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번잡 속에서 찾는 여유

[Place_case] ⑧ 나를 위한 시간 '마이시크릿덴'
©Place_case
글 & 사진. Place_case (플레이스 케이스)

 

일상에 영감과 풍요를 더하는 공간을 찾아 기록하는 인스타그램 계정 @p.lace_case 운영자이자 <브리크 brique> 애독자인 플레이스 케이스 Place_case님을 전문 기고자로 초대했습니다.
실내 건축을 전공하고, 현재 공간 디자인PM으로 일을 하고 있는 그녀는 삶을 윤택하게 하는 장소들을 큐레이션하여 주변 이들과 함께 향유하고 소통하고자 합니다. 그녀가 펼치는 공간 이야기를 따라가며 여러분도 잠시 여유로운 시간을 가져보시길 기대합니다.

 

도시는 함께하는 곳이다. 계획된 만남과 다시 없을 마주침들로 일상이 만들어지는 곳이다.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과 아침부터 저녁까지 부대끼며, 밖을 향한 안테나를 세우고 살아간다. 그러나 필연적으로 함께하는 생활에는 자발적인 고독의 시간이 긴요하다. 그래서 우리는 주파수를 내면으로 돌리고 스스로를 살필 시간을 주기적으로 필요로 한다.

이번 공간은 그런 시간을 위해 존재한다. 혼자만의 시간. 이곳은 도시 안에 있지만 그 소란함을 잊게 해주는, 방해받지 않는 태풍의 눈 같은 곳이다. 잠시 홀로 머물며 생각을 정비하고 마음을 풍요롭게 할 수 있는 비밀스러운 공간, ‘마이시크릿덴My Secret Den’이다. 

 

창을 바라보는 소파가 놓인 메인홀 ©Place_case

 

나만 알고 싶음을 은유하는 시크릿Secret과 동물의 굴을 뜻하는 덴Den이 합쳐진 이름.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당장 숨을 구멍이 필요한 것은 토끼와 같이 작은 동물이듯, 이곳은 내일을 위한 오늘의 짧은 사색思索이 필요한 이들을 위한 곳이다.

서울 시청역 앞 간판이 즐비한 길목의 한 건물 4층에서 이 공간을 찾을 수 있다. 마이시크릿덴은 사색을 위한 사색四色의 공간으로 책, 음악, 와인, 그리고 풍경 속에서 내면을 탐색하는 곳이다. 자연을 담은 뷰와 세심하게 선정된 읽을 거리, 들을 거리, 마실 거리가 생각을 가동시킬 연료가 되어준다. 

공간에 들어섬과 동시에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나무와 하늘이다. 청량한 풍경에 숨을 쉬는 것이 조금 편안해진다. 반듯하고 각진 공간에서 생활하며 딱딱하게 굳어버린 생각도 느슨하게 풀어지기 시작한다. 창 밖으로는 덕수궁과 돌담길, 그리고 원경의 빌딩들이 보이고, 반사도가 높은 천장과 벽거울로도 외부 풍경이 반사된다. 이렇게 바깥의 경치를 빌리는 차경借景은 마이시크릿덴의 네 가지 아이덴티티 중 ‘풍경’을 극대화시킨 연출이다.

 

창과 천장, 거울로 경치를 끌어들인 내부. 채도가 낮은 붉은 벽면은 덕수궁을 연상시킨다. ©Place_case
근경의 덕수궁과 원경의 건물이 보이는 창가 자리의 뷰 @Place_case

 

당신에게 인풋input이 필요하다면 이곳의 운영진이 엄선한 도서와 그 속의 북카드를 읽어볼 수 있다. 무언가를 끄적이고 싶다면 마이시크릿덴의 동굴토기 ‘데니’에게 글을 남기거나 답장을 받을 수도 있고, 컬러링북을 칠하며 시간을 보낼 수도 있다. 아니면 창 밖의 풍경을 감상하거나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도 있다.

사색思索이라고 해서 꼭 골똘히 생각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멍 때리는 것’은 뇌가 스스로 정리하며 리셋하는 시간으로, 다시 새로운 일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과정이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고 안내한다. 그대신 어렵게 사수한 혼자만의 시간이 온전히 편안하도록 그라운드룰ground rule을 정해준다. 

사실 이곳과 유사한 공간들은 도시에 많다. 그럼에도 마이시크릿덴에서 보내는 ‘혼자의 시간’이 유독 만족스러운 이유는 운영의 묘미 덕분이다. 이곳은 같은 공간이라도 시간을 어떻게 정의하고 규제 하느냐에 따라 경험의 양과 질이 달라질 수있음을 보여주는 곳이다.

 

책과 음악, 와인은 정기적으로 업데이트되며 방문하는 이들에게 생각하고 즐길 거리를 만들어준다. @Place_case
사시사철 달라지는 풍경을 담아내는 공간 @My Secret Den

 

마이시크릿덴의 낮은 예약 기반의 시간제 작업실이다. 미리 예약하지 않으면 입장할 수 없고, 정해진 시간 내에 퇴실을 해야 한다. 또한 무인으로 운영돼 예약자들은 미리 전달받은 비밀번호로 직접 문을 열고 입장한다. 보안을 해제하고 들어오는 첫 번째 행위부터가 처음오더라도 이곳을 ‘나의 공간’으로 인지시켜준다.

제한된 인원만 사용한다는 것은 북적댈 일이 없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용 수칙에 사전 동의한 이들만이 찾아오기에 서로를 향한 암묵적 배려가 묻어난다. 대화 금지, 취식 금지, 키보드 타이핑은 살살. 소음의 요소가 줄어든 공간에는 음악이 적막함을 덮어주고, 직접 가져온 음료나 비치된 드립커피를 내려 마시며 조용한 여유를 누릴 수 있다.

또 하나의 유용한 장치는 이용시간 제한이다. 주중은 3시간, 주말은 2시간만 머물 수 있는데, 프로젝트에도 데드라인이 있어야 탄력 있게 진행되듯 쉼도 시간을 정해두면 더 밀도 높은 경험이 가능하다. 생각해보면 시한부 me-time(나를 위한 시간)을 함께 보내는 이들은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며 각자에게 주어진 시간을 충실히 보낼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와인과 함께하는 저녁시간 @My Secret Den

 

그렇다고 이곳이 늘 조용한 공간만은 아니다. 해가 진 뒤에는 사색(四色)의 아이템 중 와인이 등장한다. 혼자의 시간 뒤에는 함께의 시간도 있어야 하는 법.  ‘와인 페어링 공간’이라고 불리는 이 시간대에는 안주를 직접 가져오거나, 주문한 와인에 어울리는 배달 음식을 시켜 플레이팅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이 곳은 저녁에도 낮의 분위기가 이어져 왁자지껄하기보다 소곤소곤한 분위기다. 따로 또 함께하는 사색의 장소. 낮과 밤이 다른 비밀스러운 공간. 도시인의 필요를 채워주는이런 곳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이곳의 모태는 바로 위 5층의 HFK라는 자기계발 커뮤니티에요. 함께 성장을 꿈꾸는 직장인 15명의 합작으로 마이시크릿덴이 탄생했습니다. 도시에서 일하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것을 담을 수 있는 공간은 어떤 모습일까에 대한 고민의 결과물이죠.”  
-마이시크릿덴 & HFK 김재윤 대표

 

마이시크릿덴으로 탄생하기 전 공간의 모습 @My Secret Den
따로, 또 함께를 위해 조성된 현재 공간의 모습 @Place_case

 

현재의 공간은 창업 멤버들이 함께 꾸렸다. 15평의 작은 공간이지만, 이런 장소를 원했던 이들의 실질적인 아이디어가 묻어나 공간에 진입하고 머무는 여정이 매우 흥미롭다. 출입문을 열면 전면 전체가 거울인 전실이 나온다. 혼자만의 시간을찾아온 ‘나’를 맞이해주는 ‘나’와 조우하는 곳인 걸까. 거울 옆쪽으로 닫혀있는 무겁고 비밀스러운 붉은 커튼을 젖히면 비로소 메인 공간이 나타난다.

전실에서 이어진 메인홀은 누군가의 거실 혹은 서재처럼 조성돼 있다. 함께 앉아 창을 바라볼 수 있는 소파가 있고, 그옆으로 비치된 오픈 책장에는 마이시크릿덴에서 큐레이션하는 도서와 매거진, 음반들이 놓여있다. 모든 콘텐츠는 소파가 놓인 쪽에서만 이용이 가능하도록 비치되어 있는데, 이는 책장 반대편 공간을 좀 더 프라이빗하게 이용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책장 가운데의 게이트처럼 조성된 통로가 공간을 구분한다. 소파 쪽 공간이 다른 이들과 함께 생각을 확산하는 곳이라면, 통로 너머는 생각을 수렴하기 위한 공간이다. 개별 좌석으로 세팅된 바 테이블과 암체어는 작업 편의를 위해 개인 조명이 설치되어 있고, 모든 자리가 창가를 향해 있어 서로 시선이 겹칠 일이 없다. 이곳에 오는 이들은 같은 입구로 들어와 다른 곳을 바라보며 각자의 시간에 충실할 수 있다.

 

내부에서 출입구 쪽을 바라보는 뷰. 오른쪽으로 전실의 붉은 커튼이 보인다. @Place_case

 

마이시크릿덴에 앉아 내다보는 도시는 그 속에 있을때와 달리 여유로운 모습이다. 잔잔한 음악을 배경삼아 이런저런 생각들을 꿰어나가다 보면 어느새 복귀할 시간에 다다른다. 주변을 둘러보면 나갈 채비를 하는 이들이 보인다. 이곳에서 보내는 혼자만의 시간은 비슷한 갈증을 느낀 다른 이들과 함께여서 더 풍요롭게 느껴지는 것일까. 무리지어 살아가기에 고독의 시간이 더 소중한 것인데, 그 소중한 시간을 같은 공간에서 보낸다는 것은 꽤나 특별한 일이다. 각자의 시간을 함께 보내고 다시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 도시로 나서는 발걸음들이 한결 가뿐해 보인다.

 

마이시크릿덴 (@my.secret.den)
서울 중구 덕수궁길9, 401호(현진빌딩)
일~토 09:00 – 22:00
(09:00 – 17:00 예약제 공유 서재 / 18:00-22:00 와인 페어링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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