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과 글램핑 사이

[Stay here] ⑥ 자연 속 하이브리드형 스테이 ‘글램트리리조트’
ⓒKyungsub Shin
에디터. 윤정훈  사진 & 자료. 건축공방

 

머무는 공간이자 장소를 뜻하는 오늘날의 ‘스테이stay’는 단순한 숙박시설을 넘어 새로운 경험을 제안한다. ‘여행’과 ‘집’, ‘머무는 것’과 ‘떠나는 것’의 의미에 대해 재고하기를 요청받는 과정에서 스테이의 맥락은 폭넓게 재편되는 중이다. <브리크brique>는 이번 특집에서 공간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가치와 이야기가 명확한 여러 스테이들을 들여다보고자 한다. 각 공간에서 건축가, 디자이너, 운영자가 제안하는 바는 결국 변화하는 동시대의 생활 양식과 닿아 있다. 자연 속에서의 휴식, 자발적 고립, 일과 생활, 스포츠와 문화 활동, 유려한 건축 공간에서의 비일상적 경험까지, 일상과 비일상의 경계에서 다양한 시도를 보여주는 스테이의 궤적을 살피는 일은 이 시대 여행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하는 과정과 다름 아닐 것이다.

 

Stay here
① 오늘의 여인숙 – 삼화 여인숙 
② 완벽한 고립의 시간 – 의림여관 
③ 세 가지 사색의 공간 – 서리어
④ 고요함 속 감각을 여는 호텔 – 이제 남해
⑤ 숲속 진정한 나를 마주하다 – 아틴마루

⑥ 호텔과 글램핑 사이 – 글램트리리조트
⑦ 일과 쉼이 공존하는 곳 – 오-피스제주
⑧ 꼭 하룻밤만큼의 예술 – 다이브인 인사
⑨ 여기가 내 집이었으면 – 어 베터 플레이스


건축으로 완성한 진정한 글램핑
경기도 가평에 위치한 ‘글램트리리조트’(이하 글램트리)는 진정한 의미의 글램핑을 표방한다. 화려하다는 뜻의 글래머러스glamorous와 캠핑camping의 합성어인 글램핑glamping은 말 그대로 호화로운 캠핑, 즉 직접 텐트를 치지 않고도 자연 속에서 다양한 레저 활동과 여가를 즐기는 문화를 뜻한다. 하지만 한국의 글램핑장은 캠핑의 번거로움을 보완하고자 취사, 세면 등을 위한 기본 시설만을 갖춘 야영장에 그치는 수준이 대다수로, 실질적으로 글램핑이라는 용어가 갖는 본래의 의미를 느끼기 어렵다.

글램트리를 설계한 건축공방의 박수정, 심희준 건축가는 해외에서 쌓은 다채로운 경험을 토대로 2013년부터 다수의 글램핑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다. 디자인부터 구조 설계, 제작까지 직접 소화하는 그들에게 글램핑 시설은 온전한 건물이 되지 못한 구조물이 아니다. 외려 최소한의 재료와 구성을 통해 자연 속에 있음을 온전히 체감하게 하는 동시에 적정 수준의 쾌적함과 안정감을 허락하는 건축물이다. 이에 파빌리온의 개념을 글램핑 시설에 적용, 하나하나가 조형미를 가지며 메인 건물과 함께 공간 전체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게끔 했다.

 

ⓒKyungsub Shin
ⓒKyungsub Shin

 

호텔의 쾌적함, 풍성한 자연을 동시에
캠핑은 번거롭고 호텔은 답답하다. 도시와 미묘하게 다른 온도와 냄새, 탁 트인 시야가 그립다가도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기꺼이 마주할 만큼의 긍정은 왜 항상 부족한 걸까. 풀벌레 소리 들으며 바비큐 연기에 한껏 취하고 싶다가도, 따뜻한 물로 샤워하며 몸에 밴 고기 냄새를 빼고 보송한 침대에 눕고 싶은 것이 사람 마음이다. 취향에는 옳고 그름이 없고 좋은 것만 골라 누리고 마음은 당연하다. 욕심이 많다거나 변덕이 심한 게 아니다. 다만 그 마음을 담아줄 공간을 만나지 못했을 뿐일지도.

글램트리는 호텔, 리조트, 글램핑장을 아우르는 일종의 하이브리드형 숙박 공간이다. 주차장에서 동선을 유도하는 돌담을 따라 입구로 들어서면 하늘의 절반을 차지하는 높은 산맥을 배경으로 황동색 지붕을 받든 웰컴센터가 투숙객을 맞이한다. 한옥 지붕의 처마를 재해석한 모던한 디자인은 생경하면서도 친숙하다. 멀리서 보면 언뜻 지붕만 떠 있는 듯도 한데, 이는 몸체가 통유리와 얇은 기둥으로만 이루어져서다. 조형이 도드라지지만 주변을 가리거나 압도하지 않고 낮은 높이로 다채로운 프레임을 형성, 주변 풍경을 더욱 매력적으로 승화시킨다.

 

ⓒBRIQUE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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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 있는 최소한의 건축
산을 깎아 거대한 건축물을 얹은 대규모 리조트에 비해 웰컴센터가 풍경 속에서 갖는 존재감은 미미한 편이다. 이러한 형태는 가평의 아름다운 자연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자 한 운영자의 바람, 대지와 건축물의 관계 설정을 우선시한 건축가의 의도에서 비롯됐다. 대지는 남쪽으로 서리산을 마주한 너른 평지와 계곡을 향해 가파르게 떨어지는 경사지를 포함한다.

있는 그대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대지에 건축을 들이는 일은 조심스럽다. 건물의 외형이나 볼륨을 내세우다가는 본래의 경관을 해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웰컴센터는 땅에 안기듯 지형에 순응해 자리했고, 서리산을 향해 시선을 유도하지만 조망을 방해하진 않는다. 지붕은 최대한 날렵하고 가볍게, 기둥도 구조적 안정성을 확보하는 선에서 굵기를 최소한으로 설정했다. 지붕 아래에는 리셉션 겸 카페, 수영장, 사우나와 같은 각종 부대 시설뿐만 아니라 관리자 숙소 등의 유지 관리 공간이 있지만 땅 아래 숨겨져 드러나지 않는다. ㄱ자로 꺾인 지붕 사이로 난 큰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건물이 들어서기 아주 오래전부터 흐르던 계곡에 닿게 된다.

 

ⓒKyungsub Sh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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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객실 1마당
1만여 제곱미터의 땅에는 웰컴센터와 18개 동의 독채 글램핑 객실이 놓여 있다. 설계 초기 건축가는 25~30여 개의 객실을 계획했는데 도리어 운영자가 그 수를 줄이고 객실 간격을 더 넓혔다. 이는 ‘최소한의 프라이버시’를 확보하려는 까닭으로, 덕분에 객실마다 넉넉한 크기의 개별 마당이 주어졌다. 수많은 나무 사이사이 숨겨진 객실로 향하는 길은 작은 마을의 오솔길을 연상케 한다. 하늘에서 본 객실 배치는 잎맥의 패턴과도 유사한데, 모든 객실이 서리산을 향하는 가운데 방향을 조금씩 틀어 투숙객 간의 불필요한 시선 교환을 막고 숲으로의 시야를 확보했다. 원형 또는 반달형의 객실은 실내에서 보다 다양한 활동을 유도하고 마당과 숲을 향해 시선을 집중시킨다.

 

ⓒKyungsub Shin

 

버튼을 누르면 열리는 전동 커튼은 특별한 아침을 맞이하는 더할 나위 없는 방법. 유기적 형태의 객실을 이루는 재료는 스틸 파이프와 멤브레인이다. 형틀을 제작할 필요 없이 원하는 모양을 손쉽게 구현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제작 및 철거 과정에서 쓰레기를 최소화하고 재활용이 가능해 친환경적이다. 바닥 난방과 에어컨, 침구, 이용 편의를 위해 분리된 화장실과 욕실, 바비큐 시설과 조리 도구를 갖춘 객실은 캠핑의 즐거움만 취사 선택하도록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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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는 건 온통 나무뿐
글램핑이 메인 액티비티인 이곳에 세련된 객실 이외에 호텔의 성격을 부여하는 또 다른 요소는 인피니티 풀infinity pool이다. 지평선 또는 수평선과 맞닿아 보이게 디자인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글램트리의 인피니티 풀은 바다도 초원도 아닌 ‘마운틴 뷰’를 자랑한다. 서리산을 향해 기다랗게 펼쳐진 수영장에 있으면 보이는 것은 온통 나무뿐이며, 경계가 흐릿하게 처리된 수조는 멀리 있는 능선과 닿을 듯 말 듯한 이색적 경험을 선사한다. 해의 움직임에 따라 지붕이 만드는 그림자의 각도를 파악해 오후가 되면 수조에 시원한 그늘이 지게 했다. 이곳에서만 할 수 있는 또 다른 경험은 다름 아닌 100여 년간 같은 자리를 지켜온 밤나무들에 있다. 낙엽과 떨어지는 밤송이를 관리하는 것이 보통 일은 아니지만 공사 시 나무들을 베지 않은 덕에 뜻밖의 ‘밤 줍기’ 체험이 가능해졌다고. 투숙객이라면 얼마든지 주워가도 좋다고 하니, 아이들과 함께 오기에는 늦가을이 더 제격일 수도 있겠다.

 

ⓒBRIQUE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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