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을 벗어나 저만의 콘텐츠로 승부하는 작지만 강한 공간들이 있다. 각 지역에 거점을 둔 카페, 숍, 서점, 레스토랑, 작업실 등은 지역 사회와 긴밀하게 관계 맺고 있다. ‘로컬’이라는 단어를 전면에 내세우기 전에 이미 지역 문화는 공간 정체성을 이루는 주요 요소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어디를 가도 비슷한 분위기의 표준화된 공간이 각광받던 시기를 지나 눈에 띄게 다른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는 공간에 주목하는 지금, 저마다의 고유함을 구축해 온 로컬 스폿을 들여다본다.
파운드
금산 추부깻잎 리소토, 서천 김 페스토 파스타, 공주 방울토마토 소스 가지롤, 논산 딸기에이드. 충청 지역 기반의 식재료를 활용한 요리를 선보이는 그로서란트grocerant ‘파운드’의 메뉴다. 대전 동구 소제동 관사촌에 자리 잡은 파운드는 충청 지역의 라이프스타일을 담은 다양한 농수산품과 지역 장인들의 제품을 소개한다. 충청도의 물적, 인적, 문화적 자원을 발굴해 공간에 가치를 채워가는 도시재생 프로젝트 ‘소제호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지역의 논과 밭에서 난 식재료를 별도의 유통 과정 없이 생산자에게 직접 공급받아 요리하는 구조로 운영되며, 철도 관사의 역사가 담긴 공간에 자리한 만큼 식료품뿐 아니라 지역의 시간이 녹아든 다채로운 콘텐츠를 함께 선보인다. 무엇보다 재생에 방점을 둔 공간으로 역사성을 보존한 공간 디자인이 이목을 끈다. 지붕과 외관, 기둥 구조를 살리고 바닥 일부를 유리로 시공해 기존 건물의 특징을 파악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여기에 충청도 장인들의 도구를 전시하는 프로그램을 더해 지역 가치를 다방면으로 알리고자 했다. 역사성과 지역성을 해석하는 여러 방식 중 식재료와 재료 생산 공법에 집중해 궁극적으로는 지역 농어업을 위한 고유한 해법을 제안하는 브랜드를 꿈꾼다.
위치 대전시 동구 수향길 25
운영시간 11:30~21:00
문의 070-4177-7171
인스타그램 @found__soje
인스밀
10명의 제주 토박이들이 오래된 곡물 창고를 개조해 만든 카페다. 마을에서 우연히 낡은 창고를 발견한 현인협 대표가 친구들을 불러 모은 것이 계기가 됐다. 푸른 바다와 밭이 있는 한산한 마을에 위치한 ‘인스밀’에는 제주다움에 대한 제주 토박이들의 애정 어린 시선이 담겨 있다. 예로부터 제주는 쌀이 귀한 까닭에 보리를 재배했고, 곡물 창고는 모진 바닷바람으로부터 수확한 곡물을 보호하는 역할을 했다. 이 따스하면서도 억센 감성을 동시에 지닌 옛 농가 건물에 있는 그대로의 제주 풍경을 덧입혔다. 바닥의 화산 송이, 야자수와 소철, 볏짚 지붕이 오묘한 조화를 이루며 이색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탁 트인 입구는 제주 전통 가옥의 정낭에서 비롯된 넉넉함을 상징하며, 지붕은 수개월의 기다림 끝에 제주 성읍에 사는 초가 장인에게 의뢰해 완성했다고. 야자수 풍경은 외지인의 눈엔 다소 이국적으로 비칠 수 있지만 인스밀팀에게는 어린 시절부터 보아왔던 익숙하고 정겨운 풍경이다. 대표 메뉴는 제주 보리를 빻아 만든 음료 ‘보리개역’. 어려운 시절 제주도민들의 허기를 달래주었던 일명 제주식 미숫가루다. 이외에도 제주 농부와 협업해 만든 다양한 로컬 푸드, 제주 출신 크리에이터와 함께하는 전시 및 공연을 선보인다. 제주다움을 말하는 공간을 넘어, 지역 사회의 좋은 원물을 발굴해 인스밀만의 시각이 담긴 제품을 개발하는 것이 앞으로의 목표다.
위치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일과대수로27번길 22
운영시간 11:30~18:30
문의 0507-1352-5661
인스타그램 @ins_mill
더커먼
대나무 칫솔 하나 구매할 곳 없던 제로 웨이스트숍 불모지 대구에 지속가능한 삶을 슬로건으로 내건 상점이 문을 열었다. 2020년 6월 오픈한 ‘더커먼’은 제로 웨이스트숍과 비건 밀카페, 커뮤니티를 통해 지속가능한 삶과 문화를 모색하는 플랫폼 겸 문화 공간이다. 환경을 위한 라이프스타일이 보통common의 문화로 자리 잡기를 바란다는 뜻을 담고 있다. 매장은 크게 카페와 편집숍으로 구성된다. 카페에서는 대표 메뉴인 팔라펠 샐러드와 건강 주스를 맛볼 수 있고, 편집숍에서는 고체 샴푸와 치약, 천연 수세미 등 환경친화적인 제품을 판매한다. 액체 세제류와 조미료, 향신료, 밀가루 등 식료품을 소분해 용기에 담아갈 수 있는 리필숍도 함께 운영 중이다. 비건 푸드를 선보이는 카페는 저탄소 음식을 키워드로 제철 농산물을 활용한 시즌 음식을 개발하는 것이 특징. 음식을 통한 저탄소 실천과 지역 생산자를 서포트할 수 있는 경험을 제안한다. 외에도 지역 예술인들의 전시, 공연을 통해 지역민과 소통하고 대구시와 대구녹색소비자연대, 환경단체와 협업해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환경을 화두로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 담론을 만들어 갈 수 있는 지역 소통의 장을 목표로 한다.
위치 대구시 중구 국채보상로 741
운영시간 11:30~20:30 (월 휴무)
문의 070-8065-7795
인스타그램 @common.for.green
학산숲속시집도서관
지역별 공공도서관 확충이 이루어지고 있는 지금, 큰 규모의 도서관 못지않게 중요한 공간이 동네와 골목에 저마다의 형태로 자리한 작은 도서관이다. 소비 행위 없이 점유할 수 있는 도시의 공간이 점차 드물어지는 가운데 도서관은 발길 닿는 대로 머무를 수 있는 쉼터다. 지난해 전주에 개관한 ‘학산숲속시집도서관’은 지역 주민에게 지역 도서관의 의미를 잘 보여준다. 도서관은 전주 도심 외곽에 해당하는 학산 인근의 아파트에서 시작해 맏내호수로 이어지는 산책로에 아늑한 규모로 자리한다. 울창한 산림과 수변 공간이 어우러져 우수한 경관을 자랑하는 가운데 시민들이 자연 속에서 독서를 즐기며 휴식을 취하기를 바랐다. 이러한 맥락에 따라 부지 내 수목을 최대한 훼손하지 않고 주변 환경과 조화를 꾀했다. 내부에는 큰 통창을 설치해 자연경관을 담을 수 있도록 했고,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원목 가구를 배치해 편안하고 안락한 분위기를 조성했다. 시집 도서관이라는 정체성을 살려 엄선해 만든 시집 큐레이션 서가는 이곳에서만 누릴 수 있는 특별함. 시 낭독과 시 쓰기 교육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함께 열린다. 일상 속 누구나 시와 함께 쉬어갈 수 있는 순간을 선사하는 지역 도서관이다.
위치 전북 전주시 완산구 평화동2가 산81
운영시간 09:00~18:00 (월 휴무)
문의 063-714-3525
인스타그램 @poem_with_haksan
어반브릿지
어반브릿지는 부산의 구도심 동래에 위치한 소셜벤처 기업이자 라이프스타일 공간이다. 우리은행 동래지점(옛 조선상업은행)을 리노베이션한 건물은 부산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리을도랑 건축사사무소의 김성률 건축가가 디자인했다. 동래 상권의 역사성을 오늘날의 로컬리티로 재해석해 일상다반사의 오랜 즐거움을 현재의 살아있는 문화와 접목한 독특한 경험을 제안한다. 한 건물에 커뮤니티 공간과 공유 오피스, 소셜 다이닝이 가능한 공유 주방을 비롯, 셰어하우스와 게스트하우스까지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사회적 가치를 존중하면서도 각자의 전문성을 갖춘 1인 기업과 스타트업이 주요 대상으로, 이들을 위한 지적 인프라와 인적 네트워크를 갖춘 공간을 조성해 지역 자원을 활용한 사회 경제적 도시재생 거점으로 거듭나기를 희망한다. 건축, 디자인, 브랜딩 등 국내외 다양한 분야의 매거진을 큐레이션한 서가와 다채로운 체험 프로그램, 기획 전시 및 오프라인 행사 등 주기적으로 바뀌는 풍성한 콘텐츠도 눈여겨볼 부분. 추후 특정 지역의 스토리가 담긴 상품이나 지역 특산품을 개발하는 식음료 제조 기업을 발굴하고 육성할 계획이다. 올해는 부산시 로컬크리에이터 육성 사업의 로컬 푸드 부문에 선정돼 지역 전통차 산업 육성에도 나선다.
위치 부산시 동래구 충렬대로237번길 28
운영시간 12:00~20:00 (주말은 19:00까지)
문의 051-710-8488
인스타그램 @urbanbridge_dongnae
고유함을 입은 로컬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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