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을 담아 고쳐낸 집

[Story] ‘이치 하우스’ 공간 이야기
ⓒJaeyoun Kim
에디터. 박지일  사진. 김재윤  자료. 아틀리에 이치

 

살 수 있는 집이 없다
최근의 2030세대는 지속적인 집값 상승과 대출 옥죄기 등으로 인해 다른 세대보다 더 어려운 상황에 부닥쳐 있다. 전세 거주자의 비율은 점점 낮아져 월급의 절반 가까이를 월세로 지출하고 있거나, 제 몸 하나 뉘일 만큼의 협소한 면적에서 생활하는 등 주거의 질은 급격히 나빠졌다. 이에 정부는 2030을 대상으로 하는 다양한 주거 지원 정책을 시행하고 있지만 실제로 혜택을 받고 있는 청년층은 쉽게 찾아볼 수 없다. 결혼도 하지 않고 자녀도 없는 2030세대들에게 당첨은 기대조차 어렵다. 아파트 청약 물량 중 신혼부부나 생애 최초 주택 구입자, 다자녀 등을 대상으로 한 특별 공급 비중은 확대됐지만, 결혼 유무와 자녀 수 및 소득 기준에 따라 2030세대는 청약 시장에서 밀려나 있다. 특히 미혼인 1인 가구는 주택 구입 경험이 없어도 생애 최초 특별 공급을 신청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아파트의 분양가는 오를 만큼 올랐고, 대출을 받기에는 조건도 까다롭고 금액도 점점 줄어든다. 죽을 때까지 절대로 집을 사지 못할 거라는 자조 섞인 푸념을 듣는 것은 이제 어렵지 않다. 이것이 현재를 살아가는 2030세대 주거 현실의 자화상이다.

 

ⓒJaeyoun Kim

 

전환이 필요할 때
많은 사람의 시선이 입지가 좋은 지역, 신축 건물, 아파트로 향하고 있을 때 반대의 시선으로 접근해 자신들만의 단독주택을 소유한 부부가 있다. 부부는 주어진 현실에 좌절하고 한탄하기보다는 현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생각했다. 모아둔 돈과 대출을 합쳐 조건에 부합하는 주택을 구입하고, 자신들의 취향을 듬뿍 담아내 가장 잘할 수 있는 방법으로 집을 꾸미기로 한 것이다. 공간 디자이너인 이들은 마치 공장처럼 동일한 모양새로 지어진 아파트와 다세대주택에서 산다는 것에 회의를 느꼈다. ‘사람은 건물을 만들고, 건물은 사람을 만든다’는 윈스턴 처칠의 말처럼, 부부는 자신들의 집이 그들의 취향을 반영하고 삶의 방식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건물이었으면 했다. 꽤 놀라운 점은 이들이 집을 구매하고 수리해서 온전히 자신들의 것으로 재탄생시키는 데 들어간 비용은 총 4억 원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Jaeyoun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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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시작의 장소
중구 신당동 성곽공원 앞 골목길에 위치한 이치 하우스는 공간 디자이너 부부의 신혼주택이다. 주택이 위치한 성곽마을은 서울 성곽길에서 굽어 보이는 동네로, 흔히 산동네라고 부른다. 여느 산동네가 그렇듯 비탈과 계단이 어지럽게 분포된 골목 사이사이에 3~4층짜리 다가구·다세대주택이 빼곡하다. 부부는 오랜 시간 발품을 팔아 지어진 지 30년도 넘은 오래된 주택을 매매해 자신들의 취향을 듬뿍 담은 곳으로 새롭게 단장했다. ‘이치 하우스’는 서로 다른 개성을 가진 두 사람이 만나 부부로서 하나의 뜻을 이뤄가는 보금자리와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는 사무실을 겸하고 있다. 프라이빗과 개방성이라는 상반된 성격이 적절히 혼합되어 있으면서도 오래된 주택의 리노베이션을 통해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모습도 발견할 수 있다. 또한 이 집에는 부부 외에도 반려견과 반려묘라는 다른 이치도 함께 거주하고 있다. 이렇듯 ‘서로 다른 둘이 합치되는 것’이라는 의미를 가진 ‘이치’의 의미처럼 이 집은 품고 있는 여러 이치들을 함축해서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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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을 돌아 만나는 집의 시작
이치 하우스는 계단이 있는 좁고 가파른 골목, 높고 밀집된 건물들 사이에 위치한다. 건축가이자 건축주인 부부는 그 사이 새로 자리할 집이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는 편안한 분위기의 건물이 되었으면 했다. 주변을 밝힐 수 있는 밝은 아이보리색 벽돌과 벽돌 사이로 새어 나오는 빛, 그리고 작은 정원이 그러한 숨이 되기를 바랐다. 언덕을 지나 마주하는 쉼 같은 건물이랄까. 기존 건물의 출입구는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길목에 위치해 현관을 오가는 모습이 주변 몇십 세대의 창문을 통해 보인다는, 주택으로서 가장 취약한 단점이 있었다. 주거지로서의 적당한 프라이빗함이 유지되어야 했고, 사무실로도 활용할 예정인 만큼 예비 클라이언트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어느 정도의 개방성도 요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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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집을 둘러싸고 있는 좁은 골목을 진입로로 활용해 건물 뒤쪽으로 돌아 들어올 수 있도록 현관을 달리 배치했다. 또한 예부터 이 건물을 구성하고 있던 오래된 구들장을 시간성이 담긴 출입구로 재활용했다. 출입구가 없어진 건물 정면에 벽돌을 쌓고, 옆집과의 경계인 난간부에도 역시 동일한 벽돌을 사용해 파사드를 넓혀 자연스럽게 입구로 동선을 유도했다. 지역 주민들의 주요 이동 동선인 계단 방향으로는 건물의 메인 파사드를 설정하고, 사무실도 겸하고 있음을 슬며시 노출시키기 위한 방법으로 건물의 창호 바깥면에 벽돌을 영롱 쌓기로 쌓아 올려 1층의 모습이 은연중에 비춰보일 수 있도록 했다. 건물 전체를 한 종류의 벽돌로 통일해 작은 쇼룸처럼 보이기를 의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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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면적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방법
깔끔한 것을 좋아하고 살림살이를 눈에 띄는 장소에 두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부부의 성격 탓도 있겠지만, 협소한 면적을 넓어 보이게 하기 위한 그들의 아이디어는 곳곳에 숨어있다. 바닥과 벽, 천장을 전부 우드 톤으로 통일하고 모든 가구와 전자기기들은 직접 제작한 붙박이 가구 안으로 숨겨 공간을 최대한 넓어 보이게 연출했다. 실내로 들어가면 보이는 우드 톤의 모든 벽면에 수납 공간을 만들어 가끔 어디에 뭐가 있는지 자신들도 헷갈린다고. 기존 주택에 억지로 구획되어 있던 2개의 방은 벽을 철거하고 다이닝 및 리빙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기존 입구 부분에 있던 데크도 철거하고 대나무를 심어 지나가는 사람들에게도 노출되도록 했다. 층마다 위치한 테라스를 통해서는 대나무의 푸르름과 빛을 내부로 끌어들여 확장감을 주었다. 삐죽한 대지 모양 탓에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데드 스페이스를 욕조로 활용한 욕실은 이 주택의 백미다. 기성 욕조를 놓기가 어려운 탓에 내부 공간의 생김새 자체를 욕조로 활용했다. 하루를 시작하고 끝내는 장소가 욕실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의 취향이 가장 잘 반영된 곳이자, 단조로운 우드 톤 실내에서 유일하게 다름이 느껴지는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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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주일체職住一體의 삶
이치 하우스는 56m²(17평) 대지에 1층 26m²(8평), 2층 23m²(7평)으로 구성된 협소 주택이다. 1층은 주방을 겸한 다이닝과 거실, 2층은 침실 용도로 사용한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집 중앙 넓은 면적에 커다란 소파와 러그가 깔려있는, 보편적인 거실의 모습이 이치 하우스에는 없다. 요리하는 것보다 친한 사람들을 초대하고, 작업하는 시간이 많은 자신들의 성향을 고려해 거실도, 주방도 아닌 그들만의 새로운 공간을 마련했다. 주방의 크기를 축소하고 최대 12명까지 앉을 수 있는 기다란 테이블을 배치해, 부부는 이곳에서 설계 작업을 진행하고 의뢰인을 상담한다. 가끔은 도면을 그리고 모형을 만들기도 한다. 이 테이블은 부부에게 거실이자 사무실이고, 사람들을 초대해 담소를 나누는 친목의 장소다. 참고로 이치 하우스에는 가스레인지나 인덕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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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실한 사전 계획
부부는 정부의 지원 정책을 적극 활용했다. 이들은 주택금융공사에서 신혼부부를 대상으로 하는 ‘아낌 e-보금자리론’ 대출(무주택자 또는 1주택자에 한해 85m²이하, 감정평가액 6억원 이하의 주택 구입시 구입 비용의 최대 70%를 대출해주는 제도)을 받았다. 그 외의 비용은 모아놓은 약간의 저축과 개인신용대출 등으로 충당했다. 공사 중에 발생할 수 있는 오류를 최대한 방지하기 위해 디자인 단계부터 다양한 대안을 계획해 어려움에 대비했다. 디자인을 시작하기에 앞서, 지게차 기사들을 불러 외벽 마감재로 쓸 벽돌을 한 팔레트씩 담고 좁은 골목으로의 진입이 가능한지를 테스트한 것이다. 현관으로 가는 길도 1m가 되지 않는 좁은 면적이라 집안 살림 또한 규모나 용량을 최소화하는 식으로 철저하게 계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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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만의 삶의 방식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자신의 공간을 좀 더 자신과 닮은 공간으로 꾸미고자 하는 욕구는 증가한다. 부부에게 집은 단순히 머무는 곳이 아니라 업무까지 해야 하는 일종의 통합형 장소다. 집 안에서 모든 것이 이뤄져야 하기 때문에 잘 갖춰놓고 필요한 것들은 손만 뻗으면 닿을 곳에 있어야 한다. 아파트 평면에 익숙한 혹자들은 이곳에서의 생활에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부부는 전혀 불편한 것이 없다고 말한다. 거실이 없는 것도, 외부에 실루엣이 비추는 것도, 실내가 온통 우드 톤인 것도 모두 자기들의 취향이기 때문이란다. ‘집’이라는 것이 그렇다. 그 누구도 아닌, 그 집에 사는 사람의 사는 방식에 완벽히 맞는 곳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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