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 위에 세운 취향의 집

[Story] ‘과학자의 집’ 공간 이야기
©Kyung Roh
에디터. 윤정훈  사진. 노경, 윤현기  자료. 노말건축사사무소

 

① 원칙 위에 세운 취향의 집 — ‘과학자의 집’ 공간 이야기
② [Interview] 가장 나다워지는 우리만의 집에서 — 정의헌, 백성혜 건축주

③ [Architects] 평범과 비범 사이 — 노말건축사사무소 


 

기본이 만든 특별함
‘과학자의 집’은 조부모, 부모, 손녀 3대가 모여 사는 집이다. 물리학 교수이자 6살 연두의 아빠인 정의헌이 좋은 집을 판가름하는 기준은 삶의 터전이라면 응당 갖춰야 할 정직한 구조와 거주자와의 일체성에 있었다. 공식을 증명할 때 처음부터 오류가 생기면 이후의 과정을 바로잡기 쉽지 않듯, 집 또한 한 번 짓고 나면 되돌리기 어려운 법이다. 막연한 이상보다 나와 내 가족의 생활 패턴에 꼭 맞는 내실 있는 집을 바라며 설계부터 시공까지 전 과정을 꼼꼼히 체크했다. 대개의 공간에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수치가 우리에게도 맞는지, 낭비되는 에너지 없이 적정 온도와 좋은 공기질을 유지하는지 건축가와 일일이 논의하면서 말이다. 수치와 치수를 오가는 토론을 거쳐 완성된 집은 쾌적성, 미관, 편의 등 여러 방면에서 보통의 집과 결을 달리한다. 정교한 원칙에 확고한 취향을 더해 쌓아 올린 가족만의 집, 어떤 모습일까?

 

©Kyung Roh

 

함께 누리고 따로 생활하며
각기 다른 개성을 지닌 집들이 수백 년간 자리를 지키며 오늘도 누군가의 삶을 담는 도시, 유럽. 그곳에서 오랜 유학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부부는 현실적 이유로 전세 아파트에 머물렀으나 몸 담았던 좋은 집에 대한 기억만큼은 놓지 않았다. 18평(59m²)짜리 작은 주상복합을 시작으로 세 차례 이사를 다니는 동안 딸 연두가 태어났고 아이가 자라면서 집에 대한 고민은 더욱 짙어졌다. 이 가운데 독립 후 떨어져 살던 부모님과 살림살이를 합치는 일은 꽤 자연스러운 결정이었다.
정서적 혹은 경제적 이유로 저마다 필요에 따라 한 집에 여러 세대가 다시 모여 사는 가족이 늘고 있다. 이때 공간은 어떤 규율보다 명쾌한 해법으로 작용한다. 생활 공간의 분리를 통해 불필요한 마찰은 줄이고 단합을 강요하지 않는 별도 공용 공간에서 한결 편하고 자연스러운 교류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한 지붕 아래 느슨하게 연결된 두 가족의 시간은 때론 엇갈리고 때론 맞물리며 그들만의 일상을 더욱 단단하게 그리고 단란하게 만들어간다.

 

집, 안온한 일상의 근원

 

적절한 연결, 적절한 분리
저마다 여과 없이 개성을 드러내는 집들이 모여 있는 일산 풍동의 한 주택단지. 그 한가운데 놓인 과학자의 집은 불필요한 기교를 부리지 않은 담백한 모습으로 자리한다. 백색 외벽과 먹색 지붕으로 이루어진 외관에서 차분하면서도 따뜻한 기운이 감돈다. 대지는 북서쪽으로 다른 집들과 맞닿아 있고 동쪽으로 경사진 보행로, 남쪽으로 전면도로와 면한다. 땅의 높이차로 인해 지하로 출입할 수밖에 없는 상황. 필연적으로 생기는 지하 공간에 빛은 물론 쓸모와 활기가 필요했다. 여기에 25%라는 낮은 건폐율로 인해 자연히 생긴 너른 마당, 각기 다른 삶의 패턴을 가진 가족의 명쾌한 공존을 위한 1~2층 생활 공간까지. 이 모두를 적절히 연결하고 분리하는 일이 건축가에게 숙제처럼 주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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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집으로부터 한 발짝
가족은 하나인 듯 둘처럼 산다. 부모님은 1층, 부부와 자녀는 2층을 쓰는데 층마다 별도의 거실과 주방, 현관을 두고 있다. 거실은 현관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좁은 복도를 지나야 나타난다. 현관문을 열면 모든 방과 주방이 한눈에 들어오는 아파트식 구성과 다른 점이다. 복도를 따라 방들이 배치되어 거실을 통과하지 않고 바로 방에 들어갈 수 있으며, 서쪽으로 치우친 계단을 통해 2층에서 1층을 들르지 않고도 외출할 수 있다.

 

©Kyung Roh

 

1, 2층은 면적과 인테리어가 유사하나 구성에 있어 적잖은 차이를 보인다. 외국 생활에 익숙한 부부는 거실과 부엌, 방이 조금 작더라도 넓은 욕실과 건식 화장실을 원했다. 한편 부모님에겐 큰 TV를 둘 너른 거실과 주방, 습식 화장실이 맞았다. 높게 짠 아일랜드 식탁이 있는 1층 주방은 마당을 정면으로 마주한다. 할머니는 종종 이 식탁에 엎드려 마당에서 손녀가 노는 모습을 바라보며 소소한 바람을 충족한다. 수직, 수평 구조가 적절히 조화된 집은 어린 연두에게 더할 나위 없는 놀이터다. 하루에도 수차례 계단을 오르내리고 복도와 마당을 가로지르는 아이는 집안 곳곳 저만의 상상력과 기억을 펼쳐두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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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 거실에는 TV 대신 쓰임새가 다른 두 개의 테이블이 공간을 차지한다. 부엌 쪽 원형 식탁에서 한두 보폭 떨어진 책상은 엄마 아빠의 작업 데스크이자 아이가 그림을 그리는 곳, 때때로 장난감을 마구 쌓아두는 작은 놀이터다. 아빠 정의헌 씨는 언젠가 이 테이블에 셋이 둘러앉아 각자의 할 일을 하는 모습을 상상하곤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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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취미 집합소
지하 공용 공간에서는 가족이 일상의 무료함을 달래는 방식이 엿보인다. 한쪽 벽면을 메운 원목 선반엔 누군가의 추억을 품은 작은 물건들이 줄지어 있고 가운데 놓인 당구대는 할아버지의 오랜 취미를 반영한다. 벽에는 주인이 다른 여섯 개의 큐대가 걸려 있는데, 손님용부터 할아버지, 할머니, 아빠, 엄마, 심지어 아이 것까지 있다. 낡은 전자 피아노와 재봉틀은 기상청 연구원인 아내의 또 다른 취미이며, 한쪽에 마련된 작은 방은 부부의 재택 근무 공간이자 아이의 미술실이다. 집의 성능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각종 설비는 이곳 한켠에 보이지 않게 숨겨 두었다. 지하 공간이 자칫 어둡고 답답해질 수 있는 문제는 선큰 구조로 해결했다. 대문을 열면 지하와 마당을 잇는 계단 위로 하늘이 나타나는데 덕분에 실내 깊은 곳까지 충분한 빛이 든다. 계단과 함께 벽을 타고 오르는 덩굴, 깊이차에 따른 확연한 명암이 도리어 운치를 더하는 이 선큰 공간은 아내 백성혜 씨가 정원에 이어 가장 좋아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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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시브 기술과 스마트 시스템
가족이 건강하게 지내길 바라는 마음과 집짓기에 대한 깊은 탐구심은 건축주의 관심을 패시브 하우스로 이끌었다. 패시브 기술은 건물의 단열 성능을 높여 냉난방에 드는 에너지를 줄이는 기술이다. 에너지 절약뿐 아니라 외부 온도 변화와 관계없이 늘 쾌적한 환경을 유지한다는 장점이 있다. 핵심은 낭비되는 에너지를 줄이고 열이 바깥으로 새어 나감을 방지하는 것, 즉 단열과 기밀에 있다. 여기에 열회수교환장치를 설치해 공기 중 오염 물질과 이산화탄소를 걸러내고 환기에 따른 열 손실을 최소화하는 것, 그리고 처마와 EVB(전동 외부 블라인드) 등으로 채광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패시브 하우스 설계의 기본 원리다. 단열, 기밀, 환기, 채광 등을 바람직하게 관리함으로써 하자 발생을 줄이는 것 또한 중요 포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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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의 집은 패시브 하우스에 준하는 수준으로 설계됐다. 열교(건물의 틈 또는 모서리를 통해 열이 들거나 빠져나가는 현상)를 방지하는 신기술이접목된외벽,특수기밀처리가된 창호 주변과 배관 구멍이 그 예다. 건물 전체에 걸쳐 열회수교환장치가 구성돼 기계식 환기와 자연 환기 모두 가능하다. 여기에 시간에 따라 자동으로 밝기 및 색온도가 바뀌는 조명, 거주자의 생활 패턴을 학습해 최적 온도를 유지하는 최신 기기도 손수 설치했다. 당연하지만 때론 잘 지켜지지 않는 원칙, 없어도 그만이지만 삶의 질을 한 차원 높이는 기술은 집이 본연의 가치를 십분 발휘하도록 만든다. 몸과 마음을 회복하는 장소, 나와 소중한 사람들을 지켜주는 가장 믿음직한 안식처로서의 역할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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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QUE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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