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공동체를 위한 공간 설계

공용 vs 공유, 공동 주택 vs 공동체 주택
ⓒBRIQUE Magazine
글. 김태영 한국종합예술대학 건축학과 교수, 어반토폴로지 책임건축가 

 

“개별 세대의 독립적 거주를 위한 공동주택의 공용공간과 달리, 공동체주택의 커뮤니티 공간은 근본적으로 공유에 기반한다.”

 

공용과 공동주택

우리나라의 주택법에 따르면, 공동주택은 ‘하나의 건축물의 벽, 복도, 계단, 그 밖의 설비의 전부 또는 일부를 여러 세대가 공동으로 사용하면서 각 세대마다 독립된 생활이 가능한 구조로 된 주택’을 말한다. 즉, 한정된 대지와 규모 안에서 벽, 복도, 계단, 설비 등의 ‘공용’ 공간을 공유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설비의 일부처럼 세대 내 공간에 위치하지만 아래층과 위층의 세대가 연결될 때 작동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세대 간 벽체처럼 세대가 서로 공유하며 비용을 절감하도록 돕는 선택적인 요소도 있다. 복도나 계단은 모든 세대가 지분을 갖고 소유하지만 지분을 토대로 배타적인 사용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점에서 공공 주택에 공공성을 부여한다. 이렇게 공공 주택의 공용공간은 여러 세대가 공동체로서 살아가는 방법을 실천하는 공간이면서, 동시에 개별 세대의 독립적인 거주를 담보하는 최소한의 요소로 간주된다.

 

공유와 공동체 주택

서울시의 경우, 공동체 주택은 ‘독립된 커뮤니티 공간을 설치한 주거공간으로, 공동체 규약을 마련해 입주자 간 소통·교류와 생활문제를 해결하거나 공동체 활동을 함께하는 새로운 형태의 주택’의 정의를 갖는다. 때문에 공동체 주택에는 공동체의 구성 및 조직에 대한 정의와 공동체가 추구하는 가치, 그리고 그 실천 방안에 대한 정의가 선행되어야 한다. 독립된 커뮤니티 공간과 공동체 규약은 이를 지속하기 위한 장치라 할 수 있다. 결국 공동주택의 공용공간이 개별 세대의 독립적 거주를 가능케한다면, 공동체 주택의 커뮤니티 공간은 근본적으로 공유에 뿌리를 두고 있다.

 

‘공간 공유하기’의 장단점

공유를 사전적 의미로 해석하면 두 사람 이상이 무엇인가를 공동으로 갖는 것이다. 공간을 공유하는 행위는 주어진 자원이 한정적이라는 전제하에 개인(또는 개별 세대)에게 배분되는 공간을 줄이고 부가적으로 얻는 여분의 공간을 함께 소유하고 합치된 목적을 위해 공동으로 사용하며 관리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통해 기존에 존재하던 개별 공간에서 수용할 수 없었던 가치를 공간에 더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공유 오피스는 임대공간을 ‘실’ 단위에서 ‘책상’ 단위로 줄이고 주방과 거실, 각종 지원시설, 여가 공간을 추가적으로 마련함으로써 전체 공간을 더욱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이런 시도는 공간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일하는 방식과 작업 환경의 쇄신까지 기대할 수 있다. 공유 주택에서는 육아, 식생활, 교육, 여가, 노후 등 특정 목적에 필요한 공간을 공유해 혼자 해결하기 힘든 문제를 함께 풀며 공동의 가치를 실천한다. 반면 기존에는 사적 공간 안에서 이루어지던 개별 활동이 노출되어 프라이버시 문제가 발생하거나, 개인 고유의 정체성이 공동체의 정체성에 밀려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반대급부도 존재한다.
사실 현대 도시인의 삶은 사적 공간과 커뮤니티 공간이라는 이분법적 경계로 나누기에는 과거보다 훨씬 복잡하고 복합적으로 변하고 있다. 옛 시골 마을에서 통용되던 공유의 개념이 개인의 삶보다 공동체의 가치를 우선시하며 이루어졌다면, 오늘날 다양한 분야에서 출현하는 공유는 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개인의 자유와 창의성, 익명성을 여러 단계로 분화하며 복합성을 수용하는 방식으로 제 스케일을 확장하고 있다.

 

ⓒMAGAZINE BRIQUE

 

공유와 은혜공동체주택

은혜공동체는 한 명의 리더와 80여 명의 구성원들로 이루어져 있다. 은혜공동체주택 1호(이하 은공 1호집)에는 혈연으로 이어진 13개의 가족을 포함한 총 48명의 공동체 사람들이 4개의 사회적 가족 또는 연합 가족의 개념인 ‘부족’을 구성해 거주한다. 이와 더불어 은공 1호집의 공동체를 이끄는 또 다른 힘은 특정 목적의 모임과 취미에 기반한 소모임 등 부족 개념에 갇히지 않는5 0여 개의 다양한 소그룹 활동에서 나온다. 은공 1호집에서 공유는 생물학적 가족, 사회적 부족, 공동체의 목표를 실천하는 다양한 활동과 자발적인 소모임에서 다양한 차원의 의미를 갖는다. 이런 특성은 오늘날 한국의 보편적 주거 형태인 아파트, 다세대주택과 비교한다면 꽤나 특이하고 드문 경우인데, 주거와 일, 교육 등 목적에 따라 기능을 분리하는 공동주택에 비해 매우 복합적이고, 복잡다단한 관계망을 가진 도시 거주의 단면을 압축해놓은 인상이다.
과연 은공 1호집은 급진적 공유를 실천하는 공동체가 만든 하나의 사례로 멈출 것인가, 아니면 도시의 역동성과 다양성을 담으며 새로운 공동체성을 꿈꾸는 도시민들의 바람, 그 시작점이 될 수 있을까. 그동안 진행해온 다양한 특강과 인터뷰, 토론회(제6차 공유주택포럼, 서울시 협동조합주택박람회, 정림건축문화재단 특강 ‘공용-새로운 윤리적 가치’, 연세대학교 실내건축학과 특강, 원불교 심포지엄-일상의 미래, TBS 공간사람 인터뷰, 서울도시건축 제5차 포럼-다양한 거주의 풍경)에서 받았던 질문을 토대로 ‘공동체 주택을 계획할 때 중점을 둬야 할 부분’에 대해 간단히 정리해 본다.

 

집적과 연결 : 따로 또 같이

은공 1호집은 지하와 1층(공동체 공간), 2층과 3층(주거 공간), 다락 및 옥탑, 옥상 정원까지 총 6개의 수직적 층위를 지니고 있다. 제한된 건축면적에 수직적으로 집적된 공유 공간은 층별로 성격이 달라 수직적인 이동이 잦을 수밖에 없다. 곧 이곳에서의 공간 경험은 다분히 도시적이다. 집적된 다층 공간은 연속적으로 연결돼있으며, 하나 이상의 순환 동선으로 짜여있다. 공동체의 구성원들은 한꺼번에 모일 수도 있고, 각각의 소모임 활동에 따라 동시다발적으로 따로 행동할 수 있다. 이는 다양한 활동이 서로 간섭할 수 있는 여지를 줄이고 각각 공동체 활동에 참여하거나 혹은 우회할 수 있는 선택권을 보장함으로써 개인의 자유의 보장한다. 부족 내 공간에서 화장실 등 공용공간을 중심으로 만들어지는 ㅁ자 순환동선은 셋 이상의 혈연 가족이 하나의 사회적 가족을 만들었을 때 일어나는 마주침과 간섭, 우회 사이에서 개인이 적절하게 선택해 대응할 수 있도록 마련한 장치다. 이미 8~10명이 거주하는 부족 공간의 거실을 타 부족에게 개방하는 공유를 실천하려고 할 때 타인과 자신의 경계를 유연하게 조절할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참고로 은공 1호집에서 사적인 거주공간(부부공간)의 면적 단위는 15~16㎡인데 비해 구성원 한 명이 향유하는 점유 공간은 40㎡에 달한다.

 

평면의 최적화와 탄력적인 운영 : 변화의 가능성을 탐색하다

대개 공간은 실거주자에 맞춰 변화의 가능성을 열어둔다, 은공 1호집은 오랜 기간 의견을 수렴해 구성원에게 최적화된 평면을 도출하려고 노력했다. 동향과 서향에 따른 차별화된 대응, 건물 중심에 위치한 ‘반층 계단(Skip Floor)’에 집중시킨 거실과 화장실 등의 공용 공간, ㅁ자 동선, 개인 공간에 동일하게 적용한 모듈과 형식 등은 네 부족이 거주하는 공간의 공통점이다. 즉 개인과 부족 간의 관계는 개인이 이 사회적 가족 내에서 공유 공간을 사용하는 경험과 근본적으로 큰 차이가 없다. 마감재와 조명, 가구를 통해 각 부족의 특성을 드러내지만 기본 주거 형식의 특성을 약화시키는 요인은 아니다.
엘리베이터와 가까운 남쪽 주거 공간과 그렇지 않은 북쪽 주거 공간이 갖는 환경적 조건과 접근성에 따라 각 세대는 제 환경에 최적화된 주거 평면을 공유한다. 지층에 가까운 2층, 다락과 연결된 3층은 각자 접근성, 환경적 영향, 공간의 풍요로움이 다른 만큼 그 특성을 평면에 반영했다. 특히 빛, 조망, 공기, 바람, 소리, 계절의 경험은 남과 북, 2층과 3층의 독특한 위상을 미묘하게 실현한다. 즉, 단순히 평면을 변형해 얻을 수 있는 경험이 아닌 것이다. 결국 은공 1호집이란 공간을 운영하는 탄력성은 물리적인 공간의 변형 가능성이 아니라 부족 간 교환 또는 순환을 통해 획득된다.
실제로 공동체 내에 한 청소년이 독립을 원하자 혈연관계가 존재하지 않는 다른 부족으로 이주가 이루어진 경우가 있었다. 그 공간에는 혈연 가족의 시점이 아닌, 여자아이 방, 남자아이 방이 존재한다. 나이가 들며 거동이 불편해지는 사람들을 위해 엘리베이터에 직접적으로 접근이 가능한 남쪽 집으로 해당 구성원을 이주시키는 방법도 검토 중이다.

 

ⓒMAGAZINE BRIQUE

 

내부와 외부의 관계 : 밖으로 확장하는 공동체 가치

4개의 부족, 13개의 혈연가족, 48명의 개인 모두의 의견을 수렴한 터라 독특하고 복합적인 형태로 구현된 내부에 비해 은공 1호집의 외관은 놀라울 정도로 단순하고 통일돼 있다. 여기에는 구성원들의 과감한 결정이 큰 힘을 발휘했다. 외부로 노출되는 프라이버시의 문제와 내부의 가구 배치 시 생기는 어려움에도 불과하고, 그들은 바닥부터 천장까지 열린 ‘통창’을 개인 공간의 최소 단위인 침실부터 거실에 이르기까지 일괄적으로 적용하는 데 모두 동의했다.
은공 1호집은 동일한 석재를 다락층, 지하층, 1층 등에 구별 없이 연속적으로 사용함으로써 내부 공유 공간의 성격이 분화되더라도 전체적으로 하나의 공동체를 기반으로 연속적으로 접근하고 공유한다는 점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특히 고흥석과 현무암이라는 두 가지 재료는 멀리서 봤을 때 비슷한 회색 톤 석재로 간주되지만 비가 올 때 물을 더 많이 흡수하는 현무암의 특질 덕분에 동쪽 침실과 서쪽 거실, 남쪽 집과 북쪽 집이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인식할 수 있는 내밀하고 미묘한 장치로 작용한다.
주변 지형을 따라가는 형상의 지붕 매스, 이웃한 건물 간에 시끄럽게 다름을 외치지 않는 색상과 톤의 재료, 그리고 스킵 플로어와 다락의 경사에서 비롯된 다양한 수직적 경험을 제공하는 옥상정원을 보면 주변 이웃과의 관계, 사계절의 변화와 매일의 환경적 변화를 섬세하게 생각하는 은혜공동체의 철학을 알 수 있다.

 

보편성과 지속 가능성, 그리고 확장성

은공 1호집의 건축적 원칙을 정리해본다면 5개로 압축될 것 같다. 공유 공간의 수직 여정, 스킵 플로어, 세대의 ㅁ자 순환 평면, 연속적인 바닥판, 위상을 표현하는 파사드다. 하지만 공동체 주택이 갖는 다양성과 복합성 때문에 이런 원칙을 활용해 다른 공동체에 적용 가능한 보편적 주거형식을 만드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존 공동주택에서 시도하지 않았지만 한 공동체의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도입한 건축 요소는 그 의도와 디자인, 효과를 염두에 두고 향후 요긴하게 공유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공동체 주택은 현재 주거하는 구성원의 삶에 맞춘 공간이라는 점에서 시간을 지나도 여전히 지속 가능한가에 대한 고민을 안고 있다. 살아가면서 주택 내 접근성의 차이를 계속 인지하게 될 것이고, 이런 집의 물리적 특성뿐 아니라 성장과 축소를 통한 구성원의 변화는 결국 사회적 가족의 구성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런 상황에 알맞은 구성원 간 교환과 순환 시스템이 적절하게 자리 잡기를 희망한다.
혹시 은공 1호집이 획득한 공동체성과 공유의 가치가 도시적으로 확장된 풍경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은혜공동체가 지향하는 바를 이웃과 지역사회, 도시로 확장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아직 아무도 알 수 없다. 다만 이웃과의 공간 공유를 통해 공동의 가치를 먼저 논의하는 시대가 곧 오기를 소망할 뿐이다. 공동체 사이로 공유 정신과 가치가 확장되는 미래를 기다려본다.

 

 

You might also like

건축에도 올드머니룩Old Money Look이 있을까?

[정해욱의 건축잡담] ⑩ 정통과 퓨전의 변증법에 관하여

스테이 창업 전, 반드시 두드려보아야 할 돌다리 ‘스테이 스쿨’

스테이 스쿨 강사진으로부터 미리 들어보는 생존 전략

일상의 웰니스 라이프 큐레이터에게 묻다

[Wellness Lifestyle] ⑧ Life Curators

패러다임 전환의 시대

[Portrait] 호텔을 만드는 사람 한이경

‘왜 홀리스틱 웰니스인가’, 그는 이렇게 말한다

[Interview] 상하 리트릿 CCO & 총괄 건축가 — 캘빈 싸오Calvin Tsao

짓기 전에 꼭 넘어야 할 스무고개가 있습니다

[다시 만난 브리크의 공간] ① 서교동 카페 ‘콤파일Compile’ 황지원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