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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쉼의 공간

풍류와 낭만의 가치를 담다
ⓒTaxu Lee
글. 김영수  사진. 이택수

 

쉼의 공간

우리가 찾는 쉼의 공간은 무엇인가? 현시대의 주거는 실용적이고 편리한 쉼의 공간인 것은 분명하지만 우리는 또 다른 쉼을 위한 공간을 찾고 있다. 본질적 주거의 역할로서 건축 공간은 다른 가치 이전에 몸과 마음의 쉼의 영역을 다루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많은 주거공간들이 건축의 상업적 가치로서 물리적 공간만으로 계획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시대의 빠른 변화 속에서도 우리가 원하는 공간의 본질은 크게 다르지 않으며 우리가 느끼는 감성 또한 다르지 않다.

꽃 피는 산골 초가삼간(草家三間) 집을 짓고 천년만년 살고자 했던 우리 부모의 소박한 정서는 진정한 쉼의 시작일 지도 모른다. 한국의 풍토에 물들어 오랜 세월 살아온 우리는 주름 많은 대지 위에 사계절의 자연을 즐기며 집을 짓고 쉼을 갖고자 한 것이다. 그 쉼은 큰 집도, 많은 방도, 단열 좋은 집도 아니다. 오랜 부모들의 소박한 바람은 아직 현시대에 우리에게도 갈급한 쉼의 공간의 본질일 것이다. 그 쉼은 어쩌면 무용한 것에서 드러나는 풍류나 낭만은 아닐까?

 

ⓒTaxu Lee

 

풍류 그리고 낭만

현시대의 건축 공간은 추운 풍류를 논하기도 불편한 낭만 따위를 찾기도 힘들다. 보편적 건축으로서 대표적인 주거(아파트)는 금덩어리와 같이 시세를 좇는 상업적 수단이 되었고 그 속에 공간은 인큐베이터와 같이 안락한 면적(㎡)*만 남겨 놓았다. 이 같은 공간은 우리에게 보편적인 삶의 기준이 되었고, 그 공간의 주요한 가치는 면적(㎡)으로, 방의 개수로, 쉽게 정의되는 것이 이 시대적 주거 건축일지 모른다. 

서양의 기술과 사고의 바탕 아래 물리적 공급으로서 시작된 획일화된 주거공간은 이제 우리에게 ‘편리함’의 상징적 공간이 되어 버렸다. ‘편리함’의 경험은 빠르게 공간에 대한 ‘익숙함’으로 변해 갔고 그러한 주거는 우리에게 ‘보편화된 건축’이 된다. 이제는 ‘보편화된 건축’이 우리 일상의 삶의 의미로서 가치를 논하기보다는 기능에 충실한 익숙한 공간으로서 고민 없이 받아들이며 쉽게 적응되고 학습되어 가는 듯하다. 결국 주거 공간을 풍미한 ‘보편화된 건축’이란 편리할 수 있겠으나 좋은 공간이라 말할 수 있을까? 지난 시대 서양적 사고의 공간에 어느덧 현시대 우리의 일상을 끼워 맞추어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그 속에서 진정한 쉼을 잃어버린 것은 아닌가 고민해 보아야 한다.

건축공간이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와 발전이 없는 것도 아니며 현대 주거의 안락함, 편리함을 부정하거나 그 기능과 역할을 비하하자는 것도 아니나 현시대 건축의 방향은 점점 더 면적(㎡)과 실용성(에너지, 기능)이라는 유용한 대의를 위한 가치를 논할 뿐 공간 속 무용한 가치에 대하여 그리 의미를 두지 않는다. 건축가들의 감각적 작업은 있겠으나 그렇다고 철저히 고민되거나 설명되는 것도 아닌 듯하다.


*면적(㎡) 공간의 이차원적인 해석


 

ⓒTaxu Lee
ⓒTaxu Lee

 

무용한 것의 가치

어린 기억을 돌아보면 툇마루에 앉아 처마끝 떨어지는 빗방울을 바라보는 것이 좋았다. 그 좁은 마당은 나에게 계절이 담기던 설레는 공간이었고 때때로 묘한 빛을 채우던 한지창 방은 나를 평온케 했다. 어느 교회의 힘겨운 문을 열고 들어간 어둠 속 공간과 천창의 빛은 그리고 그 빛으로 인한 질감은 나를 숭고함으로 이끌었다.

꽉 채운 용적률도, 135mm 가등급 단열재의 위력도 중요하지만 때론 일상 속에 빛이, 한날의 빗소리가, 어느 공간의 울림이 삶에 더 중요한 것이리라. 현대의 가치 기준에서는 불편한 처마의 빗방울도, 무거운 문도, 추운 툇마루도, 많은 건축 속 풍류들은 실용성의 판단 아래 대부분 사라진다. 처음부터 의미 없는 요소일 수도 있으나 누군가에게는 순간순간 느껴지는 공간의 기억이 된다. 현시대의 건축 속에 살아지는 무용한 가치는 오랜 시간 우리에게 깃든 동양적 감성의 일부들은 아닌지 모르겠다.

건축은 유용한 것과 무용한 것의 조화에 있을 것이다. 아직 우리 시대의 건축은 대부분 이론이나 유용한 것에 치중되어 평가되고 있다. 분명 건축의 규제는 유용한 것에 기준을 둘 수밖에 없다 하나 다른 무용한 가치에 대한 논의는 다른 형식으로 설명되고 공유 되어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그것을 찾고 설명하는데 소홀하고 나태하지는 않은가?

르 코르뷔지에도 ‘롱샹’과 ‘작은 집(어머니의 집)’ 속에선 현대 건축의 유용한 이론보다 무용한 것에 더 집중했으리라. 근대건축의 5원칙만큼 ‘작은 집’에 설계된 호수를 바라보는 고양이의 테라스가 나에겐 아름다운 쉼이다.

 

ⓒTaxu Lee
ⓒTaxu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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