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명의 랩, 하나의 콘크리트

[Uncommon Living] ③ ‘오브제 건축가’ 랩크리트
ⓒBRIQUE Magazine
에디터. 박지일  사진. 윤현기  자료. 랩크리트

 

대다수의 삶을 담는 주거 양식은 여전히 획일적이고 보편적(common)이지만 들여다보면 집이라는 공간을 장소로 만드는 것은 바로 개개인의 삶, 삶을 이루는 시간과 취향의 켜다. 취향에 기반한 공간은 개별적이고 고유하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기성과 ‘다른(uncommon)’ 선택을 하는 경향에 주목하고자 한다. 장인 정신이 깃든 리빙 브랜드, 각자의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하는 맞춤형 브랜드, 독창적인 아이디어로 유일무이한 제품을 구현하는 디자이너, 확고한 취향으로 특색 있는 리빙 제품을 선별해 소개하는 편집숍까지. <브리크brique> vol.9 기획 특집은 범람하는 리빙 트렌드 속에서 마침내 중심이 될 자신만의 취향을 찾아가는 여정이 될 것이다.


Art and Craft
① 일상을 침투하는 비일상의 가구 – 최동욱
② 텅 빈 장식품의 초대 – 쉘위댄스
③ 한 명의 랩, 하나의 콘크리트 – 랩크리트
④ 공간의 가능성을 확장하는 나무 조각 – 안문수

Craftsmanship
⑤ 패브릭 아틀리에의 한 끗 – 일상직물
⑥ 낡은 기술이 완성한 디자인 조명 – 아고
⑦ 생활 가구를 잘 만드는 사람들 – 스탠다드에이

Customizing
⑧ 사용자가 곧 크리에이터 – 몬스트럭쳐
⑨ 주방에 컬러를 입히다 – 스튜디오 비엘티
⑩ 생활 속 긍정의 감도를 높이다 – 비밥 디자인 스튜디오
⑪ 벽지를 만나는 새로운 방법 – 스페이스 테일러


 

콘크리트concrete와 래버러토리laboratory의 합성어인 랩크리트는 이름 그대로 콘크리트를 재료로 실험적인 작업을 하는 디자인 스튜디오다. 스스로를 ‘오브제 건축가’라고 부르는 랩크리트는 건축 재료로 사용되는 콘크리트에서 무한한 가능성을 찾아낸다. 콘크리트와 그들만의 온기 넘치는 감성을 결합해 다양한 오브제를 만드는 랩크리트의 슬로건은 ‘차가운 회색 도시의 감성을 따뜻하게 바꾸어보자’이다. 콘크리트의 물성을 그대로 드러내어 재료가 가진 부정의 느낌을 긍정으로 치환하고, 가까이 두고 쉽게 만지는 행위를 통해 어쩌면 뻔하고 평범하다고 여겨질 콘크리트라는 재료가 대중에게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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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크리트의 매력
일반적으로 콘크리트는 자갈과 모래, 시멘트에 물과 혼화재료를 함께 섞어서 굳힌 것으로 정의한다. 재료를 처음 배합했을 때는 마치 빵 반죽 같아서 다양한 형태를 만들 수 있고, 충분한 시간을 두고 굳히면 높은 강도와 내구성을 가진다. 주요 재료인 시멘트와 물, 모래, 자갈 등은 전 세계 어디서나 쉽게 구할 수 있고 가격이 저렴하다는 장점도 있다. 이렇듯 재료 자체가 가진 자유로운 조형성과 우수한 내구성 덕분에 오랜 시간 건축, 토목의 주요 소재로서 한 축을 담당해왔다. 랩크리트는 이런 장점에 더해 단색의 재료 자체가 주는 심플하고 묵직한 매력에 주목했다. 건축을 전공하고 실무를 통해 쌓은 경험은 그 바탕이 됐다. 콘크리트를 직접 접하고 스케일을 변화시켜가는 그 과정에서 흥미를 느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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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품과 작품 사이
랩크리트 작업의 결과물은 명함꽂이, 화분, 식기와 같은 작은 물건부터, 벽 한쪽을 차지하는 의자, 탁자, 책꽂이 등 목적에 따라 규모와 성격을 달리하며 유연하게 변화한다. 또한 규모 있는 공간에 놓이는 오브제라면 비율이나 크기, 스케일감 등 배치되었을 때의 공간이 가지는 이미지를 우선 고려한다. 무엇이 어디에 어떻게 놓일지, 실내인지 실외인지에 따라 형태와 규모가 달라지기도 한다. 공간은 제품의 디자인 무드나 색상 등을 선정하는데 중요한 요소가 되기 때문에 도면을 먼저 요구하기도 한다고. 반면 판매가 목적인 제품은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기에 형태나 색상 등을 어디에나 잘 어울리도록 디자인한다. 제품이 아닌 작품의 경우는 자신들의 디자인 욕망을 최대한 발산하는 편이다. 클라이언트의 의뢰로 만들어지는 제품이라도 결국 제작자의 성향에 따라 결과물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보니 그것을 작품으로 보는 시선도 있고, 제품으로 보는 시선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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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실험의 여정
정반대의 성격을 가진 랩크리트의 공동 대표 김형술, 이현재는 역할 분담도 명확하다. 한 명은 아티스트적 감성으로 색채나 텍스처, 형태와 물성 등에 대한 다양한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다른 한 명은 그것을 정밀하게 제작하는 식으로 업무를 분담한다. 그래서 이들의 프로젝트에는 과감한 예술적 감성과 0.1mm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섬세한 완성도가 공존한다. 랩이라고 일컬어지는 이들의 작업실에서는 주로 텍스처에 대한 과감한 시도나 제작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다양한 실험이 진행된다. 이를 통해 랩은 개인 작품을 만들거나 다른 디자이너·아티스트와 협업하고, 양산할 수 있는 제품을 연구하는 핵심 기반이자 랩크리트의 근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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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업을 통해 공유하는 공감과 경험
랩크리트는 아트 퍼니처 작가들이나 디자인 컨설턴트 혹은 디렉터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와 협업한다. 픽트 스튜디오, 스튜디오 언라벨, 마이너스 프론트 등 단순한 형태이더라도 텍스처를 중시하거나 독특한 재료를 활용하는 아티스트들과 공간 콘셉트와 구성을 함께 고민해 제안하기도 한다. 이렇듯 콘셉트부터 결과물까지 제작의 모든 과정을 협업하면서 작업 중에 느끼는 아이디어의 정체를 해소하고 새로운 영감을 교류한다. 특정 재료에 심취해서 무언가를 탐구하는 태도는 진행 과정뿐 아니라 결과물에 분명한 차별화를 가져다줄 수밖에 없다. 이런 공통점을 가진 협업자들 간의 작업은 오차범위도 작기 마련이다. 랩크리트와 그들의 협업자들은 서로 연대의식을 갖고 시행착오를 데이터베이스화해 공유하여 업그레이드된 협업 프로세스를 만들어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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랩크리트의 진화
랩크리트의 콘크리트 작업은 점점 진화 중이다. 활동 초기에는 매끄러운 표면을 만드는 것에 집중했다면 현재는 다양한 텍스처를 표현하거나 다른 재료와의 자연스러운 융합도 시도 중이다. 이는 작업의 다양성을 추구하고 재료를 테스트하는 범위를 확장해 나가는 과정에 따른 자연스러운 행보다. 과거에는 판매를 위한 목적으로 단순 제작과 배포의 반복적인 활동에 주력했다면, 이제는 클라이언트에게 전략적으로 대응하며 꼭 필요한 작업만 수행한다. 결과물에 확신이 생긴 만큼,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이 랩크리트의 확신이다. 또한 이전에는 제품을 완성하는 것에 모든 신경을 쏟았다면, 지금은 제품과 작품을 병행하며 그들이 할 수 있는 작업의 범위를 확장하려 한다. 분야의 경계를 넘나드는 랩크리트의 정체성은 분명하지 않다.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할 뿐이다. 제조업체로 머물 것인가? 디자인 컨설팅 회사로 발전할 것인가? 우리는 아티스트인가? 랩크리트는 현재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이자 다음 단계로 올라가기 위한 일종의 변곡점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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