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엔 우리 집이 있다’…10년 거주 가능한 공동주택

에이라운드건축 박창현 소장이 제시하는 공동 주택의 청사진, ‘써드플레이스’
ⓒa round architects
에디터. 박종우  사진. 김주영, 이상훈  자료. 써드플레이스, 에이라운드 건축

 

‘서울엔 우리 집이 없다’라는 TV 프로그램이 화제다. 제목만 봐서는 사회적 이슈를 다룬 심각한 다큐멘터리일 것 같으나 실상은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꿈의 집을 찾아가는 예능 프로그램이다. 가수, 탤런트, 개그맨, 건축가까지 다양한 패널들이 나와 너도나도 집을 두고 한마디씩 거든다. 유쾌한 웃음을 주지만 그만큼 집은 누구에게나 소중하고 내 집 갖기는 전국민을 관통하는 사회적 화두임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프로그램이다.

수도권 주거난을 해소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가 이뤄지고 있는 가운데 새로운 개념의 공동주택이 등장해 눈길을 끈다. 서울형 공동체 주택 인증을 바탕으로 장기간 융자를 받아 민간이 짓고 운영하는 저층형 집합 주택이다. 10년을 거주할 수 있고 비용도 저렴하며 밀집도도 낮다. 무엇보다도 개별 세대의 독립성을 보장하면서도 공동주거에 필요한 공용공간과 커뮤니티를 갖춘 것이 특장점이다.

이같은 새로운 시도를 앞서 행하고 있는 이는 ‘신화리 주택’, ‘연암빌딩’, ‘유일주택’ 등 의뢰인의 라이프스타일과 요구를 독창적으로 재해석해 혁신적인 공간을 만들어 온 박창현 에이라운드 건축 소장. ‘써드플레이스Third place’라는 브랜드와 별도의 회사까지 설립해 건축 설계뿐 아니라 내부 프로그램 운영에도 직접 나섰다.

집도 사무실도 아닌 ‘제 3의 장소’라는 의미에서 붙인 이름 ‘써드플레이스’. 서울 전농동에서부터 시작해 서울 홍은동에 4곳의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파주 덕은리 공동주택도 설계를 시작했다. 지난 이십여 년간 수 많은 건축 프로젝트를 진두지휘해 온 박창현 소장이 새로운 회사까지 설립해 공동주택에 몰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또 그가 말하는 공동주택은 어떤 집일까.

에이라운드 건축, 아니 써드플레이스가 지금 벌이는 새로운 시도가 궁금해, 박창현 소장에게 질문을 던졌다.

 

써드플레이스 전농(유일주택) ⓒSanghoon Lee
써드플레이스 홍은 1 ⓒJooyoung Kim
써드플레이스 홍은 2 ⓒJooyoung Kim

 

에이라운드 건축은 이전에도 다가구, 다세대 주택을 설계해왔죠. 그럼에도 새로운 회사를 설립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에이라운드 건축이 하는 일과 써드플레이스가 하는 일이 다르기 때문이에요. 써드플레이스의 성격을 드러내기 위해서였죠. 에이라운드 건축은 주거 공간뿐 아니라 다양한 기능의 건물을 설계, 감리하는 건축사사무소입니다. 그에 비해 써드플레이스는 공동주택의 기획 및 관리 역할을 합니다. 특히 서울시 공동체 주택 인증*의 경험을 바탕으로 입주 후 운영까지 진행하고 있습니다.

*서울형 공동체 주택 인증제 공공성을 갖춘 공동체 주택 공급 활성화를 위해 서울시가 마련한 인증 제도. 인증제를 통과한 사업자를 대상으로 융자 지원을 시행한다.

 

써드플레이스는 다양한 주택 유형 중 왜 공동주택에 집중하나요?

그동안 에이라운드 건축에서 저층형 집합주택 설계를 진행하면서, 이웃 간의 관계와 주택이 동네에 미치는 역할에 대한 고민이 많았습니다. 오늘날 서울의 동네는 지역성이 사라지고 개인들이 과도한 프라이버시를 추구하다 보니, ‘이웃’이라는 개념이 대부분 사라졌다고 생각해요. 동네 기반의 상권도 필로티로 지어진 다가구, 다세대 주택으로 인해 1층 상점은 궤멸하다시피 바뀌었죠.

 

말씀하신대로, 건물 1층은 편의점 혹은 필로티로 인한 주차장이 대부분인 것이 요즘 서울의 현실이죠. 

도로는 자동차 중심으로 변화되어 동네를 걸어 연결할 지점들이 많이 사라지기도 했고요. 게다가 지금까지 저층형 집합주택 공급은 아무래도 입주자를 수입원으로 생각하고 무작위로 선별해, 옆집과의 관계가 폐쇄적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결과 요즘의 ‘이웃’은 복도에서 만나기 두렵고, 불편한 관계가 되었죠. 이러한 사회 문제들을 해결할 방법을 고민하다 저희만의 공동주택 모델이 만들어지게 되었습니다.

 

공동 주택, 공동체 주택, 공유 주거… 비슷하지만 다른 용어들인데요. 각각의 의미가 어떻게 다른지 설명 부탁드려요.

‘공동 주택’은 한 건물 안에서 여러 가구가 각각 독립적인 공간을 갖고 생활하도록 설계된 주택을 말해요. 각종 다세대 주택, 기숙사, 아파트 등이 여기 해당됩니다. 써드플레이스도 공동 주택이고요. ‘공동체 주택’은 공동생활공간을 가지고 거주자들이 공동체 활동을 하는 공동 주택을 의미합니다. 특히 서울시는 서울시 공동체주택 인증을 받은 공동주택을 공동체 주택이라 부르고 있어요. ‘공유 주거’는 법적인 분류는 아니고 공간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정해진 용어 입니다.

 

공용공간과 근린생활시설이 배치된 써드플레이스 홍은 2의 1층 투시도 ⓒa round architects
공용 주방 사용 컨셉 이미지 ⓒa round architects

 

에피소드 성수, 맹그로브, 셀립 순라 등 최근 몇 년 사이 다양한 공유 주거 브랜드들이 등장했습니다. 써드플레이스의 공동주택이 이들과 다른 점은 무엇인가요?

입주자들의 거주 기간을 최소 10년으로 보장한다는 점을 꼽을 수 있겠네요. 거주할 수 있는 긴 기간을 확보하는 것이 집에 대한 애정과 동네와의 연결을 위해 필수라고 봅니다. 얼마나 오래 거주할 수 있는지에 따라 함께 사는 사람들끼리 맺는 관계의 질이 달라진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크기에 상관없이 자신에게 맞는 자신만을 위한 집이 있다는 것도 큰 특징이죠.
예를 들어 써드플레이스 홍은 2는 한 건물에 5세대가 입주하는 방식으로 설계했는데, 각각 면적도 형태도 성격도 다릅니다. 사실상 독립된 주택들의 집합이라고 볼 수 있죠.

 

써드플레이스는 단순 설계만 담당하는 회사는 아닌 듯한데요, 설계 외에 어떤 일을 하고 있나요?

건물이 들어설 동네를 관찰하는 것부터 주거의 방향을 설정하고, 커뮤니티 내용을 기획 및 운영하는 일도 맡고 있어요. 입주자 모집과 선별, 그 외에도 입주자들이 잘 살도록 여러 방법으로 지원하고 있습니다. 건축주가 토지를 매입할 수 있도록 도와드리는 일도 하고 있어요. 보통은 대지가 있는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방식이 일반적이죠. 하지만 최근에 홍은동에 몇 개의 프로젝트가 진행되면서, 써드플레이스가 하는 일에 관심 있는 분들이 홍은동에 함께 사업자로 동참하는 경우도 생겼습니다.

 

써드플레이스 홍은 1, 2는 완공되었고 3, 4는 설계 진행 중이죠. 서울 홍은동에 공동주택을 4곳이나 설계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홍은동에서 건물 2개를 짓고 난 뒤 저희 취지와 결과에 공감한 사업자 몇 명이 저희를 찾아오셨어요. 그분들과 프로젝트를 계속 진행하기 위해 저희가 대지를 소개하고 서로 연대하다 보니 홍은동에 계속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기획 단계에서 동네 조사를 하면서 홍은동에서 ‘걸어 다닐 수 있는 동네’라는 특징이 보였어요. 실제로 홍은동은 서울 내 다른 동네들에 비해 도로의 체계나 방식이 자동차보다도 걸어 다니는 사람 위주로 계획되어 있어요. 평지에 위화감 없는 동네의 스케일에서 아주 좋은 동네라는 생각이 들었죠. 이러한 특징 덕분에 홍은동에서는 거주자를 위한 동네가 가능하겠다고 봤어요. 각각의 써드플레이스들은 걸어서 15분, 반경 450m 내외 영역에 모이도록 계획 중입니다. 각각의 써드플레이스는 서로 프로그램도 다르고 내용도 다르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각 건물이 그 위치에 맞는 역할을 담당하면서 동네를 변화시키고 연결할 생각입니다. 앞으로도 더 늘려나갈 생각이에요.

 

현재 설계 중인 써드플레이스 홍은 3 컨셉 스케치 ⓒa round architects
써드플레이스 홍은 3 입면 모형 ⓒa round architects

 

동네가 써드플레이스로 꽉 차겠네요. (웃음) 모두 서울시 공동체 주택 인증을 받았나요?

써드플레이스 홍은 1은 일반적인 다가구 주택이라 서울시 공동체 주택 인증을 받은 건물은 아니에요. 이후 만들어질 집들과 문화적 연대가 가능하겠다는 생각으로 ‘써드플레이스 홍은 1’으로 이름 붙였죠. 그래서 다른 건물과는 성격이 조금 달라요. 앞으로 지어질 써드플레이스 홍은은 모두 서울시 공동체 주택 인증을 받을 예정이고, 서로 더욱 적극적으로 연대해 나갈 예정입니다.

 

집마다 프로그램도 다르고 내용도 다르게 구성되어 있다고 하셨는데요. 그렇다면 공통점은 무엇인가요?

동네와의 연계를 고려해 필로티 구조보다는 1층에 커뮤니티 공간(라운지)과 근린생활시설을 꼭 넣어 계획한다는 점이 공통점입니다. 그리고 입주한 세대끼리 접점을 만들기 위해 다양한 크기의 외부화 되어 있는 공용 공간에 특히 신경을 많이 썼어요. 그 외에도 잃어버린 지역사회와의 관계를 복원하고 이웃과 함께하며, 쾌적한 생활을 위한 주거권을 확보할 방법을 다양하게 논의하고 제안하는 중입니다.

 

세대별 개인 화단과 공용 발코니, 정원 공간이 마련되어 있는 써드플레이스 홍은 2 ⓒa round architects
써드플레이스 홍은 2의 1층 컨셉 이미지 ⓒa round architects
써드플레이스 홍은 2 ⓒJooyoung Kim
써드플레이스 홍은 1 ⓒJooyoung Kim

 

‘커뮤니티’가 써드플레이스의 중요 키워드로 보입니다. 커뮤니티를 이끌어 내기 위해 고민이 많으셨을 것 같은데요.

‘커뮤니티’란 단순히 사람들이 모여 살면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상호 간에 관련성을 가져야 한다는 점이 이전 공동주택들과 다릅니다. 그런 관계성을 디자인하는 것이 몹시 어려워요. 어떤 공통의 관심사로 입주자를 선정할 것인지, 그들의 관계를 위해 지켜야 할 최소한의 내용은 어떻게 정할 것인지, 그런 관계를 지속하기 위해 어떤 방법을 취해야 할지, 세대를 이어주는 공용공간은 어떻게 설계할 것인지 등의 다양한 고민을 풀어나가고 있습니다.
결국 각 개인의 삶의 질은 혼자만이 아닌 동네의 소속감, 옆집과의 연대를 통한 안정감이 동반되어야 높아질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러한 질이 높아진다면 커뮤니티에 대한 연결은 자연스럽게 이루어 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입주자들의 반응이 궁금합니다. 사는 곳에 만족하나요?

서울시 공동체 주택 인증을 받은 집들은 서울시 지원 덕분에 거주 비용이 상당히 저렴합니다. 저렴한 비용에 비해 건물의 퀄리티와 삶의 질은 아주 높도록 고려해 설계했죠. 그 덕분인지 입주자들은 상당히 만족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특히 써드플레이스 홍은의 경우, 독립성도 보장되지만 다섯 세대끼리 관계가 좋아 어려울 때 도움을 요청하거나 함께 나누고 싶은 것이 있으면 언제든지 서로 소통하고 있다고 해요. 공동 주택에서 함께 산다는 소속감이 강해 건물을 주체적으로 사용하고 운영하고 있다는 후기를 들었습니다.

 

홍은동 외에도 파주 덕은리에도 써드플레이스 프로젝트를 설계하셨죠. 홍은동 프로젝트와 어떤 점이 다른가요?

써드플레이스 덕은은 저층형 집합주택(다가구주택)으로, 한 동당 6~8가구로 설계되었다는 점은 지난 써드플레이스 프로젝트와 유사합니다. 공용공간의 다양한 가능성을 생각하고 진행한 프로젝트라는 것도 공통점이죠. 차이점은 단지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도로 입구에 별도의 차단 시설이 있어 단지 개념이 강조되어 있고, 총 14동 총 93가구로 대규모 단지입니다. 위치가 도심이 아니기 때문에 한 가구에 해당하는 면적도 넓고 외부공간에 대한 풍성한 계획들이 되어 있습니다. 공용 조경, 그리고 집 사이의 간격을 넓게 계획하고 겹치지 않도록 세심히 고려했습니다.

써드플레이스 덕은 12동 다이어그램 ⓒa round architects
써드플레이스 덕은 모형 ⓒa round architects
ⓒa round architects

 

코로나 19로 인해 낯선 이들과 모여 사는 공동주택을 꺼리는 이들도 많아질 듯 싶습니다. 공동주택은 앞으로 어떻게 달라질까요?

코로나 19 이후 공동주택은 지금보다 훨씬 세분화되어야 하고 규모도 작아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잘 알지 못하는 많은 사람과 함께 무엇인가를 한다는 것 자체가 이제는 큰 부담이 될 수 있기 때문이죠. 더 작은 규모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재택근무도 설계 단계에서부터 고려해야 하겠죠. 그리고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을 집 내부로만 한정 짓지 않고 건물 외부를 적극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대신, 작은 라운지 등 별도의 공간들을 입주자들이 사용하도록 나눠준다면 지금 시대에 필요로 하는 공동주택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써드플레이스를 통해 앞으로 어떤 집을 짓고 싶으신가요?

단독주택이나 아파트에 살기 부담스러운 사람들을 위한 대안으로 1~2인을 위한 질 높은 저층형 집합주택이 앞으로 더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커뮤니티를 위한 10세대 이하의 건물이 기존 동네와 합쳐지면서 삶의 방식을 다시 한번 생각 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같이 살지만 단독주택 같은 집, 몸의 감각을 느낄 수 있는 집, 자연과 이웃의 중요성을 자각하게 하는 집을 기획하고 만들고 싶습니다.

 

ⓒJooyoung Kim
ⓒJooyoung Kim
ⓒJooyoung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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