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윤정훈 자료. 현대 모터스튜디오 부산
건축으로 기후 변화에 대응할 수 있을까
매 순간 수많은 탄소를 뿜어내는 도시는 거대한 탄소 생성기다. 그저 잘살아 보려고 쏟아내 온 그것을 이젠 살아남기 위해 줄이고, 나아가 상쇄해야 할 때에 이르렀다. 개개인의 생활방식뿐만 아니라 더 큰 영역에서의 변화가 요구된다. 도시 차원에서의 탄소 중립이라면 어떨까. 주변을 빼곡하게 채운 건축물, 기반 시설을 통해서도 기후 변화에 대응할 수 있을까? 현대 모터스튜디오 부산의 기획 전시 ‘해비타트 원Habitat One’에 초대된 두 건축 스튜디오는 각기 다른 수단으로 그 가능성에 대해 응답한다. 해조류와 로봇이라는, 건축과는 다소 먼 거리의 단어를 들어서 말이다.
새 시대를 위한 지속가능한 쉘터
‘해비타트 원’은 ‘인류를 위한 진보’라는 비전을 바탕으로 도시의 주거 환경을 개선하는 ‘쉘터shelter’ 솔루션을 고민하는 현대자동차의 브랜드 전략에서 출발한 전시다. 현대자동차는 탄소 중립 시대를 살아갈 첫 세대를 ‘제너레이션 원Generation One’으로 가정하고, 이들을 위한 새로운 주거 솔루션을 의뢰했다. 전시장에 마련된 다섯 점의 작품은 멀리서 보면 정지된 듯하지만 가까이 다가서면 정교한 메커니즘에 따라 작동하고 있다. 각 작품은 서로 다른 유기체처럼 저만의 속도로 호흡하며 관람객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도시가 된 자연, 자연이 된 도시
‘에콜로직스튜디오ecoLogicStudio’는 클라우디아 파스케로Claudia Pasquero와 마르코 폴레토Marco Poletto가 2005년 런던에 설립한 건축 및 디자인 그룹이다. 이들의 관심사는 ‘인간과 자연이 도심 속에서 어떻게 공존하는가’에 있다. 도시 차원에서의 탄소 중립과 기후 변화 대응을 목표로 하는 에콜로직스튜디오가 주목하는 것은 박테리아와 미생물. 특히 ‘알게algae’라고 하는 녹조류를 통해 도시를 녹화하는 다양한 프로젝트를 선보여 왔다.
2층에 마련된 전시장에 들어서면 거대한 나무 조형물이 눈에 띈다. 1층부터 이어져 높이가 약 10m에 달하는 ‘트리 원Tree One’은 이번 전시를 위해 특별히 제작한 인공 나무다. 나무의 형태를 학습한 AI가 3D 프린팅으로 빚어낸 것으로, 프린팅 과정에서 알게 성분(조류 바이오 폴리머)이 사용됐다. 실제 이 작품은 약 20그루의 나무와 맞먹는 광합성 능력에 따른 탄소 포집, 공기 정화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미래 도심 곳곳, 거대한 인공 나무가 들어선 이색적 풍경을 상상해본다.
인간의 집약적 생활 공간인 고층 빌딩이 조류의 서식지가 될 수 있을까? ‘호루투스 XL 아스타잔틴.gH.O.R.T.U.S. XL Astaxanthin.g’은 산호와 미세조류의 공생 관계에서 영감을 받은 조형물이다. 2019년 파리 퐁피두 센터에서 첫선을 보인 후 세계 각지를 순회 중인 에콜로직 스튜디오의 대표작이기도 하다. ‘호르투스’는 라틴어로 ‘자원’을 뜻한다. 산호 군락 생성 과정에 기반한 알고리즘으로 설계된 반투명의 구조체 사이사이 살아 있는 클로렐라 배양체를 주입했다. 전시장에 놓인 조형물은 제안의 축소판격으로, 측면 스크린을 통해 건물 규모로 세워진 호루투스 XL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창가를 따라 늘어선 실린더들로 이루어진 ‘포토신세티카 워크PhotoSynthEtica Walk’는 알게의 배양 과정을 보여주는 작은 산책로다. 알게가 산소를 뿜어내는 생생한 과정을 보고 들을 수 있다. 이 배양된 알게는 식품을 비롯해 ‘트리 원’의 구성 요소인 바이오 폴리머와 같은 다양한 용도로 활용된다. 이 작품 또한 에콜로직스튜디오의 다른 작품과 마찬가지로 전시장 내 공기를 정화한다. 뿐만 아니라 창으로 드는 햇빛을 차단해 실내 온도를 낮추기도 한다.
탄소 발자국을 남기지 않는 지속가능한 쉘터
에콜로직스튜디오가 미래의 쉘터를 상상하는 데 있어서 미생물을 활용했다면, 바래BARE는 작은 이동식 모듈형 로봇으로 이루어진 두 개의 쉘터를 선보인다. 과밀화된 도심에서 작은 휴게 공간을 형성하는 ‘에어 오브 블룸Air of Blooms’과, 인프라를 갖추기 어려운 자연을 대상으로 한 맞춤 거주지 ‘인해비팅 에어Inhabiting Air’가 그것.
이번 전시 속 바래의 작업은 모두 ‘에너지의 자급자족’과 관련되어 있다. 지속가능성은 사용할 에너지를 스스로 만들어내는 데 있다고 보고, 그러한 능력을 갖춘 로봇 유닛 ‘에어리Air(e)’를 조합한 조형물을 제작한 것이다. 육각 기둥과 커다란 공기막이 한 그루의 나무를 연상케 하는 ‘에어 오브 블룸’은 필요한 때, 알아서 적절한 휴게 공간을 형성한다. 3세대 태양 전지 패널과 미디어 장치를 갖춘 기둥으로부터 작은 모듈이 나와 사람 수를 인지해 필요한 만큼의 벤치를 만들어낸다는 원리다. 라인을 따라 움직이는 에어리 모듈을 통해 그 모습을 가늠해볼 수 있다. 한 켠에 마련된 벤치에서는 앉는 것뿐만 아니라 핸드폰 무선 충전도 가능하다.
매끈한 아스팔트가 아닌 험준한 지형에는 어떤 형태의 쉘터가 적합할까. 터를 파고 구조를 쌓아 올리는 방식이 아닌, 드론처럼 비행 가능한 로봇 유닛들이 공중에서 결합돼 안착하는 방식이라면. ‘인해비팅 에어’는 바닷가나 산 중턱과 같은 자연환경에 적합한 쉘터다. 바래는 이 쉘터가 제약 조건이 많은 곳에서의 임시 생활 공간, 기후 위기 속 동식물을 위한 대피소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인근의 수소 및 전기충전소에 있던 에어리 모듈들이 쉘터가 필요한 장소로 이동해 스스로 결합되고 해체되는 방식이다. 모듈을 탑처럼 쌓아 올린 커다란 조형물이 그 예. 각 모듈에 부착된 공기 보호막은 온도나 일조량 등에 따라 부풀었다 줄어들기를 반복하며 안락한 실내 환경을 조성한다.
바래, 건축적 상상의 언저리에서
전진홍, 최윤희 소장이 설립한 바래는 역동적으로 변모하는 도시에 조응하는 사물의 생산과 순환 체계에 관심을 두고 2014년부터 리서치 기반의 건축 작업을 지속해 왔다. 팬데믹에 신속하게 대응하기 위해 만들어진 임시 음압병동부터 전시 장소에 따라 형태를 달리하는 미디어 설치물까지. 이들의 작업물은 건축에 기반하지만 부피 변화, 수축과 팽창, 이동 가능성, 휴대성, 재조립과 재구축 등 고정된 건축물이 갖지 못하는 생경한 지점에 방점을 두고 있다. 건축과 예술, 공학의 경계를 지워나가는 바래를 만나 이번 작품에 담긴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쉘터는 집 또는 피난처, 기본적인 건축 구조를 뜻하는 등 개념이죠. 지속가능한 쉘터를 구상하는 이번 전시에 앞서 바래는 쉘터를 어떻게 해석했나요?
전진홍(이하 전) ‘보호막’으로 생각하고 작업에 앞서 보호막의 역사를 리서치했어요. 인류가 처음에는 동굴 같은 기존의 환경을 찾아갔다면 이후에는 움집을 짓기 시작했고 전쟁으로부터 대피를 위한 방공호가 등장했죠. 작년 저희가 한국과학기술원KAIST과 설계한 조립식 이동형 음압병동 ‘에어빔 파빌리온AirBeam Pavilion’은 코로나19라는 새로운 재난 상황에 대한 보호막이 필요해졌음을 보여주는 사례예요. 자연스럽게 앞으로의 쉘터에는 이전 시대에서 시도되지 않았던 관점과 기술이 도입돼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최윤희(이하 최) 지금까지의 보호막은 날씨와 전쟁 등으로부터 사람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고정된 형태였다면, 미래의 쉘터는 기술을 통해 급격하게 변화하는 주변 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고 사용자와 상호작용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단순히 물리적 보호뿐만 아니라 심리적 안정감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죠. 이렇게 정리를 하고 프로젝트에 임했던 것 같아요.
‘변화에 대한 능동적 대응’과 ‘탄소 중립’이 이번 작품의 주요 키워드라고 볼 수 있어요.
전 저희가 제안한 쉘터는 두 가지로 나뉘어요. ‘에어 오브 블룸’은 과밀화된 도시가 배경이고, ‘인해비팅 에어’는 자연이죠. 두 가지 모두 기본적으로 ‘에어리’라는 모듈의 조합이지만 조건에 따라 쉘터의 모습이 달라질 수 있다는 걸 보이고자 한 의도예요.
최 도시의 인프라로부터 전기를 끌어오는 과정에서 탄소가 배출되고 쉘터가 어떠한 환경에 놓이게 될지 모르니, 기존의 인프라에 의지하는 방식이 아니라 스스로 에너지를 생산하는 쉘터를 생각했어요. 이러한 자급자족을 가능케 하는 것이 바로 에어리에요. 에어리는 이동하는 쉘터를 구축할 수 있는 작은 크기의 모듈형 로봇으로, 태양 전지 패널을 통해 작동에 필요한 에너지를 직접 생산해요. 이름에 들어간 알파벳 ‘e’는 그것이 에너지를 품고 있음을 의미하죠.
각 에어리 모듈은 태양 전지 패널뿐만 아니라 공기 보호막을 갖추고 있어요. 이 공기막의 역할은 무엇인가요?
최 ‘인해비팅 에어’에서 공기막은 낮에는 수축해 주변으로의 시야를 가리지 않고 개방감을 주죠. 반면 기온이 떨어지는 밤에는 팽창해서 단열 효과를 내고 포근한 느낌을 주고요. ‘에어 오브 블룸’에서는 미디어를 담는 프로젝션으로서의 역할이 강조돼요. 여러 모듈의 공기막이 하나의 스크린을 이뤄 야외에서 즐길 수 있는 인터랙티브한 미디어 환경을 제공하죠. 지금은 평면 스크린이 대부분이지만 앞으로는 이러한 입체 형태가 더 필요해지지 않을까 싶어요. 건물 외벽에 미디어 파사드가 붙는 것이 아니라 벽돌 자체가 하나의 미디어가 되는 개념이랄까요.
공기막 소재가 무엇인지도 궁금해요. 참, ‘인해비팅 에어’에서는 안팎의 공기막 모양이 다르던데요. 이유가 있나요?
전 폴리우레탄을 사용했고, 적당한 불투명도를 구현하기 위해 노력했어요. 두께에 따라 수축과 팽창의 양상, 빛과 영상을 투사하는 정도가 다르니까요. 인해비팅 에어의 공기막 모양이 다른 이유는 내장재, 외장재로 구분했기 때문이에요. 안쪽은 머무는 공간으로서 포근함을 강조하고, 거친 외부 환경에 노출되는 바깥쪽은 단열 효과를 높이도록 서로 밀착된 형태로 설계했죠. 이러한 내외부성을 강조하고자 조명의 색 또한 다르게 연출했고요.
이번 전시에서도 공기를 하나의 건축 재료로 활용한 점이 흥미로워요. 이전의 음압병동 프로젝트와는 공기의 사용이 어떻게 다른가요?
최 음압 병동 사례를 통해 공기로 짧은 시간 내 큰 구조체를 만들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단열 효과도 낼 수 있다는 걸 확인했어요. 이번 전시에서는 공기에 대한 더 깊은 탐구와 다른 재료와의 결합이 시도됐죠. 단지 공기를 불어 넣어 유형의 구조를 만드는 게 아니라, 수축과 팽창을 통해 유형이 무형으로 돌아가고 다시 유형이 되는 ‘반복’에 방점을 두고 있죠. 자동차의 에어백이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고 필요에 따라 나타났다 사라지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해요.
작품의 작동 원리뿐만 아니라, 실제 제작에서도 지속가능성을 추구한 부분이 있을까요?
최 제작 시 용접이 아닌 조립 방식을 택했어요. 각 부품과 모듈을 선으로 연결하고 나사로 조였죠. 작품이 전시장 바깥 혹은 다른 도시로 이전될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이기도 해요. 이전에 같은 구조물을 3년 동안 네 개의 전시장에 각기 다른 형태로 설치한 적이 있어요. ‘꿈 세포(Dream Cell)’라는 작품으로, 전시 공간에 따라 투영하는 이미지와 영상, 설치 방식에 변화를 주었죠. 이번 또한 전시 이후 다른 곳으로 이동해 또 다른 생명력을 갖기를 바라고 있어요. 그럴수록 이 작품이 갖는 메시지는 더 명확해질 거라 생각해요.
전 건물을 이루는 건 철골만이 아니라 파이프(수도관) 같은 것도 있죠. 파이프는 손상이 더 빠르기 때문에 쉽게 교체를 할 수 있게끔 설치되곤 하는데요. 이처럼 플라스틱, 철, 알루미늄 등 재료마다 생애주기가 다 다르기 때문에 작품을 이루는 부품을 분리시켜 쉽게 교체가 가능하도록 했어요.
지속가능성이나 탄소 중립과 같은 이슈에 있어서 앞으로의 건축은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보나요? 건축과 전시의 경계에 있는 바래의 생각이 궁금해요.
전 실제 건축물을 짓지 않는 저희로서 실질적인 이야기를 하기 어렵지만 추구하는 방향을 토대로 말씀드리자면, 정보 기술을 토대로 한 ‘온 디맨드On-Demand 공간’이 필요하다고 봐요. 즉 내가 필요한 만큼의 장소를 만드는 거죠.
최 건축물은 한 번 만들어지면 그 자리에 계속 고정되잖아요. 궁극적으로는 교체 또는 변화가 가능하도록 만드는 게 중요할 것 같아요. ‘인해비팅 에어’에서 제안한 것처럼 땅을 깊게 파 구조물을 세우는 방식보다 위에서 조립해 내려 앉히는 방식을 택할 수 있겠죠. 우리의 제안은 기존 건축에서 쓰지 않는 재료와 산업 기술을 건축에 접목해보려는 시도에 가까워요. 지금은 건설 현장에 로봇 기술이 많이 도입되고 있지만 사실 자동차 산업에서는 오래전부터 적용되어 왔던 거잖아요. 새로운 기술이 건축의 범주 안에 들어올 때 기존에 하지 못했던 것을 이루고 그게 새로운 공간·기술 경험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바래가 흥미롭게 보는 지점이자 프로젝트의 기준이죠.
전시장을 찾는 관람객에게 추천하는 작품 감상법이 있다면요?
전 감각적으로! (웃음) 많은 설명이 필요하기보다 직관적으로 와닿는 전시를 지향해요. 그래서 그간의 작업에서도 관람객의 신체를 이용해 작품과 소통하는 방식을 추구했죠. 에어리 모듈로 만든 벤치에 직접 앉아 보고, 키트를 조립해 원하는 모양의 쉘터를 만드는 식의 관람을 추천해요. 이러한 의도를 좀 더 직관적으로 이해시키고 관객과 소통하기 위해 전시장 한쪽에 작은 모형을 마련해둔 거예요. 관람객들이 모듈 미니어처를 쌓아보면서 모듈이 어떤 식으로 구성되는지 확인하고, 각 모듈로 얼마든지 다른 모양의 쉘터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걸 알 수 있죠.
최 저는 작품을 통해 관람객들이 뭔가를 상상해보면 좋겠어요. 저희는 하나의 제안을 한 것뿐이지, 답을 내린 게 아니잖아요. 작품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머지않은 미래에 우리의 삶과 도시가 어떻게 바뀔지 생각해보면 좋겠어요. 구조물 안에 들어가 자신의 미래를 상상하는 과정에서 흥미를 느끼고 또 다른 제안을 해볼 수 있겠죠. 저희에게는 관객의 경험이 무척 소중해요. 그것을 통해 저희가 생각하지 못한 생각을 누군가 제안할지도 모르니까요. 결국 이러한 상상과 제안이 모이고 모여 앞으로의 도시를 이루게 되지 않을까요?
전시명.
해비타트 원
일시.
2022년 7월 7일(목) ~ 2023년 1월 8일(일)
장소.
부산 수영구 구락로123번길 20 F1963 현대 모터스튜디오 부산
운영 시간.
10:00~18:00 (매월 첫째 주 월요일, 신정 당일, 설날 및 추석 당일·익일 휴관)
웹사이트.
현대 모터스튜디오 부산
문의.
1899-66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