는 건강한 집 짓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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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이현준  사진. 최진보

 

공동건축학교가 주관하고 희림건축이 후원한 ‘크리에이티브 건축세미나’가 올해는 ‘젊은 건축가의 설계 시장’이라는 주제로 지난 10월 8일부터 매주 화요일, 총 다섯 차례 열렸다. 지난 12월 3일, 마지막 세션인 ‘집짓기의 건축시장’이 진행된 현장에 다녀왔다. 최성호 소하건축 소장, 정효빈 HB건축 소장이 참석해 각자의 작업에 대해 소개한 후, 진행을 맡은 김광현 서울대학교 건축학과 명예교수(공동건축학교 교장)와 토론을 이어나갔다. 

왁자한 인파 대신 진중한 소수가 청중석을 채웠다. 두 명의 젊은 건축가와 원로 교수가 ‘한국의 집 짓기 시장’과 ‘젊은 건축가’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눈다. 특별했던 그 시간을 몇 개의 주제어로 포착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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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최측이 참석자들을 소개하고 있다.  ⓒBRIQUE Magazine

 

집 짓기 위해 모인 건축가들

 

김광현 교수 : 집 짓는 행위를 중심으로 건축사들이 모임을 만들었다는데 잠깐 소개해 줄 수 있나요.

정효빈 소장 : 네, 저랑 최소장이 함께 활동하는 집톡이라는 모임인데요, ‘건강한 집 짓기’를 목표로 모였어요. 2014년 시작해서 자체적으로 세미나도 하고, 외부 강연과 전시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어요. 작년부터는 ‘경향하우징페어’ 초청으로 전시회 기간동안 전국을 돌며 건축주를 위한 릴레이 세미나와 전시를 진행했어요. 최근에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함께 ‘단독주택 주택설명회’ 같은 것도 해봤습니다.

김광현 교수 :  일단 건축사들이 모였다는 사실이 참 의미 있어요. 교육하고, 설득하고, 외연을 넓히며 일을 수주할 기회도 만드는. 집 짓기 시장을 넓히려는 현재까지의 시도 중에서 가장 깊이, 또 넓게 진행되고 있는 일이 아닌가 해요. 약한 동물은 모여야 합니다. 맹수들은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닐 수 있지만 초식동물들은 모여야 해요. 모여서 세미나도 하고, 전시도 하고, 강연도 하고 말이죠.

 

정효빈 소장이 발표를 하고 있다. ⓒBRIQUE Magazine

 

시장과 가격

 

김광현 교수 : 설계비가 궁금합니다.

정효빈 소장 : 제 경우 첫 수주는 설계비 1500만원, 감리비 500만원에서 시작했어요. 그 다음 프로젝트는 설계비, 감리비 순으로 2000에 500, 그 다음은 2500에 1000. 최근에 수주받은 것들은 3000에 1500 식으로 점차 상승하고 있습니다. 설계비가 적을 땐 일이 굉장히 많죠. 10건의 상담을 받는다면 그 중 6건을 수주하는 식이예요. 그런데 그렇게 되면 직원들이 고생하는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수주하는 프로젝트의 종류와 비율을 달리합니다. 저희 사무소 초장기 무렵엔 집 짓기가 70~80%, 관공서 프로젝트가 20% 였어요. 이제 5년차가 되는데, 관공서 프로젝트가 85%, 집 짓기는 1년에 서너건 정도예요.

김광현 교수 : 그런 정도면 직원들 월급도 주고 사무실을 꾸려갈 수 있나요? 이를테면 1년에 설계비 3000만원 규모의 주택을 몇 채나 지어야 하나요?

정효빈 소장 :  저를 포함해 총 네 명이 안위하기 위한 최저 매출이 이를테면 3억원 가량이에요. 그러면 3000만원의 프로젝트가 10건이 되어야 하죠. 관공서 프로젝트는 가령 곧바로 3억의 수익을 낼 수 있는 겁니다. 커다란 프로젝트 하나를 6개월 정도 진행하는 것과, 10개의 집 짓기 프로젝트를 1년동안 진행하는 것은 직원들의 삶이나 복지 관점에서는 차이가 클 수밖에 없죠.  

최성호 소장 : 현재 집톡 건축가들 가운데에서도 주택 프로젝트를 상당히 많이 맡는 편이라 제가 이 자리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저 역시 저를 포함해 4인의 사무실을 운영하는 상황입니다. 간단히 얘기해 저희도 10개의 주택 프로젝트를 수주해야 매출을 맞출 수 있죠. 저는 강릉이나 세종시 등 지방에 일이 많아 교통비에서 마이너스 되는 부분들도 고려를 해야 합니다. 

 

최성호 소장이 발표를 하고 있다.  ⓒBRIQUE Magazine

 

어떻게 알릴까

 

김광현 교수 : 다양한 건축가가 만든 수많은 주택을 주기적으로 업로드 해 소개하는 넓은 포털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그 편이 매체의 기자를 잘 만나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겠어요. 작은 집일수록 모바일 세상을 잘 활용해야 합니다. 네이버가 건축판을 만들면 어떨까요. 건축가 개개인이 애를 쓰기보다 여러 사람들의 작품을 한데 모으고, 자꾸만 이름을 노출하면서 널리 알리는 것이 시장을 확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닐까 합니다만.

최성호 소장 : 제가 일을 처음 시작했을 무렵에는 일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인터넷 카페에 제가 그린 그림과 제가 쓴 글은 꾸준히 업로드를 해 왔는데요. 이를테면 줌토르나 칸, 코르뷔지에 등 거장들의 작품들을 보면서 제 나름의 시선을 담은 스케치, 그리고 그 그림을 그리며 떠올린 단상들이었죠. 일을 막 시작한 당시에 제 포트폴리오엔 건물은 없고 글과 스케치 뿐이었어요. 그런데 시공사가 모인 인터넷 카페에서 그걸 본 어떤 사람이 제게 연락을 해 왔어요. 얼마면 집을 설계해줄 수 있냐고 먼저 물어오셨구요. 그 이후로도 온라인에 계속해서 기록해 왔고 지금까지 이렇게 일을 해 오고 있어요.

정효빈 소장 : ‘온라인에서는 내 얘기만 내세울게 아니라 남을 칭찬할 것.’ 이전에 어떤 소장님께서 이런 팁을 주시더라고요. 칭찬 받는 다른 사람이 더 유명하니 나도 덩달아 홍보가 된다는 거였죠. (웃음)

 

왼쪽부터 정효빈  소장, 최성호 소장, 김광현 교수 ⓒBRIQUE Magazine

 

대중에게 건축을 어떻게 ‘읽어줄’ 것인가

 

김광현 교수 : 매거진 등 매체에서나 여타 집 짓기와 관련한 논의를 보면 백이면 백 아름다운 것들만 계속해서 묘사를 합니다. 거기에 인문학 얘기까지 덧붙여 마냥 좋아보이게만 만들죠. 망가진 집들은 어떻게 망가졌나, 사소한 고장부터 심각한 보수까지, 별거 아닌 것처럼 보여도 삶을 살아야 하는 집에서는 커다란 차이를 만들 수 있는 문제거든요. 내외장재는 싸면 비지떡일 수 있다는 것, 하다못해 건축가들을 닥달하거나 못살게굴면 안된다는 정보라도. 아름다운 집, 멋진 집만 찬양할 게 아니라, 조금은 네거티브한 의식들에서 출발하는 이야기들이 필요합니다.

집을 짓는다는 것이 결코 쉬운일이 아니라는 것도 알아야 해요. TV나 매거진 등 매체에 건축주로 나오는 사람들의 모습은 너무나 또렷한 삶을 사는 사람, 많이 가진 사람들이 주를 이뤄요. 그런데 모든 집이 그렇게 지어질 순 없거든요. 경각심을 주기 위해서라도 그렇지 못한 사례들도 많이 소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일본의 건축 관련 TV 콘텐츠 중에 <와타나베의 건물 탐방>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어요. 가만히 들어보면 형용사가 참 많이 나와요. ‘우와~’ 하면서 거듭 감탄을 합니다. 음식 관련 프로그램을 떠올려보면 우리나라와 일본의 차이가 조금 더 잘 와닿을 겁니다. 일본 사람들은 음식을 두고도 참 형용을 풍부하게 해요. 입을 다시고 눈을 크게 뜬다든지, 옆사람이랑 같이 맛있게 먹는다든지, 최선을 다해 맛을 묘사하죠. 우리나라도 물론 <식객 허영만의 백반 기행> 같은데서는 맛있게 표현을 할 때도 많지만, 그 외에는 음식의 영양에 대한 이야기를 정말 많이 해요. 이건 무슨 음식인데 몸의 어디에 그렇게 좋다.

건축도 마찬가지로 한국과 일본은 바라보는 각도가 조금은 다른 것 같아요. 우리 나라에서는 건축주에 포커스를 맞추죠. 이렇게 원했기 때문에 건축가가 알아서 해줬다, 시골에 살았었는데 집을 지어서 여차저차 했다. 인문학을 얼버무려서 ‘집은 이렇게 짓는다’ 하는 건축 강의에 가까워요. 건축가는 드러나지 않죠.

반면 <와타나베의 건물 탐방>에 보면 건축 재료 얘기도 풍성하고, 공간 묘사도 탁월해요. 어떤 재료로 마감을 해서 밖이 잘보이고, 바람이 잘 들고, 건축가 선생님이 이러이러한 제안을 해서 받아들였다, 라던지. 물질적이고 기술적이면서도 사는 사람의 실생활과 잘 연결지어 이야기를 합니다. 건축가를 전면에 내세우지는 않지만, 은근히 건축가의 존재감을 드러내주죠.

 

 

모두를 위한 ‘집 짓기 언어’

 

김광현 교수 : 집 짓기라는 행위가 쉽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려면, 그 집을 설명하는 언어나 단어, 설명하는 태도 등에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양질의 도면을 마련했는데 예산 때문에 물거품이 된다던가, 최적의 것들을 구현하려 했는데 소통이 안돼 무산된다던가 하는 슬픈 일들이 일어나잖아요. 우리 모두가 거기서 그냥 끝내버리면 안된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건축가들이 자리를 한번 만들어서, 집 짓기에 관한 것들을 일반인들에게 소개할 때 어떤 단어와 태도를 지향해야 하는지, 같이 연습문제를 풀듯 논의하는게 어떨까 생각해봤어요. 기존에 만들었던 집을 가지고 어떤 건축가가 나와서 설명을 하면, 다른 분이 듣고 ‘아 그건 이상하다, 조금 바꿔야한다’는 의견을 준다던가. 그 토론 자체에 의미를 두는 시간들을 가져야 더 시장이 넓어지고, 건축과 대중 사이의 접점도 늘어나지 않을까 싶어요.

최성호 소장 : 집톡에서도 그렇고, 저희가 그 단계까지 생각해보지는 못한 것 같네요. 결국은 일반인들에게 이야기하는 방식 연습, 건축가가 원하는 것을 어떻게 구현하는지, 저희의 소신과 가치를 어필하기 위한 ‘말 연습’일 수 있겠군요. 

김광현 교수 : 말 연습도 맞지만 조금 더 적극적인 관점에서요. 젊은 건축가들이 이 시장을 두고 이야기할 때 설계 비용과 시공사 틈에서 끝나버리는게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작은 집 안에서 사용되는 다채로운 재료, 구축해내는 방법론, 사용자의 삶 등이 얽혀 있는 모습을 풀어나가는 것이죠. 그래야 건축가의 직능이 보다 높아지는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이런 움직임을 보이고, 그것이 매스컴을 통해 관찰이 되고, 그러면 지금 일반의 인식 속 ‘집 짓기’에 변화가 생기지 않을까요. 

지금 보면 건축가는 저 뒷전에 물러나 있고 건축주만 앞에 나와있는 것 같아요. 건축주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텃밭을 만들고, 어려서의 소망을 이루고…. 그냥 완공된 건물의 사진만 덩그러니 있을 뿐, 건축가 얘기는 찾아볼 수 없죠. 흐르는 전체적인 이야기, 건축가가 짓는 집은 어떻게 다른 효과를 창출하는지, 이를테면 시공사를 잘못 만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이런 내용을 조금은 의도적으로 말을 해 나가야죠. 건축가들끼리만 하기 어렵다면 매체 기자들의 네트워크도 동원해서요. 집 짓기 건축 시장 이야기를 조금 다른 각도에서 풀어 본다면 시간이 걸릴지라도, 더 많은 사람들이 알고 또 찾아올 수 있지 않을런지요. 자꾸만 외연을 넓혀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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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효빈 소장 : 네, 교수님께서 말씀하신 것들에 대해 집톡에서도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다만 아직 일반인들의 참여율이 낮아요. 대중화되는 과정이 굉장히 중요할 것 같습니다. 건축가들이 나서서 강연을 하는 경향하우징페어에도 말씀하신 내용들이 항상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실행 중인 것들에 교수님 짚어주신 디테일들을 보완해나가는 방향이 좋을 것 같습니다. 

김광현 교수 : 오늘 이 자리 한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운동처럼 바뀌어야 할 것 같네요. 그래서 젊은 건축가들이 시장을 넓히기 위해 어떤 것들을 하고있나 하는 내용을 신문에 좀 내고 싶은 생각도 있어요. 우리들끼리 끝내기 너무 아까우니까, 외연화 하려면 우리의 실상이 어떤지, 무엇이 필요한지 어디든 통해서 이야기가 되어야만 반응이 옵니다.

두 소장님의 귀중한 견해 감사드립니다. 여기 참석하신 모든 분들도 마음속에 늘 ‘설계 시장’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시고 건축 활동 하시길 바랍니다. 젊은 학생부터, 비슷한 연배의 젊은 건축가들까지 이 문제를 일반적인 화두로 받아들이고, 개척하고, 또 바꿔 나갈 수 있는 모멘텀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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