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로서의 건축

[Story] ‘용인 모듈러 커뮤니티 주택’ 시공 이야기
©brique magazine
에디터. 박지일  사진. 윤현기  자료. 바운더리스 건축사사무소
 

① ‘제조’로서의 건축 — ‘용인 모듈러 커뮤니티 주택’ 시공 이야기
② [Architects] 동상이몽 – 바운더리스 건축사사무소

 


 

프리패브리케이션prefabrication(이하 프리패브)은 공장에서 골조를 생산하고 현장에서 조립하는 공법을 의미한다. 전체 공정의 약 70%가 공장에서 이뤄지고 현장에서는 조립만 하면 되기에 기존 공법 대비 50% 이상의 공기 단축이 가능하며, 필요한 기능 인력을 최소화하고 날씨나 기온의 영향을 받지 않는 등 건설 현장이 직면한 문제점들을 완화할 수 있다. 현장에서 발생하는 먼지나 소음, 폐기물 등이 적어 민원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롭고, 건물을 옮기거나 다시 사용할 때 투입된 자재의 60~70%를 재활용할 수 있어 친환경적이다.

 

©BRIQUE Magazine

 

모듈형 건축의 탄생
프리패브 방식으로 제작된 모듈러 건축이 국내 주택 시장에 처음 도입된 때는 지난 1992년, 당시 국토해양부가 경기도 성남에 분당 신도시를 조성하면서 PC(Precast Concrete) 공법의 주택을 도입한 것이 시초다. PC 공법은 콘크리트로 만든 기둥, 보, 벽, 슬라브 등 아파트의 주요 구조물을 미리 만들어 현장에서 조립하는 것으로, 대규모 주택 공급을 위한 공기 단축과 비용 절감 등 주로 효율을 높이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됐다. 정확하게는 모듈러 건축이라기보다는 미리 만들어둔 구조물을 조립하는 개념이었다. 이후 2010년 초반 논현동 인근에 컨테이너를 쌓아 만든 복합문화공간 ‘쿤스트할레’가 유명세를 타면서 건대 ‘커먼그라운드’, 성수 ‘언더스탠드에비뉴’와 같은 유형의 모듈러 건축이 속속 등장했지만, 안정성 문제로 공장이나 저층 건축물에만 한정적으로 적용되어 왔다. 그러나 최근 기술의 발전과 함께 프리패브 기술도 점점 진화하고 있다.

 

©BRIQUE Magazine

 

대형 건설사들의 각축장
정부는 지난해 6월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을 통해 3기 신도시와 수도권 공공임대주택에 공사 기간이 짧은 모듈러 주택의 우선 공급을 검토한다고 밝혔다. 경과에 따라 신도시 공공주택 일부도 기존 철근콘크리트 대신 모듈러로 전환해 조기 입주를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국내 모듈러 주택 시장 규모는 작년 1조6000억 원에서 올해 2조4000억 원으로 2배 가까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기조에 맞춰 국내 건설사들은 모듈러 주택 시장에 앞다투어 뛰어들고 있다. 포스코A&C는 지난 2월 국내 최초로 천안에 하루 8개, 연간 최대 4200개의 모듈을 생산할 수 있는 모듈러 주택 생산 공장을 준공했다. 현대엔지니어링은 최근 경기주택도시공사가 모듈러 공법을 적용하기로 한 ‘용인영덕 경기행복주택’의 시공자로 선정됐다. 경기 용인시 기흥구에 지어지는 이 13층 높이의 아파트는 국토교통부가 추진하는 ‘중고층 모듈러 공공주택 실증단지 사업’의 일환이다. DL이앤씨는 모듈러 구조와 관련된 특허 19건을 출원하기도 했다.

 

©BRIQUE Magazine

 

구축에서 제조로
모듈러 건축은 공장 제작이 공정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만큼 최적화된 제작 프로세스가 중요하다. 국내에 건설되고 있는 대부분의 건물은 습식 공법인 철근콘크리트 구조나 철골 구조로, 대다수의 공정이 현장 시공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반면 모듈러 건축은 공장에서 본체부와 바닥슬래브로 이뤄진 모듈을 먼저 제작한 후, 완성된 모듈을 현장으로 운반해 설계 시방에 맞춰 조립하고 이어 내·외장 및 마감 공사를 하는 순서다. 생산 방식부터 건물이 지어지는 과정 자체가 완전히 다른 것이다. 개인의 취향이 반영된 집을 표준화해 제품으로 만들고 이를 조립하는 것은 우리가 이전까지 생각했던 건축과 집에 대한 개념이 완전히 달라짐을 의미한다. ‘구축’이 아닌 ‘제조’되는 건축. 이는 우리에게 어떤 질문을 던질 수 있을까. 

 

©BRIQUE Magazine

 

익숙한 형태, 생소한 방식

 

용인 모듈러 커뮤니티 주택은 국내 최초로 인필in-fill 방식이 적용된 민간 프로젝트다. 모듈러 공법은 크게 라멘식과 벽식으로 대표되는 적층 방식과, 인필 방식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된다. ‘커먼그라운드’가 컨테이너를 쌓아 올린 모듈러 공법의 대표적 사례라면, 인필 방식은 구조와 뼈대를 먼저 구축하고 만들어진 뼈대에 서랍처럼 박스 모듈을 채워 넣는 방식이다. 적층식보다 층간소음 완화 및 구조 안전성 강화를 기대할 수 있고 고층 구조에도 적용이 용이하다. 개별 모듈을 정해진 공간에 이격 없이 정교하게 채워 넣어야 하는 까닭에 적층식 공법에 비해 난도가 상당히 높다.

 

©BRIQUE Magazine
©BRIQUE Magazine

 

커뮤니티 빌리지
건물은 재단된 두 개의 필지에 위치한다. 지상 4층(A동), 지상 5층(B동)짜리 주거용 오피스텔로 풀 옵션의 복층형 원룸 모듈 유닛 36개, 33개로 구성된 총 69세대 규모다. 프로그램은 복층형 유닛과 지하 주차장, 그리고 접지층의 주민 공유 시설이다. 개별 주거 공간 내에서 주방과 욕실을 공유하는 일반적인 셰어하우스 유형이 아닌, 각 세대는 저마다 거주에 필요한 모든 기능을 갖추고 커뮤니티 시설만 공유한다. ‘개별 주거+주민 공유 시설’을 갖춘 일종의 커뮤니티인 셈이다. 이에 더하여 두 개 필지와 인접한 위치에 셰어하우스 형식의 주거동이 추가로 계획되어 곧 착공을 앞두고 있다. 해당 건물의 준공이 마무리되면 보다 넓은 개념의 공유 주거 마을, 즉 커뮤니티 빌리지로 기능할 예정이다.

 

시공 과정 ©Boundaries Architects
시공 과정 ©Boundaries Architects

 

벽과 벽 사이
‘건폐율 60%, 용적률 300%, 층수 제한 5층’의 제한된 조건에 최대 임대 면적과 세대수를 요구하는 건축주의 요청이 맞물린, 그야말로 운신의 폭이 없는 계획 조건이었다. 여유 공간을 가질 수 없는 택지개발지구 조건에서 설계를 담당한 건축가는 원룸형 주거의 모습을 의도적으로 과장해 드러내고자 했다. 개별 주거 모듈을 600mm의 두터운 벽체로 나눠 수직적 구분이 명확한 직설적 형태로 표현한 것. 그리고 이와 대비되는 유닛 전면은 개방적인 커튼월로 구성했다. 외부로는 적극적인 소통을 희망하면서도, 인접한 내부의 방끼리는 거리를 두고자 하는 현실의 이중성을 풍자하고자 한 의도다. 초기부터 모듈러 방식으로 계획하진 않았던 까닭에, 허가 취득 후 시공 방식이 변경되어 전면적인 실시 설계의 수정 및 그에 따른 계획의 변화를 거쳤다. 그로 인해 2017년에 시작된 프로젝트는 2021년에서야 마무리됐다. 

 

시공 과정 ©Boundaries Architects
시공 과정 ©Boundaries Architects

 

26㎡의 철판 모듈 유닛 세대별 면적은 18㎡(5.8평)이지만 다락이 있는 복층 구조여서 실평수는 8평 규모다. 배관과 전기, 통신 시설은 통합된 PS실에 한데 모아 유닛과의 결합이 쉽도록 했다. 유닛은 화장실을 비롯해, 시스템 에어컨과 내부 수납장, 복층 계단, 다락방까지 갖춘 풀 옵션 원룸으로 구현되어 있다. 적층식 모듈 유닛은 포스코 등 여러 기업에서 만든 제품을 사용할 수도 있었지만, 더 높은 완성도를 위해 모듈 유닛을 새롭게 제작했다. 철판을 4방향으로 접어 바닥과 벽, 천장까지 실내 공간 전체를 전부 철판으로 구성했다.

 

시공 과정 ©Boundaries Architects

 

기본적인 유닛의 설계는 바운더리스 건축사사무소에서 진행했고, 기술적인 협조는 제작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았다. 유닛을 제작한 ‘스타코’는 선박의 객실을 전문으로 제작하는 업체다. 선박의 객실은 건축에 비해 화재나 소음, 방수에 대한 인증 기준이 높다. 이들의 기술력을 활용해 기능이 탁월한 유닛을 제작하고자 했으나 건축과 선박 객실의 인증 기준이 서로 달라 높은 수치를 온전히 반영하지는 못했다.

 

‘용인 모듈러 커뮤니티 주택’  전체 이야기를 담은 <브리크brique> vol.10 👉더 알아보기

You might also like

스테이 창업 전, 반드시 두드려보아야 할 돌다리 ‘스테이 스쿨’

스테이 스쿨 강사진으로부터 미리 들어보는 생존 전략

일상의 웰니스 라이프 큐레이터에게 묻다

[Wellness Lifestyle] ⑧ Life Curators

패러다임 전환의 시대

[Portrait] 호텔을 만드는 사람 한이경

‘왜 홀리스틱 웰니스인가’, 그는 이렇게 말한다

[Interview] 상하 리트릿 CCO & 총괄 건축가 — 캘빈 싸오Calvin Tsao

짓기 전에 꼭 넘어야 할 스무고개가 있습니다

[다시 만난 브리크의 공간] ① 서교동 카페 ‘콤파일Compile’ 황지원 대표

우리나라 아파트 디자인의 이면

[정해욱의 건축잡담] ⑨ 건축가가 발견한 디자인 특이점에 관한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