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의 가능성을 확장하는 나무 조각

[Uncommon Living] ④ 공예 작가 안문수
ⓒBRIQUE Magazine
에디터. 윤정훈 사진. 윤현기 자료. 스튜디오 루

 

대다수의 삶을 담는 주거 양식은 여전히 획일적이고 보편적(common)이지만 들여다보면 집이라는 공간을 장소로 만드는 것은 바로 개개인의 삶, 삶을 이루는 시간과 취향의 켜다. 취향에 기반한 공간은 개별적이고 고유하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기성과 ‘다른(uncommon)’ 선택을 하는 경향에 주목하고자 한다. 장인 정신이 깃든 리빙 브랜드, 각자의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하는 맞춤형 브랜드, 독창적인 아이디어로 유일무이한 제품을 구현하는 디자이너, 확고한 취향으로 특색 있는 리빙 제품을 선별해 소개하는 편집숍까지. <브리크brique> vol.9은 범람하는 리빙 트렌드 속에서 마침내 중심이 될 자신만의 취향을 찾아가는 여정이 될 것이다.


Art and Craft

① 일상을 침투하는 비일상의 가구 – 최동욱
② 텅 빈 장식품의 초대 – 쉘위댄스
③한 명의 랩, 하나의 콘크리트 – 랩크리트
④공간의 가능성을 확장하는 나무 조각 – 안문수
Craftsmanship
⑤패브릭 아틀리에의 한 끗 – 일상직물
⑥낡은 기술이 완성한 디자인 조명 – 아고
⑦생활 가구를 잘 만드는 사람들 – 스탠다드에이
Customizing
⑧사용자가 곧 크리에이터 – 몬스트럭쳐
⑨주방에 컬러를 입히다 – 스튜디오 비엘티
⑩생활 속 긍정의 감도를 높이다 – 비밥 디자인 스튜디오
⑪벽지를 만나는 새로운 방법 – 스페이스 테일러


어떤 사물은 공간을 깎아나가면서부터 만들어진다. 사람 키를 훌쩍 넘는 설치물이든 손으로 넉넉히 움켜쥘 정도로 작은 소품이든 모두 어딘가에 놓일 것을 염두에 둔 안문수의 작업은 공간에서부터 출발한다. 손은 나무를 잡고 있지만 눈은 그 너머를 헤아린다. 몸통뿐인 나무가 공간에서 새롭게 차지할 부피를 찬찬히 가늠하는 가운데, 아름다움 이외의 요소를 하나둘씩 덜어낸다. 새로운 형상을 입은 나무는 소박한 상차림이 놓이는 소반이 되고, 허공을 유유히 헤엄치는 고래가 되며, 사람 형상의 작은 오브제가 된다. 흙을 벗어나 다른 곳에 놓인 나무는 누군가의 일상에 은은한 잔물결을 일으키며 새로운 생애를 살아간다.

 

ⓒstudio rou

 

보이지 않는 것으로부터
공예 작가 안문수는 자신의 작업을 ‘나무를 통해 형상을 만드는 일’ 정도로 일컫는다. 그의 작품은 가구, 조각, 조명, 스피커 등으로 모두 제각각이고, 하나같이 어딘가 독특한 생김새다. 안문수의 오브제와 가구가 여타 목공품과 차별화되는 지점은 작업이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무엇’에서 출발한다는 데 있다. 처음부터 구체적 형태나 용도를 정해 놓기보다 그때그때 마음 한켠에 자리한 심상을 천천히 발전시킨다. 아이들과 집 앞 산을 오르내리며 본 계곡의 얼음 결정을 집 현관의 손잡이로 만드는가 하면, 문득 쉬고 싶어지는 마음을 담아 평온함을 즐기는 사람을 조각해 나가는 식이다.

 

ⓒBRIQUE Magazine
안문수 작가 ⓒBRIQUE Magazine

 

바람에 나부끼듯 옆으로 길게 뻗은 손잡이가 달린 ‘겨울 바람 조각합’은 바람의 형태에 대한 호기심이 차곡차곡 쌓여 탄생한 수납함이다. 시시각각 방향과 세기를 달리하는 것이 바람이고 이를 받아들이는 사람의 마음 또한 매 순간 달라진다. 따라서 같은 조각합이라도 손잡이 모양이 모두 다르다. 다른 작품도 마찬가지다. 표정과 자세가 천차만별인 사람 조각, 종류는 같아도 형태나 디테일이 제각각인 가구에는 순간순간 변화하는 작가의 심상이 깃들어 있다. 이렇듯 저마다 다른 영감을 품은 사물은 단순히 보기 좋거나 생활의 필요를 충족하는 것을 넘어 잠자코 곁에 두고 보고 싶은 것이 된다.

 

ⓒBRIQUE Magazine

 

정제된 형태와 쓰임새가 말해주는 것
안문수의 작품은 통상적인 가구나 기물조차 일반적 형태에서 살짝 빗겨나 있는데, 이는 조형에 대한 집요한 탐구 정신 때문이기도 하다. 타원과 타원의 조형적 만남을 오랜 기간 고민한 끝에 만든 ‘타원소반’이 그 예로, 일반적인 소반보다 좌우가 길고 상판의 아웃라인이 양끝으로 갈수록 날렵해지는 것이 특징이다. 수십 번 대패질해 둥글게 마감한 상판 뒷면, 상판과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타원형의 다리(기둥)는 정교한 계산이 아닌 순간순간의 직관을 따른 결과이며, 단순해 보이지만 오직 손으로만 구현할 수 있는 형태다.

 

ⓒDonggyu Kim

 

또 하나 주목할 만한 것은 형태를 우선할수록 그것이 제안하는 사용 방식은 본질에 가까워진다는 점이다. 의도한 조형을 구현해가는 가운데 불필요한 기능은 정제된다. 상판 하나, 다리 하나로만 이루어진 타원소반은 상이라는 가구가 갖는 본연의 가치에 집중하게 만든다. 어딘가 낯설지만 담백한 형태의 소반을 보고 있으면 나 혹은 다른 누군가에게 좋은 음식을 대접하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든다. 안문수가 ‘함’ 또는 ‘합’ 시리즈를 통해 제안하고자 한 메시지 또한 같은 맥락에 있다. 담는 것을 만들 때 내 앞에 어떤 공간이 있다고 가정하고, 거기에 담길 무언가를 생각하기 시작한다. 수납, 보관에 있어서 효율이 강조되는 때에 그의 수납함은 무언가를 담는다는 일상적 행위에 담긴 의미를 새삼스레 환기한다.

 

ⓒstudio rou

 

계속해서 변화하는 재료, 나무
나무는 죽어서도 변화를 거듭하는 살아 있는 재료다. 온습도에 취약해 작업 및 보관이 까다로움에도 계속해서 목재를 다루는 이유는 나무의 변화하는 속성 때문이다. 가구를 만들 땐 주로 재단된 건조목을 사용하지만 보통 오브제나 소품을 만들 땐 수종을 가리지 않는다. 수종 및 자라온 환경에 따라 색, 질감, 분위기 등이 천차만별로 달라지기에 우연에 기대어 재료를 구하기도 한다. 길에 떨어진 나뭇가지를 주워와 깎아보기도 하고, 벌목 현장이나 공원에서 벤 고사목을 얻어 오는 식으로 말이다. 순간순간 마주한 나무를 잘 들여다보는 가운데 적합한 형태와 가공 방식을 떠올리며, 모든 작품은 작업 후 별도의 도색을 거치지 않는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재탄생한 사물에는 나무가 살아온 긴 시간, 특유의 질감과 색이 고스란히 들어 있어 자연스럽게 생활에 깊이를 더하게 된다.

 

ⓒstudio rou

 

공간을 특별하게, 공간에 있어 더욱 특별한
직접 만든 조각도를 이용한 카빙 작업을 선호하는 면모에서 알 수 있듯, 안문수의 작업은 ‘붙여 나가는 방식’이 아닌 ‘깎아 나가는 방식’을 따른다. 그에게 공간은 하나의 덩어리, 그 자체로 조각의 대상이나 마찬가지다. 장소 속에서 의도한 형태를 찾아내는 식으로 나무를 다듬어 나가는데, 이렇듯 공간 자체를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사물은 공간과 더욱 긴밀한 관계를 이룬다. 다시 말해 특정 장소에 놓여 더욱 빛을 발하고, 동시에 특별할 것 없는 공간을 색다르게 만드는 것이다. 천장에 매달려 전시되는 ‘고래 조각’처럼 말이다. 유유히 헤엄치는 고래가 매달리는 순간, 텅 빈 허공은 일순 평온한 바닷속으로 변모한다.

 

ⓒBRIQUE Magazine

 

‘선 위의 사람’은 말 그대로 선 위에 작은 사람 조각을 올려둠으로써 완성되는 오브제인데, 벽에 놓일 때 그 존재감이 특히 극대화된다. 수직의 벽과 교차하는 방향으로 놓일 땐 마치 벽에서 무언가 나오는 듯한 장면을 연출하고, 벽과 벽이 만나는 모서리에 놓일 때는 오묘한 그림자를 만들어낸다. 선 위에 놓인 작은 사람으로 인해 밋밋한 벽이 아슬아슬한 긴장감이 흐르는 배경, 숨고 싶은 장소, 유유히 거니는 곳이 된다. 작은 나무 조각으로 인해 공간의 의미가 다채로워지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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