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에 떠 있는 대지가 의미하는 것

[Interview] EMK Musical Company
에디터. 박지일  사진. 여인우, 윤현기  자료. 디베르카 건축사사무소 D-Werker Architects

 

부부인 이지은, 윤훤 두 명의 건축가가 운영하는 디베르카 건축사사무소는 콘크리트를 활용한 조형적인 건축으로 선명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사옥들을 다수 설계했다. 도시의 일상적인 풍경과 대별되는 건축적 형태를 취함으로써 건축물, 나아가서 기업의 아이덴티티를 확보하기 위한 그들의 건축 전략은 이전의 카버 글로벌 사옥(2016), 유니시티(2017)에 이어 이번 ‘EMK MUSICAL COMPANY’ 사옥에서도 닮은 듯 다르게 그 연속성을 이어간다.

 

이지은, 윤훤 디베르카 건축사사무소 대표 ©BRIQUE Magazine

 

넓은 도로변과 경사지라는 지리적 특성 때문인지 강한 조형성 때문인지 건물이 무척 도드라져 보여요.

대지는 강남의 주요 도로 두 곳이 교차하는 사거리에 위치해요. 경사가 있어 동서남북 어느 방향에서도 살짝 올려다봐야 하는 곳이죠. 각각의 방향에서 건물을 바라볼 때 다양한 도시 경관이 만들어졌으면 하는 의도였어요. 건물 자체가 뮤지컬 회사인 기업의 아이덴티티가 되었으면 했죠. 재미있는 것은 보통 메인 도로를 끼고 있는 사거리는 상업시설이 위치하기에 더없이 좋은 입지 조건이지만, 이곳에 위치했던 대부분의 상업시설은 오래 버티지 못했다는 거예요. 좋은 사이트와 약간은 좋지 않은 기운, 문화예술 기업의 사옥이라는 기대감, 넓지 않은 면적에 대한 걱정 등 여러 지점에 있어 저희 입장에서는 참 흥미로운 작업이었던 것 같아요.

 

뮤지컬 기업의 사옥이라는 점이 특색일 수 있겠네요. 건축주는 어떤 건물을 의뢰했나요?

건축주는 자수성가한 사업가예요. 오래전 단돈 몇천 원을 들고 상경해 지금의 사옥 건너편 주유소에서 아르바이트하며 언젠가 이 주변에 땅을 매입해 건물을 짓겠다는 포부와 그 외 수많은 고난 이야기를 저희에게 들려주었죠. 어느덧 건축주의 사업이 번창하고, 때마침 지금의 부지가 매물로 나오면서 현재의 건축물이 탄생할 수 있었어요. 건물을 상하부로 나누어 하부의 일부는 임대 공간으로 사용하고, 상부는 사옥의 기능에 충실한 건물을 요청했죠.

 

ⓒInwoo Yeo

 

프로그램적으로는 어떤 요구가 있었나요?

우선됐던 건 큰 규모의 지하 연습실이었어요. 뮤지컬 관련 산업은 우리나라에서는 비교적 신흥산업이지만 최근 10년간 붐이 일어나면서 엄청난 호황을 누리고 있죠. 그런데 역설적으로 업계 종사자들의 처우는 무척이나 열악하고 제대로 된 연습을 할 수 있는 공간도 많이 부족하다고 해요. 그런 의미에서 건축주는 좋은 환경을 갖춘 연습실의 필요성을 강조했어요. 연습실의 면적을 최대한 확보해야 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다른 공간의 손해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죠. ‘공중에 떠 있는 대지’ 콘셉트는 그 과정에서 나온 나름의 해결 방안이었어요.

 

ⓒInwoo Yeo
ⓒInwoo Yeo

 

‘공중에 떠 있는 대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요?

보통의 오피스라면 1층을 제외하고는 외부와 마주하는 일이 거의 없어요. 해당 사옥의 1층은 배우들을 찾는 팬들과 임대 시설 방문객의 출입이 잦을 것으로 예상되었죠. 직원들 입장에서는 업무를 위한 사옥에서 지속적으로 불특정 다수와 만날 수밖에 없게 되는 단점이 있었던 거예요. 그래서 업무 시설은 상부층인 5층에 배치하고 하부층은 공공에 개방하는 열린 공간으로 디자인했어요. 업무 시설은 지하 연습실과 함께 볼륨이 가장 큰 공간인데요. 볼륨의 상단은 각각 독립적인 외부 공간을 갖도록 했죠. 이러한 외부 공간이 5층에 있는 직원들에게 1층처럼 기능할 수 있도록 계획한 것이 핵심이었습니다.

 

ⓒInwoo Yeo
ⓒInwoo Yeo

 

공간의 배치, 클라이언트와 임원들, 사용하는 직원들 등 여러 의견을 조율하는 과정이 쉽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대규모 연습실과 건물의 코어, 임대 시설 등을 제외하면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은 많지 않았어요. 초기에는 소규모 공연장을 비롯해 계단에서 공연을 볼 수 있는 프로그램 같은 것도 계획했는데, 업무 공간에 비중을 두면서 축소하게 된 부분이 있죠. 사옥의 경우 클라이언트가 한 명이 아닐 때가 많아요. 주택을 예로 들자면 부부와 아이의 요구가 각각 다르듯, 사옥은 대표와 임원, 직원 등 구성원에 따라 고려해야 할 조건이 다양하니까요. 그 점을 조율하는 과정이 쉽지는 않았어요.

 

조형성이 강한 건축물은 호불호가 많이 갈리곤 하죠. 건축주를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했나요?

특별히 그럴 필요는 없었어요. 통계적으로 저희 사무소에 작업을 의뢰하는 건축주들은 저희 성향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찾아오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이번 건축주 역시 마찬가지였고요. 본격적으로 설계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전 작업인 ‘유니시티’ 위주로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했는데, 재료나 형태적인 부분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더군요.

 

이지은 디베르카 건축사사무소 소장 ©BRIQUE Magazine

 

‘유니시티’, ‘카버 글로벌’ 사옥 등의 프로젝트에서는 건물을 통해 기업의 정성이나 성장을 향한 이미지를 표현하고자 했죠. 이번 프로젝트에는 어떤 의도가 담겨 있나요?

특정한 형태를 만든다기보다는 방법론에 대한 이야기가 될 것 같아요. 건축주와 소통하는 과정에서 도면이나 문서로 의견을 교환하는 것보다 꾸준히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선호하는데요. 대화를 통해 건축주가 본질적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이런 과정이 수월하게 이루어지면 서로가 추구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명확히 이해하게 되고, 거기에 맞춘 디자인이 가능해지죠. 전통적인 산업 모델이 아닌, EMK 그룹처럼 독특한 산업 분야에서 성장해가는 유형이라면 기업의 얼굴에 해당하는 건축물에 긍정적인 이미지를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무소 개소 이후로 콘크리트를 활용한 조형적인 건축을 꾸준히 보여주고 있어요. 디베르카만의 스타일이라고 해야 할까요?

반드시 콘크리트만 사용하는 건 아니에요. 이전 주택 프로젝트인 ‘사이먼 하우스’는 벽돌을 활용하기도 했고, 계획 중인 새로운 프로젝트에서도 콘크리트를 강조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언급한 대로 저희를 찾아오는 건축주들이 주로 콘크리트의 묵직한 형태와 조형을 선호하는 것 같아요.

 

카버 글로벌(2016) ⓒInwoo Yeo
유니시티(2017) ⓒInwoo Yeo
사이먼 하우스(2021) ⓒInwoo Yeo

 

이번 사옥 프로젝트에서 아쉬운 점도 있나요?

모든 프로젝트는 끝나게 되면 항상 아쉬운 부분이 생기기 마련인 것 같아요. 이번 프로젝트에서는 뮤지컬 회사의 사옥이라는 점을 건축, 공간적으로 충분히 녹여내지 못했던 것 같아요. 초기에 계획했던 소규모 야외 공연장이나 상부의 계단 등은 업무 공간의 중요성 때문에 없어지게 된 부분들이거든요. 회사의 상징 같은 무대 장치를 건물에 반영하고 싶었지만, 그 또한 생각처럼 되지는 않았고요. 다만 건물 자체가 너무 좋아서 예상했던 공간들이 없어졌어도 아쉽지 않다는 건축주의 말은 그나마 위로가 되었죠.

 

윤훤 디베르카 건축사사무소 소장 ©BRIQUE Magazine

 

마지막으로, 건물이 앞으로 어떻게 사용되길 바라나요?

사회, 문화적 측면에서 지역 사회와 소통하는 건물이 되었으면 해요. 건물의 1~3층을 관통하는 계단은 공공에 개방해 사람들이 앉거나 쉴 수 있는 공간이 되고, 때로 소규모 공연을 관람하는 객석이 되기도 하고요. 도시 경관에도 신선한 변화를 주는 존재이면서도, EMK의 성장을 상징할 수 있는 건물이 되길 바랍니다.

 

ⓒInwoo Yeo
ⓒInwoo Yeo
©BRIQUE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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