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사진. 호찌민 시티(베트남)=전종현, 이현준 도움. MM++ Architects
미카엘 샤뤼오(Michael Charruault)는 프랑스 파리에서 나고 자란 건축가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건축대학인 국립 파리-벨빌 고등 건축학교에서 수학한 후 베트남 출신의 건축가이자 부인인 미 안 팜 티(My An Pham Thi)와 함께 각자의 이니셜을 따 MM++ Architects를 개소한 게 2009년이니 호찌민 시티에서 아틀리에를 운영한 지 벌써 10년이 넘었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베트남 최대 도시에서 13년째 살고 있는 프랑스 출신 이방인은 자신의 또 다른 고향이라 칭할 만한 이곳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그는 이제 절반은 베트남 사람이라고 농을 쳤다.) 옛 사이공 시절부터 도시의 중심지였던 1구에 자리 잡은 사무실을 찾아 그에게 대화를 청했다. 자동차와 모터바이크 소리가 끊임없이 울려 퍼지는 대로변 낡은 건물에 도착해 생각지 못한 외부 통로를 따라 작은 사무실로 진입하는 과정은 그 자체로 호찌민 시티가 지닌 복잡다난함을 상징적으로 압축하고 있었다.
Interview
만나서 반갑다. 오는 데 아주 혼났다.
하하. 우리가 아주 작은 사무소라는 사실을 잘 몰랐던 것 같다.
베트남에 처음 온 게 2007년이라 들었다. 도시의 급격한 변화를 맨몸으로 느꼈겠다.
호찌민 시티는 최근 6~7년 동안 엄청난 속도로 가파르게 성장 중이다. 혹시 2군에 가봤나? 여기 1군이 구도심이라면 강 건너 2군은 비즈니스 중심지로 개발 중이다. 수많은 상업 빌딩과 쇼핑몰이 지어지고 있다. 방콕과 매우 유사하다고도 볼 수 있는데 지금 도시철도 공사가 한창이다. 여기 1군에서 시작해 2군을 지나 9군까지 직선으로 이어지는 도시철도는 지하철이 아니고 방콕 시내의 BTS처럼 지상철로 운영된다.
버스가 아닌 도시철도 류의 대중교통 인프라가 호찌민 시티에 생기는 건 이번이 처음이라 사람들이 매우 기대하고 있다. 근데 재정적인 문제 때문에 1년 전부터 공사가 잠시 중단됐다. 내년에 완공 예정이라지만 아무도 믿진 않는다.(웃음) 그래도 모두가 개통일을 손꼽아 기다리는 중이다. 호찌민 시티의 관문인 떤선녓 국제공항도 도시의 외곽으로 위치를 옮기려는 계획을 수립 중이다. 베트남 최대 규모의 공항인 만큼 시설이 이전하면 어마어마하게 거대한 부지가 공터로 바뀔 것이다. 곧 수많은 개발 여지가 생길 테지.
우리는 1군을 강 건너 마주 보는 4군에 숙소를 잡았다. 그곳도 개발 열풍인가?
1군과 운하로 연결된 4군은 프랑스 식민지 시절부터 시작한 오래된 상점. 창고, 작은 집들이 밀집한 지역이다. 내가 전문가가 아니라 정보가 많지 않지만 개발사들이 눈여겨보는 지역이라고 알고 있다. 시내와 가까워서 땅값도 비싸다. 사실 호찌민 시티의 개발 상황은 이해하기 복잡하다. 여기는 민간 개발사가 정말 많다. 해외에서 투자를 받아 그들이 개발을 주도적으로 진행하고 정부는 방관하는 편이다. 약간의 규제를 통해 민간 개발사가 얻은 수익을 걷고, 필요할 때 시민들을 보호하는 정도랄까. 그래서 공동 주택과 고급 주택 간에 불균형이 심하다. 2구 북쪽에 있는 타오디엔에 우리가 고급 주택을 지은 적이 있는데, 프랑스 국제 학교가 많아서 프랑스인이 밀집하다 보니 개발이 많이 됐다. 도심과도 가까워서 땅 가치가 무척 높기 때문에 거대한 개발사가 막대한 자본을 투입하는 지역이다.
호찌민 시티는 도시의 인구밀도가 굉장히 높다고 들었다.
도심 지역인 1군과 3군은 정말 빽빽하다. 이런 밀도 높은 곳에 산다는 건…마치 좁디 좁은 골목에 모두가 모여사는 것과 비슷하다. 서로가 촘촘히 붙어있어서 사람들 간의 상호작용이 매우 잘 이루어지는 데 장단점이 있다. 덥고 습한 날씨에 그런 곳에서 사는 건 힘들 수 있다. 통풍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베트남 전통 가옥처럼 개방적으로 집을 지으면 상황이 나아질 수도 있지만 이제 도심에서 사람들은 그런 집을 짓지 않는다. 점점 더 개인적이고, 폐쇄적으로 집을 짓는다.
듣기만 해도 숨 막히는 상황인데 사람들은 왜 도심을 떠나지 않는 걸까?
도심에 사는 사람은 얻을 수 있는 사회적 혜택과 기회가 많다. 무엇보다 거주민들의 자부심이 높다. 1군과 3군은 옛 사이공 시절부터 도시의 중심이었다. 사람들은 이 지역의 일원이 되는 걸 원하고, 그 유산을 물려받아 정체성을 이어가는 데 관심이 많다. 반면 4군 남쪽에 위치한 7군의 푸미흥은 딱 봐도 세계 어느 대도시에나 있을법한 지역이다. (참고로 푸미홍은 한국인과 일본인이 밀집한 타운이다.) 푸미흥이 나쁘다고 치부하는 건 아니다. 호찌민 시티 자체가 오래된 도시이다 보다 사람들이 그 역사의 일부가 된다는 사실에 즐거움을 얻는다. 비록 집은 아주 작지만 부동산 가격도 오르니 더 기쁠지도 모르겠다. (웃음)
도시를 돌아보니 주거 유형이 굉장히 다양하더라.
베트남에서 집 짓기는 일상적이다. 지금도 시골에서는 다들 각자 알아서 짓는다. 그런데 호찌민 시티는 조금 다르다. 옛 사이공 시절부터 대저택을 짓고 살던 상류층들은 지금도 똑같다. 오래된 프랑스식 단독 주택을 선호하는 모습은 오랫동안 바뀌지 않는다. 주거 양식의 다양성에는 중산층의 부상이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협소한 주거 시설보다 좀 더 안전하고 편안한 곳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아파트, 빌라, 레지던스 등의 공급이 늘어나고 있다. 또 다른 변수는 이주민이다. 돈을 벌기 위해, 직장을 찾기 위해 다양한 지역에서 이주한 사람들은 삶의 유지에 드는 비용을 최대한 아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돈이 없으니 집 짓기는 당연 엄두도 내지 못하고 열악한 주거 환경에서 버티는 수 밖에 없다.
모든 사람이 도시의 혜택을 동등하게 누리지 못하는 사회적 불평등은 호찌민 시티가 직면하는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다. 하지만 동남아의 다른 대도시와는 좀 다른 면이 있다. 예를 들어 인도네시아의 자카르타만 하더라도 부의 편차에 따른 모습이 극명하게 나타난다. 엄청나게 호화로운 럭셔리 콘도미니엄과 찢어지게 가난한 판자촌이 동시에 존재한다. 호찌민 시티는 그런 부의 대조가 좀 더 약하다. 사람들 간의 차별도 생각보다 덜하다. 롤스로이스를 타는 사람도 길거리에 쪼그리고 앉아 밥을 먹고 너저분한 마트에서 생필품을 구입한다. 이게 베트남 특유의 문화인지, 아니면 사회주의 체제의 특성인지는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 이런 모습이 좋다.
당신에게 호찌민 시티는 삶을 영위하기에 적당한 곳인가?
이미 10년을 넘게 여기에서 살았는데, 만약 싫었다면 이렇게 오래 지내지도 않았을 거다. 나는 파리에서 나고 자랐다. 내 보기에 파리는 박물관이라고 표현해도 과하지 않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고 정체되어 있다. 거의 움직이지 않는다. 반면 호찌민 시티의 공식적인 인구는 800만 명이라고 하지만 이미 실질적으로 1200~300만 명에 육박할 정도로 역동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사람들의 생활이 변하고, 삶이 이동하는 것 또한 도시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라고 믿는 입장에서 호찌민 시티가 개발되는 모습이 좋다. 도시란 이렇게 진화를 거듭해야 한다.
실주거자 입장에서 이건 정말 문제라고 생각되는 게 있나?
아까 말한 경제적 불평등이 첫 번째인데, 이건 전 세계적인 문제이기도 하니까… 내가 느끼는 호찌민의 다른 문제점은 기후 변화와 공기 오염이다. 이건 미래에 엄청난 문제가 될 거다. 지금 호찌민 시티는 1년에 1cm, 2cm씩 바닥으로 가라앉고 있다. 개발 과정에서 지하수를 퍼내자 지반의 밀도가 낮아지며 발생하는 참사다. 또한 건기에는 물이 부족하고, 우기에는 홍수 피해와 함께 태풍이 계속 들이닥친다. 1년에 20회 정도? 게다가 짠 바닷물이 메콩강으로 역류하면서 메콩강 삼각주 지역이 커다란 피해를 입고 있다. 그곳을 떠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데 결국 최종 목적지가 바로 호찌민 시티다. 공기 오염 문제도 점점 심각해져서 어떨 땐 중국과 비교해도 될 정도다.
급속한 도시화와 난개발에 대응하는 정부의 입장은 어떤가?
정부 정책에 대해서 잘 모르는지라 함부로 말하기 조심스럽긴 한데 개발이 엄청나게 빠르게 진행되던 예전보다 지금은 정부가 민간 개발사의 야망에서 시민과 도시를 보호하려 노력한다고 느낀다. 땅의 용도를 규제하거나 금융과 관련한 법을 만들기도 하고, 막무가내식 개발을 막기 위해 다양한 이해당사자와 신중한 협의를 거쳐 개발을 진행하도록 장려한다. 예를 들어 지금 이 자리에 새롭게 빌딩을 올리고 싶은 개발사가 있다면, 일단 우리를 비롯해 다른 입주자들과 단계를 밟아서 지분을 사들여야 하고, 정부와도 협의를 이끌어내야 한다. 또한 요즘 호찌민 시티를 개발하려면 정부에 큰돈을 내야 한다. 그래서 지금 이 도시를 예전처럼 날림으로 개발하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건축가가 호찌민 시티의 주거 환경을 개선하는 데 참여할 순 없나?
베트남에서 건축가의 역할은 거의 아무것도 아닌 거나 다름없다. 건축가는 소설가나 시인과도 같다. 작은 규모의 개인 작업을 할 순 있지만 사회에 영향을 미치거나, 흐름을 바꿀 만한 커다란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건축사무소 입장에서 고객은 거의 개인 단위고, 그들이 의뢰하는 건 단독주택이거나 혹은 고급 숙박시설이다. 즉, 사회적인 의미를 갖는 공동 주택 프로젝트는 전무하고, 또한 이런 프로젝트와 이어질 수 있는 구조가 마련되지 않았다. 개발사와 건축가를 연결하는 중재자가 없다. 그 어떤 대학이나 시민 단체도 나서지 않는다. 아마 존재는 하겠지만 뉴스와 신문에서 보이지 않으니 알 길이 없다. 공동 주택 프로젝트에는 그 성격에 맞는 개발사가 필요한데 그들은 더 큰돈을 벌 수 있는 기회에 투자하는 게 급선무다.
호찌민 시티에 녹지가 굉장히 부족하다는 통계 자료를 봤는데 선뜻 이해가 가질 않더라.
프랑스 식민지 시절에 존재했던 많은 녹지들이 지금은 다 없어졌다. 공원도 부족하고, 가로수도 부족하다. 지금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건 자기 집 발코니에 식물을 두는 일 정도다. 도시가 직면하는 환경 문제나 공기 오염에 비해 녹지량이 굉장히 적다. 호찌민 시티는 아주 밝고, 다채롭고, 활기차고, 유구한 역사의 켜가 쌓인 곳이지만 녹색 도시는 확실히 아니다. 그 누구도 녹지를 관리하지 않는다. 여기에는 녹음이 더 필요하다. 사람들도 점차 이런 사실을 인식하게 될 것이다. 식물은 시각적으로, 환경적으로 장점이 많다. 환기와 통풍을 용이하게 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심신의 안정을 찾도록 도와준다.
집에 녹음을 들여오는 대표적인 예가 VTN Architects라고 생각하는데, 당신 의견이 궁금하다.
VTN Architects를 이끄는 보 트롱 니아(Vo Trong Nghia)는 베트남에서 아무도 하지 않던 실험을 한 인물이다. 그의 그린 하우스 작업이 호찌민 시티라는 도시 자체를 바꾸지는 않지만, 집 안에 식물과 자연을 적극적으로 들여오는 행위는 분명 시민들의 인식과 생각에 변화를 가져온다. 더불어 그의 작업이 중요한 이유는 베트남 건축가로서 전 세계 건축계의 이목을 끌었다는 점이다. 1960년 대 이후 침잠해 있던 베트남 건축에 그가 다시 불을 지폈다. 젊은 베트남 건축가에게 영감을 주며 그들을 북돋은 덕분에 유럽과 미국, 한국 등 다양한 나라에서 베트남 건축을 주목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그린 아키텍처가 가진 스토리보다 어쩌면 더 중요한 지점이다. 베트남이 세계 건축 지도에 다시 출현하게 되었으니까.
서울은 1인당 녹지비율이 평균을 상회하지만 실제 주거 환경에서 느끼는 녹음은 상당히 부족하다. 호찌민 시티의 그린 아키텍처가 우리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서울의 거주 환경에서 녹음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까닭은 아마 공공녹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아파트에 식물이 없다고 해도, 집 밖으로 나와서 도시를 걷다 보면 계속 녹지를 마주하지 않나? 편하게 조깅하면서 늘 교감할 수 있는 녹음이 공공장소에 갖춰져 있는 건 굉장히 중요하다. 나는 사적인 녹음보다 공공녹지가 더 긍정적인 신호라고 본다. 호찌민 시티에서 사람들이 집 안에 녹음을 들이는 이유는 집 밖에서 공공녹지를 만날 수 없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소중한 가족들이 커다란 공원에서 쉬고, 밥 먹고, 운동하는 걸 바라지만 여건이 그렇지 못하다. 그래서 집에 작은 나무라도 들이는 거다.
그런 면에서 보 트롱 니아의 작업은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개발에 혈안이 된 사람들에게 ‘자연환경과 유대하지 않으면 어떤 결과를 맞이할 것인지, 그렇다면 더 늦기 전에 어떤 것이 필요한지 생각해보고 실천에 옮겨보자’는 강렬한 메시지 말이다. 결국 그린 아키텍처는 어떤 거대한 문제에 대한 해법이 아니다. 도시 사람 모두가 집 안에 녹음을 들여온다고 환경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환경 문제와 그린 아키텍처는 별개로 다뤄져야 한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