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축적을 담다

[Focus] 이솝 성수
ⓒBRIQUE Magazine
에디터. 정지연  사진. 최용준  자료. 이솝코리아

 

① 시간의 축적을 담다 – 이솝 성수
② 폐기와로 만든 바다 한가운데 – 이솝 부산
③ 활기찬 부력의 공간 – 이솝 제주
④ 이솝 스토어의 디자인 방법론


호주 멜버른에서 시작돼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 중인 ‘이솝Aesop’은 건강하고 균형 잡힌 삶을 위한 헤어 및 스킨케어 제품을 선보이는 브랜드다. 품질에 대한 확고한 철학을 바탕으로 감각적인 즐거움을 선사하는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해 온 이솝은 세계 20여 국에 사무실과 스토어를 운영하며 독자적인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구축해 가고 있다. 매장에 들어서면 은은하게 풍기는 특유의 아로마, 완곡한 곡선의 갈색 유리병 패키지, 비슷한 듯 다른 정교한 구성으로 방문하는 이들에게 재미와 만족감을 안기는 공간은 이솝을 이솝답게 만드는 요소들이다.

이솝의 스토어는 단순히 제품을 판매하는 공간이 아닌, 브랜드 철학을 온전히 녹여낸 곳이자 소비자와의 밀도 있는 소통을 염두에 둔 장소다. 서로 다른 스토어에서도 느껴지는 일관성은 공간과 서비스를 통해 구현한 브랜드 정체성 덕분이다. 이 공간 안에서 방문객들은 이솝이 지향하는 바를 몸소 체험할 수 있다. 예컨대 각 스토어에는 전문 지식을 갖춘 컨설턴트가 상세한 제품 소개와 상담 과정을 통해 고객이 적합한 제품을 선택할 수 있도록 돕는다. 그뿐 아니라, 온도, 조명, 향, 소리 등 내부 공간 요소는 세계 어느 이솝 스토어에서도 동일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조율했다.

 

©Aēsop

 

이솝 스토어에서 주목할 만한 또 다른 지점은 바로 지역성을 반영한 공간 디자인에 있다. 스토어마다 일관된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점은 변함없지만, 위치한 지역에 따라 다른 인상으로 존재한다. 이는 ‘모든 매장은 달라야 한다’는 이솝의 철학에서 비롯된 것이다. 각 지역의 특색을 살리는 방향으로 건축가, 아티스트와의 협업을 거쳐 탄생하는 ‘이솝 시그니처 스토어’는 저마다 다른 얼굴로 방문객을 맞는다.

한국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서울 한남동, 제주 탑동 등 여러 지역에 연이어 오픈한 시그니처 스토어는 각 지역의 맥락을 반영해 이솝 스토어의 가능성을 다채롭게 조명한다. ‘로컬’과 ‘지속가능성’을 키워드로 점차 확장해 가며 새로운 시도를 보여주는 글로벌 브랜드 이솝은 국내 공간 크리에이터들과 협업해 만든 차별화된 결과물로 브랜드 인지도를 더욱 공고히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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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 정신을 잇다
서울 성동구 성수동. 1960년대부터 신발 공장과 관련 협력 업체들이 이전하면서 도심형 산업단지 역할을 하다 가죽 원자재 유통과 수제화 장인들이 모여들면서 이 분야 집적 단지로 자리 잡았다.

그랬던 이곳이 요즘 한국에서 손꼽히는 핫플레이스로 변신했다. 도시인의 라이프스타일을 선도하는 여러 분야의 창작자들과 브랜드들이 앞다퉈 매장을 열고, 실험정신으로 공간과 지역을 바꿔내고 있기 때문이다.

작년 12월 오픈한 이솝의 한국 내 열두 번째 시그니처 스토어인 ‘이솝 성수Aesop Seongsu’는 성수동 변화의 심장부인 연무장길演武場路에 자리한다. 조선시대 무예를 수련하던 장소, 오랜 기간 땀 흘리며 기술을 닦아온 수제화 장인들이 모였던 이곳에 이솝이 들어선 것은 여러 의미를 내포한다. 고집스럽게 품질과 서비스를 혁신하고, 일관된 태도로 브랜드 정체성을 이어오며, 시간의 축적을 존중하는 이솝의 기업 철학과 맞닿아 있다.

오랜 공장 건물을 리노베이션 해 재탄생한 ‘이솝 성수’. 스킨케어 브랜드가 자리 잡기에는 어수선한 주변 환경, 벽돌과 시멘트 블록으로 외장을 마감한 좌우로 긴 건물 외형, 다소 이질적이지만 묘하게 이솝만의 아우라를 뿜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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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의 전통을 계승하다
이솝 성수는 우리나라 전통 한옥을 모티프motif로 삼아 공간을 디자인했다. 공간 설계는 이솝 인하우스 디자인팀이 맡았고, 한국의 시공 전문가들과 협업을 통해 완성했다. 이솝이 주목한 한옥의 장점은 건강한 아름다움이다. 오랫동안 지붕을 단단하게 지탱하는 대들보, 자연을 한껏 누릴 수 있는 중정, 내구성이 강한 소나무, 단열이 잘 되고 건강에 도움을 주는 황토 등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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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장 곳곳에 사용된 목재는 기존 건축물을 해체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을 재활용했다. 가구에 사용된 목재는 모두 소나무를 적용했다. 내벽과 바닥의 마감은 황토를 사용했다. 우리나라 전통적인 건축 기법을 잇고자 하는 뜻을 담았다는 게 이솝 측 설명이다.

출입문을 열고 들어서면 한눈에 들어오는 빈티지 벽시계는 매장이 자리한 성수동에 대한 또 다른 존중의 표현이다. 피혁과 인쇄 등 도심형 공장 지역으로 오랜 시간을 지내온 성수동의 과거를 담고, 새로운 문화의 흐름을 주도하는 현재와 지속 가능한 라이프스타일을 선도할 미래를 담은 상징적 오브제다. 이솝의 캠페인을 알리는 아날로그 형식의 포스터도 폐기하지 않고 겹겹이 쌓을 수 있는 소재를 적용해 시간을 누적하는 아카이브로 삼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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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절을 느끼고 누리다
태양의 움직임과 계절의 변화를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중정은 이솝 성수의 가장 큰 매력 포인트다. 국내 조경 디자이너와 협업해 토종 식물과 식용 식물을 가득 심었다. 그중에는 이솝 제품의 성분으로 사용되는 식물도 있다. 계절에 따라 여러 모습으로 변모하는 것을 감상할 수도 있고, 비와 눈이 내리는 자연의 소리도 즐길 수 있다. 날씨가 좋으면 이 고요한 공간에서 자연을 한껏 누리며 이솝 컨설턴트들과 함께 색다르게 제품을 체험해 볼 수 있다.

이솝 성수의 또 다른 장점은 자연 채광이다. 남향인 단층 건물이 연무장길에 맞닿아 있고, 주위에 높은 건물로 에둘러 있지 않아 이 스토어에서는 해가 뜨고 지는 길을 알 수 있다. 전면 통유리와 천창에서 내리쬐는 햇볕은 도시 한가운데에서 누리기 어려운 자연과의 교감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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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가능성을 모색하다
이솝 성수는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을 지향하는 이솝의 브랜드 철학을 보다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매장으로 운영될 예정이다. 현재 이솝 성수에는 빗물 재활용 시스템, 자전거 보관소 등 환경을 생각한 다양한 요소가 곳곳에 적용돼 있다. 이솝은 이외에도 지속가능성을 위한 다양한 실천방안을 구상 중이며, 지역 파트너들과 협력하는 프로그램 등을 계획하고 있다. 오랜 시간에 대한 존중과 꿋꿋하게 품질을 높이고 서비스를 혁신해 가는 정신이야말로 지속 가능한 기업과 브랜드를 만드는 방법임을, 이솝은 알고 있다.

 

이솝, 평범함 속에 담긴 비범함 

글. 임태희(공간디자이너, 임태희디자인스튜디오 대표)

 

평범한 것과 특별한 것. 내게는 이 둘 사이를 가르는 나름의 구분법이 있다. 확고한 신념, 명석한 표현법, 단호한 어조, 이 세가지이다. 특별한 것을 특이하고 상이한 것에만 규정하지 않으며, 지극히 일상적이고 평범해 보이더라도 비범한 가치를 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를 가장 잘 녹여낸 브랜드를 꼽으라면 나는 서슴없이 이솝을 예로 든다.

2015년 전시 프로젝트를 위해 파리에서 한 달을 체류한 적이 있다. 생토노레라고 하는 멋진 거리를 매일 걸어서 출근하였는데, 이 길의 끝에는 이솝의 스토어가 있었다. 이 출근길에는 나만의 의식이 있었는데, 아직 오픈하지 않은 이솝 스토어의 창가에 붙어서서 천천히 공간을 둘러보며 나도 이런 특별함이 있는 공간을 디자인하기를 바라곤 했다. 한눈에 파악될 정도로 작은 공간이었지만 새로운 도전과 확고한 신념이 만들어 내는 단호한 어조가 좋았다.

공간 디자인을 업으로 삼은 사람으로서, 이솝이 내게 주는 영감은 도전과 관용의 정신이다. 이솝은 많은 로컬 디자이너와 협업해 각기 다른 공간을 만들어 내고 고객에게 새로운 경험을 전달한다. ‘확고한 가치관은 표현의 자유를 만들어간다’. 이솝을 보며 든 생각이다. 새로움에 대한 실험과 변치 않는 가치관, 이 둘이 만들어내는 공간의 변주는 매번 내게 놀라움을 선사한다. 어느 나라, 어느 도시를 가더라도 이솝 스토어에 들르는 이유는 그 장소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이야기가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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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솝 성수’는 성수동이라고 하는 한국의 트렌드 중심지에서 거대한 유행의 파도에 굽히지 않는 이솝의 단호한 디자인 철학을 다시금 보여준다. 도시의 골목길 한가운데, 준공업지역이라는 지역적 특징을 고려해서인지 이솝 성수의 외관은 시멘트 벽돌을 나지막하게 쌓은 별다를 것 없는 단층짜리 건물로 표현됐다. 드러내고 싶은 욕구를 절제하고, 주변과의 조화를 이루고자 하는 의도로 보인다.

반면에 내부는 이솝 인하우스 디자인팀의 진지한 탐구심으로 한국적인 표현에 대한 다양한 시도를 담았다.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우리나라 자연에 대한 생각이 공간 속에 잘 표현되어 있는 점이었다. 원래의 공간이 어떠하였는지는 모르겠으나, 작은 중정을 둘러싸고 공간이 배치되어 있는 모습은 마당을 둘러싼 한옥의 배치를 연상하게 했다. 천창에서 들어온 빛이 양의 기운으로 공간을 밝게 만들고, 계절에 따라 다채롭게 변화하는 작은 중정은 봄은 봄대로, 여름은 여름대로 그 풍요로움을 전해주는 공간이 될 것이다. 날씨가 좋은 날, 바람을 느끼며 이솝의 향기를 경험하러 다시 오고 싶은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오랜 시간, 변하지 않는 가치를 제품에 담아내는 이솝의 기업 철학이 ‘이솝 성수’의 공간에도 잘 드러나 있었다. 이솝의 확고한 디자인 철학이 한국 디자이너와의 협주로 이어져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아름다운 매장이 더 많이 만들어지길 기대해본다.

 


위치.
서울시 성동구 연무장길 57

운영 시간.
11:00~21:00

홈페이지.
www.aesop.com/kr

SNS.
@aesopskincare

 

‹브리크brique›는 2022년 우리나라 고객들의 발걸음을 모을 이솝의 주요 매장과 공간 디자인 전략을 네 차례에 걸쳐 소개할 예정입니다. 이솝의 브랜드 철학과 기업 가치에 대한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 공간과 브랜딩 전략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도움이 되길 기대합니다. 이 연재 기사는 이솝과의 파트너십으로 진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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