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김지아 사진. 윤현기 자료. 일상직물
대다수의 삶을 담는 주거 양식은 여전히 획일적이고 보편적(common)이지만 들여다보면 집이라는 공간을 장소로 만드는 것은 바로 개개인의 삶, 삶을 이루는 시간과 취향의 켜다. 취향에 기반한 공간은 개별적이고 고유하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기성과 ‘다른(uncommon)’ 선택을 하는 경향에 주목하고자 한다. 장인 정신이 깃든 리빙 브랜드, 각자의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하는 맞춤형 브랜드, 독창적인 아이디어로 유일무이한 제품을 구현하는 디자이너, 확고한 취향으로 특색 있는 리빙 제품을 선별해 소개하는 편집숍까지. <브리크brique> vol.9 기획 특집은 범람하는 리빙 트렌드 속에서 마침내 중심이 될 자신만의 취향을 찾아가는 여정이 될 것이다.
Art and Craft
① 일상을 침투하는 비일상의 가구 – 최동욱
② 텅 빈 장식품의 초대 – 쉘위댄스
③ 한 명의 랩, 하나의 콘크리트 – 랩크리트
④ 공간의 가능성을 확장하는 나무 조각 – 안문수
Craftsmanship
⑤ 패브릭 아틀리에의 한 끗 – 일상직물
⑥ 낡은 기술이 완성한 디자인 조명 – 아고
⑦ 생활 가구를 잘 만드는 사람들 – 스탠다드에이
Customizing
⑧ 사용자가 곧 크리에이터 – 몬스트럭쳐
⑨ 주방에 컬러를 입히다 – 스튜디오 비엘티
⑩ 생활 속 긍정의 감도를 높이다 – 비밥 디자인 스튜디오
⑪ 벽지를 만나는 새로운 방법 – 스페이스 테일러
고요함을 입은 직조의 힘
씨실과 날실이 엮여 탄생하는 직물로부터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물건을 만드는 일상직물은 직물이 공간과 몸에 더할 가치를 고려해 제품을 디자인한다. 그 제품들은 대개 몸 닿는 곳에 있다. 머리를 뉘는 베개, 몸을 덮는 옷과 이불, 손에 쥐는 수건과 파우치까지. 직물로 엮어낼 수 있는 다양한 제품군을 아우른다. 다만 그 이름에서 살필 수 있듯 브랜드로서의 방점은 무엇보다 직물에 있다. 촉각과 시각의 조화에 기반해 직물의 가능성을 실험하고, 마지막 실은 손으로 꿰는 원칙을 고수한다. 이 같은 제작 방식은 가까운 물건을 향해 그 기원을 묻는 낯선 일로 우리를 이끌기도 한다. 이들의 물건을 곁에 두고 있노라면 만든 이의 시간을 절로 떠올리게 된다.
한국적 미감으로부터
일상직물의 시작은 소비자의 수요를 예측하고, 유행에 맞는 원단을 선택해 무난한 디자인에 편승하는 방식이 아니었다. 브랜드가 차별화될 수 있는 지점은 고유한 미의식을 바탕으로 한 자체 제작 원단에 있다고 판단해 색채와 패턴, 촉감 세 요소를 두루 고려한 패브릭 개발이 먼저 이어졌다. 이는 천에 대한 남다른 관심으로 의류직물학과 동양복식사를 전공한 한지희 대표의 미감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특히 복식사를 전공하는 과정에서 유물을 접할 기회가 많았던 그는 동시대에 쉽게 볼 수 없는 옛 색채와 패턴의 조합에 매료되어 이를 바탕으로 현대적인 미감을 더해 새롭게 해석한 독자적인 원단을 개발하기에 이른다. 간결하면서도 고전적인 미감이 돋보이는 일상직물의 패브릭은 그렇게 탄생했다.
고유한 색감과 패턴이 탄생하기까지
만져보기 전까지는 이렇다 평가할 수 없는 촉감이라는 요소를 차치하더라도, 일상직물의 원단은 색감과 패턴으로 시선을 먼저 사로잡는다. 색채에 있어 결코 뒤지지 않는 우리나라 직물 시장에서 고유한 색을 뽑아내는 일이란 말처럼 쉽지 않다. 더욱이 색감이란 주관적인 영역이기에 트렌드가 기준축이 아닌 이상 한없이 모호해지거나 비슷해지기 십상이다. 일상직물의 색채 실험은 그럼에도 타협하지 않고 ‘보편적으로 훌륭한’ 지점으로까지 나아간다. 연령, 성별, 취향 등의 기준을 뛰어넘어 보는 이를 직관적으로 매료시킬 수 있는 색을 만날 때까지 말이다. 이는 소위 말해 호불호가 갈리지 않을 색을 찾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짙은 숲을 떠올리게 하는 녹색 린넨 직물 ‘딥 포레스트’는 오묘하게 자연과 가까워 마음에서 멀어지지 않을 색이다.
한편 언뜻 단순하고 평범해 보이는 패턴은 한국 중세와 근대의 직물 도안에서 착안해 미묘한 변형을 가한 것이다. 가히 디테일이 전부라 말할 수 있는 패턴 영역에서 이들의 직물은 고요히 돋보이는데, 이는 패턴을 정의하는 그들의 언어에서 비롯된 것이다. 예컨대 일상직물의 파도 문양은 단순한 파도가 아닌 ‘소녀의 파도’로 표현된다. 풀어 말하면 “강릉의 한 바닷가에서 자란 어린 소녀가 그린 파도를 상상하여 표현한 직물”이자 “어린 아이의 눈으로 본 듯한 단순한 파도 패턴”이다. 이렇듯 패턴 하나에도 시선이 깃들어 있다. 그러니 고유함이란 결국 확고한 시선을 바탕으로 한 지극한 실험 끝에 말해지는 특성에 가깝다.
패브릭의 완성은 촉감에 있다
시각적 만족감을 주는 직물 개발 이후의 단계는 일상에서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드는 것이다. 온몸에 닿는 침구류를 주로 선보이는 이들에게 패브릭의 본질은 촉감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찍이 그 중요성에 공감한 일상직물은 다양한 전문가와의 협업을 기반으로 여러 차례 테스트를 거쳐 원하는 촉감을 구현해낸 제품을 출시한 바 있다. 여기서부터는 본격적인 연구 개발이자 제조에 해당하는 단계이므로 제품의 용도에 따라 촉감을 비롯해 신축성, 내구성, 염색도 등 많은 요소를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 촉감은 완벽하지만 물빠짐이 있는 경우, 신축성과 염색도는 적절하지만 촉감이 미흡한 경우 등 다양한 변수를 해결하기 위한 지속적인 실험이 필요하다.
사실 거슬리지 않을 정도의 촉감에 가까워지는 일은 이들의 실험만큼 번거로운 과정이 아니다. 그럼에도 패브릭의 인상을 결정짓는 것은 시각이 아닌 촉각에 있다고 믿는 일상직물은 만졌을 때 비로소 완성되는 완벽한 직물을 끊임없이 추구한다. 그 예로, 출시한 제품 중 촉감을 위해 가장 많은 실험을 거친 ‘엑스트라 소프트 레이온 차렵이불’ 시리즈는 유일무이한 바이오 워싱 원단으로 제작했다. 이는 나무에서 추출한 부드러운 재생 섬유인 레이온을 염색한 뒤 워싱과 효소 가공을 더해 촉감을 향상시킨 원단이다. 이 차렵이불 시리즈는 일상직물을 침구 브랜드로 알리게 된 계기이자 스테디셀러가 된 상품 중 하나다. 이는 무수한 실험 끝에 증명해낸 촉감에 소비자가 반응한다는 증거인 셈이다. 그렇기에 느리고 번거롭더라도 촉감에 대한 실험을 멈출 수 없다.
결국은 손이 하는 일
원단에서 상품 개발까지, 제품이 마침내 닿게 될 자리를 끝끝내 고려해 많은 품을 들이는 이들의 종착지는 다시 손이다. 일상직물의 모든 제품은 20년 이상의 경력을 가진 서울의 봉제 기술자에 의해 만들어진다. 이들이 다루는 침구, 의류, 소품 등의 물건은 각 분야에 맞게 세분화된 경험을 가진 장인들이 스튜디오이자 공방인 일상직물 건물에 상주하며 제작한다. 이들이 수공예적 제작 방식을 고집하는 이유는 하나다. 태가 다르기 때문이다. 완성품을 두고 살펴보면 이는 기술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시간과 마음을 들여 차분히 만들어낸 제품은 그렇지 않은 것과는 다른 아우라를 갖는다. 대량생산의 시대에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방식이지만, 직물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가치를 소비자들이 온전히 경험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일상직물은 한 땀 한 땀 공들여 작업하는 방식을 이어가고 있다.
‘대체 불가능한 기술 장인이야말로 곧 예술가’라는 믿음으로 디테일에 집착하는 전통적 제조업을 신뢰하는 일상직물에게 오늘날의 장인 정신이란 직업윤리에 가깝다. 디테일에 있어 결코 타협하지 않는 일은 곧 장인들의 삶의 자세이기도 할 것이다. 누군가 알아보기 때문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라, 그렇게 할 수 있다면 해야 함이 마땅하기 때문에 그 일을 고수하는 것이다. 이렇듯 마음을 다해 엮은 제품은 누군가의 삶에 가닿아 그 지극함으로 일상을 밝힌다. 무엇 하나 허투루 엮지 않는 일상직물의 정체성이 바로 여기에 있다.
지속 가능한 생산을 위하여
장인 정신을 기반으로 느리지만 꾸준한 성장을 이어온 일상직물은 브랜드 철학을 유지하며 확장해 나갈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최근 원단을 개발하고 제품을 생산하는 공방이자 공장을 확장해 이사를 하기도 했는데, 이는 공간이 작업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한 결과다. 또 현재까지는 공장 체제를 도입하지 않고, 공방 형태의 운영 방식을 이어가고 있지만 앞으로의 확장성을 고려해 생산 질을 맞출 수 있는 외주 봉제 기술자들을 찾을 계획도 있다. 늘어나는 주문량에 대응하면서 브랜드 가치를 살리는 지속 가능한 생산 방식을 다방면으로 고민 중에 있다.
제품 카테고리 역시 침구를 비롯해 키친, 의류, 생활용품 등으로 다양하게 확대하고자 한다. 무엇보다 직물에서 시작된 브랜드인 만큼 완제품 못지않게 패브릭 연구개발을 지속하는 것이 장기적인 목표다. 제품 이전에 직물이 우리 삶에 더할 가치에 주목해 저변을 넓혀가는 일상직물은 그 고집스러운 실험을 계속해 나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