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모여 살자’는 생각

[People] ‘송학리의 생각’ 주민들의 함께 사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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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박종우  사진. 스튜디오 에스파시오, 김동규, 이동웅  자료. 소수건축사사무소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라는 말이 있다. 과거에는 마을이라는 하나의 공동체가 아이에게 예의범절과 규칙, 문화, 타인과 관계 맺는 법, 노는 방법까지 가르쳤기 때문에 통용되는 말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한국에서 마을은 아이를 키우지 않는다.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해 마을에는 대부분 아이들이 살지 않는다. 아이들은 도시의 아파트에서 산다.
지나가다 마주치는 모든 이가 아는 사람이었던 마을과 달리, 도심 속 아파트에서 얼굴조차 모르는 사람들과 한 건물에 산다. 학원과 학교는 마을이 가르쳐줄 수 없는 것들까지 알려주지만, 대신 아이들은 점점 경쟁에 휘말린다.
경쟁에 휘말린 아이들은 차이를 너그럽게 인정하지 않고 차별한다. 임대 아파트에 사는 저소득층을 비하하는 ‘휴거(휴먼시아+거지)’, ‘임거(임대 아파트+거지)’라는 말은 오늘날 서로를 보듬을 여유가 없는 어린이들의 마음속을 비추는 어두운 거울이다.

 

대안적 삶을 실천하는 방법

경기도 양평군 강상면 송학리에 있는 마을 ‘송학리의 생각’은 이러한 도시 아이들의 삶을 자신의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은 부모들이 모여 만든 마을이다. 자연 친화적인 대안 교육 ‘발도르프 교육’을 실현하는 어린이집의 학부모 여섯 가족은 아이들이 치열한 경쟁에 휘말리지 않고 살 수 있도록 대안 학교 설립을 계획했다. 그러나 절차상의 문제로 계획은 실현되지 못한다.
학부모들은 학교 대신 마을을 만들어 함께 살기로 한다. 송학리의 생각에서 아이들은 친구들과 놀고 자연을 탐험하며 오늘날 도시에서 배울 수 없는 가치들을 스스로 터득한다. 또한 영어, 미술 등을 배운 마을의 학부모가 아이들의 성향에 맞추어 직접 가르친다. 아이들은 경쟁에 휘말리지 않고 자신만의 속도로 배움의 즐거움을 알아간다.

 

모여 살며 되찾은 ‘마을’

‘송학리의 생각’에 이주한 이들은 이곳의 ‘마을다움’에 놀란다. 이웃끼리 눈을 마주치며 서로의 안부를 묻고, 아이들은 또래 친구들과 함께 어두워지기 전까지 활기차게 뛰어논다. 이웃의 도움이 필요하면 도움을 요청하고, 이웃은 기꺼이 그 요청에 응한다. 함께 해야 할 일이 있다면 누구라도 나서서 일을 돕고, 남는 것이 있다면 이웃과 나눈다. 또한 각 가족이 직접 지은 이름과 가족의 삶에 맞게 지어진 집들이 모여있다. 이 모든 것들을 당연한 것으로 여겨왔지만, 오늘날 한국의 도시에서는 이런 일들이 점점 어려워진다.
송학리의 생각은 현대적인 건축 공법과 설계 기법으로 만들어졌지만, 결과물은 오히려 도시화와 산업화에 밀려 사라진 그 옛날의 ‘마을’에 가깝다. 서울에서 집을 구하는 일이 점점 어려워지고 경쟁을 부추기는 교육과 아파트 생활의 대안이 필요한 요즘. 송학리의 생각이 보여주는 ‘마을다움’이 새로운 삶의 방식이자 대안 중 하나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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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사는 송학리 생활

 

길가에서 활기차게 뛰어노는 아이들. 우연히 마주치면 자연스럽게 서로 안부를 물어보는 어른들. 남은 음식을 이웃끼리 서로 나누는 모습까지. 오늘날 서울을 비롯한 많은 도시와 마을에서 찾기 어려운 이 풍경은 송학리의 생각에서는 흔한 일상이다.
아이들에게 새로운 삶을 선사하자는 목표로 모인 학부모들은 그들의 이상을 실현할 건축가를 만나 마을을 지었고, 이들의 삶의 태도에 이끌린 이들이 합류해 현재 10가구가 모인 마을이 되었다. 이들 중 마을 짓기 처음부터 참여한 세 명과 이후 합류한 세 명을 만나 송학리의 생각에서 함께 사는 이야기를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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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학리의 생각’은 처음 6가구가 모여 살기로 시작해서 현재는 10가구로 늘었죠. 맨 처음 6가구가 모여 살기로 한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강정아 여기 있는 진옥 씨와 소연 씨, 그 외 세 식구가 어린이집 학부모 모임으로, 처음에 이 땅을 사들여 함께 살기로 했죠. 회창 씨와 경은 씨 부부, 흥섭 씨 가족은 집을 짓는 걸 보고 나중에 입주하셨고요. 처음 모인 여섯 가족은 원래 집이 아니라 대안 학교를 만들 계획이었어요. 학교 만드는 모임으로 시작했는데, 현실적으로 학교를 만들기는 쉽지 않았죠. 대신 집을 지어서 같이 살아보자는 것으로 목표가 달라졌죠.

이진옥 2016년쯤이었어요. 당시 저희 아이들은 발도르프 어린이집을 다니고 있었어요. 자연 친화적인 대안 교육인 ‘발도르프 교육’에 따라 아이들을 가르치는 곳이죠. 조기 교육 안 시키고 자극적인 미디어도 배제하고 자연물을 가지고 놀 수 있는 곳이에요. 정말 좋은 곳이라 생각했는데, 이 어린이집을 졸업하고 나면 일반적인 초등학교에 들어가야 하잖아요. 발도르프 어린이집에서는 조기 교육을 하지 않았으니, 아이들이 앞으로 어떡해야 할지 걱정이 많았죠. 그래서 발도르프 교육을 쭉 연장해서 우리 아이들이 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마음이 맞는 부모님들과 함께 시작하게 됐죠.

 

건축주 강정아 씨(좌)와 김소연 씨 ⓒBRIQUE Magazine
건축주 권회창 씨(좌)와 박경은 씨, 이진옥 씨 ⓒBRIQUE Magazine

 

대안 학교를 만들겠다는 목표는 실현하지 못했지만 마을을 만들었죠.

이진옥 처음에는 다 같이 으쌰으쌰 했지만, 경제적인 부담 때문에 힘들었어요. 학교를 만들 때 드는 비용을 부모들이 다 떠안아야 하니까요. 그러다 비용도 어찌어찌해서 마련했는데, 선생님들을 양평까지 모시는 게 잘 안됐어요. 결국 아이들이 학교를 가야 할 적절한 시기에 학교를 만들지 못했죠. 그래서 생각을 바꾸게 됐어요. 당시 저희는 양평 곳곳에 흩어져 살았어요. 아이들끼리 서로의 집에 놀러 가고 싶어도, 부모님이 꼭 태워줘야 했죠. 저희 어렸을 때처럼 가볍게 친구 집에 놀러 갈 수가 없는 거에요. 애초에 우리 아이들을 같이 보살피자는 마음에서 학교를 만들려고 했는데 그게 잘 안 됐으니, 그럼 마을을 만들어보자고 계획을 바꾸게 됐죠. 학교에서만 교육이 이루어지는 건 아니니까요. 

 

함께 살자고 결정했지만, 집을 처음부터 설계하는 것은 다른 문제잖아요. 별도로 설계를 의뢰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공인중개사 사무소를 운영하는 강정아 씨가 소수건축사사무소(이하 소수건축)와 주로 소통하셨죠.

강정아 원래 저희가 매입한 이 땅을 미리 개발한 시행사가 있었어요. 다른 설계사무소와 함께 이미 어떤 식의 집이 지어질지도 계획이 다 되어있는 상태였죠. 그런데 땅 모양이 제각기 다른데 모든 땅에 다 똑같은 컴팩트한 형태로 설계를 했더라고요. 그 설계를 변경하는 걸 불편하게 생각했고요. 제가 보기엔 비슷비슷한 일반적인 집의 형태였죠. 그리고서 계약 전에 어떤 집이 지어질지 설명을 듣는데, 집을 짓기도 전에 집의 모습이 먼저 정해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치 틀에 찍어낸 것처럼, 완공되면 어떤 집이 나올지 너무 기대가 안 됐어요. 그저 예산에 딱 맞춘 집이 되어버릴 것 같았죠.
그러던 와중에 지인을 통해 소수건축을 소개받았어요. 소장님들이 저희 이야기를 듣고, 각 가족의 예산과 라이프스타일에 따라 집을 어떻게 지어야 할지 저희와 함께 고민하는 모습에서 진심으로 좋은 집을 설계하고 싶어하는 마음이 느껴졌어요. 그렇게 소수건축에게 프로젝트를 맡기게 됐죠. 

 

회창 씨와 경은 씨 부부, 흥섭 씨네 가족은 대안 학교와 관계없이 나중에 입주하시게 됐죠. 어떤 계기로 입주하시게 되었나요?

김흥섭 저도 아이들 때문에 오게 됐어요. 아파트에 계속 살았는데, 아이들이 친구들과 놀기 위해서 학원에 다니게 되더라고요. 학원에서 만나는 친구들이랑 학원에서 놀고, 그 시간 끝나면 다른 학원 가서 다른 친구랑 놀고. 그렇다 보니 아이들이 뛰어놀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결심했죠.
원래는 송학리 말고 다른 곳에서 살 계획이었어요. 땅도 알아봤는데, 다른 곳은 진입로 경사가 심해서 아이들이 오가기 어렵거나, 함께 뛰어놀 아이들이 없었죠. 그래서 단지를 찾다 송학리로 오게 됐어요. 올해 7월 28일 자로 입주했으니, 우리 가족이 새내기네요. (웃음)
박경은 전 이 근처에서 오래 살았는데 이런 동네가 있는 줄 몰랐어요. 평소 타운하우스나 주택단지에 관심 많아서 많이 가봤는데, 이런 곳은 처음이었어요. 친척 동생이랑 근처를 걷다가 우연히 들어오게 됐죠. 그리고 모든 게 바뀌었어요. (웃음)
권회창 그날 바로 저한테 전화해서 여기 살아야 된다고 얘기하더라고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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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결정할 정도면 아주 좋은 인상을 받으신 것 같은데요. 어떤 점이 마음에 드셨어요?

박경은 옅은 장밋빛이 나는 벽돌집이라는 점이 먼저 끌렸고, 가까이서 보니 또 다른 느낌이 있었어요. 그때 이상하게 동생이랑 함께 전율을 느끼면서 “여기야, 여기. 어떡하지?” 하면서 어떤 곳인지 물어보자 싶어서, 수소문해서 강정아 실장님을 찾아뵈었죠. 이야기를 들어보니, 외관이 예쁜 것뿐만 아니라 마을 자체가 생각부터 다르구나 싶었어요. 이곳에 살면 마을 사람들로부터 계속 삶에 대해 배울 수 있는 계기가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때부터 송학리의 생각에 살려고 앞만 보고 달렸어요. 남편이랑 당시 연애 중이었는데, 여기 살아야 하니까 제가 결혼하자고 했어요.
일동 (웃음)
강정아 그래서 회창 씨는 굉장히 먼 거리의 출퇴근을 감수하면서 서울로 회사에 다니고 있죠. 괜히 내가 미안해지네. (웃음)
권회창 괜찮습니다. (송학리 생활에) 만족하고 있어요. (웃음)

 

집마다 가족들이 직접 붙인 이름이 있죠. 집 이름에 어떤 의미가 있나요?

강정아 집 이름을 ‘호연지가(好緣至家)’라고 지었어요. 한자 그대로 좋은 인연을 맺었으면 좋겠다는 의미로 지었죠.
김흥섭 저희는 ‘성윤당(星昀堂)’이라고 이름을 지었어요. 별 성 星 자에 빛날 윤 昀 자를 써서 별과 햇빛이 빛나는 집이라는 뜻입니다.
김소연 저희는 ‘더블류’에요. 저희 아이가 두 명이고 성이 류씨라 더블류로 집 이름을 지었어요.
박경은 저희 집은 ‘은빛 창’인데, 저녁에 은은하게 빛이 들어와서 그렇게 지었어요. 창으로 빛이 들어오는 게 너무 좋아서 ‘은빛 창’이에요.
이진옥 저희는 ‘훈운안옥 위드유’에요. 처음에는 네 식구여서 가족들 이름 한 글자씩을 따서 ‘훈운안옥’이라고 이름 붙였는데, 그러다 셋째가 태어나는 바람에 ‘위드 유’를 추가했어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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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송학리에 오시기 전에는 어떤 형태의 주택에서 살고 계셨어요?

권회창 저는 단독주택 빼고 다 살아봤고, 제일 오래 산 건 아파트였어요. 저는 작곡과 사운드 디자인하는 게 일이라, 집에서도 일할 때가 있어요. 특히나 프리랜서였을 때는 집에서 소리를 크게 틀고 오래 작업했는데, 아파트에서는 그렇게 하기 어렵죠. 저는 일을 하는 건데 남들 눈치를 봐야 하죠. 송학리로 온 뒤로는 눈치 안 보고 일할 수 있게 돼서 정말 좋아요.
김소연 저도 서울에서 아파트에서 살다 송학리로 왔어요. 아파트 사는 부모들은 다들 비슷한 경험이 있겠지만, 아래층 때문에 아이들에게 뛰지 말라고 자꾸 잔소리하게 돼요. 그리고 여름에는 다른 집 에어컨 실외기 돌아가는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서 잠을 잘 수가 없었어요. 송학리 오고 나서부터는 그런 일이 없어요. 아이들한테 잔소리할 일도 없고, 밤에 세탁기나 청소기를 돌려도 괜찮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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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옥 저희는 이전 집도 전원주택이었어요. 그전에는 아파트에 살았고요. 아파트에 살 때는 층간소음 때문에 신경이 엄청 예민해져서 잠을 잘 못 잤어요. 회사에서 일하고 돌아왔는데, 집에 와도 휴식이 안 되더라고요. 그리고 아이들에게 아파트보다 다양한 취향의 집들을 느끼게 해주고 싶다는 마음에서 7년 전에 양평에 왔어요. 양평에 처음 왔을 때는 산속으로 들어가서 집을 짓고 살았죠. 겨울이 되니까 언덕 때문에 아이들이 밖으로 놀러 가기 너무 힘들었어요. 아이들이 자전거도 타고 마을 밖도 나가고 싶어하는데, 위험하다고 제가 일일이 다 쫓아다닐 수도 없고. 송학리에 오니 경사도 적당해서 아이들이 놀아도 안심이 돼서 좋아요.
박경은 저도 마찬가지로 전원주택에 살았는데, 산 속에서 살았어요. 자연 속에서 사는 건 좋았는데 경사 때문에 겨울에 눈이 많이 오면 출근을 못 할 정도였어요. 그런데 송학리는 평지라서 겨울에 눈이 많이 오더라도 문제없이 마을 밖으로 나갈 수 있다는 게 좋아요.

ⓒBRIQUE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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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학리의 생각은 집의 전체적인 외형은 비슷하지만, 내부공간은 조금씩 다르죠. 집마다 마음에 드는 부분도 각각 다를 텐데 생각나는 대로 말씀해주신다면.

김흥섭 저희는 소장님들께 거실과 주방을 넓게 썼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렸어요. 그리고 미세먼지 때문에 마당에 빨래 너는 게 걱정돼서 세탁실을 넓게 만들어달라고 요청했고요. 1층에 제 개인 공간을 만들어달라고 요청해서 서재가 생겼는데, 코로나19 때문에 아이들이 원격 수업을 받다 보니 제 공간을 잃어버렸어요. (웃음) 그 외엔 거실의 꽤 높은 위치에 가로로 길게 창을 냈는데, 거실에 누워서 창을 통해 보는 가을 하늘이 참 아름다워서 만족스러워요.
강정아 저희는 주방과 거실을 분리했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렸어요. 식사할 때는 식사만 하고, 식사가 끝나면 거실로 건너가서 다른 일을 할 수 있도록요. 그리고 손님들이 외부에서 오더라도 가족들은 자기만의 생활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2층에 세탁실, 침실 등 가족을 위한 공간을 몰아서 1층과 분리해달라고 말씀드렸죠.
이진옥 우리 집은 안마당과 바깥마당이 나누어져 있어요. 안마당은 아늑하고 사적인 공간이고 바깥마당은 아이들과 강아지 ‘몽이’, 아이들의 친구들이 노는 곳이에요. 안마당에는 툇마루가 있어서 아이들과 강아지까지 올라와 앉아서 가족들이 함께하는 공간이죠. 바깥마당에는 ‘썬룸’처럼 따로 앉아서 놀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놨어요. 나중에 다른 업체를 따로 불러서 만들었는데, 바빠서 잘 가지는 못하고 쳐다보기만 해요. (웃음)
박경은 툇마루와 마당의 데크가 저희 부부가 가장 만족하는 부분 중 하나에요. 툇마루가 마당을 둘러싸고 있어서 집 안쪽 어디든 앉아 편히 쉴 수 있어요. 그리고 다른 집과 달리 마당에 잔디를 깔지 않고 ‘마사토’라는 흙으로 마무리했는데, 잡초가 적어서 만족하고 있어요. 

 

‘성윤당’의 거실과 주방 ⓒBRIQUE Magazine
거실과 분리된 ‘호연지가’의 주방 ⓒBRIQUE Magazine
‘훈운안옥 위드유’의 안마당 ⓒBRIQUE Magazine
‘은빛창’의 마당 ⓒBRIQUE Magazine

 

사는 지역과 집이 달라지면서, 삶에도 많은 변화가 있을 것 같습니다.

권회창 저는 잠에 예민해서 암막 커튼과 귀마개, 안대가 없으면 잠을 제대로 못 잤어요. 그런데 송학리에 오고 난 뒤로는 중간에 일어나지 않고 푹 자게 됐어요. 그리고 현관문을 열고 나가면 바로 바닥이라는 게 안정감을 느끼게 해줘요. 어딘가에 붕 떠 있지 않다는 그 느낌이 너무 좋아요.
김흥섭 주방과 거실에서 바로 마당이 보이니 저와 아내가 식사 준비하면서 아이들을 살펴보기 편해졌어요. 아이들은 친구들 노는 소리만 들리면 거실에서 바로 밖으로 뛰쳐나가고요. 나가서 돌아오지를 않으니 저희가 찾으러 다녀야 하죠. (웃음) 이사 오기 전보다 아이들이 게임을 하거나 유튜브를 보는 시간도 줄었어요.
김소연 요즘에는 내 집을 잘 팔아서 시세 차익을 실현하는 게 중요하잖아요. 매도하는 시점에 내 집의 가치가 정해지고요. 저는 송학리에 살고 난 뒤로 집을 돈으로 환산하는 마음이 없어졌어요. 사는 동안의 경험과 가치에 집중하죠. 공사를 하고 팔아서 세입자한테 몇천만 원을 더 받겠다는 생각은 안 해요.
최근 복직하니까 직장 동료들이 “거기 땅값 많이 올랐던데 그 집 팔았어요?” 이렇게 물어보는데, 전 그런 거 이야기하지
말라고 해요. 그게 제일 많이 달라진 점이에요.
강정아 아파트에 살 때는 불특정 다수가 함께 산다는 것 때문에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많았어요. 그런데 송학리의 생각에 살면서 달라졌어요. 송학리는 주방에서 식사하다보면 밖에 사람들이 지나가는 게 보여요. 밖에서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을 하거나 서로 대화하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보이고요. 송학리에 살면서 어느 순간부터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많이 줄었어요.
박경은 마을 앞에 바로 논이 있어서 계절의 변화를 바로 확인할 수 있는 것도 좋아요. 아이들이 저희보다 자연에 대해서 더 잘 알아요. 아이들이 저희한테 알려주기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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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아이들보다 확실히 자연에서 뛰노는 일에 익숙하겠네요.

김소연 얼마 전에는 가물치도 잡았어요. (웃음)
박경은 흙놀이 할 곳도 많아요. 요즘 아파트 놀이터에도 모래가 없다던데, 여기는 마을 구석에 흙으로 된 언덕이 있어서 거기서 다들 미친 듯이 뛰어놀아요. 그 와중에 자기들끼리 룰이 있는지, 킥보드는 나란히 주차해놓고 어린 아이들을 돌봐가면서 놀아요. 그러다 어두워지면 서서히 집으로 돌아가는 소리가 들려요. (웃음)
이진옥 어두워졌는데 우리집 애들이 안 돌아오면 단체 카톡방에 카톡 보내죠. 우리집 애들 본 사람 없냐고요.
강정아 ‘우리집 1번, 2번 봤나요? 3번 봤나요?’ 이렇게 물어봐요. (웃음) 그렇게 물어보면 꼭 누군가는 봐요. 아무도 못 볼 수는 없어요.
박경은 제가 지금 임신 중인데, 기대하는 것 중 하나가 아이가 태어나면 같이 놀 수 있는 친구들이 많은 거예요. 곧 태어날 저희 아이도 친구들과 자전거 타고 보드 타면서 신나게 놀 수 있겠죠.

 

마을 단위 생활이 처음이신 분들도 계신 것으로 알고 있어요. 마을에서 살아보니 어떠세요?

박경은 마을이 주는 안정감과 편안함이 가득하다는 게 정말 감사해요. 이웃들과 인사하고 안부 묻는 게 정감 가는 할머니 댁에 온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해줘요. 아이들도 처음 봤어도 환히 웃으며 인사해주고요. 시간이 건강하게 지나가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권회창 마을 생활이 처음인데, 아내도 저도 송학리의 생각을 선택한 게 잘한 일이라고 믿고 있어요.
강정아 이웃들과 시간을 약속하고 만나지 않지만, 자연스럽게 만나다 보니 가족처럼 편해졌어요. 아빠들은 아빠들끼리 모여서 축구 하러 가고, 엄마들은 엄마들끼리 따로 모여서 수다를 떨기도 해요. 시댁에서 농산물을 많이 받으면 단톡방에 이야기해서 남는 것들 가져가라고도 해요. 이렇게 뭐든 함께 나누는 일상이다 보니 육아도 조금 더 즐겁게 할 수 있게 됐어요.
마을의 학부모님들 중에 영어나 미술을 가르칠 수 있는 분들이 있어서, 마을의 아이들이 함께 수업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좋은 점이에요. 큰 틀의 공동육아라 할 수 있겠네요.

 

ⓒStudio Espacio
ⓒStudio Espacio

 

앞으로 시간이 많이 지난 뒤 마을의 모습도 궁금하네요. 아이들이 더 자란 뒤에도 송학리의 생각에서 계속 살 예정이신가요?

김흥섭 다른 곳으로 이사를 하겠다는 생각은 아직 없어요. 하지만 아이들이 크면 도시를 가고 싶어 할 거예요. 그래도 되도록 여기서 살고 싶어요.
강정아 맞아요. 누군가는 떠나더라도 누군가는 머물러 있으면 다시 돌아올 수 있잖아요.
이진옥 남편이랑 항상 이야기하는 게, 다시 아파트에는 못 살겠다고 해요. 되도록 여기서 지내려고 해요. 아이들이 나이가 들어도, 어린 시절을 보낸 집에 오고 싶을 때 올 수 있으면 좋겠어요.

 

이야기를 듣고 나니, 좋은 집이란 어떤 것인지 생각해보게 되네요. 어떤 집이 좋은 집일까요?

김흥섭 들어왔을 때 마음이 편해진다면 좋은 집 아닐까요? 집에 와서 제대로 쉴 수 없다면 집의 기능이 없는 거겠죠.
강정아 밖에서 상처받고 들어와도 쉬면서 재충전 할 수 있는 집이 좋은 집이라 생각해요.
김소연 생각하면 기분 좋고, 좋은 기억이 많이 남은 집이 좋은 집이라고 생각해요. 서울에서 퇴근할 때 기차 타고 오면 도시에서 농촌으로 풍경이 바뀌어요. 그걸 보면 저도 점점 기분이 좋아져요. 그런 느낌이 든다면 좋은 집 아닐까요?
이진옥 힘든 일이 있으면 쉬었다가 갈 수 있는 곳.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새로운 에너지를 만들어 줄 수 있는 집이 좋은 집이라고 생각해요.
권회창 휴식과 안정을 줄 수 있는 집이 좋은 집이라고 봐요. 구로디지털단지에서 퇴근해서 여기까지 오려면 서울역과 신도림역을 지나야 하는데, 두 곳 다 사람이 정말 많아요. 퇴근 시간의 복잡한 서울을 다 경험하고 양평역에 딱 내리면, 조용하고 어두워요. 그때부터 마음이 편안해지기 시작해요. 이런 느낌을 줄 수 있는 집이 좋은 집이겠죠.
박경은 세상으로부터 나를 방어해주는 곳, 내가 안락하다고 느끼는 곳이 집이라고 생각해요. 송학리의 생각은 마을로 들어오는 순간부터 제게 그런 느낌을 주는 곳이에요.

 

ⓒBRIQUE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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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학리의 생각’ 전체 이야기 담은 <브리크brique> 종이잡지 vol.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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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자세히 보기      https://magazine.brique.co/book/vol-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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