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과 나의 시간

[Story] ‘구의본가’ 공간 이야기
ⓒBRIQUE Magazine
에디터. 김지아  사진. 윤현기  자료. 팀 히치하이커 건축사사무소

 

① 집과 나의 시간 — ‘구의본가’ 공간 이야기
② [Interview] 우리가 집을 말할 때 — 우경희, 장신우 건축주가 말하는 ‘구의본가’

③ [Architects] 건축의 세계를 여행하는 법 — 팀 히치하이커 건축사사무소


 

제자리를 지키는 일
도심지의 오래된 단독주택은 쉽게 허물어진다. 그리고 그 자리엔 다시 땅이 허용하는 만큼의 다세대주택이 들어선다. 그렇게 주거 수요의 증가와 임대 수익을 향한 욕망이 맞물린 자리에서 거리의 모습은 획일적으로 변화해 왔다. 그러나 건축적 재생이 없는 도시의 재생만이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풍경 속에서도 오래된 것은 가치를 지닌다. 단순히 옛 축조 방식과 기술자들의 손맛, 낡음의 미학을 차치하고라도 그 자리를 지키고 그 동네의 풍경을 간직한다는 것은 오래된 집이 가지는 중요한 가치이자 위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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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과 가족의 새로운 시간
서울 광진구 구의동에 터를 잡고 살아온 건축주는 자신의 유년시절을 보낸 주택을 고쳐 살기로 결심한다. 독립한 자녀들이 떠난 집에는 어머니가 홀로 남아 생활하고 있었고, 구성원의 부재로 사용하지 않아 방치된 공간이 더러 있었다. 가족의 기억이 소중히 머무는 집일지라도 세월의 흐름에 공간은 점차 쇠락해가는 기색이 역력했다. 45년째 같은 모습으로 자리를 지켜온 벽돌집은 마침내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이에 건축주는 집에게도 가족에게도 더 나은 환경을 마련해 주고자 했다.

오래된 집을 활용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당장 허물고 그 위로 건물을 올릴 수도 있고, 적절한 시점에 팔고 다른 곳으로 떠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이 집을 고쳐 쓰기로 결심한 이유는 집이라는 장소가 이들에게 다만 집으로서 중요했기 때문이다. 집과 함께한 세월로부터 생겨난 많은 추억은 가족을 잇는 매개이자 곧 가족의 역사다. 그렇기에 그는 그 위로 앞으로의 미래를 포개어 새로운 시간을 쌓아갈 것을 택한다. 다시금 같은 공간에서 부모님과, 아내와, 그리고 유년의 자신과 동갑인 어린 아들과 함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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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쳐 씀의 미학

 

구의동 그 집
구의본가가 위치한 광진구 구의동 일대에는 1970~80년대 건설된 주택들이 옛 모습을 간직한 채 남아 있다. 적벽돌과 지붕의 처마, 기와 그리고 1층과 2층을 잇는 계단과 난간, 여기에 마치 집집마다 약속이라도 한 듯 심어둔 감나무와 목련은 오래된 골목의 풍경을 이룬다. 2000년대 초부터 다가구·다세대주택이 하나둘 들어서며 동네의 모습은 점차 변화했지만, 여전히 남아 있는 건물과 그 자리를 지키고 사는 이들 덕분에 여느 동네처럼 한순간 인상을 달리하는 곳으로 변하진 않았다. 크고 작은 변화를 마주하면서도 고유한 풍경을 간직한 골목에서 구의동 주택의 시간은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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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벽돌집의 변천
1977년 지어진 빨간 벽돌집은 얼핏 견고한 듯 보였으나 그 속을 살폈을 때 온전치 않은 구석이 많았다. 그도 그럴 것이 사람이 난 자리가 오래도록 비어 있었기 때문이다. 주택은 반지하와 1, 2층으로 이루어진 작지 않은 규모였다. 한때는 지하에 세를 주기도 했고, 건축주 부모님과 남매를 비롯한 4인 가족은 1층과 2층을 나누어 생활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다 세월의 흐름에 자녀들은 독립해 떠나고, 지층 역시 세를 줄 환경으로 적합하지 않게 되면서 큰 집은 오로지 어머니의 몫이 됐다. 구조는 구조대로 노후화되었을뿐더러 홀로 관리하기에 건물은 버거울 만큼 컸다. 집과 가족에게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Team Hitchhiker Architects
ⓒTeam Hitchhiker Architects

 

집의 수명을 연장하는 일
건축주가 집을 고치고자 한 방향은 명확했다. 기능과 성능은 개선하고 외관은 기존의 모습을 최대한 유지하는 것. 노후 주택은 겉으로 드러나는 곳에서뿐 아니라 드러나지 않는 곳곳에 문제가 숨어 있는 경우가 많다. 특히 구조와 설비, 전기는 현장에서 뜯어보기 전까지는 노후화 정도를 파악하기 어려운 경우가 다수다. 이를 고려해 1차 철거를 통해 내부 마감을 들어내고 집의 상태를 면밀히 파악하는 과정을 거쳤다. 리노베이션은 보통 설계가 완료된 시점에 시공을 시작해 철거하는 순으로 이루어지는데, 설계에 앞서 개선해야 할 지점을 명확히 하고 변수를 줄이기 위해 1차 철거 작업을 먼저 진행했다. 그 과정에서 약해진 구조를 보강하고 전기와 설비 배관을 새것으로 교체했다. 또한 내·외부를 정리하며 단열 성능을 보완했을 뿐 아니라 안전을 위한 장치까지 꼼꼼히 마련했다. 이렇듯 외관을 고치기에 앞서 구조체로서의 주택을 점검하고 필요한 부분을 찬찬히 개선하는 과정을 통해 집의 수명을 연장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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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하면서 새로운 외관
외관에서 새로워진 부분은 크게 계단과 난간, 창이 있다. 먼저 기존 주택에서 1층과 2층은 내부 계단을 통해 연결됐다. 가족이 흩어지기 전까지 1층은 건축주와 부모님이, 2층은 건축주의 누나가 주로 사용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한 가족이 아닌 두 가족이 함께 살게 될 터였으므로 공간 내 세대 분리가 필요해졌다. 이에 따라 건축가는 내부로 통하던 계단을 없애고 외부 계단을 새로 만들었다. 그로써 한 채의 집은 비로소 두 가족을 위한 집으로 거듭났다. 또한 비교적 낮은 높이에 중심부가 뚫려 있어 안전이 우려됐던 석재 난간은 높고 매끄러운 형태의 철제 난간으로 바꾸었다. 교체된 난간을 통해 테라스는 활용도가 높아졌고, 계단부와 동일한 재료의 사용으로 전체적인 외관 역시 자연스러운 인상을 갖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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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열 기능을 보완하고, 입면을 정돈하기 위해 건물 곳곳에 난 창을 정리하기도 했다. 마당을 향해 열린 1층과 2층의 거실 창은 보다 너른 시야의 확보를 위해 크기를 늘렸고, 전면도로에서 보이는 두 개 창은 통일성을 고려해 각각 같은 크기로 조절했다. 애초에 열을 맞춰 반듯하게 계획된 창이 아니었기에 삐뚤빼뚤 난 창을 수직수평으로 조정하는 과정에서 여백이 생기기도 했는데, 이 부분은 벽돌을 사용해 메웠다. 기존 적벽돌과 비슷하면서도 재질과 색상이 얼마간 다른 새 벽돌을 활용해 패치워크식으로 덧대는 느낌을 주고자 했다. 기존의 재료와 그럴듯한 조화를 이루면서도 이질적인 모습으로 무언가 변경되었음을 알리는 벽돌은 과거의 기억 위로 건물이 새롭게 쌓아갈 시간을 암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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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생활을 담는 공간
1층은 어머니가 혼자 생활하는 공간인 점을 고려해 과거 4인 가족 기준으로 짜인 배치를 일부 조정했다. 불필요할 정도로 넓은 주방의 크기를 줄이고 안방에 화장실과 드레스룸을 더해 공간의 활용도를 높였다. 또한 테라스를 확장함으로써 환한 빛이 드는 거실의 영역을 넓히고 가족이나 친지가 방문해 머무를 수 있는 게스트룸을 만들었다. 과거의 어느 시점이 아닌 오늘의 생활을 기준축으로 덜어낼 것은 덜어내고, 더할 것은 더한 리노베이션을 통해 같은 공간에서 오랜 시간 지속해 온 어머니의 생활 역시 한결 가뿐해질 수 있도록 했다. 미처 정리되지 못해 어수선하게 남아 있던 마당도 정리를 거쳐 한편은 주차장으로, 다른 한편은 조경과 휴식을 누릴 수 있는 공간으로 거듭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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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율보다 중요한 것
오랜 기간 비어 있던 2층은 건축주 가족의 집이 됐다. 이들은 평형대에 맞춘 효율적인 평면 구조보다 자신들의 생활을 잘 반영할 수 있는 공간을 원했다. 이에 아파트식 평면을 따르지 않고 73㎡ 면적의 내부 공간을 가족 구성원 각각의 생활 패턴을 고려해 계획했다. 예컨대 넓고 안정적인 방을 부부의 침실로 삼고 나머지 방을 배분해 아이방이나 게스트룸 등으로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면, 이들은 가장 넓고 환한 방을 아이방으로, 현관과 가까운 곳에 위치한 좁은 방을 안방으로 삼았다. 아이는 오랜 시간 집에 머무르며 다양한 활동을 펼쳐나가는 데 비해 침실은 그저 일과 후 두 사람이 잠을 자는 공간일 뿐이라는 것이 이들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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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생활 패턴상 넓은 주방보다 욕실과 연결되는 건식 세면대가 우선이라는 판단하에 주방 공간이 아닌 화장실에 더 큰 면적을 할애하기도 했다. 그렇게 내부 계단이 있던 자리는 작은 주방이 됐고, 협소하고 낡은 화장실은 샤워실과 세면대가 각각 분리된 편리한 화장실로 거듭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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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당초 효율만을 따졌다면 도심지 한가운데 주택을 고쳐 사는 일을 결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자신들의 생활을 향한 곧은 뜻이 안팎에서 결국 드러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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