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사진. <브리크 brique> 자료. JHY건축사사무소
‘로지아Y(Loggia-Y)’는 서울 양재동에 위치한 다세대주택이다. 부모 세대 3가구와 자녀 세대 2가구, 미혼 자녀 두 명이 함께 산다. 나이 들어가며 아프거나 외로울 것이 염려되는 60대 세 자매와 육아가 걱정돼 출산을 미루고 있는 딸들의 ‘함께 살기’ 시도가 로지아Y의 출발이다.
이 프로젝트는 세 자매 중 가운데인 김정중씨(62)와 그의 딸 민경아씨(34)가 육아를 협력하는 방법을 찾으면서 시작됐다. 처음에는 아파트 한 단지 또는 한 동의 아래 위 층에 모여사는 방법을 찾았다. 경아씨가 부모와의 공동 주거를 모색하자 동생 경희씨(32)도 끼어들었다. 김씨 입장에서는 출가한 두 딸의 출산과 육아를 도와야하는 부담이 있지만 한 편으로는 안심도 되고 사는 재미도 있고 있을 것 같아 좋았다. 그러나 두 딸 내외의 출퇴근 시간과 주거 환경, 각 가구가 감당할 수 있는 경제력 등을 고려해보니 도심의 한 아파트에서 모여살기에는 거주비가 너무 비쌌다. 차라리 집을 짓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싼 아파트 공동 주거보다 함께 살 집짓기로 선회
평소 집과 인테리어에 관심이 있던 경아씨가 이래저래 정보를 알아보고 자문을 구해본 결과, 건축 쪽으로 점점 마음이 기울어졌다. 이 소식을 전해 들은 김씨의 다른 자매들과 그 자녀들도 큰 관심을 표했다. 다들 연배가 비슷해 공감가는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강서, 강북, 강남 등 서울 각 지에 흩어져 살던 김씨의 언니와 여동생 부부, 김씨의 출가한 두 딸 내외, 미혼인 조카 두 명까지 총 12명이 지난해 8월 양재동에 둥지를 틀게 된다.
“처음부터 모두가 건축에 동의하진 않았어요. 이 큰 프로젝트가 제대로 성공할 수 있을까 두려움도 있었구요. 각 자 집 값과 전세값에 자금이 묶여 있었기 때문에 땅 값과 초기 공사비 마련도 힘이 들었죠. 함께 사는 것이 불편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안한 것은 아니예요.”
집 짓기에 마음을 굳힌 김씨는 언니와 동생네를 설득하기 시작한다. 설득의 포인트는 딱 한가지. 함께 살면 좋은 점이었다. 불면증이 있는 언니에게는 혼자 힘들어하지 말고 낮에 양재천을 함께 걸어주겠다고 약속했고, 푸드스타일리스트를 직업으로 밤 낮 없이 일에만 매달려 있는 미혼 딸을 둔 여동생에게는 조카의 작업실 공간도 만들어 넣자고 제안했다. 사별과 건강 등 부모 세대가 보편적으로 갖고 있는 노후에 대한 두려움과 결혼과 출산, 육아 등에 대한 부담을 갖고 있는 자녀 세대의 당면한 과제를 같이 해결해보자는 김씨의 제안에 조금씩 마음이 열리면서 로지아Y가 탄생하게 됐다.
이 프로젝트의 실무 책임자 역할은 경아씨가 맡았다. 건축주를 대표해 건축을 맡았던 유주헌 JHY건축사사무소 대표의 카운트파트 역할을 했다. 식구들의 요구사항을 모아 전달하기도 했고, 건축가와 협상을 하기도 했다. 당시 만들었던 단체 대화방을 아직도 운영 중이다.
“두 번은 못할 것 같아요. 저희 내부 의견을 조율하는 일도 만만치 않았어요. 이모들의 요구도 각각 달랐구요, 중간에 바뀌기도 했죠. 일부 설계와 외관 마감재에 대해서는 건축가 이견 조율을 상당히 했어요. 건축이 끝나고 나서는 큰 어려움 없었어요.
살면 살수록 집짓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경아씨는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본인도 좋고 다들 너무 행복해한다고 했다. 남편의 출장이 잦아 혼자있을 경우가 많았던 경아씨는 엄마 밥까지 얻어 먹을 수 있으니 두 말할 나위가 없다. 주말이면 거주자 전체가 옥상에 모여 바베큐 파티를 열기도 하고, 얼마전에는 친정 부모님과 이모네, 다른 곳에 사는 친척들까지 함께 해외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하루가 꽉 찬 느낌이예요”…공동체 생활이 주는 이점 만끽
인터뷰 중 아래 층에 사는 사촌 김성아씨(28)가 잠깐 올라왔다. 직업이 푸드스타일리스트라 하루종일 혼자서 오피스텔에 머물며 요리하는 시간이 많았던 그는 로지아Y에 입주하면서 삶이 확 달라졌다.
성아씨는 “혼자 있으면서 불안하고 외로웠어요. 여기 오니 하루가 너무 알차요. 점심을 이모집에서 얻어 먹기도 하고, 일하다가 옥상에 가서 혼자 쉬기도 하고, 사촌들 퇴근하고 오면 같이 맥주 한 잔 할 수도 있고, 하루가 사람으로 꽉찬 느낌이예요”라고 말했다.
5층에 사는 경희씨 내외도 내려왔다. 근처에 본가가 있다는 경희씨 남편 김대현씨(37)는 “부모님도 나쁘지 않게 생각하세요. 안심도 되고, 만약 저희 누나가 유사한 방식으로 제안한다면 건축을 생각해볼 수도 있겠다 정도로 생각하신다”고 전했다.
경제적인 이점에 대해서도 물었다. 기존 살던 아파트와 현재 로지아Y 간의 소유 비용과 거주 비용의 차이가 궁금했다. 다섯 세대가 모두 분리 등기를 한데다 1층에 있는 카페와 꽃집에서 나오는 임대료도 다섯 세대가 모두 나눠갖기로 했기 때문에 되레 절약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경아씨는 “일괄적으로 평가하기는 좀 애매합니다. 일단 어디다 집을 짓는가, 즉 대지 가격이 가장 중요하더라고요. 만약 이 집을 서울 외곽에 지었다면 아파트 가격 합한 것보다 보다 훨씬 저렴할 수도 있었겠죠. 하지만 강남 한 가운데고, 각 자 기존 살던 곳보다 넓은 공간을 갖게 됐으니 돈은 들었죠”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굳이 수치로 정리해야한다면 이 주위 아파트와 평당 건축비를 비교해 볼 수 있겠다”면서 “아파트에 비해 70~80% 수준으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다섯 세대 건축주들은 1층 임대 상가에서 나오는 임대료를 공동 경비로 적립하고 있다. 공용 공간에 드는 전기세와 청소비, 보안관리비 등을 충당하고 일부는 조경을 개선하는데 쓰기로 했다.
“손자들의 웃음소리가 행복을 더할 것으로 기대”
로지아Y의 미래 모습에 대해 물었다. 이 같은 공동주거를 언제까지 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는지가 질문의 취지였다. 김씨는 “처음에 언니들과 약속한 것이 있었어요. 이 집에서 나아가야할 상황이 생기면 한꺼번에 팔고 나가자고요. 그 만큼 저희는 공동 운명체처럼 생각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반면 경아씨는 “아이를 낳고 육아를 하다보면 아마 학군 문제가 생길 것 같아요. 이 주위에 학교가 많지 않아 중고등학교를 보내기가 어려울 것 같아요. 아마 그 즈음이 다시한번 판단하게 되는 시기가 되겠죠”라고 답했다.
노후를 걱정했던 부모 세대와 육아가 급했던 자녀 세대의 요구가 엇갈리는 지점이었다.
김씨는 “너무 먼 미래는 걱정하지 않기로 했다. 머지 않아 로지아Y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가득할 것”이라면서 “벌써부터 마음이 설렌다”고 끝을 맺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