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의 공장은 어디에 있는가

[스페이스 리그램] ② 왕빙의 '철서구(TieXi Qu)'
<자료=서울아트시네마>
글. 김은산  자료. 서울아트시네마

 

‘기억극장(아트북스, 2017)’,  ‘애완의 시대(문학동네, 2013)’, ‘비밀 많은 디자인씨(양철북, 2010)’  등을 통해 사회적인 분석과 미학적인 시선이 교차하는 영역에서 작업해온 김은산 작가가 ‘스페이스 리그램space regram’이라는 연재로 <브리크brique> 독자와 대화의 문을 엽니다. 인문학과 영상문화이론을 전공한 그는 인문서점 운영과 사회주택 기획, 지역 매체 창간 등을 통해 공간과 사람을 매개하는 일에 관심을 갖고 다양한 활동을 지속해 오고 있습니다. 한 컷의 사진을 매개로 도시인의 일상을 돌아보는 그의 독특한 시선을 통해 독자 여러분도 짧은 사색의 시간을 가져보시길 기대합니다. 

 

작년 3월 말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COVID-19가 확산된 지 두 달이 지나고 있었고,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생경한 단어가 일상 속으로 파고들고 있었다. 그날따라 봄기운에 햇살은 환했지만 아침부터 알 수 없는 한기가 느껴졌다. 오후가 되면서는 바람까지 심하게 불기 시작했다. 스산한 기운이 퇴근길 지하철로 향하는 걸음을 재촉하게 만들었다.

이수역 4호선과 7호선을 잇는 환승 통로를 지날 무렵이었다. 마스크를 눌러 쓴 채 양쪽으로 늘어선 좁은 무빙 워크를 따라 귀가를 서두르는 사람들의 행렬이 시야를 가득 채우며 다가오고 있었고, 지하철 안내 방송에서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권고하는 여성 역무원의 멘트가 울려 퍼졌다. 불현듯 지금까지와는 다른 시간대로 들어섰다는 느낌에 휩싸였다. 그 순간 나의 인식체계는 ‘21세기’와 ‘지금’이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연결 짓고 있었다. 밀레니엄이 시작된 지 20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21세기를 실감했던 것이다.

새로운 세기에 본격적으로 들어섰다는 느낌은 강렬하거나 뜨거운 무엇이 아니었다. 그 날 아침 느꼈던 한기처럼 서늘하고 차가웠다.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 안에서 며칠 전 본 한 편의 영화와 밀레니엄이 지난 지 얼마 되지 않던 해에 보았던 영화를 동시에 떠올렸다. 너무나 다른 성격의 두 영화는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세기의 대전환을 보여주고 있었다.

 

<자료=서울아트시네마>

 

그즈음 시네마테크에서 중국의 다큐멘터리 감독 왕빙王兵의 ‘철서구(TieXi Qu: THE WEST OF TRACKS)’를 봤다. 2003년 개봉된 이 영화는 중국 북동부 셴양시의 공업단지 톄시구의 몰락을 다룬 다큐멘터리다. 1934년 일제의 군수기지로 건설되어 해방 후 한때 100만 명이 넘는 노동자가 일하며 중국 근대화를 주도한 거대 공업단지 톄시구는 1990년대에 이르러 산업구조의 변화와 함께 쇠퇴하기 시작해 2000년대 초반 해체되기에 이른다. 공단과 함께 건설되어 공단 구석구석을 누비며 원자재와 완제품을 실어 나르고 전국의 철도 화물망과 연결되었던 철서화물철도 역시 쇠락을 함께 했다. 공장들이 폐쇄되면서 철로 주변에서 살아가던 사람들이 떠나자 마을은 황폐해졌고 도시는 쇠락했다.

1999년 왕빙은 철거 명령이 내려진 공업단지에 6mm 카메라 하나만을 가지고 들어가 2년 동안 노동자들과 함께 매일처럼 출근하며 저물어가는 20세기를 기록했다. 철서화물철도를 달리는 화물열차의 시선으로 철로 양쪽에 늘어선 공장과 도시의 풍경을 바라보며 시작된 영화는 철서구의 몰락과 세기가 교차하는 시간을 담으며 러닝 타임이 무려 9시간이 넘는 작품으로 완성되었다. 낡은 세상이 무너지는 과정을 보여주기 위해 그 정도의 시간은 할애해야 된다고 생각한 것일까. 하나의 도시와 도시의 성장과 몰락을 함께 한 사람들의 삶이 놓여있기 때문이리라.

영화에서 가장 흥미로운 장면은 선양제련소에서 일하는 남성 노동자들의 휴식 시간과 일과 후 휴게 공간에서 벌어지는 대화를 담은 롱 테이크 장면들이었다. 카메라는 하루 일과를 마치고 샤워실을 오가는 남성 노동자들의 탈의된 신체를 빈번하게 비춘다. 마치 그 신체를 다루고, 소모하면서 제련해낸 것이 당신들이 통과해온 20세기였다는 것을 웅변하듯. 녹슨 기계와 텅 비어가는 거대한 공장은 저물어가는 20세기에 대한 적절한 비유로 다가왔다.

 

<자료=서울아트시네마>

 

남성 노동자들은 휴식 시간에는 마작을 즐기고, 시시한 잡답을 나누며 어울린다. 공장은 노동의 장소이자 친교의 장소이기도 하다. 제련공장에서 별다른 보호 장치 없이 일하는 노동자들 대부분은 납중독 상태이며 일 년에 한 번씩 집단적으로 요양시설에 입원하여 납을 몸 밖으로 배출하는 주사를 맞으며 재활치료(?)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이를 대하는 노동자들의 태도는 사뭇 담담하고, 비관적이지 않다. 마치 소풍이나 야유회에 나선 듯 한가롭고, 여유롭기까지 하다. 그 모든 과정은 ‘집단적인’ 경험이며 그들 곁엔 ‘동료’가 있다.

왕빙은 20세기가 조직된 남성 노동자들의 주도한 노동의 세기였다는 기존의 서사에 별다른 논평을 하지 않는다. 다만 사라져가는 시간 앞에서 카메라를 들고, 다시는 보지 못할 시공간을 카메라에 담는다. 역사적인 순간을 대하는 그의 윤리는 ‘그 때 거기 있었다’는 사실에 충실한 것이며 그의 카메라엔 육체와 목소리, 장소만 남게 될 것이다.

영화가 끝나고 잔상으로 계속 남는 것은 노동자들 사이의 신체의 부대낌이었다. 집단적인 노동과 연결의 경험, 그것이 사회적인 연대로 나아가는 어떤 단서를 바로 주지는 않지만 적어도 20세기에 통용된 노동의 윤리와 낭만적인 해방의 서사의 재료가 되었던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그 중심에는 어떤 대단한 이념이 아니라 신체의 인접성이 자리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리두기’가 사회적 관계의 새로운 프로토콜로 등장한 시점에서 그 감각은 더욱 선명하게 다가왔다.

 

<자료=서울아트시네마>

 

COVID-19의 확산에서 가장 특징적인 점은 누가 아픈지, 어떻게 아픈지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신체는 숨겨졌고, 숨겨져야 한다. 바이러스로부터 자신의 신체를 보호하기 위해 우린 서로 멀어져야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바이러스의 전달자로서 서로의 존재의 막강한 영향력 앞에 속수무책으로 노출되어 있기도 하다. 이토록 서로 연결되어 있으면서, 이토록 서로 격리될 수밖에 없는 모순된 상황. 사회적 접촉의 박탈과 개개인의 고립된 영역이 확산될 때 어떤 사회적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을까.

물류센터와 고객센터 등 서비스 노동자들의 공간에서 벌어지는 집단감염 사태에서 드러나듯 현재의 상황은 보이지 않는 노동을 하는 노동자들의 취약성과 노동 조건의 열악함을 드러내는 역설적인 효과를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노동 조건과 신체는 사회적으로 가시화되지 않은 채 바이러스를 비롯한 각종 위험에 노출되지만 그 위험은 외떨어져(remote, ‘원격’의 본래적인 의미로서) 감당해야하는 상황이다. 영향의 무차별성과 책임과 보호의 고립성, 그것이야말로 21세기 노동의 조건인 것 같다. 철학자 주디스 버틀러Judith Butler의 지적처럼 바이러스는 차별이 없지만,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은 바이러스가 차별적이라는 점을 보여주고 있지 않나. 소비와 연결의 새로운 플랫폼으로 떠오른 물류센터와 고객센터야말로 ‘21세기의 공장’이며 21세기의 노동자는 ‘집단적으로’ 고립된 사람들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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