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기술이 완성한 디자인 조명

[Uncommon Living] ⑥ 디자이너와 산업 장인의 상생 도모하는 아고
에디터. 윤정훈 사진. 윤현기 자료. 아고

 

대다수의 삶을 담는 주거 양식은 여전히 획일적이고 보편적(common)이지만 들여다보면 집이라는 공간을 장소로 만드는 것은 바로 개개인의 삶, 삶을 이루는 시간과 취향의 켜다. 취향에 기반한 공간은 개별적이고 고유하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기성과 ‘다른(uncommon)’ 선택을 하는 경향에 주목하고자 한다. 장인 정신이 깃든 리빙 브랜드, 각자의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하는 맞춤형 브랜드, 독창적인 아이디어로 유일무이한 제품을 구현하는 디자이너, 확고한 취향으로 특색 있는 리빙 제품을 선별해 소개하는 편집숍까지. <브리크brique> vol.9 기획 특집은 범람하는 리빙 트렌드 속에서 마침내 중심이 될 자신만의 취향을 찾아가는 여정이 될 것이다.


Art and Craft
① 일상을 침투하는 비일상의 가구 – 최동욱
② 텅 빈 장식품의 초대 – 쉘위댄스
③ 한 명의 랩, 하나의 콘크리트 – 랩크리트
④ 공간의 가능성을 확장하는 나무 조각 – 안문수

Craftsmanship
⑤ 패브릭 아틀리에의 한 끗 – 일상직물
⑥ 낡은 기술이 완성한 디자인 조명 – 아고
⑦ 생활 가구를 잘 만드는 사람들 – 스탠다드에이

Customizing
⑧ 사용자가 곧 크리에이터 – 몬스트럭쳐
⑨ 주방에 컬러를 입히다 – 스튜디오 비엘티
⑩ 생활 속 긍정의 감도를 높이다 – 비밥 디자인 스튜디오
⑪ 벽지를 만나는 새로운 방법 – 스페이스 테일러

 


 

오브제로서의 조명
손가락으로 가볍게 누른 찹쌀떡을 닮은 전등, 풍선처럼 공기를 불어넣어 부풀린 모양의 조명, 유유히 외줄타기를 하는 곡예사를 연상케 하는 샹들리에. 독특한 디자인 콘셉트를 지닌 ‘아고AGO’의 조명은 조명의 역할이 단순히 공간을 밝히는 데만 있지 않다는 것을 절로 수긍하게 한다. 2019년 국내 조명 브랜드로서는 흔치 않게 조명 기기의 조형성을 내세우며 등장한 아고는 과감한 형태와 색감, 유려한 곡선이 돋보이는 디자인을 통해 ‘조명은 빛만 잘 들어오면 된다’는 인식의 변화를 앞당겼다. 이러한 개성 넘치는 디자인의 조명이 있게 된 데에는 디자이너의 디자인 아이덴티티를 존중한 산업 장인들의 역할이 크다.

 

ⓒAGO

 

협업의 시작
숙련된 기술을 갖춘 장인과 독창적 아이디어를 가진 디자이너의 협업은 바람직하지만 말처럼 간단하진 않다. 아고는 2017년 서울디자인재단이 을지로 소상공인과 디자이너를 매칭한 ‘BY을지로’ 프로젝트를 계기로 탄생했다. 당시 스웨덴에서 디자인 스튜디오를 운영하던 유화성 디렉터와 을지로에서 조명 유통업을 운영하는 이우복 대표가 만나 독창적 디자인이 부재한 국내 조명 업계의 현실, 수입 조명의 복제품으로 점철된 을지로 조명 시장에 대한 문제 의식을 공유한 것이 아고의 시작이 됐다. 두 사람은 새로운 조명 브랜드를 통해 을지로에 잔존하는 장인 정신을 계승하되 부정적 현실을 타개해 나가기로 했다. 이에 뚜렷한 정체성을 지닌 국내외 디자이너에게 한국 산업 장인과의 협업을 제안했고, 고유한 기술과 생산 노하우를 갖췄지만 오리지널 디자인에 대한 공감이 부재한 산업 장인들을 설득해 아고만의 조명을 만들기로 했다.

 

ⓒAGO

 

장인 정신으로 열어낸 양산의 가능성
아무리 훌륭한 디자인도 실물로 구현할 수 없다면 그저 아이디어에 그치고 만다. 제조 전 양산에 대비한 정교한 설계가 선행되지만 충분한 퀄리티를 내는 동시에 효율성까지 갖춘 제조 기법은 거듭된 시행착오를 거쳐야만 알 수 있다. 더구나 전에 없던 새로운 디자인이라면, 기존의 검증된 제작 방식에 국한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게 제품의 양산 가능성을 살피는 시제품 제작부터 을지로를 비롯한 성수동, 문래동 등 지역 기술자들의 손을 빌렸다. 단지 의도된 형태대로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시제품 단계부터 정교한 라인을 구현하고 마감 흔적을 최소화하는 것이 목표였기에 제조 방식을 결정하는 데만 해도 오랜 시간이 소요됐다.
어려움은 기술자들과 소통하는 데도 있었다. 그들에게 엄격한 제작 기준을 가져야 하는 이유를 납득시켜야 했기 때문이다. 기술자들은 충분한 테크닉을 갖추고 있었지만 오래도록 지속된 국내 제조업계의 침체된 분위기로 인해 타협에 익숙해져 있었다. 오랜 설득 끝에 그들 안에 내재된 장인 정신을 이끌어낸 결과, 보다 나은 양산 체계를 구축할 수 있었다.

 

ⓒAGO

 

스웨덴의 건축가이자 디자이너인 요나스 바겔Jonas Wagell과 아고가 함께 만든 ‘앨리Alley’는 아시아의 골목길에 있는 가로등에서 영감을 받은 조명이다. 단순해 보이지만 실제 구현까지는 복잡다단한 과정이 있었다. 납작한 금속 판으로 삿갓 모양의 전등갓을 만들어야 했는데, 특유의 곡선과 볼륨감을 살리기 위해서는 아주 섬세한 손놀림의 스피닝 가공(금속판을 회전시켜 원뿔형으로 성형하는 가공법)이 요구됐다. 이와 더불어 속이 비어 있는 전등갓에 평평한 바닥을 덧댈 때는 상부와 바닥의 경계가 보이지 않도록 용접이 아닌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을지로의 여러 기술자들을 만나 자문을 구한 끝에 이 모든 것이 가능한 제작자를 만날 수 있었다. 유독 정밀한 제작 기술을 요하는 형태이기에, 앨리 전등갓은 초기 시제품을 개발한 기술자에 의해 여전히 을지로에서 제작되고 있다.

 

ⓒBRIQUE Magazine

 

완성 직전의 집요함
아고를 통해 엿볼 수 있는 장인 정신의 일면은 완성 직전의 단계에 천착하는 집요함이다. 아고는 선별한 협력 업체를 통해 부품을 생산해 최종 조립은 파주 공장에서 진행하는데, 파주 공장에는 을지로와 같은 도심 제조업 지대에서 오랜 기간 한 분야에 매진한 산업 장인들이 있다. 최종 조립을 이들의 손에 맡기는 이유는 조립이야말로 제품의 퀄리티를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단계이기 때문이다.
0.1mm의 오차를 알아보는 눈은 다름 아닌 오랜 경험과 노하우, 디자인에 대한 깊은 이해도에 있다. 아고 공장의 기술자들은 작은 것 하나 그냥 지나치지 않는 기민함을 기본 태도로 삼아 작업에 임한다. 매끄럽기 그지없어 보이는 표면의 미세한 균열을 확인하는 일, 여러 전등으로 구성된 제품에 달린 개별 전등의 높낮이를 수십 분에 걸쳐 맞추는 일, 조명 외곽을 감싸는 구조물 용접에 경력 40년 이상의 기술자가 일일이 나서는 일이 늘상 이루어진다.

 

ⓒBRIQUE Magazine

 

장인 정신을 있게 한 시선
아고 조명 제작 과정 곳곳에 깃든 장인 정신은 산업 장인과 디자이너 모두에게서 비롯된 것이다. 디자이너는 기술자의 경험과 테크닉을 믿고 그들로부터 집요함을 끌어내고 있으며, 기술자는 누군가의 디자인을 디자이너의 의도만큼 깊이 이해하려는 진중한 태도로 작업에 임하고 있다. 아고 파주 공장의 책임자 노문근 상무는 을지로에서 40년 넘게 조명 일을 해 왔지만 아고와 함께하며 도리어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고 말한다. 한두 사람이 가진 손의 가치로 대변되던 전통적 장인 정신에 대한 정의가 무색해져가는 지금, 아고의 조명을 통해 눈여겨볼 것은 디자인 오리지널리티를 일궈낸 끈기와 기술력만이 아닌 상생의 가치를 알아보는 시선일 것이다.

 

ⓒBRIQUE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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